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02화 (302/460)

302화. 기묘한 밤.

기이하다.

도운연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천화서고 대공자.

‘만난 적이 있나?’

없다.

단연코 초면이었다.

한데 왜 대공자는 날 보며 푸근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지?

마치 어른의 미소.

어른이 아이를 바라보는 미소를 짓고 있고 그게 또 잘 어울리기도 하니, 도운연은 의아함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무공의 경지가 드높아서일까.

그렇다면 거만한 미소여야 하지 않나?

은연중 비웃음이 묻어나야 하지 않나?

한데 아니다.

막연하지만 대공자의 미소는…… 따스함.

‘알 수 없구나.’

도운연은 마주한 것만으로 기묘해졌고 호기심이 커졌다. 커진 호기심에 시선은 신검에 닿았다. 대공자의 허리춤에 하나, 등 뒤로 둘. 셋을 모두 취했다고 했으니,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백부의 단검이 있을 것이다.

왜 검이 넷인가?

그런 의문보다 신검의 운용을 보고 싶어졌다.

아버지에게 들었다. 백부의 신검은 누구도 다룰 수 없노라 말씀하셨다. 손에 쥐고 마기를 흘리면 신검이 마기를 흩어버린다고 하셨다.

“대공자, 백부의 신검을 얻으셨다고요?”

“네.”

“대공자께서 신검을 다루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도운연이 예를 갖춰 말했다.

후공은 무시했다.

그저 웃음.

곁에 선 당명도 피식 웃고 말았지만, 도운연 뒤에 선 두 사람은 아니었다.

‘감히 주군의 청을 거절해?’

‘이 새끼 봐라!’

발끈한 몽허와 음희가 앞으로 나섰다.

마음 같아선 일격을 가하고는 왜 처웃기만 하냐며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주군이 원하는 바가 아님을 알기에 우회했다.

어떻게든 놈이 신검을 발출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으로 음희가 입을 열었다.

“대공자, 우리 내기를 하는 건 어때요?”

더 다가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미소 지었다.

“십 초! 열 번의 손속 안에 그대가 내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만약 그대가 내 손을 잡지 못한다면 신검을 운용하도록 해요. 난 여기 딛고 선 자리에서 두 발을 떼지 않도록 하죠.”

후공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음희. 이 녀석도 제정신이 아니다.

게다가 운연이 만류할 생각이 전혀 보이지 않고 도리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으니 응해주기로 했다.

“손을 잡는다면?”

“그대를 오라버니라고 부르죠.”

“오라버니라고 부르면 제 손에 죽습니다.”

그것이 수락.

음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섬섬마수(閃閃魔手)를 펼쳤다.

섬섬마수의 묘용에 음희의 손은 순식간에 수백 개로 늘었다. 어디에도 그녀의 손이 있고, 또 어디에도 없었다. 고작 십 초식. 제아무리 대단한 자라도 그 시간 안에 진짜 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비웃으며 음희가 바라볼 때,

빨려들어갔다.

‘……?’

그녀의 눈에 들어선 건 자줏빛.

세상이 온통 자줏빛.

음희의 눈에는 자줏빛 안광만 보였다. 그 가운데 영혼이 짓눌려갔다. 자줏빛 광채의 폭압에 정신이 가둬지는 느낌. 하염없이 마음의 심지가 움츠러들고 작아져가니 눈을 돌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을 땐…….

부드러운 손길이 손등에 닿았다.

그제야 음희는 자줏빛 폭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멍하니 붙들린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의식은 길었지만 실상은 찰나.

고작 한 번의 손길에 자신의 섬섬마수를 깨뜨렸기에, 음희가 경악해 입술을 달싹였다.

“오……. 오오……”

뒷말은 완성할 수 없었다.

대공자가 갸웃하며 바라보는 눈길에 ‘오라버니’라고 부르면 죽는다는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뭘 병신같이 넋을 놓고 있어! 저리 비켜!”

이어 나선 건 몽허.

음희를 밀치고 내기를 제안했다.

같은 제안.

조금은 다른 내용.

“백 초식! 천공단주, 네가 내 몸에 한 번이라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말은 거기까지.

후공은 귀찮아졌기에 몽허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몽허가 반사적으로 튕기듯 물러났다.

하지만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

뭔가 희끗 번뜩여 바라보니 좌측.

손이 뻗어오고 있기에 황급히 장력을 내뻗었을 땐 이미 우측에서 바람이 일었다. 산들바람처럼 살랑살랑 불어오는 기이한 기운일 뿐인데 그것만으로 몽허는 기운이 흐트러졌다.

이는 천람.

부조화가 일면서 몽허의 마기가 출렁일 땐, 끝이었다.

파앙!

가벼운 발길에 몽허가 날아갔다.

이미 내력이 흐트러진 탓에 호신강기를 두를 여력조차 없어, 마치 새가 날아가듯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버렸다.

마침 곤륜에 도착한 천공단의 머리 위쪽이어서,

“이건 뭐야?”

“뭔데 날아와!”

“새야?”

“야, 어디 가냐!”

천공단이 뭐하는 새끼냐며 한 소리씩 떠들다, 단주를 보고는 우르르 몰려갔다.

“형님!”

“두목!”

“대공자님!”

후공은 그저 옅게 고개만 끄덕였다.

나선 건 당명이었다.

“운연아, 이들은 천공단이다.”

“천공단, 이쪽은 천마신교의 소교주다.”

당명이 서로를 소개한 순간 천공단이 놀라 얼어붙었다.

하지만 천공단이다.

놀람도 잠시뿐.

“우와아아아아아아!”

모용진이 탄성을 터뜨렸고, 그 뒤를 무산쌍웅 등이 이었다.

“시발!”

“풍제의 아드님이셔!”

“이게 대체 무슨 영광이야!”

“아니, 왜 잘생겼는데!”

“왜 순둥순둥하게 생겼냐고오오오! 하하하하하!”

탄성 속에 거지들도 나섰다.

은앙개와 소천개가 머리를 조아리고 포권을 취했다.

“마교 소교주님! 은앙개가 인사드립니다. 충성, 충성!”

“소교주님, 소천개 인사드립니다. 충성 충성!”

소천개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싶었는지 머리를 박고 뒷짐을 진 채로 소리쳤다.

“충성! 충성! 소교주님, 말씀만 하십시오! 이 소천개, 누구 목이든 따오겠습니다요!”

도운연은 찡찡.

‘이게 그 천공단인가?’

직접 마주하고 보니 이게 천공단인지 소호탈마대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아니 어떤 면에선 소호탈마대보다 더하다 싶었다.

그래도 멀쩡한 사람은 있었다.

“오라버니!”

제갈혜였다.

“어, 오랜만이구나. 근데 너…….”

“얼굴이 밝아졌나요?”

“그렇게 보이는구나.”

확연히 밝아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운연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건가?’

천화서고 대공자?

어리게만 봤는데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나 싶어 피식 웃으려니 제갈혜가 그 마음을 읽었다.

“그런 건 아니랍니다.”

“그럼?”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 제게 돌아왔어요. 나중에 소개해드릴게요.”

“그래.”

그때 대공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도 형, 함께 산을 둘러보는 건 어떻습니까?”

*

함께한 건 도운연만은 아니었다.

크르르르르!

청랑이 함께했고, 몽허와 음희도 함께했다.

몽허와 음희는 시무룩했지만, 청랑은 아니었다.

한참을 앞서 달리곤 멈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다렸다가, 다가오면 또 앞장서 달렸다.

또 함께한 이는 당명.

후공은 당명의 전음을 통해, 이 사태가 왜 시작되었는지를 전해 들었다.

죽은 이는 도운연의 시녀.

시녀라곤 해도 무공의 경지가 얕지 않아, 최소 화경에 이른 고수가 아니고선 그녀를 죽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시녀는 밖으로 나와 그녀의 본가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는 말이 이어졌다.

- 풍제는?

- 폐관 중이라고 합니다.

- 그렇게 되었나.

- 대형, 짐작 가는 점이 있으십니까?

- 너는?

- 곤륜의 소행이라고밖에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시녀의 무공 수준 때문이었다.

화경의 고수가 상대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곤륜의 검흔을 흉내 내는 정도에선 불가능하다. 다른 실질적인 흔적이 남아야 한다. 하지만 시녀의 몸에 다른 흔적이 없으니 결론은 곤륜.

도운연과 소호탈마대가 곤륜을 몰아세운 건 생각이 짧아서가 아니었다.

- 그럼에도 곤륜은 아니지.

- 네.

곤륜이면서 곤륜이 아닌 자.

어쩌면 과거의 곤륜.

이제 놈이 누구인지 찾아야 할 때였다.

후공은 신형을 멈췄다.

곤륜산의 외곽을 한 바퀴 휘돌고 난 다음이었다.

어느 이름 모를 산봉우리에서 도운연과 마주 앉았다.

“대공자, 산을 돌아본 이유가 있습니까?”

어떤 행동이든 이유가 없을 수 없다.

산을 둘러본다는 의미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광범위했고, 세심했다.

“곤륜으로 오는 길에 오행의 목(木)을 다루는 이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혹시나 그 흔적이 남아있나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혹시나 싶어 묻고 싶습니다. 수하 중에 오행의 목에 치중하는 이가 있습니까?”

“제 수하 중에는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그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말한 다음 후공은 청랑을 바라봤다.

청랑이 곁에 얌전히 앉아 말이 오갈 때마다 고개를 돌려가면서 여기 봤다 저길 봤다 하고 있으니 귀엽기 짝이 없었다.

“귀여운 녀석.”

그 손길에 청랑이 더 쓰다듬어달라는 듯 머리를 더 가져가댔다.

‘허…….’

그런 청랑의 모습은 도운연으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대공자를 접하면서 놀라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현경의 중에 이른 당 숙부의 태도가 그렇고, 현경의 예에 이른 몽허가 대응조차 못 하고 날아가버린 일까지.

“왈왈, 짖어볼까?”

“……?”

도운연이 갸웃했다.

하다하다 늑대에게 왈왈 짖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내심 실소를 머금을 때,

“왈왈, 왈왈! 와르르, 왈왈!”

청랑이 꼬리를 흔들어대며 개처럼 짖어버렸기에 도운연은 넋이 나가버렸다.

후공은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를 디밀고 안겨드는 청랑을 떼어 내려 친을 발출.

자줏빛 광채가 솟구치며 머리 위를 맴도니 청랑이 친을 쫓아 달리고 뛰어올랐다.

그 광경에 도운연이 멍해진 건 당연한 일.

‘백부의 단검…….’

그렇게 보여달라고 할 땐 무시하더니만…….

아니, 그것보다 신검과 대공자 사이에 기운이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백부의 방식…….’

도운연은 이제 대공자가 완연히 달라 보였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백부와 같은 부류.

백부와 같은 무공의 천재.

그렇게 보였다.

“도 형.”

“네, 말씀하십시오.”

“제게 계책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경청하겠습니다.”

신검의 운용까지 본 터라 도운연의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이번 일에 대한 대가로 곤륜의 장로 중 하나를 죽이는 선에서 끝냈으면 싶은데, 어떻습니까?”

“네? 그,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도리어 도운연이 당황했다.

“그, 그래도 되는 겁니까?”

“후후, 뭐 어떻습니까. 마교가 하는 일인데.”

“대, 대공자! 어찌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겁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곤륜이 받아들일 리가.

이 결과는 전면전이 될 뿐이었다.

**

곤륜은 받아들였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곤륜 장문 제금은 껄껄 웃기까지 했다.

“대공자, 좋네! 좋아!”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누굴 죽이는 게 좋을지 골라봐야겠군.”

곤륜삼선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후공은 입구 쪽, 들어서는 산문 쪽으로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기 오고 계시는 분이 좋겠습니다.”

“응?”

모두가 갸웃했다.

가리킨 곳은 텅 비었을 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기척이 들려온다 싶을 때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산발에 옷은 흙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사람이었고, 머리가 유난히 컸다.

“천공단! 이 개놈들 어디에 있냐아아아아!”

혈도가 풀리자마자 땅을 뚫고 올라와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달려온 대광, 아니 제광이었다.

잠시 후.

제광이 장문인 앞에서 울상을 지었다.

“장문인, 저 얼마 전에 죽었는데 또 죽어야 합니까?”

“이해해라. 그렇게 됐다.”

“시ㅂ…… 장문 사형! 왜 하필 제가 죽어야 하냔 말입니다! 기분이 별로 안좋습니다!”

“그냥 죽으라면 죽어 좀!”

기묘한 밤이었다.

마교 소교주 앞에서,

소교주의 두 호법 앞에서,

그리고 천공단 앞에서…….

곤륜 장문인이 죽으라고 사제에게 성질을 낸다.

알 수 없는 밤.

기묘한 밤.

도운연은 이미 모든 계획을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머리가 어질거릴 지경이었다.

‘아버지……. 소자, 오늘 이상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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