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05화 (305/460)

305화. 그저 손이 몇 차례 닿았을 뿐인데.

들려온다.

쏴아아아아아아!

수수수수수수!

후공은 느낄 수도 있었다.

나무와 풀들이 그들의 주인이 지나쳐갈 때마다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또한 정오를 맞아 햇살은 어느 때보다 따사롭다.

오행의 목(木)에 치중한 자.

그가 곤륜을 부수러 오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놈의 파멸.

과거의 곤륜인가?

그럴 테지.

그렇다 해도 후공은 놈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궁금한 건 하나.

놈은 도운연의 시녀를 정확히 노렸다.

우연일 리 없다.

왜 하필 도운연의 시녀인가?

시녀의 이동 경로를 어떻게 알게 된 건가?

마교 내 내통자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

그것이 궁금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무들의 환호성이 극에 달했다.

이제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누구 할 것 없이 미간을 좁혔다.

‘산 아래 돌풍이 부는 건가?’

나무들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났기에 모두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때, 도달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저만치 나무줄기 하나가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올랐고, 그 나무줄기를 한 사내가 딛고 서 있었다.

또 기이한 얼굴이었다.

등 뒤에 검을 메고 있었지만 검은 보이지도 않았다. 초록빛과 녹빛이 어우러진 얼굴, 짙은 녹색 광채를 뿜어내는 안광에 모두의 시선이 사로잡혔다.

도운연과 소호탈마대는 그저 눈이 가늘어졌지만, 곤륜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누구?’

‘대사형이 아니라고?’

목정(木精)을 취해 기이하게 변해버린 제곤의 얼굴을 곤륜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제곤은 달랐다.

파문 후 삼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사제들이 노인이 되었음에도 어렵지 않게 면면을 알아보았다.

웃을 순 없었다.

초록빛 얼굴은 굳어졌다.

마치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기다리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제 제광이 보인다.

제광의 머리는 더 커졌다.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죽었다던 제광이 어찌 버젓이 살아있는 것인가.

함정.

‘날 끌어당겼구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마교 소교주와 소호탈마대도 보이는 것이다.

소문은 어떻게 된 거지?

어찌 그리 빠르게 소문이 퍼진 것인가?

분명 소교주 저 어린놈이 마을을 불태우는 광경을 보았는데……. 그 모든 게 이 시간을 위한 덫이었다고? 듣던 것보다 심계가 깊은 놈이었던 것인가?

뭐 상관없겠지.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제광이 살아있는 것도, 곤륜이 마교와 연합한 것도

모두 죽인다.

살려둘 자는 오직 하나.

마교 소교주 도운연.

조만간 마교의 지존은 바뀐다.

풍제는 몰락한다.

도운연은 그 광경을 지켜보아야 한다.

경악하고 좌절할 순간을 위해 그때까지 살려두기로 계획되어 있다.

그 외에는 모두 죽인다.

하지만 그 전에,

‘후후, 마음을 흔들어볼까?’

“사제, 오랜만이구나.”

“……?”

곤륜 장문 제금의 눈이 커졌다.

제곤의 말이 이어졌다.

“결국 네가 날 대신해 장문인이 된 것인가?”

“대사형……?”

제금뿐 아니라 곤륜이 술렁였다.

제곤이 웃으며 해를 올려다봤다. 동공의 색상이 붉어졌다 노랗게 되었다 하얗게 물들어가며 계속해서 시시각각 변해갔다.

“제금, 그때 넌 양보해야 했다. 그때 넌 죽어야 했다.”

“…….”

“곤륜은 날 버리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지 않은 결과, 곤륜은 오늘 이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나직한 한마디 한마디 살기 어린 목소리가 곤륜의 귀청을 때렸다. 곤륜은 동요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대사형의 기괴하게 변한 모습에서, 기이한 눈동자에서 전해져 오는 건 선명한 악의.

파문당한 그날의 외침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도운연에겐 쓸데없는 소리.

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염혼!’

순간 도운연의 좌측과 우측에서 몽글몽글 묵빛 연기가 피어나 사람의 형체를 갖췄다. 두 염혼의 눈이 소용돌이치며 바라본 건 제곤.

도운연이 두 염혼과 함께 신형을 날리니, 몽허와 음희가 호응했다. 그 뒤를 혈령신마를 비롯한 소호탈마대 칠십이검수가 끔찍한 괴성을 터뜨리며 따랐다.

“캬캬캬캬캬캬캬!”

“끼아아아아아아아악!”

“히히히히히히히히!”

그 모습에 곤륜도 현실로 돌아왔다.

곤륜삼선 이하 장문인 제금과 십이장로가 비검을 발출하니 열여섯 개의 백색 광채가 제곤을 향해 날아들었다.

청랑도 이미 발작.

크르르르.

혈광을 뿜어내며 주인을 올려다봤다.

후공은 미소를 머금고 바라봤다.

“그래, 너도 소호탈마대였지?”

그 말이 허락.

한차례 포효하던 청랑이 푸른 빛줄기가 뻗어가듯 나아갔다.

그 공세에 천공단이 탄성을 발했다.

“와아, 너무 멋지잖아!”

“시발, 마교가 우리 편이니까 엄청 든든하네.”

“심지어 괴상한 소리까지 멋있는 건 뭐냐고!”

“저 파란 빛줄기가 청랑이지? 아예 보이질 않네.”

“클클, 이거 싱겁게 끝나겠는걸.”

“그러게. 시작하자마자 토막 날 판이야.”

그렇게 보였다.

수많은 광채가 제곤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고, 기세 또한 포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내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파아아앙!

기음이 일며 제곤의 몸에서 초록빛 선이 뿜어져나왔다.

거의 백여 개.

먼저 짓쳐든 두 염혼이 초록 선에 꿰뚫려 몸부림치다 부서져 내렸다.

제곤의 머리 위로 날아들던 열여섯 개의 비검들도 선에 휘감겨갔다. 곤륜의 비검들이 선을 끊어냈지만, 더 많은 초록 실 다발이 비검들을 옭아매려 뻗어갔다.

소호탈마대의 검수들에게도 초록 선이 짓쳐들었다.

칠십이 명 모두가 화경의 예.

그럼에도 삼십여 명의 검수의 몸에 초록 선이 닿는 순간 철퇴를 맞은 것처럼 튕겨 나갔다.

쿠웅! 쿠웅! 쿵!

지면에 처박혔지만 소호탈마대다.

혈광을 번뜩이며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편 순간 다시금 제곤을 향해 쏘아져갔다.

소호탈마대는 목숨 따위 애초에 도외시한 이들

제곤이 떨쳐내고 떨쳐내도 끝이 없었다.

그 가운데 몽허와 음희, 그리고 곤륜삼선이 제곤에게 근접해갔다. 초록 실 다발이 쏟아져오는 가운데, 곤륜삼선의 신형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비껴냈다.

“와, 저거 뭐야?”

“어떻게 저기서 신형이 저렇게 틀어져?”

“와아, 곤륜의 제운종!”

그 모습에 천공단이 찬사를 보냈다.

“멍청아, 제운종은 무당이야!”

“그랬어?”

“저건 분광신운.”

“근데 초록이 대단하긴 하다.”

“청랑!”

어느샌가 제곤은 천공단 사이에 초록이로 불리고 있는 상황. 그리고 몽허와 음희, 그리고 청랑이 제곤에게 근접했다.

크아아아앙!

청랑이 초록 선을 관통하고 제곤의 목을 물어갔고, 몽허와 음의의 장력도 도달했다. 제곤이 검을 쓸어 청랑을 떨쳐냈을 땐, 몽허와 음희의 장력에 가슴이 격중되었다.

파아아아앙!

그 타격에 제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튕겨나간 제곤을 붙잡은 건 한 그루의 나무.

감싸듯 제곤을 받아내며 살랑거렸다.

제곤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도 떠올렸다.

‘후후, 제법이다만.’

더 많은 힘.

더 많은 목(木)의 기운.

여기에서 조금 더.

그것이면 충분할 듯하기에 목기(木氣)를 흡수했다.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려오는 햇살도 목기를 더욱 충만하게 채워준다.

주변은 순식간에 눈이라도 온 것처럼 하얗게 변했다.

정기를 빨린 나무와 풀들이 스러져 가는 사이, 소호탈마대와 곤륜이 짓쳐들었다.

불룩불룩.

제곤의 얼굴과 목에 핏줄이 돋아났다.

피가 흐르며 기이함이 더해졌다.

이제 끝낸다.

굳이 시간을 끌 건 없었다.

‘처음은 너. 그 다음 일거에 쓸어버린다!’

제곤의 눈동자에 몽허가 들어찼다.

손을 내뻗었을 땐 긴 채찍처럼 굵은 초록 광채가 도운연을 향해 나아갔다. 주인을 치면 개는 달려들기 마련.

“!”

짓쳐들던 도운연의 눈이 커졌다.

방금 전 보았던 초록 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빠름이었다. 보았다 싶은 순간 눈앞이었다.

다시 형체화된 염혼이 초록 광채를 막아섰지만 화경의 중의 경지에서 형상화 한 염혼일 뿐. 그대로 꿰뚫렸다.

“주군!”

몽허가 외치며 도운연을 품에 안고 솟구쳐올랐다. 몽허는 볼 수 없었지만 도운연은 볼 수 있었다. 두 눈 가득 초록 광채가 따라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대로면 몽허는 꿰뚫린다.

몽허도 알고 있었다.

후방을 파고드는 기운은 읽힌다. 닿는 순간 자신의 호신강기는 종잇장 찢어지듯 찟겨 나갈 터.

죽음.

그리고 주군의 죽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극명했다.

주군까지 관통되지 않게, 주군을 안은 팔을 벌렸다.

‘주군, 안녕히.’

“안돼!”

몽허와 눈이 마주친 도운연이 소리쳤다.

어릴 적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함께했던 몽허였다. 그때도 중년인이었고, 지금도 중년의 외모. 수하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수하가 아니다.

도운연의 눈에 맺힌 눈물이 떨어져내린 순간,

카르르르르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크르르르르르르릉!

세 줄기 자줏빛이 초록 광채에 폭사했다. 검령과 번쾌가 휘감아 잘라 산산이 조각낸 후 도운연과 몽허 주위를 선회했다.

“……백부님?”

놀라고 경황이 없는 가운데 백부의 검을 보았기에, 도운연은 백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잊고 중얼거렸다.

몽허도 놀란 건 마찬가지.

주위를 빙글빙글 휘도는 자줏빛 검광을 보며 넋이 나갔다.

“천공단주…….”

놀란 건 운연과 몽허만은 아니었다.

곁으로 다가오던 음희도 놀라 걸음을 멈췄고, 곤륜삼선과 곤륜의 장로들도 같아졌다.

청랑과 소호탈마대가 도운연 앞을 가로막은 가운데 그들 위로 두 신형이 가로질러 내려섰다.

대공자와 당 숙부였기에,

“……아!”

그제야 도운연도 현실을 인지했다.

백부가 아니었다. 백부의 신검을 취한 천화서고 대공자가 몽허와 자신을 구한 것임을 깨달았다.

도 형, 준비 되었습니까?

그렇게 묻던 대공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준비는 되지 않았다. 자신감만 갖추었을 뿐 상대를 과소 평가했다.

‘대공자는 이 자를 막을 수 있을까?’

그 말에 대답하듯 제곤이 주춤 물러섰다.

고작 두 사람이었지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보았음에도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두 사람이었다.

젊은 서생의 경우는 더 그러했다.

애초에 평범한 서생이라 생각했고, 심지어 지금도 그렇게 보이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아득히 넘어선 경지.

자줏빛 검강이 자신의 정심한 기운을 나무 토막 썰 듯 잘게 조각내는 광경을 보았기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너는…… 누, 누구냐?”

대답은 당명이 대신했다.

말은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수많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싶은 순간 허공에 수만 개의 금빛이 찬란한 빛을 뿌렸다.

만천화우.

흑련의에서 뻗어나온 금빛의 빗줄기가 제곤을 향해 쏟아져내렸다.

‘?’

이건 대수롭지 않다.

막을 수 있다.

제곤은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순간 그의 몸은 녹색 광채에 뒤덮였다. 금빛 빗줄기는 마치 폭우가 우산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 사이로 파고든 건 하나의 자줏빛 광채.

크아아아아아아앙!

주인의 분노를 양분 삼아 ‘친’이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인 녹색 광채, 제곤의 호신강기를 돌파했다.

제곤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 데 이어 왼쪽 어깨를 관통하고 다시 복부를 뚫고 나왔다.

촉산의 백혼곡을 지나 본래의 힘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 친이다.

제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그저 빛이 번쩍이며 뜨끔한 순간, 피를 토해내며 허물어졌다.

‘이들은…… 누구인가?’

제곤이 숙인 고개를 들어 보였을 때, 들려왔다.

“아직은…….”

목소리와 함께 젊은 서생의 손이 다가왔다.

천천히 한 부분씩 닿아왔기에 점혈된 걸 알 수 있었다.

올려다보니 젊은 서생이 무심히 말을 건네왔다.

“……죽을 때가 아니다.”

“……?”

“네게 궁금한 것이 있거든.”

“쿨럭…….”

제곤은 피를 토해냈다.

토해진 건 피만이 아니었다.

절망도 토해진다.

그날과 같다.

파문당했던 그날과 같았다.

요란함이 없다는 것만 다를 뿐.

점혈된 것만이 아니다.

이자는 누구인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것인가?

파문당하던 그날처럼 단전이 부서지고 있었다.

경맥이 조각조각 끊어져 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그저 손이 천천히 몇 번 닿았을 뿐인데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누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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