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06화 (306/460)

306화. 언젠가 오고 갈 대화.

퍼석, 퍼석, 퍼석.

제곤은 자신의 몸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점혈되면서 스며든 기운에 단전이 파괴되고, 기경팔맥이 연신 터져 나가고 있었다.

물론 소리 같은 건 없었다.

검이 관통된 자신의 양쪽 어깨와 복부에서 핏물이 울컥대며 흘러나오고 있을 뿐.

그렇기에 이는 환청.

그때도, 삼십 년 전에도 이런 환청을 들었다.

곤륜에서 파문당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방식이 다르고 소요 시간이 다르다.

그땐 스승을 비롯 다섯 장로가 둘러싸고 거의 두 시진(약 4시간)에 걸쳐 무공을 폐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지금은 찰나.

대체 어떤 묘용인가?

스며든 기운이 살아있는 듯 방향을 전환해가며, 내력이 깃든 모든 곳을 파괴하고 있었다. 마치 포악한 짐승 다섯 마리가 기경팔맥을 휘돌며 연신 먹잇감을 찾아 날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묻게 된다.

‘너는 누구냐?’

눈으로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그저 무심한 시선뿐.

그래, 대답은 저승에서 듣자.

시간이 얼마 없기에, 스며든 기운이 빠른 속도로 목정(木精)까지 파괴하려 움직이고 있기에 제곤은 결단했다.

목정을 터뜨린다.

목정이 깨어지는 순간 살과 피와 뼛조각이 터져 나가면서 방원 오십여 장은 초토화될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너도, 곤륜도, 마교도.

그렇게 함께 가는 저승길에 누구인지 물어보자.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목정이 팽창하면서 제곤의 두 눈이 녹색 광채를 뿜어냈다. 벌어진 입과 귀에서도 광채가 새어나왔다.

몸은 순식간에 부풀어올랐다.

머리며 몸이 거의 두 배로 커졌다.

“헉!”

“무, 무슨?”

“잠력 격발!”

갑작스런 변화에 저마다 경악성을 터뜨렸다.

몸은 이내 더 부풀었다.

이제 세 배의 크기.

깨어진 목정의 기운이 전신에 깃들며 폭발은 눈앞.

“으하하하하하하하!”

동그란 공처럼 부푼 얼굴로, 녹색 광채를 분분히 뿌려대며 제곤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당혹에 찬 눈동자를 보는 것이 즐겁다!

잠력 격발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사제 제금의 외침이 듣기 좋았다!

몸을 빼내는 것은 늦었다며 소호탈마대가 인의 장벽을 치며 그들의 주군 소교주를 감싸는 모습은, 우습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몸은 이제 더 부풀어올랐다.

이제 곧. 이제 끝.

“으하하하하하하하하!”

거대한 공처럼 커진 채로 웃음을 터뜨려가던 제곤의 머리로, 순간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

두 사람을 보면서였다.

둘의 표정이 이상한 것이다.

금빛 암기를 빗줄기처럼 쏟아내던 자는 시큰둥 바라보고 있을 뿐이고, 젊은 서생은 매우 못마땅하다는 얼굴. 어찌 보면 화가 난 것처럼도 보이는 표정이었다.

‘……?’

고작 언짢은 표정이라고?

그 순간 눈앞이 뿌옇게 되었다.

정확히는 눈앞에 떠오른 투명한 아지랑이들. 몇 겹인가? 제곤은 겹겹이 쌓인 아지랑이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의문도 잠시.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큰 폭발음과 함께 제곤이 터져나갔다.

엄청난 폭발에 제곤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던 환명이 팽창했다. 다섯 겹의 환명 중 안쪽 세 겹의 환명이 스러졌지만, 바깥 쪽 두 겹의 환명은 천람의 기운과 함께 팽창할 뿐 버텨내며 틈을 보이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지만 소용없었다.

그아아아아아악.

환명도 끔찍한 소리를 내며 가둘 뿐.

“……!”

“……?”

“허…….”

그 광경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곤륜도, 소호탈마대도, 도운연도 같았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놀라운 광경.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질 지경이거늘, 대공자가 가둬 버렸다. 터질 때마다 그 충격에 투명한 막이 볼록 튀어나왔다가 이내 밀어내고 조여가는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태연한 건 당명뿐.

익히 봐온 광경이었기에 당연하다는 듯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사이 환명이 줄어들었다.

환명에 깃든 천람의 기운이 남은 목정의 정기를 서서히 말살해갔다. 이윽고 환명이 스러지면서 남은 건 핏물과 흩뿌려진 조각난 살점들.

“시발, 끝까지 지저분하네!”

“에잇!”

“치우자고!”

뒤쪽에 있던 천공단이 달려와 흙을 갈아엎어 제곤의 흔적을 지웠다.

다른 쪽에서는 울음이 터졌다.

“주구우우우우운!”

몽허가 도운연을 끌어안았다.

하마터면 주군을 잃을 뻔한 것이다. 자신이 주군보다 먼저 죽는 건 상관없었지만, 자신이 죽는 데 그치지 않고 주군마저 잃을 뻔했기에 울음을 터뜨렸다.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소중한 보물.

격정적으로 껴안은 채 몽허가 흘리는 눈물에 도운연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도운연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릴 적 어느 땐가 첫 만남에선 아저씨.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하여 몽허라고 부르던 시간들.

수하이기 전에 몽허는 이미 가족이었다.

그런 몽허를 잃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모든 건 대공자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대공자, 목숨을 빚졌습니다. 오늘 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운연이 예를 취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 광경에 소호탈마대도 뒤따라 감사를 표했다.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는 소호탈마대였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주군을 구한 이라면 다르다.

예를 취함에 곤륜도 함께한 건 당연한 일.

얼마나 큰 폭발이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대공자의 투명한 원형의 막이 감싸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 것인가.

후공은 별 감흥이 없었다.

도리어 아쉬움이 컸다.

동귀어진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이 그렇고, 듣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죽어버리는 바람에 듣지 못한 것도 영 마뜩잖았다.

그런 모습에 당명이 웃었다.

이 모습이다.

대형의 젊어지고 달라진 모습이 아직까지 한 번씩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런 표정과 분위기는 어찌된 게 그대로인 것이다.

- 대형, 별일 있겠습니까.

- 그렇겠지?

- 물론입니다.

마교 내 내통자 따위.

작은 먼지 정도에 불과하다.

돌아서는 길은 모두 천천히 걸었다.

각자가 생각이 많아졌다.

밝은 얼굴도 있었지만, 어두운 얼굴도 있었다.

유난히 어두운 건 곤륜 장문인 제금이었다.

과거의 곤륜이 지금의 곤륜을 해하려 했고, 그가 자신의 대사형이었기에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아갔다.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장문인.”

바라보니 어느샌가 대공자가 곁을 걷고 있었다.

제금이 애써 웃어 보였다.

“대공자.”

“장문인, 제가 곤륜을 구한 것 같군요.”

“……?”

제금은 갸웃.

왜 갑자기 공치사인가?

그런 의문은 떠오른 순간 사라졌다.

제금은 이내 웃음이 터졌다.

최근 만났고 겪어본 시간은 짧지만 대공자가 공치사를 할 사람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하하, 두말할 나위 있겠나.”

“두 말이고 세 말이고, 말로만 끝내진 않으시겠지요?”

“원하는 걸 말해보게. 뭐든 들어주겠네.”

“무엇이든?”

“물론이네.”

“공청석유를 받고 싶습니다.”

“………………………….”

제금이 걸음도 멈추고 멍해졌다.

“저기…… 그건 없네만…….”

있어야 주지.

아니, 애초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몇백 년을 찾아다녀도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공청석유였다.

“이야기가 다르군요.”

“그것만 빼고.”

“공청석유.”

“그것만 빼고.”

“그럼 하늘의 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늘의 별에는 제금이 곤륜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대공자의 말뜻이 이해된 탓이었다.

대공자…….

이상한 사람이다.

무공의 경지도 기이하지만, 말도 이상하게 한다.

공청석유를 원해서겠는가.

하늘의 별이 갖고 싶어서겠는가.

은연중 숨겨진 의미.

그저 말하고 있다.

우울해하지 말라고.

이렇게 웃는 것이 훨씬 보기 좋다는 말을 건네고 있다.

굳이 감성에 젖어있을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 문파를 이끄는 장문인의 표정과 감정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니 훌훌 털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장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 온다.

“그럼 이건 어떤가?”

“하늘의 별.”

“하하, 그것보다 더 좋은 걸로 준비하겠네.”

“그런 게 있습니까?”

“실망하지 않을 거네.”

그 대화를 모두가 들었다.

숨겨진 뜻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여기저기서 실실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곤륜이며 마교 할 것 없었다.

- 숙부님, 대공자는 마치 어른 같습니다.

도운연의 전음에 당명이 피식 웃었다.

- 소년은 아니지.

- 천재라서 그런 걸까요?

후후!

천재라서가 아니라, 너의 백부여서 그런다.

그리고…….

- 아마도 재밌는 사람이라서?

- 하하, 그런 것도 같습니다.

**

오후 내내 곤륜산이 떠들썩했다.

천공단과 소호탈마대가 경쟁하며 돼지 사냥에 나선 가운데, 사방에서 돼지가 비명횡사했다.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에에에엑!

거의 서른 마리의 돼지를 잡았다.

승리는 천공단.

원래 사냥이 거의 습관이어서는 아니었다. 금적자나 무흔신투, 지귀객이 특출난 솜씨를 보여서도 아니었다.

“우리 청랑이 기특한 것 좀 봐.”

“이쁜 놈의 새끼!”

“너 이제부터 천공단 해라!”

“귀여운 청랑! 내 동료가 되어 줘!”

청랑이 번번이 소호탈마대의 사냥을 방해한 탓에 천공단이 일방적으로 승리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늑대가 울고, 천공단이 요란하게 떠든 탓일까.

밤이 되었을 땐 곤륜은 이상한 착각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정오의 일에 불과한데, 벌어진 일이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장문인 제금이 하늘의 별보다 더 좋은 걸로 준비한다던 건 밤의 연회.

술이 준비되었고,

곤륜에서 돼지가 구워졌다.

곤륜은 도문(道門)인 것도 잊고 술과 고기를 함께 나눴다.

당연히 소림 무광도 불문인 걸 잊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마교와 곤륜과 천공단이 자리를 함께하며 술잔이 오가니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마교이고 누가 곤륜인지 모를 지경. 어찌 보면 모두가 천공단이 된 것처럼도 보였다.

그것만으로 좋았지만,

후공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원했다.

“남궁 형,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네, 두목. 올해 스물여섯입니다.”

“그럼 남궁 형이 아우로군요.”

“……?”

남궁연이 눈만 깜박였다.

누구에게?

천공단의 젊은 층에선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고, 아우가 될 수도 없었다.

그럼 두목이 이제 와서 형 노릇을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럼 누구?

그러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마교 소교주.

두목의 말뜻인즉 더 가깝게 지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형 동생 하며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그래도 되나?’

고민도 잠시,

남궁연이 술병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형님, 아우가 한잔 따르겠습니다.”

도운연이 물끄러미 바라봤다가 이내 대공자 쪽을 슬쩍 바라봤다. 대공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기에 도운연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곤,

“그럴까?”

“영광입니다. 오늘부터 이 남궁연, 형님의 아우입니다. 편히 불러주십시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도, 나도!”

“밀지 말고 줄 서!”

“내가 먼저 술병 잡았잖아!”

“형아! 이제 형이라고 불러도 되지?”

은앙개며 언교운, 모용진 등이 난리가 났다.

천산의 후인 설영까지 나섰고, 왜인지 소림의 무광도 천천히 일어나 얌전히 줄을 섰다.

엄청난 인맥인 것이다.

마교 소교주와 호형호제다.

천공단주, 암향야, 다음 가는 인맥이었다.

그 광경에 곤륜 장문 제금과 곤륜삼선이 너털거렸다.

이 강호의 미래.

언젠가는 마교의 지존이 될 이와 언젠가는 강호의 명숙이 될 이들이 친분을 맺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먼 훗날 이런 대화가 오갈 것이다.

- 그때 우리가 처음 본 게 어디서였죠?

- 곤륜.

- 그 밤을 잊은 거야?

- 하하, 그 밤의 술이 너무 좋아서.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오갈 대화에, 떠올릴 추억에 곤륜이 들어갈 생각을 하니,

지금의 곤륜은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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