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10화 (310/460)

310화. 한 사람만 진지하다.

천마신교 무력대 서열 12위.

수라마정대가 출정에 나섰다. 귀기 어린 하나의 흐느낌이 함께했다.

“흐으으, 흐으으으으으…….”

흐느낌은 앞쪽.

선두에서 신형을 날리는 이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수라마정대를 잠식해갔다.

누가 울고 있는가?

누구로 인해 슬퍼하는가?

누군가 죽어서인가?

흐느낌은 점점 격렬해졌다.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을 것 같은 슬픔은 진해지고 커졌다. 깊어갔다. 수라마정대 또한 그 울음소리에 동조해 억눌린 울음소리를 냈다.

“흐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수라마정대의 움직임은 슬픔이 이동하는 것만 같았다.

숲을 관통하면 산짐승들은 고요해졌고, 날던 새들도 잠시 멈춰 한참이나 바라봤다.

흐느낌은 빠르게 사라졌지만, 음울함은 숲에 남았다.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이미 슬픔은 마음을 뒤흔들어, 산짐승들은 슬픔에 젖어 드러눕거나 어미들은 새끼들을 품에 안고 놓지 않았다.

어떤 멧돼지는 우두커니 서서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멧돼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왜 슬픈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슬펐다.

어떤 사슴은 아예 드러눕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토끼도, 고라니도, 살쾡이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박쥐는 아니었다.

“광애자! 언제까지 처울 거냐!”

박쥐같이 새까만 안색.

박쥐같은 눈.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은 눈.

박쥐같은 외모의 복마군(蝠魔君)이 으르렁거렸기에,

“마군, 우린 원래 이렇습니다만.”

수라마정대주 광애자가 울다 말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흐느낌은 수라마정대만의 고유 특질.

음공의 묘가 담겨 있어 흐느끼는 소리만으로 적의 사기는 저하된다. 그걸 알고 있을 텐데도 못하게 하니 광애자가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건 복마군의 화만 돋웠을 뿐이었다.

“미리부터 하지 말란 말이다!”

“……네.”

광애자가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반발심에 옅게 흐느꼈다.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그만해라!”

“…….”

광애자는 결국 흐느낌을 멈췄다.

칠마군 중 하나.

복마군의 검은 눈이 서서히 하얗게 물들어가고 강렬한 마기가 압박해오면 더 이상의 반항은 위험했다.

이내 광애자가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마군,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최선을 다해 일거에 끝낸다.”

“흐흐흐, 반가운 말입니다.”

광애자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원하던 대답이었다.

고작 소교주와 소호탈마대를 상대하는 일이다.

교내 무력대 서열만 놓고 보자면 소호탈마대는 수라마정대에 비해 한참 아래급.

지존께서 무력대 서열 12위인 자신의 수라마정대를 선발대로 지목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시간을 끌고 싶어 하지 않으신 것이리라. 전력을 다해 지존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

“광애자, 너무 자신만만하지 마라.”

“암향야 때문입니까?”

“아니, 천화서고 대공자. 지존께서 그를 흥미롭게 느끼신다고 들었다.”

광애자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존께서 흥미를 느끼는 이.

실로 오랜만이다.

후공과 그 무리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고, 상상조차 되지 않거늘.

이유라면 짐작된다.

“후공의 신검 때문이겠죠?”

“그래.”

“신검…… 그 이름은…….”

한번 견식한 적이 있었기에 광애자의 눈빛은 아련해졌다.

“번. 쾌. 찬.”

“번쾌친이다!”

“……네.”

이름 좀 잘못 불렀다고 다시금 타박을 들은 광애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만 울라고 했을 텐데.”

“…….”

광애자가 냉큼 입을 닫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한손을 위로 쭉 뻗으면서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누가 슬픔을 불러오는가!”

“수라마정대!”

대주의 외침에 92인의 수라마정대가 호응했다.

“지존을 수호하는 이들은!”

“우리! 수라마정대!”

숲을 질주하는 가운데 수라마정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소교주를 죽이는 건!”

“수라마정대!”

“소호탈마대는 누구에게 찢기는가!”

“우리! 수라마정대!”

“새로운 지존은 누구인가?”

“광마혈성! 광마혈성! 광마혈성! 광마혈성!”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애자와 수라마정대의 미친 웃음소리가 산야를 뒤흔들었다.

그쯤 되자 복마군도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새로운 지존이 누구냐는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 광마혈성이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소호탈마대 대신 수라마정대가 소교주를 지키는 호위대가 되어야 한다며 건의했다가 지존으로부터 꺼지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시무룩해 있었던 광애자가 소교주를 죽인다는 소리를 하고 있으면 웃지 않을 수 없다.

소교주 앞에서 청랑을 흉내 내며 네발로 기며 으르렁거리다 청랑에게 물려 살려달라고 외치던 광애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두 달 전.

그래서 복마군도 크게 외쳤다.

“소교주를 죽이자! 처참하게! 잔혹하게!”

“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 소리 위 창공.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마조(魔鳥)가 긴 울음으로 길을 인도했다.

***

신강 남동쪽.

소호탈마대와 천공단의 질주에 산과 들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표정은 모두가 같았다.

누구 할 것 없이 비장했고, 웃음기 따윈 없었다.

어찌 웃을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죽상을 하고 있는데…….

분노에 차 눈을 이글거리고 있는데…….

누구에겐 소교주.

누구에겐 운연.

누구에겐 형님.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표정 관리에 힘을 다했다.

물론 도운연이 보고 있을 때만 그랬다.

도운연이 앞에 있거나 뒤에 있어 얼굴이 드러나지 않을 때는 싱글벙글거렸다. 그러다 도운연이 본다 싶으면 두 눈을 악독하게 떴다.

그러다 또 안 보인다 싶으면 싱글벙글.

침묵은 깊었지만 목소리만 없었다.

전음이 넘쳐났다.

- 사형, 믿어져?

- 멍청아, 안 믿어지지.

- 이 소천개 님이 마교와 일전을 벌이다니.

- 흐흐, 나중에 늙어 제자 놈에게 자랑할 거리 하나 더 늘었다야.

- 나도 나도. 제자 놈이 언젠가 내게 묻겠지? 스승님, 왜 스승님은 나이가 들어서도 소천개이신가요? 그럼 난 이렇게 말할 거야. 소천개라는 별호를 달고 이 스승이 열두 살 때 마교와 일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이 별호를 버릴 수 있겠느냐. 그럼 제자놈이 진짜냐며 방방 뛰겠지? 열두 살 때요? 이러면서 말이야. 그럼 난…….

- 제자 새끼야, 그만 뛰어. 정신 사납다!

- 맞아, 맞아! 하하하하하!

마교와는 평생 싸울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거지들이 먼 미래를 상상하며 희희낙락이었고,

- 초반부터 센 놈들이 오려나?

- 오면 뭐해. 다 대가리 깨져 나갈 텐데.

- 하하! 틀림없지. 다 죽여버리겠다아아아아아!

낭인왕과 항마삼협도 마교와의 일전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 대형.

- 응?

- 기분이 어떻습니까?

풍제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당명이 마음을 물었다. 아직은 여러 과정을 지나고 넘어야 할 산이 많긴 해도, 결국 풍제는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풍제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그러는 한편 대형의 마음도 궁금해진 당명이었다. 대형도 풍제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지 않을까?

하지만 후공은 시큰둥.

- 기분이랄 게 있나?

감흥이랄 게 없었다.

- 네?

- 난 죽어본 적이 없어서.

- 아…….

바보같은 소리를 내던 당명이 이내 실실 웃었다.

우문현답이었다.

대형은 죽은 적이 없으니 이별한 적도 없는 것이다. 감회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고, 그저 과거 어느날처럼 만나러 가는 것뿐.

놀라고 격정에 휩싸이는 건 풍제의 몫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웃음기도 잠시,

- 여기서 기다리자.

대형이 전음을 발한 후 멈추었기에 당명도 바로 신형을 세웠다. 뒤따라 모두가 신형을 멈추었고, 그중 소호탈마대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감을 끌어올려 탐지에 나섰지만 전혀 수상한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심은 없었다.

보고 겪었다.

천화서고 대공자의 놀라운 신위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오는구나.’

‘누가 오는 것일까?’

도운연은 아예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대공자! 다가오고 있습니까?”

“네, 이제 곧.”

그 말에 도운연이 긴장할 때, 들려왔다.

“흐으으으으으…… 흐으으으으으으…….”

흐느끼는 울음 소리.

도운연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수라마정대!”

이내,

촤아아아악!

옷자락이 일제히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복마군과 수라마정대의 신형이 허공에 떠올랐다. 누구 할 것 없이 흑의를 걸친 탓에 마치 저만치 갑자기 먹구름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내려선 건 오십여 장 너머.

수라마정대의 흐느낌을 뒤로 하고 복마군이 걸음을 내딛었다.

비릿한 미소를 띠며 한 사람을 응시했다.

“후후, 도운연! 제 발로 기어오다니 너는 죽기로 한 것이냐? 나야 추격하는 수고를 덜게 되어 좋다만.”

“복마군, 아버지는 어찌 되었느냐?”

“아버지?”

복마군이 갸웃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 누구였지?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구나.”

“네놈이!”

“후후, 어린 놈아 침착해야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두 사람뿐.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 사이 수면 아래로 여러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 광애자, 왜 처음부터 수라마정대가 온 것이냐?

- 그렇게 됐다.

- 광마혈성은?

- 죽었어.

- 빨리 죽었네.

- 지존께서 폐관을 끝내시기 직전이거든.

- 지존이시여!

몽허가 잠시 지존을 부르짖고 전음을 이었다.

- 광애자,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 후후, 쓸데없는 소리.

- 많이 웃어라. 넌 아무것도 몰라.

- 뭘?

- 당해봐라.

- 이 새끼가!

그 외에도 수라마정대와 소호탈마대 사이에 무수한 전음이 오가며 화합과 친목의 장이 열렸다.

한편 다른 곳에선 훌쩍이는 이도 있었다.

소천개였다.

수라마정대의 흐느끼는 소리에 마음이 잠식당해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소천개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여파가 설영과 언교운, 모용진은 물론이고 제갈혜에게 번져가고 있었기에 후공은 금적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 금적 선생.

금적자가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금피리를 꺼냈다.

삐리리리~~ 삐리삐삐~~ 삐삐삐~

흥겨운 음률이 피리 소리에 실려 나오면서 수라마정대의 흐느끼는 소리를 교란했다.

그제야 슬픈 감정에서 벗어난 소천개가 전의를 불태웠다.

“알아? 내가 운 건 너희들이 불쌍해서였어!”

“잠시 묵념하고 있었다, 시발 것들아아아아아!”

“오늘 다 죽여버리겠다아아아아아!”

“마교를 쓸어버리자아아아아아!”

천공단의 요란한 외침이 도운연을 자극했다.

‘고마운 이들……. 나는 오늘 혼신의 힘을 다한다.’

다짐과 함께 염혼을 불러냈다.

스스스스스.

도운연의 좌측과 우측으로 묵빛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나며 사람의 형체를 갖춰갔다.

소용돌이 치는 두 눈이 복마군에 이어 수라마정대를 훑어가는 광경에 복마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슴께까지 들어올렸다가 슬그머니 내렸다.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광애자도 다를 게 없었다.

순간 흠모하는 눈빛이 되었다가 이내 언제 그랬냐 싶게 눈빛에 독기를 실었다.

‘들키지 않았겠지?’

들키지 않았다.

청랑만 고개를 갸웃했을 뿐, 도운연은 살기를 뿌리며 염혼과 함께 신형을 날려갔다.

그것이 시작.

모두가 끌어올린 기운에 먼지가 뿌옇게 피어나면서 끔찍한 괴성이 맞부딪혔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