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연전연승.
콰광! 콰콰쾅!
양 진영이 서로를 향해 날아드는 순간, 거대한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일합이 교차했을 뿐인데 수라마정대의 검수 다섯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날아가 처박혔다.
“크윽!”
“크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악!”
복마군을 향해 짓쳐드는 도운연을 공격하다 두 염혼이 쏟아내는 권강에 맞는 순간 이미 지면에 박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이 정도면 감쪽같겠지?’
‘좋았어! 소교주님이 뿌듯해하고 계셔!’
‘잘못 맞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데…….’
다섯은 꿈틀대는 와중에 소교주를 바라보며 내심 만족했다. 소교주님께 처음으로 당한 건 영광. 물론 고통이 없는 건 아니었다.
끔찍하게 아픈 것도 사실이어서,
- 우린 죽은 척하자.
- 그게 낫겠지?
- 아무렴.
그딴 전음을 나누며 서서히 꿈틀거림을 멈춰갔다.
도운연이 기세가 오른 건 당연한 일.
‘시작이 나쁘지 않아!’
분노 때문이겠지. 염혼의 파괴력이 늘었다. 의식의 감응으로 움직이는 염혼은 분노가 장작이 되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덮쳐오는 수라마정대의 두 검수를 날려버린 후, 복마군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그 분노에 염혼이 호응하고, 청랑까지 가세했다.
영특하고 예민한 청랑은 이 상황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상태. 복마군과 수라마정대가 뿜어내는 살기에 온화함이 깃들어 있는 것도 간파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었다.
어린 주인이 분노하고 있으니 일단 찢어 죽이기로 했다.
크르르르르르릉!
염혼보다 빠르게 빛살처럼 달려들어 복마군의 목을 물어갔다.
그 순간, 촤아악!
복마군의 등에서 박쥐의 날개가 펼쳐지며 위쪽으로 상승했다. 청랑이 기이하게 몸을 틀며 다시 이빨을 들이밀었다. 청랑의 속도는 너무 빨라 푸른 빛이 선회해 치솟는 것만 같았기에,
‘이놈이, 알고 있을 텐데도!’
복마군의 검은 동공이 희게 물들어갔다. 우수를 내민 순간 강기로 이루어진 채찍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휘둘러 청랑을 휘감아갔다.
청랑이 머리를 휘감아오는 채찍을 앞발로 쳐내고 돌진하려 할 때는 채찍이 기이하게 틀어지며 청랑의 뒷다리를 낚아챘다.
“늑대새끼는 꺼져라!”
복마군이 손을 뿌리친 순간,
쿠우웅!
청랑이 지면에 처박혔다.
다음으로 짓쳐든 건 두 염혼.
“우습구나.”
날개를 펄럭이며 방향을 바꾼 복마군이 채찍을 휘두르니 하나의 염혼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남은 또 다른 염혼이 복마군 앞에 이르렀을 땐, 어느샌가 복마군의 신형은 염혼의 뒤쪽.
척.
복마군이 염혼의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터뜨렸다.
파사사사사.
모래가 부서져 내리듯 염혼이 흩어지는 광경에, 도운연의 분노는 말로 할 수 없이 끓어올랐다.
죽인다. 죽여버린다!
‘적염폭침(赤染爆針)!’
내뻗는 장심에 붉은빛이 맺힌 순간, 빛이 수백 개로 쪼개져 복마군에게 쏘아졌다.
‘소교주님, 훌륭합니다.’
그 광경에 복마군은 내심 찬사를 보냈다.
물론 쏟아져 오는 적염폭침은 느리게 보인다.
그럼에도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일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교주의 적염폭침인 것이다. 거의 사백여 개. 숫자도 늘었고, 빛깔도 선명하다. 비슷한 경지였다면 전신에 수백 개의 구멍이 뚫리게 될 놀라운 공능.
‘후후, 하지만…….’
상대가 나쁘다.
찬사도 잠시, 복마군은 채찍을 거둬들이면서 휘감듯 타원을 그렸다. 기운이 전면에 응집되며 거대한 기막이 형성되니, 적염폭침은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모조리 튕겨 나갔다.
“후후, 도운연. 넌 좋은 꿈을 꾸나 보구나.”
당황하는 소교주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날려준 복마군은 살기를 끌어올렸다.
이제 보아야 할 때다.
어서 보고 싶다.
소교주를 죽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복마군은 끔찍한 미소를 지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채찍을 내뻗었다.
그 광경을 도운연이 경악에 차 바라봤다. 뭔가 번쩍이는가 싶을 땐 이미 채찍이 자신의 목을 관통하기 직전.
‘아…….’
절망이 엄습해 온 순간,
크아아아아앙!
기음과 함께 나타난 건 자줏빛 광채.
자줏빛이 번뜩이며 채찍을 쳐내고 휘감아갔다.
‘대공자!’
신형이 떨어져 내리며 도운연이 본 광경은 놀라웠다. 복마군의 기의 채찍이 대공자의 검에 산산이 조각나 부서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성된 염혼이 도운연을 받쳐 드는 사이, 검령은 기의 채찍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었다.
‘허허…….’
복마군이 내심 너털거렸다.
보고 싶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암향야는 비록 설렁설렁일지라도 연신 부서져 내리는 신형 속에 수라마정대를 압박하고 있었지만, 대공자는 아니었다.
그저 새와 두꺼비를 곁에 두고 뒷짐을 진 채 따분하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기에, 소교주를 향한 살수는 대공자를 향한 도발이었다.
이래도? 였고,
천하제일인의 신검을 보고 싶다! 였으며,
대공자, 너의 능력을 보여 봐라! 라는 외침이었다.
한데 보게 된 광경은 상상 이상.
대공자의 신검 운용이 실로 완벽해 복마군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쏘아져 오는 자줏빛 광채를 보고, 다시 대공자 쪽을 바라보면서 확신했다.
‘완벽해.’
대공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다.
대공자의 시선은 천공단 쪽에 가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즉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상태다. 금빛 두꺼비가 한 번씩 폴짝거리며 극극댈 때면 시선을 돌려 미소를 보이기까지.
천하제일인이 저랬다.
후공이 지존과 함께 천마신교를 거닐며 신검을 발출했을 때와 같았다.
완전히 독립된 개체.
지존이 펼치는 염혼의 묘리와도 맥을 같이하는, 아니 그보다 더 경이로운 자유 속에 신검들은 유영했다.
하늘 높이! 끝도 없이 저 멀리!
‘어느 정도의 천재인가?’
생각도 잠시, 신검이 폭주하며 자줏빛 용처럼 포악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기에 장력을 날렸다. 속도가 이내 줄어들긴 했지만 기어코 뚫어내는 광경에 복마군은 입술을 깨물었다.
‘날 죽이진 않겠지?’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신검뿐 아니라 청랑과 염혼들도 짓쳐들고 있었기에 날개를 펄럭였다.
그사이 수라마정대와 소호탈마대의 상황은 처절하게 변해갔다. 친목이고 화합이고 없이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했다.
격전이 이어지면서 진지해진 터.
이 상황이 꾸며진 것이라 해도, 누구도 패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는 자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수라마정대는 천마신교 무력대 서열 12위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고, 지존의 바람도 이루어야 했다. 반드시 승리를 쟁취해 소호탈마대를 개처럼 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건 소호탈마대도 마찬가지.
소교주를 지키는 호위대로서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소교주님, 다 거짓이었습니다.
이런 소리를 처음부터 하고 싶지 않았다.
진실이 드러날 때라면, 차례차례 깨부수고 최소 오마신 정도가 튀어나올 때쯤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암향야 때문이었고,
대공자의 신검이 어느 순간부터 가세했기 때문이었다.
“커억!”
“크윽!”
소호탈마대의 검이 수라마정대의 어깨를 뚫고, 허리를 쓸어갔다.
반면 수라마정대의 치명적인 공세는 매순간 빗나갔다. 암향야에게 시선을 빼앗겨서였고, 사방을 질주하는 자줏빛 광채가 소호탈마대와 천공단을 위기의 순간마다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 사, 살려줘!
- 죽이지 마!
- 너무 깊숙이 찔렀…….
“크아아아아악!”
비명 아래 전음은 목숨을 구걸하기 바쁜 상황.
현실도 자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이 결전은 대공자 혼자 나섰다 해도 일방적인 패배를 맛보았을 터.
그런 의미는 천공단도 이해했다.
지금의 결전은 실전임과 동시에 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둑으로 치자면 엄청난 고수를 상대로 접바둑을 두고 있는 것과 같았다.
물론 돌을 깔아준 건 천공단주.
그런 상황에서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단주의 비호 아래 마교와의 대전을 경험하며 마음껏 무공을 펼쳐낼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으니, 각자가 지닌 바 비기를 발산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제왕검형, 폭뢰!’
검과 합일한 남궁연의 신형이 수라마정대의 검수를 쓸어가고,
‘응언참!’
검이면서도 도법을 연상케 하는 언교운의 검격에,
‘연환식, 회격!’
모용진의 검이 허벅지를 도려낼 것처럼 파고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금적자와 항마삼협, 무산쌍웅, 낭인왕까지 거의 활개치고 다녔고, 은앙개와 소천개도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신법을 선보이며 수라마정대의 검날 속을 연신 선회하며 장력을 뿜어냈다.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건 도둑놈들뿐.
설영과 소림의 무광까지 전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지귀객과 무흔신투는 함께 땅속을 파고들었다가 튀어나오면서 수라마정대를 어지럽혔다.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제압당한 수라마정대는 급격히 숫자가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남은 이는 하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몽허와 음희를 맞이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광애자가 결국 무너져내렸다.
털썩.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은 광애자가 피를 울컥거리며 웃었다.
“시발…….”
너무하네, 라는 차마 할 수 없어 속으로 삼켰다.
그걸 보고만 있을 몽허가 아니었다.
그대로 발을 들어 광애자의 머리를 짓이겼다.
“광애자, 배신자의 말로다.”
광애자가 애써 머리를 들어 바라봤다.
- 시발놈아, 배신자 아니잖아!
- 닥쳐!
- 죽이려고?
- 미안하다. 실감나게 하려면 죽여야지.
- 무, 무슨?
광애자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끝은 광애자만은 아니었다.
검령과 염혼, 청랑에 쫓겨 기력이 다할 대로 다한 복마군도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리는 청랑에게 물어뜯기고 있었고, 두 팔은 염혼에게 붙들려 활짝 벌리고 있는 상황. 당장이라도 염혼에 의해 두 팔이 어깨에서 뜯겨나갈 것 같았기에,
“소, 소교주님. 사실은…….”
이러다 두 팔을 잃는다.
아니, 팔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 눈앞이다. 이렇게 죽는다면 그야말로 개죽음. 살려면 사실을 실토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그러니까……. 윽!”
복마군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하얀 광채가 날아들면서 아혈이 점혈.
말문이 턱 막혔다.
도운연이 시선을 옮기며 갸웃했다.
‘대공자가 왜?’
대공자가 다가와 미소 지었다.
“도 형, 이들을 죽이는 건 의미없습니다. 교를 장악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들이 품는다고 품어지겠습니까?”
“훗날 금제를 가해두면 됩니다.”
“금제라면?”
후공의 미소는 짙어졌다.
“천천히 생각해 보죠. 우선 이들은 따로 보관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디에?”
“여기.”
후공은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어디 하루 이틀인가.
말귀를 바로 알아들은 천공단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늘 하던 일.
묻을 사람이 많아도 문제될 건 없었다.
‘뭐여?’
‘우릴 묻어버린다고?’
칠마군 중 하나인 복마군은 묻혀 본 적이 처음이었고, 그건 광애자와 수라마정대도 마찬가지였다.
흙이 덮어지기 전 복마군의 귓가로 전음이 날아들었다.
- 복마군, 엿새다.
- …….
답하진 않았지만 복마군은 내심 콧방귀를 꼈다.
대공자가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자신이 엿새가 지나도록 점혈을 풀지 못할 리 없는 것이다.
상념은 거기까지.
흙이 덮쳐왔다.
*
마조가 날았다.
소식은 전해졌고, 다음 출정대로 지목된 건 무력대 서열 10위인 혈겁혈해대.
그리고 혈겁혈해대를 이끄는 이로 선택된 이는 칠마군 중 천살마.
“쯧쯧쯧. 복마군아, 복마군아,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천살마는 혀를 끌끌 차며 나아갔고, 마주했다.
그리고…….
파묻혔다.
- 천살마, 닷새다.
천살마의 귓가에 파고든 전음은 닷새.
땅땅땅!
천공단이 잘 파묻고 땅을 다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도운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전연승!
“아버지! 이 아들이 갑니다아아아아!”
이성을 상실해 눈이 돌아가버린 도운연의 포효 뒤로, 천공단도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다음!”
[까르르르르, 다음! 다음!]
[극극극!]
묻어버린 땅 위로 더 다지듯 색관조와 금섬이 펄쩍 펄쩍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