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14화 (314/460)

314화. 구겨진 종이는 버린다.

‘성공이냐, 실패냐.’

멀리 산 언덕.

광명우사 냉선의 시선은 객잔을 향해 있었다.

찬살마는 무사히 스며들었고,

결과에 대한 냉선의 예상은 반반이었다.

냉선이 천화서고 대공자를 무시해서는 아니었다.

여태 지켜본 바가 있다.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원래라면 대공자의 압승을 점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다르다.

찬살마는 천마신교 내 최고 암살자.

그렇기에 냉선은 초조하게 결과가 나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함께 지켜보는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찬살마, 제발 실패해라.’

‘이번만큼은 부디 실수를 해다오!’

마유와 독마녀는 찬살마의 실패를 간절히 염원했다. 찬살마가 성공하면 자신들이 나설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찬살마가 결코 실패할 리 없다는 확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 쓸데없는 예측.

객방 안 찬살마는 이미 목이 틀어잡힌 채 공포에 질려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단순히 잡혀서만은 아니었다.

점혈이 일반적이지 않다.

몸 안에 일곱 개의 기운이 숨죽이며 자리 잡았다. 마치 일곱 명의 암살자처럼, 마치 사나운 일곱 마리 짐승이 먹이를 노리기 전 웅크리듯.

“사, 살려…….”

그때 뒤늦게 운기를 황급히 거둔 도운연이 찬살마를 알아보았다. 찬살마 네놈까지? 그런 분노의 마음으로 운연이 일갈하려 할 때, 사라져버렸다.

파장창!

눈 앞에 있던 대공자가 찬살마를 잡고 창을 뚫고 튀어나갔기에, 운연은 멍하니 부서져 나가는 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은 멀리서 지켜보는 세 사람의 시선에도 들어왔다.

“헉…….”

“허어…….”

“거, 거짓말?”

광명우사 냉선은 물론이고 모두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선명히 볼 수 있었다. 한순간 창의 파편과 함께 찬살마가 튀어나온 것이다. 문제는 찬살마의 모양새가 꼴사납게도 젊은 서생에게 붙잡혀 있다는 점.

그것도 잠시,

수평으로 튀어나온 신형은 환상처럼 직각으로 꺾여 위로 솟구치면서 지붕에 내려섰다.

“대, 대공자…….”

찬살마가 애처롭게 불렀지만, 후공은 무시.

그저 지붕 위에서 또 다른 적을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별호.”

“처, 찬살마라고 합…….”

“다른 이들은?”

“그게…….”

“뭐? 없다고?”

찬살마는 사실대로 둘이 남았다고 하려다 말문이 콱 막혔다.

“……???”

저기요, 대공자님?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왜 하지도 않는 답을 들은 것처럼 하시는 겁니까?

물론 이유는 짐작된다.

소교주님이 지붕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대공자는 소교주를 속이고 싶어 한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가 죽게 생겼는데.

몸 안에 잠복한 일곱 기운이 날뛰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찬살마는 다시 사정해보기로 했다.

- 대, 대공자님……. 부디 손속에 사정을…….

- 너는 사정을 두지 않던데?

- …….

그게 사실이라 찬살마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 부……불구가 되지 않게만 해주십시오.

- 후후, 불구는 무슨. 그럴싸하게 보이게만 할 뿐이다.

- 오오! 감사합니다!

- 아프지도 않다. 금방 펴주마.

- 네?

펴준다고? 그럼 날 구겨버린다는 거?

어떻게?

이렇게!

답하듯 후공의 손이 찬살마의 정수리 백회혈에 올라갔고, 그것이 시작. 교릉이 발동했다.

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일곱 기운이 폭주하면서 찬살마의 모든 뼈마디와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고 찬살마의 입에서도 터져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발, 아프지 않다면서!

너무 아프다. 미쳐버릴 정도로.

이게 안 아프다면 대체 뭐가 아프다는 거냐!

찬살마는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 외엔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당해보는 고통이었다.

암살자에게 고문 훈련은 기본. 분근착골수에 당하고도 싱글벙글 웃으며 넘겼던 그였지만 지금 이 고통은 차원이 달랐다.

팔다리와 목이 멋대로 움직인다.

뼈마디는 틀어지고, 근육이 접히고 뭉쳐간다. 그러면서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기에 이런 식이면 주먹만큼 작아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 끝이다.

펴질 리가 없다. 평생 주먹으로 살아아 한다. 굴러다녀야 한다. 밥은 대체 어떻게 먹냐? 못 먹겠지. 그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데, 눈도 비뚤어져 눈물도 이상하게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건 찬살마의 착각.

후공의 교릉은 평소와 달리 온순했고, 속도도 느렸다. 구겨진 것도 고작 절반 정도보다 조금 더 진행된 상태에서 살랑살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후공 입장에선,

‘크흠, 참을성이 없는 놈이군.’

……정도의 감상.

찬살마로선 불행이었다.

참을성의 기준이 높은 이를 만난 것이다.

육각망, 영악초, 독양충.

삼악(三惡)을 인내심 하나로 돌파해낸 이가 아프지 않다고 하는 말이 누구에게나 통용될 리가.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찬살마는 끔찍한 모습으로 쉴 새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 그 모습은 모두가 보고 있었다.

맞은편 객잔의 창문 안에서도, 밤길을 걷던 이들도, 그리고 도운연과 당명, 제갈혜까지.

당명이야 늘 보던 광경이고, 대형이 손에 사정을 두고 있는 것임을 알아보았기에 시큰둥하니 별 감흥이 없었지만 도운연은 이미 자지러졌다.

“사람이, 사람이 반으로, 반으로!”

찬살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구겨져가는 끔찍한 광경에, 운연은 뒤로 넘어졌다가 연신 엉덩이를 뒤로 빼며 물러났다.

괴이한 자들이라면 천마신교 내에도 수도 없이 많아 온갖 해괴한 광경을 보고 자란 운연이었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놀란 건 제갈혜도 마찬가지였다.

듣긴 했어도 보는 건 처음.

입을 틀어막고는 겨우 더듬거렸다.

“숙, 숙부님?”

그런 제갈혜를 보며 당명이 피식 웃었다.

- 별거 아니다. 대형은 맛만 보여주는 중이야.

- 이게요?

- 당연하지. 제대로 시전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다.

- 한데 왜?

- 진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

- 아…….

그 말에 제갈혜는 어렴풋이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상황을 보니 이해된다.

왜 굳이 객방을 나와 지붕 위인가?

이는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다.

‘뭐지?’

그 순간 번쩍하며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아! 이건…… 서신이구나.’

백부는 지붕 위에서 서신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받는 이는 마교의 지존.

도 백부.

신검의 운용은 이미 지나온 길에 보였고, 운연 오라버니에게 호의적인 내용도 보고되었을 것이다. 청랑이 살갑게 대하는 것도.

무엇보다 함께하고 있는 당 숙부의 모습에서 도 백부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거기에 이 밤,

하나가 추가되고 있었다.

백부만이 펼쳐낼 수 있는 기이한 무공.

내가 누굴까?

떠올려라. 내가 누구일지.

백부는 지붕 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 서신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 제갈혜는 눈앞의 광경이 확연히 다르게 보였다. 더 이상 기괴하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구겨버리는 모습이 분명한데도 한 글자 한 글자 붓으로 글씨를 적어가는 것처럼 보여 웃음이 나려 했다.

‘백부님도 참…….’

눈앞에 보이는 바는 끔찍해도, 실상은 아프지 않은 걸지도.

짐짓 아픈 척하라는 말이 오갔을지도.

모르는 소리.

찬살마는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건 멀리서 지켜보는 세 사람도 한 마음.

“흑흑흑……. 찬살마야……. 찬살마야……. 찬란한 암살자야……. 흑흑흑.”

“그냥 빨리 죽어, 이 새끼야. 혀 깨물어!”

끝도 없이 울려퍼지는 찬살마의 비명과 끔찍한 모습을 넋이 나가 지켜보던 독마녀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고, 마유는 차라리 빨리 죽으라고 기도했다.

비난의 마음도 커졌다.

서로 짜고 치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선이라는 게 있는데 너무도 잔혹하다.

이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이냐!

뭐하는 새끼길래 사람을 구겨버리는 거냐고!

흑흑흑.

한편 광명우사 냉선은 깊은 한숨.

여태까지 지켜본 대공자는 무엇이었을지 혼란이 왔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한낱 늑대에겐 그렇게 다정하면서, 새와 두꺼비에겐 한없이 포근한 미소를 건네면서 사람은 종잇장처럼 구겨버리다니.

‘찬살마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다. 살아남는다고 무슨 의미일까.

저런 모습으로 사는 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

찬살마도 죽여달라고 하겠지. 죽고 싶겠지.

그쯤 끝나갔다.

뒤틀림이 천천히 멈춰갔다.

이윽고 몸의 꿈틀거림이 완전히 잦아들었기에, 어깨에 머리가 파묻은 형태로 찬살마는 기대했다.

“이ㅈ…… 펴ㅈ…….”

기진맥진 힘겹게 ‘이제 펴주시는 겁니까?’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알아들었겠지?

후공이 입을 열었다.

“이런…… 쓸모가 없어졌군. 펼 수도 없겠어.”

“……??”

뭐라고요?

말이 틀리잖아!

펴준다며! 아까 약속했잖아! 시발놈아, 이건 아니지!

찬살마가 동공에 지진을 일으킬 때, 겨우 진정한 도운연이 다가왔다.

“대, 대공자. 괜찮으십니까?”

찬살마의 동공은 더 발작했다.

소교주님,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대공자는 괜찮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다,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버려야죠.”

“그, 그렇군요.”

그런 것이구나.

구겨진 종이는 버리는 것이구나.

큰 깨달음을 얻은 양 도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공의 상태는 이미 찬살마와 같이 지진.

그러거나 말거나,

“영차.”

후공은 찬살마를 한손으로 들어올렸다.

찬살마가 몸을 덜덜 떨었다. 몸이 작아져 더 잘 떨렸다.

‘어, 어쩌려고?’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후공이 답했다.

“평생 기어다녀라!”

말과 동시에 찬살마를 밤하늘로 날려보냈다.

슈우우웅.

엄청난 속력으로 날아가는 찬살마의 귀에는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저절로 흘러나온 눈물이 바람에 쓸려나가면서 날아가던 새 떼에게 맞았는지 새 떼들이 돌아봤다.

새 떼는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그만큼 찬살마는 빨리 날았다. 버린다길래 대충 지붕에서 내던지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산 하나를 넘고, 또 하나의 산을 넘어서도 계속 날았다.

사람을 쓰레기 취급이냐. 이렇게까지 멀리 버릴 것까진…… 시발…….

그러다 평생 기어 다니라는 말이 떠올라 찬살마는 울컥 다시 눈물이 터졌다.

어디에 처박힐까?

암벽에 박히면 볼 만하겠구만. 복수는 할 수 있을까? 없겠지. 광명우사가 오면 부탁하자. 죽여달라고. 이렇게는 살 수는 없는 거니까.

‘지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갑니다. 다음 생에는 남궁세가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

찬살마는 작별 인사를 잠시 멈췄다.

산을 넘고 넘어 어느샌가 절벽에 처박히기 직전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뚜드득, 뚜득, 뚜드드드득.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뒤틀린 다리가 펴지고, 거의 반쯤 돌아가 파묻힌 머리도 제자리를 찾았다. 말려 돌아간 허리와 팔과 손도 빠르게 제 위치로 돌아왔다.

“오오오!”

절벽의 암석은 이제 지척.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문제될 게 없었다. 기운이 차오르고 점혈까지 풀렸기에,

처억.

거미가 벽에 달라붙듯 찬살마는 절벽에 달라붙었다.

그 상태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보였기에,

“하하.”

웃음을 터뜨리곤, 절벽의 위쪽을 올려다보며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나 펴졌어!”

달려와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던 광명우사와 마유, 독마녀가 활짝 웃었다.

“진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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