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지존보다 더한 애착, 더한 집착.
노파의 등장에 삼악의 흥분도는 상(上).
보기 드문 일이었다.
특제요리라 할 수 있는 풍열, 공청석유, 봉양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정도로 삼악이 흥분하는 건 처음.
동정호에서 독왕의 독을 앞두고 있을 때보다 더한 반응이었기에,
‘기대되는군.’
경지 상승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듯하여 후공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노파를 바라봤다.
자령안에 역용 안쪽의 실체가 드러났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중년 여인.
- 명아, 혜야.
후공은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어들면서 당명과 제갈혜에게 전음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듣지 못한 건 도운연뿐.
그 와중 노파, 아니 독마녀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호호호호!’
상황이 적절해서였다.
운이 좋다.
나아가는 길, 점소이가 빈 그릇을 한가득 들고 마주 오고 있었기에 그녀는 그대로 나아가 어깨를 부딪쳤다.
점소이의 손이 어지러워지며 쟁반을 놓쳤고, 독마녀는 옆으로 쓰러졌다. 몸이 탁자를 덮치려는 순간,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몸을 받쳤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아이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젊은이 고마우이!”
독마녀는 몸을 바로 하고는 고마움을 표하듯 대공자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빠져나온 네 마리의 고독이 순식간에 맞잡은 손을 타고 스며들었다.
자연스러웠고, 감쪽같았다.
나 천재인가?
독마녀는 흡족함을 금할 길이 없었고, 그녀의 고독들도 바로 진군하기 시작…….
죽었다.
즉사.
흥분한 삼악의 기운이 덮쳐 고독들은 외마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녹아내리면서 삼악의 거대한 물결 안에 융화되고 말았다.
꺼억 소리도 없었고, 고독들이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렸기에 독마녀가 알 길은 없었다.
그녀로선 그저 의기양양.
‘자, 대공자여! 이제 내 앞에서 뒹굴 시간이다. 발작하여라! 미쳐 날뛰어라!’
손을 놓으며 독마녀는 자신의 체 내에 있는 음고를 발현했다. 대공자의 몸에 스며든 건 양고.
양고는 음고에 감응한다. 자극된 양고가 뇌에서 꿈틀대기만 해도 대공자는 머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몸부림칠 것이다.
남은 건 다섯 번의 호흡뿐.
후후, 죽이진 않는다. 지옥같은 고통만 주마.
‘오(五)!’
손을 놓은 후 빈자리로 걸어갔다.
‘사(四)!’
자리에 앉았다.
웃음이 터지려는 걸 애써 참아냈다. 아직이다.
‘삼(三)!’
주문을 받으려는지 점소이가 다가오는 모습을 슬쩍 바라본 후 대공자 쪽도 훑었다.
‘이(二)!’
아직까지 영문을 모르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 독마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커다란 웃음소리에 다가오던 점소이가 놀라 걸음을 멈췄고, 반점 안 모든 손님들의 시선도 쏟아졌지만 독마녀는 상관없었다.
미친 할망구처럼 보이면 어떤가.
이제 남은 건 한 번의 호흡뿐.
모두의 시선은 옮겨질 것이다.
대공자가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면 왜 자신이 웃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독마녀는 끝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존이시여! 제가 해냈습니다.
찬살마는 구겨졌지만, 저는 해냈습니다!
하지만,
“호호ㅎㅇㅇ………….”
독마녀의 웃음소리는 바람 빠지듯 사그라들었다.
고독의 발작 예정 시간은 애저녁에 지나간 터. 그럼에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웃을 수 없다.
게다가,
“어르신,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봅니다.”
대공자가 태연히 말을 걸어왔기에 독마녀는 덜덜 떨며 하얗게 질려갔다.
‘구, 구겨져버려.’
도망쳐야 해. 지금 당장!
머리로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막심한 심적 충격에 몸이 굳어 독마녀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고독이 통하지 않는 자.
찬살마를 구겨버린 이다.
또한 지존의 비둘기인 쾌운동자보다 빠른 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사과하자.
- 죄, 죄송합니다.
- 괜찮다. 나쁘지 않았어.
- 그, 그랬나요?
뭐가 괜찮다는 걸까, 뭐가 나쁘지 않았다는 걸까.
분명히 나빴는데?
들려온 전음에 독마녀가 의문을 품을 때, 답이 들려왔다.
- 더 없나?
- 뭐, 뭐가 말입니까?
- 고독.
- 어, 없습니다.
- 그런가. 아쉽군.
독마녀는 동공을 흔들며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시발. 그런 거였냐!
먹어 치운 것이었어?
고독이 더 없냐고 물어보다니.
자신의 고독인 백고를 무슨 영약 취급하고 있었기에 독마녀는 급기야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히끅, 히끅!”
물론 고독은 아직 여섯 마리가 남긴 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간 다 털려나갈 상황.
“히끅!”
그 와중 반점 안 모두의 시선은 그대로.
웬 노파가 갑자기 웃다가 지금은 또 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딸꾹질을 하고 있었기에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점소이조차 다가가지 못했다.
의문은 도운연도 마찬가지.
갸웃하며 곁에 앉은 제갈혜에게 전음을 보냈다.
- 혜야, 저 노파 조금 기이하구나.
- 오라버니, 혹시 천마신교의 고수 아닐까요?
- 넌 앞으로 농담하지 마라. 재능이 없어!
- 하하하!
운연은 괜히 물었다 싶어 입을 쓰게 다셨다.
노파가 뭘 했다고 암살자 취급이란 말인가.
넘어졌다고? 웃었다고? 식은땀을 흘려서?
그건 너무 늙어 정신이 없어서겠지.
또한 딸꾹질을 하는 절세 고수는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있었다.
“히끅, 히끅.”
독마녀는 너무 놀라고 공포에 질린 나머지 그렇게 되었고, 혈도를 매만질 정신도 없어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
역용이 간파당한 것이겠지.
무서워, 너무 무서워.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별호.
- 독마녀입니다.
독마녀는 세상 빠르게 답했다.
구겨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빠름.
- 너 다음은 누구냐?
- 마유입니다.
독마녀는 그 뒤로도 마유의 특징은 물론이고 계획까지 술술 불었다.
- 그다음은?
- 여러 단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소 열 단계는 지나야 합니다. 우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에 대해 독마녀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알렸다.
- 너무 많군. 두세 개로 줄여야겠어.
- 그게 되나요?
- 되겠지.
- 그, 그렇군요.
열 단계를 어떻게 두세 개로 줄일 수 있다는 건지 독마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줄어들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건인가.
- 넌 보내준다.
-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이왕 왔으니 식사는 하고 가라.
- 사주시나요?
- 하하하!
후공은 그만 웃고 말았다.
이 와중에 너스레라니. 마교 놈들은 이래서 좋다.
마치 천공단 같지 않은가.
후공은 점소이를 불렀다.
계산은 이쪽에서 하는 것으로 하고 노파 쪽으로 푸짐한 요리를 가져다주라고 말했다.
얼떨결에 식사 대접을 받은 독마녀는 어느새 탁자 위에 놓인 요리를 덜덜 떨며 하나씩 집어먹고 있었고……,
도운연은 감탄했다.
‘대공자는 다정한 사람이구나.’
찬살마를 구겨버릴 때만 해도 잔혹함이 말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나간 노파에게 대접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한없이 훈훈해졌다.
그사이 후공은 당명과 제갈혜에게 전음을 보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니, 당명과 제갈혜는 애써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공이 이 층 계단을 내려가기 전 독마녀를 돌아보니 독마녀가 감사를 표했다.
- 맛있습니다.
- 또 보자.
- 네.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독마녀는 미소를 떠올렸다.
대공자, 사람이 괜찮네.
멋있어!
반말이 자연스러운 것이 기묘하지만, 그만큼 잘 나서겠지.
그런 독마녀의 모습은,
한 사람에게 관찰당하고 있었다.
맞은편 객잔의 이 층.
마유였다.
‘열심히도 처먹는구나!’
탓할 순 없었다. 마유는 독마녀를 이해했다.
고독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으니 독마녀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는 건 당연한 일.
이 정도면 천화서고 대공자는 괴물이다.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후후, 나는 다르지.’
계획도 다르다.
이번엔 납치다.
마유의 시선은 옮겨졌다.
반점을 나오는 대공자와 암향야의 모습, 그리고 여장이 잘 어울리는 소교주님을 보았다가 마지막엔 제갈혜에게 이르러 시선을 고정했다.
행운이 따르면 좋겠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음인가.
당과를 사려나 보다.
제갈혜가 일행에서 홀로 떨어져나와 일행과 거리가 벌어졌기에 지금!
창가에 앉아있던 마유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누군가 보았을 때는 마치 사람이 증발해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고, 다시 나타난 건 제갈혜 곁.
제갈혜가 당한 상황을 인지했을 땐 이미 세찬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애써 뒤돌아보니 어느샌가 까마득.
쫓아오는 이는 없었다.
혜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제갈 군사, 알고 있을 텐데 묻는군.”
“도 백부의 뜻이겠죠?”
“당연히.”
“성공할 것 같나요?”
“당연히.”
“성공했으면 좋겠군요.”
“당연ㅎ…… 말이 언짢군. 날 뭘로 보고. 난 지존의 비둘기와는 달라.”
“대공자도 다르답니다.”
“후후, 다르긴 하더군. 하지만 날 따라잡을 순 없다.”
“이미 따라잡혔어요.”
“응?”
“위쪽을 봐요.”
마유의 시선이 하늘로 향할 때, 들려왔다.
[까르르르르르! 너무 느려. 기어다니는 것 같네. 까르르르르르.]
[그윽, 그윽!]
[나 정도는 되야지!]
색관조와 금섬이 조롱을 퍼붓고는 앞으로 쭉 나아갔다.
“무, 무슨 새가?”
마유는 당황해 더듬거렸다.
저렇게 빠른 새는 처음이었다.
마조(魔鳥)와 달려도 비슷하게 달릴 수 있다고 자부했던 그였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놀란 충격에 마유가 잠시 주춤할 때였다.
마유는 좌측 너머로 희끗한 뭔가가 빛살처럼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뭐, 뭐지?’
보긴 보았는데, 알아보진 못했다.
뭔데 갑자기 이렇게 빠른 것이 많이 나타나는가.
설마 대공자는 아니겠지?
대공자였다.
흰 빛줄기가 흔들하며 멈춰 기다리니 모습이 드러났고, 그는 천화서고 대공자.
숨이 턱 막힌 마유가 급히 신형을 멈추곤 제갈혜를 앞에 세웠다.
“대공자,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만.”
“안 열어주면? 너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구나.”
“……쩝.”
마유가 입을 쓰게 다시곤 머리를 긁적였다.
납치이긴 해도 제갈 군사를 다치게 할 순 없는 것이다. 손끝 하나라도 다쳤다간 지존의 손에 죽게 될 터.
“지존께서 제갈 군사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지존이 광마혈성이 아니란 건 알고 있을 테니 네가 걱정할 건 없다.”
“걱정은 무슨. 언짢아서 그렇지.”
“언짢다고?”
“손을 떼라. 죽여버리기 전에.”
그 말과 함께 두 줄기 자줏빛 광채가 뻗어나와 마유를 향해 폭사했다. 멈춘 건 마유의 두 눈앞. 겨냥한 채 서서히 검신을 흔들고 있었기에,
“떼, 떼려고 했어.”
마유가 제갈혜를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았다.
대공자와는 연인 사이었나?
대공자가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나?
손이 닿는 것조차 싫어한다.
지존보다 더한 애착, 더한 집착을 보이니 마유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공은 비로소 흡족.
미소를 지은 후 제갈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갈 소저, 먼저 가 계십시오.”
“그럴게요.”
“그리고 너.”
후공의 시선이 마유를 향했다.
“가마를 준비해라. 너라면 가마에 태우고도 빨리 갈 수 있겠지?”
“뭐…… 충분하지.”
“마음에 든다.”
그 말이 전부.
대공자가 사라져버렸기에 마유는 시무룩해졌다.
완패인 것이다.
***
“흐음…….”
그날 밤, 천마신교의 마존각.
풍제는 침음성을 흘렸다.
놀라움의 연속인 것이다.
천화서고 대공자.
신검을 다루고, 당명을 아우르는 자.
심지어 청랑마저 살갑게 따른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급기야 찬살마를 통해 교릉까지 내보인 것이다.
마치 ‘보아라’라고 말하는 것 같고,
떠올려라 말하는 것 같다.
한 사람.
후공.
그럴 수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데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가.
그래서 물을 수밖에 없다.
“혜야.”
“네.”
“들어보자. 천화서고 대공자는 누구냐?”
“누굴까요?”
제갈혜가 환하게 웃음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