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20화 (320/460)

320화. 크게 환영하고 싶기에.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두목이 진법을 날려버렸어!”

“으하하하하! 봤냐, 봤냐고!”

붉은 구름이 스러져가는 안쪽, 천공단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환호성과 외침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누가 날려버렸지?”

“천공단주!”

“광마혈성은 누가 죽이지?”

“천공단주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상대적으로 조용한 건 도운연과 소호탈마대였다.

함께 있었고, 모든 걸 보았음에도 이게 뭔가 싶은 상황.

적해탐예진의 생문을 찾고, 암향야의 만천화우를 통해 끝도 없이 위치를 바꾸는 생문을 고정한 것도 놀랍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신검의 타격.

스무 번이었던가, 스물두 번이었던가. 아니, 백번 천번이었다 해도 부서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았는데 현실이 되어 나타났기에, 도운연을 비롯한 모두는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가장 경악한 건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오마신.

꿀꺽. 다섯이라 침을 삼키는 소리도 다섯 번. 심장이 뛰는 소리는 옆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커졌다.

‘괴물이네?.’

‘내가 저런 놈과 싸워야 한다고?’

‘농담이지?’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아.’

‘저게 박살 날 수 있었던 것이로군.’

오마신은 등줄기가 축축해졌다.

적해탐예진이 박살 났는데, 자신들이 박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때 들려왔다.

- 오마신, 설마 겁먹은 건 아니겠지?

광명우사 냉선의 전음에 오마신은 인상을 확 찡그렸다.

‘들켰나?’

누구는 짐짓 안 그런 척하느라 미간을 좁혔고,

‘겁먹은 걸 뻔히 알면서 저런다.’

‘쯧! 사람이 매정하게.’

또 누구는 짜증이었다.

자기는 안 싸운다고 재촉한다 싶어 오마신은 광명우사를 매섭게 노려봤다.

하지만 머뭇거릴 순 없다.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다.

지존의 명이 아닌가.

‘실제 겨루어보면 다를지도.’

오마신은 애써 희망을 품고 신형을 솟구쳤다.

그중 흑마신은 신형을 더 빠르게 끌어올려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가 첫 순서.

사마신을 뒤에 두고 흑마신이 빛살처럼 나아가는 길,

후공의 시선은 흑마신에게 날아가 꽂혔다.

까만 얼굴. 익숙한 얼굴.

‘흑마신, 첫 번째는 너로구나. 단번에 끝내주마.’

눈동자에 흑마신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 날아올랐다.

검령과 번쾌친에 천람을 두른 후,

발출!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크르르르르르르르릉!

검령과 번쾌친이 자줏빛 광채를 그리며 흑마신을 향해 짓쳐들었다.

흑마신의 눈동자도 불타올랐다.

‘와라!’

두려움은 없다.

천마신교의 위대함을 보인다!

나는, 우리는 패배를 모르는 오마신!

어느 때, 어느 시절의 오마신은 상대가 강하다 싶으면 도주해 패배할 겨를이 없었다지만, 이 시대의 오마신은 다르다.

‘천화서고 대공자! 더 높은 하늘이 있음을 알려주마!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걸 알려주마!’

흑마신은 우수를 내밀었다.

떠오른 푸른 회오리가 손목을 휘돌며 묵중한 소리를 발했다.

투콰앙!

푸른 회오리는 팔목까지 이어졌다가 증폭되었다.

투콰아아앙!

이어 어깨까지 휘돌았을 땐, 일곱 개의 환이 어깨부터 손목까지 빙글빙글 돌며 형성되었다.

묵강마절의 환악(環握)!

그중 네 개의 환을 신검을 향해 날려보냈다.

신검들을 붙들어둔다. 신검이 묶인다면 놈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틀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앙!

검령과 번쾌친은 천람을 두른 상태.

주인의 의지는 맞서는 것이 아니다. 천람의 그물을 사방에 흩뿌리는 것.

묶어두려는 적의 의도도 간파했다. 이미 묶여본 적이 있다. 아미파에서 백혼곡 마두의 기운에 잡혀본 적이 있었기에, 가두려 뻗어오는 환에 맞서지 않고 빠르게 회피하며 흑마신의 주변만 휘저었다.

그러한 모습에 흑마신은 득의 양양.

‘맞서려 하지 않는다고? 적해탐예진은 요행이었나?’

놈을 내가 과대평가했구나.

별 볼 일 없는 놈에 불과하거늘.

그렇게 자만심에 차 있을 때, 걸려들었다.

검령과 번쾌친이 지나간 자리, 그 지점에 흑마신이 뛰어든 순간 흑마신의 머리와 목, 가슴과 다리까지 천람의 기운이 관통하고 지나갔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흑마신은 당혹에 차 주춤했다.

자신의 마기가 요동치면서 내력이 급격히 흩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무, 무슨? 설마 주화입마?’

내력을 통제할 수 없게 되니 그런 생각이 들 지경.

하지만 주화입마가 아니다.

이는 천람.

산등성이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산바람.

항마의 공능이요, 마공에는 치명적인 상극.

질서 없이 떠도는 혼돈의 마의 기운에 천람이 질서를 강요하니 그 역행으로 마기는 부조화를 감당할 길이 없다.

그 결과,

흑마신의 신형은 벌레가 거미줄을 걸쳐 빠져나오려 해도 늘어지며 붙들리듯 둔화되었고, 묵강마절의 환악도 스러져가면서 남은 건 고작 하나의 환.

‘사, 사술인가?’

흑마신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경지가 나락으로 떨어져간다. 가늠해보니 지금 상태는 고작 화경의 중. 이 경지로는 현경의 고수를 상대할 수 없다. 노리개나 다름없다.

불길한 예측은 언제나 빠르게 찾아오는 법.

바로 찾아왔다.

‘어디 갔지?’

방금까지 볼 수 있었던 천화서고 대공자가 보이지 않았다. 감지조차 할 수 없어 흑마신이 당혹을 금치 못할 때, 들려왔다.

“여기!”

소리를 쫓아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건 발.

콰아앙!

얼굴이 다 일그러지기도 전에 날아가버린 흑마신은 지면을 뚫고 처박히면서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어졌다.

“하나는 묻었고!”

호쾌하게 외친 후공이 백마신에게로 향했다.

이미 검령과 번쾌친이 그어놓은 천람의 그물에 닿은 백마신도 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기, 기운이 흩…….’

당혹을 금할 길이 없는 가운데,

콰아아앙!

빛처럼 날아가 땅 속에 파묻혔다.

그 광경에 천공단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두 번째 놈도 묻혔고요!”

“삽도 없이 묻어버리기!”

이어졌다.

“자자, 역시나! 그렇지! 세 번째 놈도 매장!”

“네 번째 놈아, 이쯤이면 알아서 묻혀라!”

알아서 묻히고 싶어도 그럴 틈이 없었다. 네 번째 순서였던 검마신은 검을 날린 후,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 입을 벌린 순간, 파묻혔다. 검마신이 날렸던 검은 연계가 끊어지면서 팔랑팔랑 힘없이 떨어져내렸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

오마신 중 넷이 무슨 인형처럼 제대로 절초를 발현도 못 하고 일격에 파묻혀가니 소천개가 운연을 올려다봤다.

“운연 형아, 광마혈성은 왜 수준 낮은 놈들을 보낸 걸까?”

“…….”

운연은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조차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쩌란 말인가.

교 내 서열 9위부터 6위까지가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았다. 무슨 설명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때 혼자만 남게 된 천마신교 서열 5위 절마신은 다른 선택을 했다. 신형을 뒤로 물리고는 입을 열었다.

“대공자, 네가 사술을 쓰니 이 대결은 공평하지 않다.”

도운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세상에나…….’

그건 몽허나 음희, 소호탈마대주인 혈령마군도 마찬가지였다. 천마신교 서열 5위인 절마신의 입에서 사술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다니. 마도에 공평함이 어딨단 말인가.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화산이나 무당파의 고수인 것으로 착각 했으리라.

절마신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초식으로만 나와 겨루는 것이 어떠한가?”

서열 6위 검마신이 파묻혔다. 자신이라고 다를 것인가.

지금도 기혈은 들끓고 흩어져 가니,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내력 없이 초식으로만 대결하는 것이었다.

제발, 제발 수락해다오.

나는, 나는……,

광명우사와 소교주, 그리고 소호탈마대 앞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절마신의 간절함은 통했다.

“신선한 발상이군. 그렇게 하마.”

후공은 수락.

절마신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젊은 친구가 그릇이 크군.’

그와 함께 그가 마섬장의 기수식을 천천히 취해갔다. 발은 진각을 딛고, 좌수는 앞으로, 우수는 옆으로 벌리며 늘어뜨렸다. 내력은 약속한 대로 한 줌도 싣지 않았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려 할 때,

콰아앙!

절마신은 광속으로 파묻혔다.

눈을 떴을 땐 흙이 밀려들어 눈이 따가운 지경.

어딜 맞은 건가? 목이다. 파묻힌 지금에야 뒤늦게 목에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들려왔다.

“쯧쯧, 초식이라니, 쓸데없는 소리는. 너는…….”

그다음 말은, 전음이었다.

- 반나절이다.

배신감과 무시당한 기분에 절마신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근데 반나절이라니? 의문을 떠올린 순간 깨달았다.

‘아…….’

어느 순간에 점혈한 건가.

사지는 물론이고,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귀는 들렸다.

지상 위에선 천공단의 환호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하하하, 약속을 믿어? 천공단 앞에서? 두목 앞에서?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이제 다음은 누구냐!”

“광마혈성이겠지!”

“광마혈성 나와라!”

역시나 도운연과 소호탈마대는 어안이 벙벙.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광명우사 냉선도 혈색이 많이 안 좋아졌다.

적해탐예진이 붕괴된 걸 본 터라 결과는 예상했지만, 과정은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탓이었다.

‘어찌 오마신이 화경 수준인 양 무기력하게 패배할 수 있단 말인가. 절마신이 말한 사술의 의미는 무엇이고…….’

- 광명우사님.

- ……?

바라보니 오마신이 깨지는 내내 ‘크으!’ ‘크오!’ 감탄사를 발했던 찬살마였다.

- 다음 차례 아니십니까? 슬슬 출정하시죠.

- 흥! 넌 헛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나는 지존의 명을 받지 못했다. 지존의 위대한 뜻이 없었거늘, 내가 나설 수 있을 리가.

냉선이 매섭게 둘러대고는 서신을 작성했다.

이내 서신을 매단 마조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마조가 날아가는 시간,

천공단이 지나온 길, 땅에 파묻혔던 마교 고수들이 하나둘 기어나왔다.

“으아아아, 드디어 햇빛이다!”

“부활했다아아아아아!”

“무섭다, 무서워. 날짜 정확한 것 봐!”

파묻히며 들었던, 예정된 시간이 귀신처럼 정확했기에 기뻐하는 한편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하루 전에 먼저 빠져나온 이들과도 합류하면서 신형을 내달렸다.

“어디까지 돌파했을까?”

“설마 이미 끝난 건 아니겠지?”

소교주님에게 들통났을 수도 있고,

절진에 갇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끝맺음이 난 것일 수도 있다.

다들 그런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공자와 소교주가 끝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바람대로였다.

마조가 가져온 전서에 풍제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적해탐예진의 붕괴, 오마신의 무기력한 패배.

냉선이 보내온 서신에는 온갖 의문과 함께 ‘사술’이란 단어가 포함되었지만, 풍제의 눈에는 다른 글자로 보였다.

천람.

천람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공의 상극.

부조화를 겪으며 내공이 흩어지고, 염혼이 매번 맥없이 부서져나갔기에 물어봤었다.

그때 들었다.

천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겼거늘, 대형이 오마신에게 선보이며 말해온다.

이제 만날 때라고.

어려울 것이 무엇인가.

만남은 쉽다. 어려운 건 이별일 뿐.

풍제는 몸을 일으켰다.

두드드득, 두드득.

딛는 걸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얼굴이 바뀌어갔다.

다섯 걸음을 뗐을 때, 풍제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역용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님의 모습도 바뀌었을 테니, 괜찮겠지.

운연도 아직 영문을 모르고 있기도 하고.

그렇게 풍제가 밖으로 나섰을 때,

기다리고 있던 오백여 마교도 앞에서 광명좌사가 내공을 실어 크게 외쳤다.

“위대한 칭호! 만마의 지존이시여!”

“위대한 칭호! 만마의 지존이시여!”

그 말을 모두가 따라 외치니 거대한 울림에 바람이 일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지존께서 광마혈성이 되시어 천지를 무너뜨리노라!”

“지존께서 광마혈성이 되시어 천지를 무너뜨리노라!”

광마혈성의 모습으로 역용한 풍제가 신형을 날리니, 그 뒤를 수많은 천마신교의 고수들이 따랐다.

크게 환영하고 싶었기에,

천하제일인은 그만한 대우를 받기에 충분하기에,

풍제는 수하들을 대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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