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23화 (323/460)

323화. 다시 함께.

다음 날 밤에는 연회가 열렸다.

누군가는 기뻐했지만, 누군가에겐 놀라움이었다.

‘연회까지?’

마교의 수뇌부로선 충격 그 자체.

대공자가 지존께 닿기까지 경이로운 모습과 마음의 울림을 보인 건 틀림없지만, 연회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지존의 성향 때문이었다.

요란하고 번잡한 상황을 극도로 멀리하신다.

솔직히 광마혈성으로 역용하신 것만으로도 이미 파격.

한데 이번엔 연회다.

후공이 왔을 때도 연회 같은 건 없었거늘, 어찌 천화서고 대공자를 이리도 환영하시는 것인가.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가 그이기에.

이 재회가 평범한 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풍제는 죽음을 넘어 대형을 다시 만난 것만 같았기에 요란해지고 싶었고, 흥겨워지고 싶었다.

요란함과 흥겨움은 천공단이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눅이 뭔가? 먹는 것인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진 천공단은, 그저 이 순간을 즐겼다.

물론 영광이기도 했다.

수많은 연회를 지나왔지만, 이 순간은 천공단에게도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주군! 제게 한 잔 내려주십쇼!”

“지존이시여, 저에게도!”

“영광입니다! 오늘 이후 저 낭인왕은 주군을 위해, 천마신교를 위해 목숨을 다하겠습니다!”

마의 지존, 풍제가 함께 한 자리다. 마교 수뇌부가 동석한 자리다. 어찌 영광스럽지 않을 것인가.

실상은 오래전부터 더 대단한 천하제일인과 함께 다니고 있었지만 알 길이 없으니 이미 마교도가 된 것처럼 한없이 기뻐했고, 너스레를 떨었다.

풍제는 연신 너털거렸다.

천공단에게 적정선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 형님, 이놈들을 어찌 감당하신 겁니까?

천하십객보다 더한 놈들을 보게 될 줄이야.

아니, 아니다. 천공단에 비하면 천하십객은 얌전한 축에 들었다.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 후후, 나이가 들어서겠지. 늙어서겠지. 보고 있으면 즐겁다. 귀엽고.

또한 천공단의 면면은 근본이 좋고, 의리가 있다.

처음에는 때려죽일까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젠 함께한 시간만큼 정도 깊어졌다.

그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도운연도 도운연대로 감흥이 깊어져갔다.

지난밤과는 달랐다.

간밤에는 밤새 몽허와 음희, 혈령마군을 의자로 찍어내면서 분노를 토해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

아프지도 않을 텐데 비명을 질러대는 놈들을 보며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맙다.

돌이켜보면 덕분이었다.

지금은 잘해주었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옥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테니.

하루가 일 년이 되는 경험도 하지 못했을 테니.

물론 짖어보지도 못했겠고.

거기에 담긴 의미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짖었을 때,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의 기분은 잊을 수 없다.

또한 덕분에 멋진 추억이 늘었다.

곤륜의 밤에 얻게 된 아우들과 먼 훗날 언젠가 나누게 될 이야깃 거리가 늘었다.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될 테지만,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고, 그렇게 만날 때마다 아우들은 이번 일을 꺼낼 테지만…….

먼 훗날 그렇게 함께할 날이 벌써부터 보고 싶어졌다.

그런 한편 이 시간은,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응?”

제갈혜가 불렀기에 운연이 돌아봤다.

“웃고 있어서요.”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 보다.

도운연의 미소는 짙어졌다.

“먼 훗날의 일…… 그리고.”

“그리고?”

“아수라발발타.”

**

다음 날, 천공단은 희소식을 맞이했다.

풍제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금비환(錦泌丸).

천마신교 최고의 영단이었다.

소림의 대환단에 유일하게 견줄 수 있다고 칭해지는 영약이었다.

또한 마공과 정공에 구분이 없기도 했다.

이미 희대의 영약인 공청석유를 복용한 천공단에겐 일반적인 영약은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금비환은 달랐다.

천공단이 미쳐 날뛴 건 당연했다.

“우와아아아, 힘이 솟아난다아아아아아!”

“멍청아, 아직 먹지도 않고 뭔 소리야. 그, 그런데 왜지? 왜냐고? 나도 힘이 솟아난다아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

거지들은 물론이고 도적놈들까지 펄쩍펄쩍 뛰었다.

물론 어느샌가 천공단이 된 것만 같은 소림의 무광도 마찬가지였다.

**

천공단이 닷새를 예정하고 운기행공에 들어간 시간.

천마신교에는 기이함이 이어졌다.

정확히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지존께서 대공자, 그리고 암향야와 나란히 걷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서였고, 그런 지존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즐거 워보였기 때문이었다.

-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인데.

- 그러게.

- 저기에 한 사람만 바뀌면 똑같군.

한 사람.

천화서고 대공자가 후공으로 바뀌면 자주 보던 모습이 된다. 물론 거기에 또 한 사람이 더 있어야 했지만.

- 설마 그건가?

- 응?

- 천화서고 대공자가 후공의 제자인가?

- 그럴싸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지존께서 저리 호의를 보이실 리가 없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신검을 다루기도 하니, 제자일지도.

- 그럼 더 놀랍군.

- 하긴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구먼.

광명우사 냉선의 전음에 마뇌와 광명좌사 목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한 건 오마신의 수장인 절마신뿐이었다.

- 광명우사, 더 놀랍다니요?

- 후공의 절학은 너무 난해해 익힐 수 있는 이가 없다고 들었거든.

- 아…….

절마신이 비로소 탄성을 토해냈다.

직접 당해보았다.

여태 들어본 적도 없는 기이한 무공이었다.

대공자의 무공이 후공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패배가 억울하지 않다. 사술도 아닐 테고.

이내 네 사람의 시선은 하늘로 향했다.

오색찬란한 깃털을 뽐내는 아름다운 새가 아름다움에 걸맞지 않게 요란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위의 두꺼비도.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나 잡아봐라~~~.]

[큭큭큭!]

마조와 함께 날아갔다가 돌아오고 있는 상황.

그냥 봐도 마조는 그만 놀고 싶어 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세상에 마조가 불쌍해 보이다니! 마조의 지친 모습을 보다니! 처음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지경.

“쯧쯧, 저 정신 나간 것들.”

마뇌가 혀를 찼고,

“저것들도 천공단이라서 그런가.”

“사람이나 새나.”

“사람이나 두꺼비나.”

색관조와 금섬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밖에 나와 있는 주인의 모습을 보고 주인에게로 날아갔다.

[주인님! 여기 산이 너무 넓어요. 끝도 없어요. 저 여기에서 살까 봐요.]

“나는 어쩌고?”

[까르르르르르! 주인님은 혼자 돌아가세요.]

“이렇게 배신해버린다고?”

[그럼요!]

그렇게 말하며 색관조가 풍제의 눈앞에서 날개를 펄럭였다.

[충성! 충성! 지존이시여, 이 색관조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소천개?”

[까르르르르르르르르, 목소리도 잘 따라하고 저 제법이죠?]

“훌륭하구나. 역시 대…….”

[대라뇨?]

“대단하다는 뜻이다.”

역시 대형의 영물답다는 말을 할뻔한 걸 겨우 넘긴 풍제였다.

[까르르르르르! 주인님, 제가 대단하대요. 저 여기 살아야겠어요오오오!]

[그윽, 극극!]

[야, 그만해! 왜 때려!]

주인과 헤어지기 싫어서, 색관조의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금섬이 색관조의 머리를 후려갈기면서 또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

그날 저녁.

풍제는 마뇌의 보고를 받았다.

“파골?”

“네, 주군!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밀교의 파골법사가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용건은?”

“그게…….”

.

.

.

.

.

.

그 시간, 접객실에서는 파골이 끙끙 앓았다.

불안해서였다.

밀교에 반란이 일어났다.

거의 절반으로 나뉘었다.

이런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

어떻게든 마교의 도움을 얻어야 했다.

그렇기에 끙끙.

‘풍제의 심기가 불편하면 안 되는데…… 풍제의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하지만 풍제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후공이 떠난 지 고작 1년이지 않던가.

풍제와 친분은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대단할 것도 없다.

풍제가 거절한다면 그땐 무림맹으로 가야겠지만, 너무 멀다. 최선은 풍제가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면 끝이었다.

‘제발, 제발.’

풍제가 마교의 무력대 하나만 보내준다면, 그것이면 충분했다. 거기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칠마군 중 하나가 포함되면 더할 나위 없다. 그 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하아, 시간이 왜 이리 더딘가.

진작에 보고가 올라가고도 남았을 시간이거늘.

그때 밖에서 들려왔다.

“파골법사, 따라와라!”

파골이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나갔다.

“마뇌님, 어찌 되었습니까?”

“난 듣지 못했다.”

“그럼 부, 분위기는?”

“쯧, 하나 마나 한 소리는.”

“그, 그게 무슨?”

하나 마나 한 소리라니…….

파골법사의 얼굴은 한없이 침울해졌다.

하지만 그건 파골의 착각.

풍제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고 너그러워져 있었기에, 이내 마주하여 듣게 된 말은 파격이었다.

“네?”

파골은 듣고도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들은 대로다.”

“그러니까…… 오마신 중 수장인 절마신과 거기에 더해 흑마신을 보내주신다는 겁니까?”

“그래.”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칠마군 중 한 사람이어도 감지덕지인데, 오마신의 수장과 흑마신이라니.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내 아들도 보내주지. 소호탈마대와 함께.”

“……?”

이제 파골법사의 눈은 더없이 커졌다.

이쯤이면 농담이라고 봐야 한다. 소교주와 소교주를 수행하는 무력대까지라면 진실일 리가.

하지만 농담이냐고 되물을 순 없는 노릇.

“감,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교주, 거기에 천공단까지 어떻습니까?”

“으헉!”

파골법사가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방금 말은 풍제 곁에 내내 조용히 앉아 있던 청년이 꺼냈기 때문이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말을 해서가 아니었다.

감히 풍제와의 대화에 끼어든 것이 아닌가!

어린 친구가 돌아버린 건가 싶어 입을 쩍 벌리고 있자니, 더 놀라운 말이 풍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천공단이라…… 그것 괜찮군.”

파골법사는 이제 입을 너무 벌려 턱이 아플 지경.

대체 누구인가?

누구길래 풍제가 웃으며 말을 받아준단 말인가.

그렇게 경악을 금치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저 후공의 반가운 인사는 마음으로만 전해졌다.

‘파골, 반갑구나.’

지난 시절, 갇히게 된다면 연기로 화해 열쇠구멍으로 탈출하겠다며 그렇게 기환술에 전념하고 있다는 파골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

천공단은 운기행공을 끝낸 직후,

밀교로의 출정 소식을 접했다.

천공단은 기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새로운 여행, 새로운 경험이어서 기뻤지만, 잠시나마 천공단주와 떨어져 있게 된 건 바라던 바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씩씩함을 보였다.

천공단이니까!

“형아, 충성!”

“두목,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맡겨주십시오!”

“형님, 끝나면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애써 씩씩함을 보이며 돌아가야 할 곳을 물었다.

대답은,

“천화서고.”

***

그렇게 천공단이 떠나간 길.

후공도 천화서고로 향했다.

함께 한 이는 셋.

풍제와 암향야, 그리고 빙화.

과거의 여느 때와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누군가를 대신해 제갈혜가 함께한 것뿐.

함께 아침을 맞고, 또 밤을 달리기도 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 질주 속에,

미녀도의 남은 날은.

- 백오 일, 백사 일, 백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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