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26화 (326/460)

326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나아가는 길,

멀리 하나의 산이 보였다.

산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천하제일인과 천마신교의 교주, 사천 당가주가 나아가는 길이다.

어느샌가 산의 초입.

천화서고는 이제 곧.

산이 천화서고요, 천화서고가 산이다.

빛이 흐르는 것처럼 산을 오르며,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우습군.’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천화서고가 포근한 보금자리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공은 우습기도 하고 기분도 묘해졌다.

이제 본래의 경지에 근접해간다.

번쾌친을 찾았다.

혜와 두 아우도 다시 찾았다.

이쯤이면 천화서고와는 마음의 선이 그어질 만도 한데 결속은 여전하고 마치 원래부터 가족이었던 것처럼 애착이 가니 우습고 기이했다.

우습다는 말은 정(情)이란 말과 같겠지.

풀과 나무 같은 이들. 바라보고 있으면 풍경을 보는 것 같은 이들.

“여기다!”

질주 속에 보이는 건 절벽 끝자락.

후공은 먼저 절벽 너머로 신형을 날렸다.

풍제와 당명이 뒤따라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대형이 가는 길, 의문은 없다.

설명은 따로 듣지 못했지만 진법이리라.

신형을 솟구쳐 허공을 갈랐다.

“와아아아아아아! 날아!”

당명의 등에 업힌 제갈혜가 환호성을 발했다.

색관조와 금섬도 요란법석을 떨었다.

[까르르! 나는 아까부터 날았지~~~. 계속 날아가지~~ 까르르르르르!]

[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윽~~.]

허공의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주위 풍광이 돌변했다. 사방은 하얀빛의 공간. 주변에서 들려오던 소리도 말끔히 사라졌다.

극단적인 적막에 웅웅 이명이 들릴 정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순간이 지나고, 돌연 풍경이 돌아왔다.

사방에는 고풍스러운 전각들.

소리도 돌아왔다.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형님, 오셨습니까!”

“대공자님!”

이미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던 천화서고인들이 크게 환영의 말을 외쳤다. 산의 온갖 곳에 설치된 탐지 진법을 통해 이미 인지하고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던 터.

그러한 광경에,

‘허허, 여기가.’

‘풀꽃 같다더니…….’

풍제와 당명은 내심 너털거리고 말았다.

먹물 냄새가 온 사방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호위대도 보였지만 없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 보잘것없음이 말로 할 수 없었다.

‘이곳이 대형의 새 보금자리라니…….’

‘천하제일인의 보금자리가…….’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풍제와 당명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

“할아버지, 늦었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천화서고 노가주와 함께 자리한 곳에서,

풍제와 당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대형이 큰절을 올리며 할아버지라 칭하고, 노가주는 괘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식은땀이 흐르는 건 당연했다.

‘허허…… 이렇게 지내온 것이구나.’

‘살다살다 이런 풍경을…….’

대형이 강호를 활보하며 전략적으로 존칭을 쓰는 것과 지금의 모습은 그 느낌이 하늘과 땅인 것이다.

그때 노가주가 입을 열었다.

“흐음, 돌아와서 기쁘다만 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기어코 계절이 바뀌어 돌아오다니. 곧 봄이다. 봄이 오는 건 알고 있느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반문하며 노가주는 손자의 뒤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많은 일이 있었겠지.

또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

꼭 누굴 데리고 온다.

이번엔 두 노인.

알고 보니 큰 손자는 친구를 잘 사귀는 편.

나갔다 돌아오면 친구가 늘어있다.

전에는 천공단과 함께 오더니, 천공단은 어디 가고 이번엔 어찌 노인들뿐인가. 노인인 점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었다. 천공단에도 노인 금적자가 있었으니.

‘이번엔 누굴까?’

그렇게 묻자, 답이 들려왔다.

“할아버지, 이쪽은 천마신교의 교주이신 풍혼마제십니다. 그리고 이쪽은 사천 당가의 가주십니다.”

쿠웅!

노가주의 심장이 주저앉았다.

방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이다.

‘마, 마교 교주와…… 사천 당가주?’

강호에 몸담고 있는 건 아니어도 마교와 사천 당가는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가 마교.

듣기도 했고, 읽기도 했다.

대대로 혈겁과 전란의 중심에 마교가 있었다.

유일하게 전 강호와 맞설 수 있는 힘을 지닌 곳이 마교라고 했다.

무서운 곳이라고 했는데!

사천 당가도 노가주는 알고 있었다.

이 시대의 당가는 천룡의 가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세를 지닌 곳.

한데 그중에서도 교주와 당가주라니!

노가주는 너무 큰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동자를 흔들며 손자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기어코…… 돌아버렸나?’

마교 교주와 당가주여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손자가 걱정되어 노가주의 내려앉은 심장은 제 위치를 찾지 못했다.

“할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너는 괜찮냐?”

후공은 뚱하니 입을 쓰게 다셨지만, 그 말에 뒤쪽은 난리가 났다. 풍제와 당명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 내력을 운용해야 할 정도였다.

‘이런 것이었군.’

‘재밌구나. 재밌어. 너는 괜찮냐니! 하하하!’

솔직하게 말하는 대형도 웃기지만, 천화서고 가주의 반응은 상상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싶기도 하면서도 실제 눈 앞에서 아예 믿으려 하질 않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히 장관.

“그래,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맹주의 신검은 찾았고?”

“네, 회수했습니다. 그 길에…….”

후공은 지나온 길을 대폭 축소해 들려주었다.

세세히 들려줘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들려주면 도리어 불신만 키우는 꼴.

그렇게 들려주니 그제야 노가주가 놀라워했다.

“오호!”

“이런…….”

“그런 일이!”

모든 이야기가 전각 한 채라면 실제 들려준 이야기는 기왓장 한 장 정도였지만 그 정도가 노가주에게 맞았다. 여태 직접 보고 겪은 바는 서문세가와 소요파가 전부인 것이다.

물론 애초에 별 관심도 없을 테고.

그렇게 이야기를 끝냈을 때,

“허허, 고생 많았다. 먼 길 고단할 테니 쉬도록 해라.”

“네.”

홀로 남은 노가주는 표정이 싹 달라졌다.

턱을 괴고 연신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미친 건 아닌 것 같은데…….’

들려준 이야기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에 남은 건 오직 하나.

마교 교주와 사천 당가주.

‘흐으음…… 무슨 다른 뜻이 있겠지? 그렇게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테지?’

손자가 허세를 부리는 성격은 아니다.

그건 확실했다. 여태 보아온 바가 있지 않는가.

소요파와 다툴 때도 실제 소요파가 찾아왔었으니.

물론 북해빙궁 이야기에는 갸웃했었다.

북해빙궁의 궁주와 친분을 쌓고 왔다고 했던 말은 과장이 섞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허언증이 생긴 게 그때부터인가……. 아니, 생각하지 말자. 돌아왔으면 됐다.’

어디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것이면 족하다고 노가주는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이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교 교주는 너무 나갔……. 후우~~, 후우~~. 숨쉬자. 진정하자.’

**

소식은 천화서고 모두에게 전해졌다.

함께 온 두 노인의 정체가 천마신교의 교주와 사천 당가주라는 소식이었다.

그 결과,

다들 피식 피식 웃고 다녔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원래 대공자께선 농담을 즐겨하시니까.

마음을 바꿔먹은 대공자는 한번씩 엉뚱한 말씀을 하시니까.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저 천공단의 금적선생처럼, 천공단의 일원이 아니겠냐는 말을 서로 나눌 뿐이었다.

하지만 윤과 부몽은 달랐다.

웃지 않았고 도리어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부몽아, 이대론 안 된다!”

“형님,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순간부터 씩씩거렸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나서야 줘!”

“송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윤의 물음에 송화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그렇게 믿는데요?”

“왜?”

“저는 대공자님 곁에 있어봤으니까요. 직접 보았으니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마교 교주와 사천 당가주는 너무 멀리 갔지 않느냐!”

“제가 일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공자님께서 천룡대전에서 어떻게 하셨냐면…….”

“됐다.”

“형님, 당장 큰 형님께 가시죠.”

“그래, 그러자.”

그렇게 달려가 마주했다.

득달같이 예를 취한 윤과 부몽이 앞다퉈 입을 열었다.

“큰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그래.”

“저희는 형님께서 대단한 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이미 충분히 대단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무엇보다 그저 저희의 형님이시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큰 형님, 저는 큰 형님께서 바보여도 좋고, 멍청이여도 좋습니다. 저에겐 언제나 큰 형님은 최고입니다.”

“그래서?”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는 알고 있었다.

그저 두 아우를 보고 있자니 천화서고에 온 것이 실감났기 때문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인가 싶기도 하고, 하는 말들이 듣기 좋기도 했다.

“그래서 저희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솔직히 천공단만으로도 대단하시고요. 색관조도 대단하고요!”

“어디 그뿐인가요! 형수님…… 아니, 제갈소저도 대단하고요! 제갈소저께서 큰 형님을 좋아하는 눈빛은 저희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윤과 부몽의 말은 그칠 줄 몰랐다.

지금 모습도 충분히 존경스러운 큰 형님인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여기에서 없는 말을 지어내신단 말인가.

“마교 교주라니요, 사천 당가의 가주라니요! 큰 형님, 그분들 보통 분들이 아닙니다. 큰일 납니다!”

“네, 이러다 멸문당합니다!”

충정과 애정이 물씬 묻어난 말이었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하하하하, 역시 현명하십니다!”

“하하하하하, 역시 큰 형님이십니다!”

“이제 엎드려.”

“네?”

“엎드려.”

윤과 부몽이 울상을 하고 엎드렸다.

그사이 이제나저제나 대기하고 있던 송화가 몽둥이를 들고 들어왔다.

“공자님, 여기요.”

“빠르구나.”

“저는 공자님의 그림자니까요.”

“후후.”

오랜만에 들어본 그림자 타령에 후공은 웃고 말았다. 이내 몽둥이로 윤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몇 대?”

“두 대 맞겠습니다.”

“양심은?”

“다, 다섯 대 맞겠습니다.”

“그러자.”

“네?”

윤은 물론이고 부몽도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 열 대 아닌가?

심경에 큰 변화를 겪으신 것인가?

어쨌든,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윤과 부몽의 비명 소리가 천화서고에 길게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악!”

그것으로 모두가 실감했다.

대공자께서 돌아오셨다!

또한 듣기 좋은 소리기도 했다.

마치 음악이 흐르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였더라.

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 것이?

그래, 생각난다.

대공자께서 물구나무를 서고, 앉아 뛰기를 하실 때였다. 갑자기 팔굽혀펴기를 하실 때였다.

그때 이공자를 패버리셨다.

모두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었다.

그보다 감동적인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더. 더!’

‘대공자님, 더요!’

함께 오신 분이 마교 교주면 어떤가요.

아니면 어떤가요.

그저 웃으면 그만인걸.

대공자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중요하죠.

“으아아아아악!”

“아악!”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