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27화 (327/460)

327화. 꾸꾸.

다섯 대.

매타작이 끝난 후, 윤과 부몽은 정신을 차렸다.

“자, 다시 말해 봐라.”

“이 어리석은 아우가 형님을 의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큰 형님, 용서하십시오!”

윤과 부몽은 씩씩하게 답했다.

사실은 정신만 차렸다.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

믿을 걸 믿어야지.

물론 큰 형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많긴 하다.

큰 형님이 누구신가!

부근에 있는 것만으로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은 육각망의 악취를 견디고 씹어먹다시피 하신 분이며, 서문세가는 큰 형님 앞에서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저잣거리에서 암살을 시도한 무극살부의 네 살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즉사.

게다가 친구라곤 주양 형님 한 분뿐이시던 분이 정신을 차리시니 강호의 친구들이 눈덩이요, 그 면면의 화려함에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마교 교주라니, 사천 당가주라니.

큰 형님, 이건 아닙니다.

저희 바보 천치 아닙니다!

그렇게는 말할 수 없는 노릇.

“큰 형님, 저희가 마교 교주님과 당가주를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러든지.”

“넵!”

*

그렇게 찾아간 자리.

찻잔을 기울이고 있던 풍제와 당명은 이야기로만 들었던 큰 형님의 두 아우를 볼 수 있었다.

기분이 묘해졌다.

이쪽도 두 아우고,

형님은 이쪽에게도 큰 형님인 것이다.

서로가 같은 처지. 다른 세계.

묘해진 건 잠시뿐이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풍제와 당명은 절로 웃음이 났다.

비명 소리는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놈들 너무 비장한 것이다.

두 놈 모두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고, 이야기로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순진해 보였다.

“마교 교주님과 사천 당가주께 윤이 인사 올립니다.”

“몰라뵙고 의심했습니다. 저는 막내 부몽입니다.”

영광의 순간이었지만, 윤과 부몽이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빨리 숙제를 해치우겠다는 심정.

그 마음을 모를 풍제와 당명이 아니었다.

믿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조금 놀려주고 싶어졌다.

“우리가?”

“네?”

“설마 그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믿습니다!”

윤과 부몽이 입을 모아 크게 외쳤다.

믿어져서가 아니라, 숙제.

그저 큰 형님께 이 목소리가 들리면 그만이었다.

“흐음, 믿는다면야 뭐…… 좋을 대로 해라.”

그 대답에 윤과 부몽이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을 나눈 후 물었다.

“역시…… 아니시죠?”

목소리를 낸 건 아니었다.

큰 형님은 모든 소리를 들으시니까.

그리고 전음을 할 줄 모르니 입 모양만으로 뻐끔대며 물었다.

“당연하지.”

“하하하!”

“하하하하!”

윤과 부몽이 깔깔대고는 다시 입을 뻐끔거렸다.

“그럼 두 분은 누구세요?”

정말 누굴까?

그래도 나름 대단한 사람들이긴 하겠지?

천공단처럼?

그때 들려왔다.

“풍혼마제. 만마의 주인, 하지만 안 보이곤 곳에선 마교 교주라고 불리는 편이지.”

“난 사천 당가주. 암향야라고도 불린단다.”

윤과 부몽의 얼굴은 매서워졌다.

“흐으으음…….”

“크으으음…….”

심통이 나 한참을 노려봤다.

어째 큰 형님의 친구들은 다들 이상한 사람들뿐인가. 천공단도 그렇고 매사 장난이다.

“편히 쉬십시오. 마.교.교.주.님! 당.가.주.님! ”

한 자씩 끊어서 말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고는, 왔을 때처럼 입술을 앙다물고 돌아섰다.

“후후.”

풍제와 당명은 그저 웃음.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윤과 부몽의 빈자리는 송화가 대신했다.

“교주님, 당가주님! 주인님께서 두 분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그래?”

풍제와 당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송화가 갸웃했다.

“근데 이상하네요.”

“무엇이 말이냐?”

“그게…… 주인님께서 오란다고 정말 가시는 건가요?”

교주님이시고, 당가주신데요?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그러곤 바로 송화는 말을 보충했다.

“기분 안 나쁘세요?”

“그보다…… 너는 그 말을 믿는 것이냐?”

“네, 전 믿어요.”

“왜?”

“주인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왜?”

“주인님은 대단한 분이시니까요.”

“왜?”

“두 분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아요?”

“왜?”

이번엔 송화도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음, 아시잖아요.”

“후후, 왜?”

“제 생각엔 두 분 다 주인님께 처맞아보셨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풍제와 당명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대형에 대한 무한 신뢰가 즐겁고, 말투도 즐거웠다.

대형이 말하길 송화의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즐겁다고 하였기에 말장난을 해보았던 것인데, 그 말대로였다.

재밌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가자. 대공자가 오라면 가야지!”

“헤헤헤, 제가 앞장설게요.”

도착하니 제갈혜가 먼저 와 있었다.

함께 방을 구경했다.

이곳이 대형의 처소.

대형이 이곳에서 지내셨구나.

그리고…….

이곳에서 깨어나셨구나.

방의 구조, 그리고 형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방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환혼의 장소.

“대형, 궁금하군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후후, 표현이 불가할 정도. 정신이 아득했지.”

후공도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처음 환혼된 당시, 당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고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며 넋이 나갔던 당시의 기분도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

천화서고 노가주가 다가오던 소리.

그러다 적응하면서는 지금의 상황을 미리 상상해보곤 했었다. 혜와, 풍제, 당명과 함께 이 방에서 언젠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빠르면 5년.

하지만 1년 만에 보게 되었으니 운이 좋았다.

“진법이 많군요.”

“정말 많습니다. 다른 처소와는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풍제의 말에 함께 둘러보던 당명이 동감을 표시했다. 방을 두르고 있는 진법이 셋, 이 전각을 두르고 있는 진법이 또 넷. 그리고 내부에 또 다른 진법의 존재도 감지했다.

“후후, 죽으려 안달 난 놈 때문이지.”

누구인지는 설명이 없었지만, 모두 이해했다.

절망에 사로잡힌 천재.

삶의 의지가 꺾인 천재.

“서재로 자리를 옮기자. 좋은 구경을 시켜주마.”

이윽고 모두가 서재로 향했고,

겨울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

끝도 없는 설원이 펼쳐진 가운데, 하얀 눈이 내렸다.

만약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책자가 아니었다면 북해빙궁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안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환혼에 대해서였고, 또 말하고 또 말해도 질리지 않는 옛이야기가 오갔다.

***

다음 날.

“퀄퀄퀄.”

절벽 끝자락에서 청월문주 반광이 웃음을 흘렸다.

천화서고의 진법이 열리길 기다리는 중.

이곳에 서 있을 때면 매번 신기한 마음이 일어 절로 웃음을 짓게 되는 반광이었다.

그건 함께 한 백화장주도 마찬가지였다.

“장문인, 대공자 소식은 들었습니까?”

“퀄퀄, 저도 듣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소식이라면 묘장주께서 더 빠르지 않은지요? 빙빙이 무려 천공단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빙빙이 천공단 활동을 중단한 지가 꽤 되었습니다.”

“아! 아직도 면벽수행 중입니까?”

“저도 여전히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아는 빙빙은 절대 그럴 녀석이 아닌데…….”

“퀄퀄, 기대가 큽니다. 또 압니까. 수행을 마치고 나면 빙빙이 엄청난 고수가 되어 있을지.”

“하하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 열리는구려.”

두 사람을 맞이한 건 윤과 부몽이었다.

“청월문 장문인과 백화장주님을 뵙습니다.”

간단히 서로 간에 인사를 나눈 후 윤이 용건을 물었다.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혹시 이미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퀄퀄, 소식이라니?”

“아! 다른 용무셨군요. 저는 큰 형님께서 돌아오신 소식을 듣고 오신 줄 알았습니다.”

“응?”

“대, 대공자가?”

반광과 백화장주가 놀라 눈이 커졌다.

원래 용건은 진법 때문이었다.

천화서고의 지원을 받아 최근 완성된 진법의 운용에 곤란을 겪어 문의를 하러 온 길인데, 뜻하지 않게 대박이 나 버린 셈.

“저, 정말인가?”

“어, 어디에 있나? 당장 봐야겠네.”

“하하하하!”

윤과 부몽은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큰 형님이 오셨다는 말만으로 청월문 장문인과 백화장주가 몸을 들썩이니 괜히 우쭐해지는 것이다.

“한데 큰 형님만 오신 건 아닙니다.”

“퀄퀄퀄, 천공단이 함께 온 게로군.”

“그건 아니고……. 이걸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허어, 누군데 뜸을 들이는 겐가!”

“놀라지 마십시오.”

“안 놀랄 테니 얼른 이야기나 해보게.”

“한 분은 마교 교주님이시고요, 다른 한 분은 사천 당가주이십니다. 별호가……. 맞다. 암향야라고 불린…….”

윤은 말을 맺지 못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퀄퀄퀄퀄퀄퀄!”

백화장주와 청월문주가 터져 버린 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퀄!”

멈출 줄 몰랐고, 심지어 윤과 부몽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웃어대니 윤과 부몽은 시무룩.

‘젠장……. 너무 웃네.’

‘이럴 것 같더라니.’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고는 입 모양을 냈다.

“저희도 사실 안 믿었어요.”

“근데 혹시 누군지 알아보실 수 있으실는지. 저~기. 저~~기 저분이 자칭 사천 당가주시거든요.”

청월문주가 윤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고는 다시 미칠 듯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보는 노인이었고,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였다.

“퀄퀄퀄, 이 노부는 모르는 얼굴이외다. 혹여 장주께선 알아…… 응? 장주? 왜 그러십니까?”

청월문주 반광이 놀라 눈이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함께 웃던 백화장주의 얼굴이 창백한 것이다. 심지어 손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

“어…… 어째서 여기에?”

“장주, 뭐가 어째서인게요?”

“어째서 암향야가…… 사천 당가주가…… 천화서고에…….”

“……?”

이건 또 뭔 소린가.

청월문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윤과 부몽은 아예 휘청.

‘지, 진짜였어?’

‘이게 진짜면…… 다른 한 분은?’

거기까지 생각하자 백화장주와 같아졌다.

창백해졌고, 손을 덜덜 떨었다.

한 짓이 있는 것이다.

두 분 앞에서 한 자씩 끊어서 말하고 나와버리지 않았던가.

마.교.교.주!

이렇게!

그렇게 생각하고 앞을 보니 이미 백화장주와 청월문주가 사라지고 없었다.

두 사람이 나타난 건 암향야 앞.

“암향야를 뵙습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실는지요?”

“넌 백화장주가 아니냐.”

백화장주의 동공이 미치도록 흔들렸다.

날 알아봐주셨어!

날 기억하고 계셨어!

현경의 고수가 나를 아직까지!

“영광입니다.”

그 모습에 청월문주 반광도 인사를 건넸다.

드높은 명성은 들었지만, 보는 건 처음.

“청월문주 반광이 얌향야께 인사드립니다.”

“그래. 넌 다부지구나.”

반광은 체구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편.

현경의 고수에게 칭찬을 받으니 반광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퀄퀄퀄, 과찬이십니다.”

“응?”

당명이 미간을 찡그리며 갸웃했다.

이상하게 웃는 놈을 본 것이다.

“퀄퀄, 왜 그러시는지.”

“너 이상하게 웃네?”

“저는 원래 이렇게 웃습니다만.”

“원래?”

“네, 퀄퀄.”

당명의 미간이 더 깊게 파였다.

“꾸꾸꾸.”

“네?”

“꾸꾸꾸꾸.”

“퀄퀄, 왜 그러시는지…….”

“웃었다만.”

“퀄퀄퀄퀄, 세상에 그렇게 웃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암향야께선 특이하십니다. 퀄퀄퀄퀄~~.”

“꾸꾸꾸꾸꾸꾸꾸우우우우!”

“퀄퀄퀄퀄퀄퀄퀄!”

꾸꾸와 퀄퀄의 대결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백화장주와 윤과 부몽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했지만, 후공은 달랐다.

오가는 모든 대화를 들었기에,

“하하하하하하하하!”

처소에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당명이 자신의 아우가 아닌 것이다.

당명은 꾸꾸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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