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29화 (329/460)

329화. 인정받은 느낌.

그 밤, 천화서고의 절벽 진법은 개방되었다.

더 이상 절벽이 아닌 곳에서 후공은 직접 손님을 맞이했다. 그림자인 송화가 곁을 지켰다.

“공자님, 누가 제일 먼저 올까요?”

“취운개.”

“어머!”

송화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나의 신형이 높이 솟구쳐올랐는데, 바라보니 개방 분타주인 것이다.

척, 내려선 취운개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대공자, 이게 얼마 만인가.”

취운개가 반가운 마음에 끌어안으려 했지만 빈 허공만 갈랐다. 있었는데 없어졌기에 취운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탄성을 발했다.

“오오! 역시 자넨 더 대단해졌구만. 강호의 소문대로일세. 그럼 그것도 사실이겠지?”

“후후, 물론입니다.”

“크으~ 신나는구만! 풍풍풍, 암암암! 먼저 들어가겠네.”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취운개가 나아갔다.

그 모습에 송화도 웃고 말았다.

하지만 의문도 생겼다.

“공자님, 개방은 왜 서로 관심이 없는 걸까요? 사제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네요?”

“너처럼 똑똑해서 그런다.”

“네?”

그러다 이내 이해했다.

무소식이 희소식. 걱정할 일이 있다면 묻지 않아도 먼저 듣게 되는 것이다. 어련히 잘 있겠지, 라는 마음. 쉽다고만 볼 수 없는 마음가짐이어서 송화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기분도 좋아졌다.

그만큼 주인이 신뢰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손님들은 이어졌다.

“아하하하! 대공자, 저 왕소한이올시다!”

대륙전장의 장주 부장주, 그리고 만두같이 생긴 장주의 아들 왕소한이 찾아왔고,

“대공자, 반가워요.”

청월문주의 딸 반교인이 수줍은 미소와 함께 모습을 보였다. 그 뒤 염화각주와 그의 아들 장예가 찾아왔고, 이어서는 백화장주의 딸 묘가령이 인사를 건네왔다.

“묘가령이 천공단주께 인사드려요.”

후공은 빙긋 미소를 머금었다.

묘가령이 대공자라 부르지 않는 건 언니인 묘빙빙 때문인 것이다.

“묘 소저, 언니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언니는 불철주야 정진에 힘쓰고 있답니다.”

“모습도 많이 달라졌겠군요.”

“하하, 맞아요.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 덕분에 예뻐졌고요.”

“아니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면 대체…….”

“하하하하!”

묘가령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공자는 강호에 빛나는 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유쾌한 것이다. 예전 서문세가의 연회 때가 떠올라 가령은 한참이나 웃음을 이어갔다.

이어 서문세가의 새로운 가주가 된 서문봉이 찾아왔고, 그 뒤를 이은 건 철금회주였다.

“대공자!”

철금회주 단연청은 보자마자 덥석 손을 잡았다.

던진 말은 그뿐이었지만 흔들리는 눈동자가 많은 이야기를 대신했다.

난 자네가 이렇게 될 줄 믿고 있었네.

그래서 내가 검을 선물한 걸세.

정녕 신검을 찾은 겐가.

내가 건넨 검은 아직도 지니고 있는 것인가?

당연하게도 후공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에 조금 놀려주고 싶어졌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아아아…….”

철퍼덕.

철금회주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당장 통곡을 할 태세였고, 아들인 단강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버지를 외치며 붙드는 모습에 후공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울음을 터뜨리려던 철금회주가 갸웃하며 올려다봤다.

“응?”

“검령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어……?”

멍해졌던 철금회주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곤 고개를 절레거렸다.

“난 또……. 휴우, 간 떨어질 뻔했지 않나.”

이름을 붙였다는 건 그만큼 대공자가 애정을 주고 있다는 의미. 혹여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 만든 검이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비로소 크게 마음이 놓였다.

“대공자, 시간이 된다면 신검을 내게 보여줄 수 있겠나.”

“그건 좀…….”

“고맙네.”

이번엔 속지 않았다.

철금회주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일어나 성큼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밤의 연회가 열렸다.

오랜만에 천화서고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런 모습에 천화서고 식솔들은 다시금 대공자께서 오셨다는 것을 실감했다.

북적거리긴 해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떠들썩하진 않았다.

아니, 떠들썩이 뭔가.

마교 교주와 사천당가주가 동석한 자리.

분위기는 경건할 지경이었다.

미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천공단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개방 분타주 취운개가 연신 헤실거리며 분위기를 띄운 탓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려 갔고, 거기에 편승한 왕소한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모두 멈추십시오!”

내공은 한 줌도 없는 몸이라 겁도 없었다.

뭘 겁먹어야 하는지 모르면 천지분간을 못하는 법.

모두 주목하니, 왕소한이 말을 이었다.

“강호에 몸담고 있다는 분들이 어찌 이리도 멋이 없단 말입니까. 마교 교주님과 사천당가주님이 함께한 자리이니 술맛을 돋우기 위해 각자 묘기를 선보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무공도 좋고, 연주도 좋고, 춤도 좋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보물도 좋습니다. 먼저 마교 교주님부터 하시는 것이……. 으헉!”

바로 제압당했다.

아들의 철없는 말에 대륙전장의 장주가 끌어앉히고는 머리를 연신 후려갈겼다.

일 년 전 서문세가의 연회 때와 같을 뻔했지만 무산.

하지만 그것이 당시 참석했던 이들의 추억을 불러온 건 어쩔 수 없었다.

- 단 형, 기억 납니까?

- 잊을 수 있을 리가요. 그때 대공자의 천상의 손길이 임했지 않습니까.

- 하하, 맞습니다. 천상의 손길. 한데 이제 대공자는 아예 천상의 세계로 가버렸군요.

염화각의 장예와 철금회의 단강무가 전음을 나눴고, 반교인과 묘가령도 마찬가지였다.

- 제 첫사랑이 이렇게 떠나가는군요.

- 첫사랑이었나요?

- 두 번째 사랑은 아니에요.

- 하하.

반교인과 묘가령의 시선은 제갈혜에게 한 번씩 닿고 있었다. 나름 미모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대공자 곁에 앉아 있는 제갈혜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천상의 미모인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끝없는 경탄.

누군가는 짙은 아쉬움.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연회는 끝을 맺었다.

모두 돌아가고 천화서고에 남은 건 세 사람뿐.

“난 오늘 여기에서 잘 거야! 쫓아내도 안 쫓겨날 거야!”

취운개가 남았고,

“대, 대공자……. 이 검들이…….”

철금회주 단연청과 그의 아들 단강무가 남았다.

처소로 안내된 철금회주는 손을 덜덜 떨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하지만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천하제일인의 세 자루 신검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회주, 마음 편히 보십시오.”

그런 단연청에게 후공은 호의를 베풀었다.

호의는 당연한 것이었다. 후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번쾌친을 찾기 전까지 검령이 곁에 있어 준 것이다. 또한 검령은 번쾌친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신병이기.

그와 같은 보물을 선뜻 건넨 이에게 무엇인들 못 보여주겠는가. 자격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스르릉.

단연청이 먼저 꺼내본 건 번.

“오! 이럴수가……. 이걸 어떻게…….”

번의 검면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에 정신이 팔렸다. 승천하는 용의 각인. 단순히 용을 보고 놀란 건 아니었다. 문양의 화려함에 더해 마치 진법을 새겨넣은 듯 그 위치와 각인의 깊이가 의미심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탄성은 쾌와 친에 이르러서도 이어졌다.

중검과 단검임에도 같은 각인. 같은 묘용.

모두 한 사람의 솜씨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특히 쾌의 예리함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베이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자신이 만든 검령과 같이 이기어검에 최적화된 형태였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티잉!

친을 쥐고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겨본 다음, 내력을 주입했다.

“어?”

갸웃했다가 다시 시도했지만 실패.

“대공자,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력이 흩어지네만?”

“손을 좀 탑니다.”

“모두?”

“그렇습니다.”

“그, 그게 무슨?”

황급히 번과 쾌에게 손을 뻗어 확인해 본 단연청은, 마찬가지였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을 하며 연신 깜박였다.

“그럼 자네는?”

“크흠, 저도 어렵습니다.”

이제 속지 않는다.

단연청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검령을 손에 쥐고 뽑아냈다. 이내 내력을 주입했을 때, 입이 쩍 벌어졌다.

“어…… 어……!”

검령마저 내력을 흩어버린 터.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대공자에게 건네기 전,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내력을 주입하며 시험했었다. 그 과정에서 기의 흐름을 살피고 다시 두드려갔던 시간들.

한데 어찌하여 내력이 스며들지 않는 것인가?

“대, 대공자……. 뭘 어떻게 한 건가?”

“후후, 친해져서 그렇습니다.”

“나도 친하네만?”

“하하하하!”

단연청의 얼굴이 바보 같아졌기에 후공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단연청은 여전히 어리둥절.

“정녕 자네는 내력을 주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밖으로 나가시죠.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그럼세.”

“모두 들고 오십시오.”

“알겠네.”

밖으로 나가니 아들 단강무가 허겁지겁 반겼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버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고, 검을 네 자루나 들고 대공자를 뒤따르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저리 비켜라.”

“…….”

아들이고 뭐고 지금 단연청은 정신이 없는 상태.

대공자를 뒤따르며 앞으로 보게 될 놀라운 광경을 머리에 그려갔다.

그때 그 모습이겠지.

놀라운 검무였다.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추와 서문세가의 검수들이 잠력을 격발해 폭주했을 때 지켜보던 대공자가 격전지를 누비며 검무를 추었다.

화려하지 않음에도 화려해 보여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의 검광이었고,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검결이었다.

그 모습을 보았기에 검을 선물함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때처럼, 그날처럼…….’

단연청이 이미 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할 때,

세 줄기 자줏빛 광채가 뿜어져 나와 천화서고의 밤을 질주했다.

크르르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앙!

카르르르릉!

“허어억!”

단연청이 기함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손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 내려다봤다가 아예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어느샌가 검집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이다.

이기어검.

대공자의 경지가 높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기어검을 구사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한 터.

내력을 주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아득히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넋을 놓은 것도 잠시,

단연청은 이내 우울해졌다.

보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이었지만, 자신이 만든 검령만은 미동조차 없는 것이다.

‘역시…… 검령은 어울리기엔 부족한 것인가.’

아니다.

검령은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터.

주인을 닮아 놀리고 싶어졌을 뿐.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친 울음과 함께 자줏빛 광채를 발하며 나아가 이내 질주하는 번쾌친과 어우러졌다.

잘 어울렸기에,

검령 또한 자줏빛 광채를 발하고 있었기에,

단연청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 검령이…….”

나의 검이 천하제일인의 신검들과 함께하다니…….

같은 자줏빛 광채를 발하다니…….

보고 있으면서도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대공자…… 고맙네.”

천하제일인은 떠났지만, 천하제일인에게 인정받은 것만 같았다.

후공은 미소로 응했다.

인정은 이미 검령을 선물 받을 때 인정했다.

“회주, 제가 고맙습니다.”

“근데 대공자.”

“말씀 하십시오.”

“나…… 웃어도 되나?”

“울다 웃으면?”

“괜찮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철금회주는 웃음에서 그치지 않았다.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방방 뛰며 요란한 소리를 내질렀다.

미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지켜보는 천화서고의 모든 식솔들은 그렇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왜 검이 날아다니냐?”

노가주가 멍해졌다.

다른 모든 이들도 천화서고의 밤을 질주하는 네 줄기 자줏빛 광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멀리 북쪽.

천화서고로 손님이 오고 있는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모든 걸 신기해 했고,

한 사람은 어렸다.

가끔 손을 잡고 걸었다.

많이 웃었다.

가고 있는데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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