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31화 (331/460)

331. 그가 있는 곳이 무림맹.

현이와 현음은 화산을 올랐다.

멀리 산 위 분화구에서 불기둥이 한 번씩 치솟으며 사람의 발길을 거부했다. 매캐한 연기와 열기도 위협적으로 산을 뒤덮고 뜨겁게 달구었다.

하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순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지면은 하얗고 투명하게 얼어붙었다.

두 사람이 지나간 뒤에도 열기는 바닥의 얼음을 녹이지 못했다. 연무 또한 다가오지 못하고 바람에 밀려나듯 밀려났다.

이윽고 분화구 위.

“사저, 이곳이로군요.”

“그렇구나.”

현음의 말에 현이가 미소 지었다.

천공단이 지나온 곳. 대공자가 있던 곳.

제갈혜에게 들었고, 소천개에게도 들었다.

모산과 천공단이 이곳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생생히 들었기에 현음과 현이는 천공단과 천화서고 대공자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목소리도.

위험은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흥미로워했으리라.

천공단은 언제나 그런 이들이니.

빙궁에서 빙벽을 깨겠다며 잠도 잊고 캉캉거렸던 이들이니.

“현음, 실제로 보는 용암은 놀랍구나.”

“저도 동감이에요. 대공자가 저 용암에 완전히 잠겼다가 신형을 솟구쳐 올렸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그렇게 들었다.

대공자는 용암을 뒤집어쓴 채 한참이나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고, 몸에서 용암의 불길이 떨어져 나간 후에는 대공자 스스로 일으킨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고 했다.

“사저, 우리도 시험해 볼까요?”

“너만 하는 걸로.”

“하하하하!”

현이의 말에 현음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버거워요.”

“나도.”

현음은 다시 웃었다.

사저와 함께하는 나날에는 자꾸만 웃게 된다.

70년 동안, 그 긴 세월 빙벽에 머물러 있던 사저는 빠르게 70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천천히 느릿하게 말하던 것도 나아지고 있고, 말을 되받는 순발력도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 나아짐을 볼 때면 웃음 짓게 된다.

현음이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 시선을 느낀 현이가 눈을 마주쳐갔다.

“넌 할 말이 있나 보구나.”

“사저, 너무 두려워 말아요.”

“용암의 물결?”

현음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천화서고. 두려운 것 맞죠?”

현이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대신한 건 얼굴.

현이의 얼굴은 뭔가를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둘러 가고 싶다는 마음 한편, 대공자와 마주할 순간이 두려웠다.

대공자라면 분명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란 걸 아는데도, 순간순간 깨물지도 않을 손톱을 입에 가져가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를 매일 밤 떠올려서일까.

그를 생각하느라 잠들지 못해서일까.

떠올리는 것만으로 설레어서일까.

설렘을 넘어 심장이 춤을 출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대공자와 마주하게 되면 그런 마음을 들킬 것 같아 빠르게 나아갈 수 없었다. 두려워져 천천히 걸었고, 이곳을 보고 저곳을 보며 시간을 늦췄다.

너무 닿고 싶으면 닿기 두렵고

너무 보고 싶으면 볼 수 없는 것일까.

그 모습에 현음이 웃었다.

자신의 모습은 반로환동하여 열 살 여자아이의 모습이 되었으나 연륜은 그대로.

사저의 마음을 이해했다.

사저가 혼란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상대가 나쁘다. 천화서고 대공자. 그는 매혹자. 사람을 매료시킨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사저, 괜찮을 거예요. 천화서고에는 천공단이 있을 테니까요.”

떠들썩할 테니.

그들이 있는 한 정신이 하나도 없을 테니.

“그렇겠지?”

“하하, 그럼요.”

**

그건 착각.

천공단은 천화서고에 없었다.

밀교의 반란 세력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지나온 길이 말해준다. 단주와 함께하며 배우고 겪은 것이 많은 천공단은 악당들.

유인, 납치, 암살은 기본.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있다.

낄낄대면서도 바람 같이 움직였고, 많은 이들을 파묻기도 했다.

서두르기도 했다.

마교와의 연합 작전이라는 영광스러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천화서고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기에 폭풍처럼 몰아쳤다.

마교 측도 서두른 건 마찬가지.

밀교의 반란 세력은 도운연에겐 화풀이 대상.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모두에게 속았다는 사실이 시커먼 추억으로 남았기에 그 분노를 고스란히 토해냈다.

오마신 중 절마신과 흑마신도 같았다.

천공단주에게 처맞고 밀교의 반란 세력에 화를 풀었다.

그 결과 반란 주동자인 야천법사는 눈뜨고 코 베인 격으로 당했고, 무릎 꿇려진 지금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

마교가 나설 줄 몰랐다.

파골법사가 마교로 도움을 청하러 떠났다는 것을 들었지만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했다.

무림맹주 후공이 떠난 것이 고작 1년이기에 풍제는 여력이 없다고 봤다.

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후공이 떠난 충격에 밀교의 내분이 귀에 들어오겠나 싶었는데 무려 오마신 중 둘이 왔고, 소교주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또 천공단은 뭐하는 놈들인지 수족이 모두 납치당했다. 찾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땅에 파묻혀 있었다고 한다.

“어찌하여 너희는 밀교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인가!”

모두가 굴복한 가운데, 무릎 꿇은 채 야천법사는 마지막 항변의 말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에 답한 건 은앙개.

“개새끼!”

“이건 밀교의 일이다. 외세가 왜 밀교의 문제에…….”

“개새끼!”

“내 말이 틀렸단 말이냐!”

“왈왈, 크르르르르르.”

“대답을 해라.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음메에에에~~, 음메에에에에~~.”

“이 새끼가 진짜!”

야천법사는 결국 폭발해버렸다.

정말 뭐하는 새끼들인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의 분노는 천공단의 웃음만 불러왔다.

깔깔대면서 누구는 함께 와서 짖고, 누구는 개새끼를 계속 외쳐댔다.

“야, 그만하고 가자!”

“미친 새끼들아, 어느 세월에 천화서고로 가려고 그러냐!”

멈춰 세운 건 항마삼협이었다.

마음이 급한 것이다.

천화서고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은앙개를 비롯 소천개와 언교운, 모용진, 남궁연이 돌아섰다.

작별 인사가 오갔다.

밀교의 감사 인사가 전해졌고,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은 마교.

도운연은 천공단 모두의 손을 잡았다.

“또 보자.”

혹은,

“또 뵙겠습니다.”

맞잡은 손,

나누는 인사와 함께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형님, 멀지 않은 날 다시 뵙겠습니다.”

“소교주, 절마신, 흑마신, 소호탈마대! 최고!”

천공단이 멀어져 가는 길, 천공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달리는 천공단이 이내 멈췄다.

까마득히 저 멀리였지만 도운연은 볼 수 있었다. 절마신과 흑마신, 몽허와 음희도. 소호탈마대도 천공단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아직 할 말이 남은 것일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때 천공단 모두가 돌아섰다.

한 손을 일제히 들어 올리며 외쳤다.

“도도도!”

하늘을 가리켰고 한목소리로 외쳤다가 이내 깔깔 웃더니 그대로 멀어지며 사라져버렸다.

‘미친놈들.’

도운연은 그만 웃고 말았다.

알 수 없다.

왜인가. 왜 허전한가.

이제 막 헤어졌는데 왜 보고 싶은가.

**

천화서고는 다시 분주해졌다.

연회는 지난밤 마쳤는데 새로운 연회를 준비하느라 누구 할 것 없이 바삐 움직였다.

대공자의 명이었다.

조만간 더 많은 손님이 서고를 찾을 것이라는 말이 전부.

이건 대체 무슨 말일까?

안휘 북부의 동맹이 모두 다녀갔는데, 또 누가?

하지만 누구의 말이라고 거부할 것인가.

지난밤은 연회만 끝난 것이 아니다.

모든 의문도 끝장나버렸다.

신검이 밤하늘을 질주하는 것을 본 것이다.

이제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서문세가와 맞설 때부터 그래왔기도 했고.

그래도 궁금한 걸 못 참는 이는 있기 마련.

막내 부몽은 어떤 손님들인지, 얼마나 많은 손님이 오는 건지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큰형님, 무림맹이 쳐들어오는 건가요?”

“그럴 리가. 다른 손님들이 오겠지.”

“전서를 띄우지도 않았는데요?”

“전서는 다른 사람이 띄울 거다.”

“네? 누가요?”

“강호가, 무림이.”

“사람 이름인가요?”

“하하하하!”

큰 형님이 웃었지만, 부몽은 머리만 긁적였다.

강호와 무림을 몰라서가 아니라,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풍제와 당명은 알고 있었다.

대형은 익숙하게 만들려 한다.

익숙해지면 당연한 일이 되니.

대형의 애정이 느껴진다.

대형은…….

천화서고의 대공자로 남으려 한다.

**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비밀에 부쳐 달라는 말이 없었음이다.

그로 인해 입에서 입으로 오갔다.

천화서고에 풍제와 암향야가 있다.

저잣거리에 삽시간에 퍼지면서 하오문이 들었다.

여러 문파와 가문의 속가와 방계가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강호와 무림이 들었다.

전서구와 전서매가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전서는 안휘 중부에 머물고 있던 하오문주에게도 전해졌다.

“독안아, 이게 뭔 소리냐?”

“개소리입니다.”

독안미녀가 안대를 조정하며 답했다.

하오문주는 미간을 있는 대로 좁혔다.

“그 물음이 아니잖아!”

“아니라 하시면…….”

“나 감탄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럼 진짜인가요?”

“당연하지.”

대공자의 행적은 내내 보고 받고 있던 하오문주였다.

운남에서도, 최근 사천의 일도.

백혼곡이며 암향야의 일까지.

지나는 길마다 엄청난 폭풍을 일으킨 대공자다.

대공자가 암향야에게 닿았는데, 풍제에게 닿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하오문은 매 순간 함께한 건 아니었지만, 함께한 것과 같다.

“당장 천화서고로 가야겠다. 천하가 몰려들 텐데 내가 빠질 수 없지. 난 무려 암향야에게 사로잡혔던 사람 아니냐! 그때 후공도 보았고.”

“자랑이신 거죠?”

“당연하지!”

*

하오문은 믿었지만, 믿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소식이었던 것이 소문이란 이름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기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천화서고가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이 소문에 다른 의미가 담긴 건 아닌가.

남궁세가도 소식을 접했고,

가주 남궁학은 염려했다.

하오문처럼 모든 소식을 다 접하지 못했기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으로 간주했다.

만약 소문이 진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오랜만에 풍제와 암향야를 만날 기회가 아닌가.

“천화서고로!”

천룡의 약속을 잊지 않은 건 남궁세가만은 아니었다.

천룡의 가문들도 앞다퉈 천화서고로 향했다.

천룡들뿐인가.

소요파도 잊지 않았다.

목령자와 화령자도 떠날 채비랄 것도 없이 소요삼십이 검수와 함께 천화서고로 신형을 질주했다.

거기에 종남파와 화산파가 더해졌고, 무당파도 길을 떠났다.

천화서고를 위하여!

천화서고로!

그렇게 하나둘 천화서고에 이르렀다.

누구는 서슴없이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고, 누구는 위협을 예상해 무거운 기세로 대기했다.

그러다 함께 하는 이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이내 그들 모두는 천화서고의 안내를 받았고, 천화서고에 어떤 위협 상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주한 건 대공자.

또한 풍제와 암향야.

놀란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강호 고수들의 행렬에 천화서고 노가주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왜 천화서고가 무림맹이 된 것 같은가.

그런 생각이 들 지경.

무림맹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천화서고가 무림맹이 된 것만 같았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풍제와 당명은 알고 있었다.

늘 같다.

언제나 그렇다.

그가 서 있는 곳이,

대형이 있는 곳이 무림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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