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절대로 화산파가 아니겠지.
천화서고를 찾아온 이들은 하나둘 돌아갔다.
그들은 모두 천화서고의 친구들이었다.
대부분 혹시나 하는 염려와 걱정으로 찾아왔던 이들은 안심하고 돌아갔다. 마음이 넉넉해졌다. 모두가 선물도 받았다. 안심된 마음이 이미 선물이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선물을 받았다.
풍제와 암향야를 보았다.
만남 자체로 영광이었고, 선물이었다.
또한 많은 친구를 만나 교류할 수 있게 된 것도 선물이었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천화서고의 친구는 우리의 친구가 될 것이고,
천화서고의 적은 우리의 적이 될 것이라고.
이 맹세를 할 때만 해도 몰랐다. 자신들의 친구가 이리도 많게 될 줄은.
소문과 같았다. 소문보다 진했다.
깊고 진함은 자신들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깊었고, 모두가 진했다. 누구 할 것 없이 대공자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또 선물처럼 마음에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이를 또 누군가가 좋아해주었으면. 내가 응원하는 이를 더 많은 이가 응원하고 좋아해주었으면…….
저절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많았다. 그들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대공자를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여서 좋았다.
든든하기도 했다.
함께하는 친구들이 온 강호에 가득한 것이다.
그 친구들을 만나고 나니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기분이 묘하구나.”
“어떤…….”
“천화서고를 다녀온 것이 틀림없는데 말이다.”
목령자의 대답은 불친절했다.
하지만 화령자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동감입니다.”
천화서고를 다녀오는 길인데 왜 무림맹에 다녀온 것만 같은가. 그만큼 수많은 이들이 모였고, 그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더 놀라운 건 이번에 모여든 행렬이 자발적이었다는 점이었다. 가자고 부추기는 이도 없었고, 천화서고의 요청도 없이 모두가 모여들었다.
그것이 또 신기해, 있는 내내 너털거렸었다.
“후공이 살아있었다면 서운해했으려나.”
“후공은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귀찮은 일이 줄었다면서, 아예 이 기회에 천화서고가 무림맹이 되는 건 어떠냐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그럴싸하구나.”
목령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형, 만약 후공이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응?”
“후공과 대공자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청한다면 누구에게 가시겠습니까?”
“어렵구나. 넌?”
“저는 대공자에게 갑니다.”
화령자의 말에 목령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후공이 서운해해도 어쩔 수 없다.
대공자는 악몽을 지워준 이.
기분 좋은 꿈을 꾸게 해준 이.
그가 그였지만 목령자는 알지 못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참사가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 꿈을 꿀 때면 이젠 천공단이 보였다. 절벽에서 떨어지곤 했다. 절벽 위에 선 대공자의 모습이 보이고 목소리도 들려왔다.
절벽에서 떨어짐에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그 기억은 어느샌가 기쁜 일이 되어 있었다. 대공자가 남겨준 기억이 과거의 악몽마저 덮어버렸다.
“대공자가 불러주면 좋겠구나.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
“동감입니다.”
소요파 장문인과 장로의 대화를 바람이 실어나른 것일까. 돌아가는 길, 비슷한 대화가 여러 곳에서 오갔다. 그 대화 속에 지난날을 떠올렸고, 점점 더 선명해졌다.
남궁가주 남궁학은 죽음의 밤 소예를 끌어당기던 대공자의 모습을 떠올렸고, 다른 천룡의 가문들은 풍열을 빨아들여 불태우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밤 꿈결같이 퍼지던 신비한 향기도 스쳐 가는 것만 같았다. 그 향이 지나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향은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잊을 수 없다. 대공자가 발현했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종남제일검 태을진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향을 맡아본 적이 없었지만 첫 만남을 잊을 수 없었다.
새를 보고, 두꺼비를 보았는데,
그다음 본 건 여우.
‘안심하십시오.’라고 말하던 대공자의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흡성대법을 익힌 유령곡을 상대하던 대공자의 모습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랐는데 이번에 보았다. 더 놀라워졌다.
풍제와 암향야와 함께라니.
대공자는 얼마나 더 나아간 것인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나아갈 것인가.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경악스러운데, 왜 더 나아갈 것 같은지 알 수 없었다.
이렇듯 누군가는 감회에 젖고,
또 누군가는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길.
또 다른 이는 노래를 크게 흥얼거렸다.
“하오문의 친구가 누구냐~~ 천화서고~~. 천화서고 대공자의 친구가 누구냐~~. 하오문, 나의 하오문~~. 색관조가 복덩어리지~~ 색관조가 없었어 봐~~. 친구가 되었을 수나 있었겠냐고오오오~~~.”
하오문주는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댔다.
“이날을 기억하자~~. 풍제께서 날 보고 웃어주셨으니까~~~. 하하하하, 암향야가 날 보고도 때리지 않았으니까~~~. 하하하하~~ 이날을 꼭 기억해~~. 대공자가 여전히 소중한 친구라고 말해주었으니까~~~.”
**
그렇게 밀물같이 몰려든 인파가 썰물이 되어 천화서고를 빠져나갔을 때, 조금 늦은 이도 있었다.
화산파였다.
“사숙, 이곳입니다.”
능량의 말에 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선 곳은 절벽 끝자락.
“천화서고의 진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랍구나.”
안력을 돋워 살펴봄에도 진법이란 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절벽 아래는 까마득한 것이 몸을 던진다면 끝도 없이 추락할 것 같았고, 눈앞의 허공은 공허하기만 했다.
심지어 구름이 흐르고 한 번씩 새까지 날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어떤 이질감도 찾을 수 없었다.
“진법을 부술까요?”
“부술 순 있고?”
“전 못하죠. 당연히 사숙께서.”
“쯧.”
검선이 미간을 찡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요즘 안 맞았지?”
“어디 아프신가요?”
“왜?”
“사흘 전에 맞았습니다만.”
“이제 이틀에 한 번씩 맞는 걸로 하자.”
“사숙, 파문당하고 싶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파문은 없던 일로.”
“후후후.”
“헤헤.”
따라 웃던 능량이 허공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천화서고는 화산파를 맞이해주시오! 대공자, 내가 왔네. 화산의 장로 능량이 못된 사숙과 함께 왔다네!”
말이 떨어지기 무서웠다. 능량은 뒷목이 잡혔다.
처억.
목을 조른 건 당연히 검선의 손이었다.
“능량.”
“네?”
“죽어라.”
“네? 으아아아아아악~~.”
바로 절벽 밑으로 던져진 능량이 비명과 함께 허우적대면서 까마득히 멀어져갔다.
“사수우우우우우욱! 이 나쁜 놈아~~. 살려주십시오오오오오!”
“다음 생에는 종남의 제자가 되어라.”
“으아아아아악~~ 사숙, 이거 진짜란 말입니다. 나 죽는다고요오오오오!”
지면이 미칠 듯이 빠르게 다가왔다.
능량은 어떻게 된 게 추락 속도가 실제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이건 환상. 현혹되지 말자. 이건 틀림없이 환…… 시발, 환장하겠네.”
바람에 옷이 날리고 머리가 미칠 듯 휘날리니 능량은 환상이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지면은 이제 곧. 또한 땅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단단한 암석이었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신형을 뒤틀어 회전하면서 최대한 속도를 늦춰보려 했지만 쓸데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내 최후가 이런 식이라고?’
이건 너무 억울하다.
장난에 죽음을 맞다니. 난 멋지게 죽고 싶다고.
미친 바람결이 진짜로 여겨지니, 땅의 충격도 진짜로 인식될 터. 그럼 정녕 죽음이다. 죽지 않는다 해도 의식이 점유당한 상태이니 몸 어딘가는 반드시 부서질 터.
그때였다.
“쯧쯧.”
귓가에 들려온 혀 차는 소리.
사숙이었다.
척! 허리를 감아오는 손길에 능량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소리를 내질렀다.
“병 주고 약 주고 난리 났네! 나 화산파 안 해!”
“후후.”
웃음을 흘린 검선은 이내 신형을 솟구쳤다.
떨어지던 속도가 있었기에 그 반동으로 능량의 목이 확 꺾였다.
“으허헉!”
솟구침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중도에 절벽을 한 번씩 잡아채는 것만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열 번의 호흡 정도였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서 있던 자리.
오르고 올라도 절벽 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눈으로는 보였다. 한데 곧 닿을 것 같으면 더 높아져 다시 그대로였다. 여전히 까마득히 위쪽.
“사숙, 계속 그 자리인 것 같습니다만?”
“후후, 그렇구나.”
“갇힌 건가요?”
“느낌이 그렇지?”
“부술까요?”
“네가?”
“당연히 사숙께서.”
“후후, 기다려보자.”
**
그 상황은 곧바로 윤과 부몽에게 전해졌다.
윤이 갸웃했다.
“화산파?”
“네. 그리 말했습니다. 화산의 장로 능량과 그의 사숙인 검선이라고 했습니다.”
호위대주의 말에 윤이 고개를 절레거렸다.
“이제 적당히 좀 오지. 너무 오네. 부몽, 그렇지 않냐?”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올 때 시원하게 같이 오든가 할 것이지, 찔끔찔끔 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샌가 둘은 적응해버린 터.
천화서고는 적응해버린 터.
처음에는 온 강호가 몰려든 것만 같고, 그 면면에 입이 쩍 벌어졌는데 이젠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와, 우와!
이렇게 놀라는 것도 한두 번이다.
화산파라고해서 특별히 더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이쪽은 무려 마교 교주와 사천당가주가 아침이면 산책하고 있는 천화서고가 아닌가.
하지만 호위대주는 달랐다.
“저기…… 이공자님, 삼공자님. 검선은 특별합니다. 여타 손님들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
윤은 수긍하듯 되물었지만, 부몽은 달랐다.
“화산파가 아닐 수도 있어!”
“왜 그리 생각하시는지…….”
“그렇잖아. 화산파는 구대문파 중 하나고 도인들인데 절벽에서 뛰어내릴 리가.”
“하지만 검선이 보인 면모가…….”
“그럼 더 문제지. 이건 큰 형님께 여쭤봐야겠어.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그러자.”
그렇게 윤과 부몽이 달려갔다.
“큰 형님, 화산파를 사칭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큰 형님, 사칭한 자들이긴 하나 무공은 뛰어난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죽일까요? 라고 물었기에 후공은 웃고 말았다.
“그거…… 화산파다.”
“네?”
“원래 화산파는 그렇다고 하더라.”
“저런 미친 짓을 하는 자들이요?”
“머뭇거릴 틈이 없다. 여차하면 진법을 부술 사람들이야.”
“부술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거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맞는다. 당장 엎드리게 된다. 송화가 몽둥이를 들고 올 테고. 무엇보다 화산파가 아니라 해도 괜찮긴 했다.
이쪽은 무려 마교 교주가 있으니까.
“네!”
씩씩하게 답한 후 윤과 부몽이 달려갔다.
그땐 이미 시작되었다.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화서고 전체가 흔들렸다.
윤과 부몽이 기겁했다.
진법이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간다고! 가! 뭔 도사들이 이렇게 성질이 급해! 이건 절대로 화산파가 아니야!”
“형님, 화가 많아서 화산파일까요? 화산파는 미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