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40화 (340/460)

340화. 천공단주가 미안함을 전하는 방식.

산을 오르는 천공단은 누구 할 것 없이 초췌한 모습이었다. 밀교의 일을 정리한 후 거의 쉬지 않고 천화서고로 달렸기 때문이었다. 밤과 낮이 없었고, 먹는 것도 부실했다.

그렇게 절벽에 섰을 때,

“우리 왔어요!”

“천공단이 왔다아아아아아!”

“당장 문 열어~~~.”

“배고프다고오오오오!”

“좋은 말로 할 때 열어라아아아아아!”

다들 신바람을 내며 크게 외쳤지만 무광만은 근심이 가득했다. 이 절벽이 환상이라는 건 들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나무관세음보살, 천공단 분들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중요한 것?”

“천화서고에 빈손으로 가실 겁니까? 선물이라도…….”

“빡빡이 형아, 선물은 이미 준비했어.”

소천개의 말에 무광이 갸웃했다.

“응?”

“우리가 온 것이 선물이야. 천화서고는 항상 너무 조용하니까 우리가 가면 다들 좋아 죽어. 한 명, 두 명, 세 명…… 선물이 대체 몇 개야? 하하하하.”

소천개의 웃음에도 무광은 심각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린 개방 거지 새끼 시주야, 그래도 돼지라도 두어 마리 잡아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소림사 빡빡이 까까중 형아, 돼지 잡아먹고 싶다는 말을 뭘 그렇게 고상하게 하고 그래. 하하하하!”

소천개의 말에 무광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정곡이 찔린 것이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조용히 불호를 외웠다.

그 모습에 천공단이 비난을 쏟아냈다.

“하여튼 저 새낀 먹는 것밖에 몰라.”

“너 소림이야, 소새끼야!”

“대가리에 온통 소, 돼지, 닭밖에 없는 새끼!”

“이쯤이면 그냥 속세로 나와라, 상놈의 새끼야.”

무광은 흔들리지 않았다.

출가한 스님의 불심은 가볍지 않다. 이 정도 막말에 흔들릴 리가.

하지만,

“걱정 마. 천화서고에는 소고기도 많고 맛도 끝내주거든. 입에서 살살 녹아.”

은앙개의 말에는 크게 흔들렸다.

목젖도 출렁.

그 모습에 다시금 비난이 쏟아졌지만 무광은 상관없었다. 소고기가 맛있다면야…….

이내 진법이 열렸다.

길을 따라 나아가니 윤과 부몽이 창백한 얼굴로 반겼다.

“천공단분들 오셨습니까.”

“너희 안색이 왜 그래?”

“무당 검존과 마교 교주님께서 지금…….”

말을 끝까지 들을 것도 없었다.

소리가 들리고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검이 하얀 광채를 뿌리며 날았고, 염혼도 셋.

“우와, 굉장하네.”

“이게 다 뭔 일이래?”

“무당파가 미쳐 버린 거야?”

놀람도 잠시였다.

더 나아가면서 보았다.

단주가 여유롭게 바라만 보고, 부단주인 사천당가주가 입을 가리고는 몰래 하품을 하고 있었다.

‘별일 아니구만.’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전각 몇 채 부서진 것이 대수인가.

그보다는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우리 신비!”

“현이신녀!”

북해빙궁의 궁주와 아름다운 현이신녀를 보면서는 반가움에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고,

[멍청이 천공단 어서 와!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그윽, 그윽!]

색관조와 금섬이 날아와 반겼다.

“여어~~ 악독한 새와 무서운 두꺼비!”

[악독하긴 누가 악독하다는 거야!]

“악랄한 새.”

[까르르르르, 그거 좋아!]

서로가 비난을 퍼부으며 인사를 나누고는 단주에게로 달려가 예를 취했다. 물론 그 전에 윤과 부몽에게 소고기를 빨리 준비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고.

그렇기에 윤과 부몽은 얼떨떨해졌다.

“부몽아, 이거 별일 아닌 거냐?”

“그…… 그러니까요.”

**

검존의 분노는 잦아들었다.

변명이 환혼인 건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풍제가 양보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염혼이 고작 셋.

싸워본 건 처음이지만 듣기는 많이 들었다.

풍제의 염혼은 그보다 많다.

그뿐인가. 반격다운 반격도 없이 풍제가 연신 회피만 하고 있으니 슬슬 이쯤에서 손을 거두고 싶어졌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건 천공단.

갑자기 나타나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더니만 지금은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한 번씩 쳐다보기는 하는데 크게 관심이 없는 모습.

대체 뭐하는 놈들인가.

여태 어떤 광경을 보고 겪었길래 ‘잘한다 잘해’, ‘아무나 이겨라.’ 같은 말들을 지껄이며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검존이었다.

그리고 사천당가주와 천화서고 대공자의 행태도 문제다.

서로 한 번씩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서로가 바라보는 것만으로 웃음을 머금을 리 없다. 분명 전음을 나누고 있을 터.

부서진 전각이 벌써 다섯 채.

천화서고로선 큰 손해다. 이쯤이면 괜찮다가도 분통을 터뜨릴 만도 한데 한가하게 싱글벙글이라니.

생각보다 대공자의 그릇이 크다.

무공도 그럴까?

그럴 테지.

그 밤.

화공신타의 모습으로 암자의 내실로 스며들었을 때……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지불식간에 장력을 내뻗었을 때는 기이한 아지랑이에 막혔다.

당시 기억을 잃어 그 영향으로 자신의 무공 수준은 현격히 떨어져 있었다. 화경의 극 정도. 그렇다 해도 놀랍다. 대공자는 아무렇지 않게 막아낸 것이다.

설마 현경에 이르렀다고?

저 나이에?

검존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분노는 없다. 그저 호기심이 커졌고, 지금이 알아보기엔 명분도 있어 시기적절하다고 여겼다.

이내 검존이 검을 거둬들이고는 물러났다.

- 풍제, 이쯤 합시다.

-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 하지만 환혼에 대해선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 할 거요.

- 물론.

- 흥!

검존은 콧방귀를 뀐 후, 신형을 옮겼다.

대공자 앞쪽.

짐짓 화가 난 모습을 꾸미며 입을 열었다.

“화공신타.”

“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밤 그대의 이기죽거리던 모습은 잊을 수 없군. 굉장한 자신감이었고, 실력이었지. 그런 의미에서 이 노부는 그대와 가볍게 손속을 나눠보고 싶은데, 어떠한가?”

‘이 새끼가 적당히가 없네.’

발끈한 건 곁에 있던 당명이었다.

미안한 일이 틀림없어 충분히 사과를 했고 소란을 피워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쯤이면 끝이 없었다.

솔직히 덕분에 기억도 찾지 않았는가.

다 누구 덕인가.

대형 덕분이 아닌가.

뒈질라고.

그렇게 당명이 나서려 할 때, 들려왔다.

- 명아, 물러나라.

대형의 전음.

인상을 구기며 일보를 내딛으려던 당명은 어정쩡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났다.

후공은 내심 웃음을 머금었다.

당명의 성격을 모를까.

그리고 검존의 의도도 헤아렸다.

지금의 도발은 그저 검존의 호기심.

검존이 뒤끝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럴 성격도 아니고.

바로 예를 취하며 답했다.

“검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허, 괜히 그대가 화공신타의 성품을 드러낸 것이 아니로군. 그날 밤의 자신감 그대로일세.”

“자신감만은 아닙니다. 검존께선 결코 제게 닿을 수 없습니다.”

“하하하하하!”

검존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스무 살 청년. 강호에서 이런 패기를 지닌 아이를 보게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그때처럼?”

“그때처럼.”

“재현해 보세.”

검존이 늘어뜨린 두 손을 들어올렸다. 손이 모여 교차한 후 다시 펼쳐졌을 때는 태극이 떠올랐다. 둥근 태극은 위쪽은 하얗고 아래쪽은 검었다.

그 태극이 회전했다. 천천히 돌면서 점점 작아지며 응축했다. 손아귀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진 태극을 검존이 우수를 내밀어 쥐었다.

검존의 손아귀에 쥐어진 태극은 빙글빙글 맴돌았고, 검존의 손가락 사이로 하얀 광채와 검은 광채가 새어나왔다.

무당의 태극인(太極印)이었다.

음양의 조화가 웅축된 힘은 깨뜨리지 못할 것이 없다.

그 모습에 천화서고가 술렁였다.

끝난 줄 알았거늘 어찌된 게 다시 시작인 것이다. 그것도 이번 상대는 대공자.

방금까지 신의 경지에 이른 듯한 검존과 마교 교주의 격전을 보았기에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현, 현이신녀……. 좀 말려 주시오. 이러다 우리 큰아이가 크게 상하겠소이다.”

노가주가 현이 신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현이 신녀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주, 걱정 마세요. 대공자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테니까요.”

“큰 아이가 그 정도입니까?”

“네, 대공자는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어서일까.

노가주는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천공단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원래부터 정상이 아니라고 하기엔, 천공단의 충성스런 모습은 몇 번이나 보았기에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북해빙궁의 궁주와 화산의 검선도 이상하다.

걱정은커녕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을 뿐이었다.

마교 교주님도 사천당가주도.

아니, 아니다. 두 사람은 거의 뚱하니 바라보고 있는 상황,

그리고 색관조와 금섬도.

[검존께선 결코 제게 닿을 수 없습니다. 까르르르르르르! 절대로 주인님께 닿지 못하지.]

[큭큭큭.]

‘정말 그 정도인가?’

노가주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닿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무엇보다 큰 아이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뒷짐을 진 채 한없이 여유로운 모습.

옷자락만 살랑살랑거리고 있으니 어떤 험악한 공세에도 유령처럼 너풀거릴 것만 같았다.

‘큰아이는 얼마나 대단해진 건가?’

노가주가 두근거리며 바라봤고,

‘큰형님은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

‘닿지 못한다. 큰형님께 결코 닿지 못해!’

윤과 부몽도 기대와 함께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쏟아진 가운데 검존이 움직였다.

거의 빛.

몇 사람만 볼 수 있었다.

‘대공자, 현경의 예로 대우해주마. 그때처럼 무언가 떠오를 테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부숴주겠다.’

여유롭게 뒷짐이라니.

너무 심하지 않는가.

가라앉았던 분노까지 떠오른 검존이 태극인을 가슴에 적중시켜갔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허억!”

노가주가 눈을 부릅떴다.

큰아이가 없었다. 방금까지 서 있었는데 사라져버렸다. 어디 갔냐? 그리고 왜 전각은 허물어지고 있고?

알아보지 못한 건 노가주만은 아니었다.

천화서고 식솔들은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보지 못했다.

“현…… 현이신녀,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또 우리 큰아이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대공자는 역시…… 예측이 안 되는군요.”

“네?”

노가주는 다시 물었지만 현이는 고개를 절레거리기만 했다.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까르르르르르르! 주인님이 날아가버리셨네!]

“하하하하하! 두목 완패!”

“무당파엔 두목도 어림없지!”

“아니 그건 그거고 어떻게 된 거야! 고기가 떨어졌잖아!”

색관조를 따라 천공단이 깔깔거렸다.

두목이 왜 날아가 처박힌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두목은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는 이가 아니기도 하고.

처맞아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우리는 소고기나 먹자.

그런 천공단의 모습에 노가주가 무너져내리는 전각 쪽을 바라볼 때, 보였다.

“끄응.”

큰 손자였다.

먼지에 휩싸인 옷과 머리를 털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날아가버린 거였냐?’

얼척이 없어 노가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럴 거면 뒷짐을 지고 있지 말든가.

하지만 그런 황당함이 검존만 할까.

결코 닿지 못한다더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냈기에 울화가 치밀었다.

바로 신형을 날려 대공자 앞에 내려섰다.

“대공자, 자네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무슨 사과를 이렇게 하느냔 말이네! 당장 대답해 보게!”

검존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답은 뻔하다.

이번 일의 배후는 따로 있다.

당사자가 한 대 정도는 맞아주는 것이 예의.

후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후후, 교릉을 펼치지 않아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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