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서신에 미소가 담기길.
검존은 황망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천하제일인은 무당 검존!”
“그 누가 검존과 맞설 것인가!”
“천공단주는 검존의 새끼 손가락조차 감당 못하지!”
“검존이 최고야. 아무튼 최고! 냠냠냠.”
천공단이 크게 외치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천공단 놈들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소고기를 먹으며 소리치고 있을 뿐이니.
“검존, 손속에 사정을 두어주신 덕에 겨우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망함은 눈앞의 서생 때문.
천화서고 대공자.
어떻게 봐도 한 대 맞아준 것이 아닌가.
몸으로 때웠다.
책임을 지는 자세? 좋다.
하지만 누가 있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결정보다 더 황망한 건 결과.
손속에 사정을 두었냐고?
그런 적 없었다.
멈추지도 않았고, 태극인의 기운을 거두지도 않았다.
한데 대공자는 요란하게 날아갔을 뿐이다. 모습만 우스웠지 멀쩡해 보였기에 생각하게 된다.
‘현경의 중에 이르렀다고?’
그래 보였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자네…… 괜찮나?”
“사실 괜찮지 않습니다. 휘청.”
휘청이라고 말하면서 실제 대공자가 휘청였기에 검존은 어이가 없어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하하하!”
괴상한 친구다.
이렇게 보니 화공신타의 모습이 아닌데도 검존은 대공자가 화공신타처럼 보였다.
아예 마음의 제약이 없는 자인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또한 어찌 이 나이에 이런 여유를 보일 수 있는 것일까.
연이어 떠올랐다.
대공자가 이런 사람이어서일까?
그래서 다들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인가?
검존은 주변을 둘러봤다.
풍제와 암향야가 보인다.
화산의 검선과 북해빙궁의 궁주와 그녀의 사저도.
이곳은 천화서고.
이 중에 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울진대 이들 모두가 무림맹이나 구대 문파 중 한 곳이 아닌 천화서고에 모여 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검존이었다.
‘아……. 그랬던 것인가. 다들 알고 있음인가. 대공자를 이미 겪어 보았던 것인가.’
우연에 우연이 겹쳐 함께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듯하다. 지금 보니 이들이 모인 건 순전히 대공자의 영향력으로 보이니 놀라울 따름.
그 증거는 하나.
그 누구에게서도 걱정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대공자를 얼마만큼이나 깊이 신뢰하고 있음인가.
하지만 그런 검존의 생각은 틀렸다.
한 사람만큼은 걱정이 태산과 같았다.
노가주였다.
큰 손자가 휘청이는 순간, 그는 힘겹게 달려와 소리쳤다.
“괜찮으냐!”
그러곤 이내 검존을 향해 쏘아붙였다.
“검존께선 어찌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무당파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이오!”
“…….”
행패?
누가 누구에게 행패를 말하는가.
이쪽은 무려 한밤에 납치당했다.
납치범은 그대가 아끼는 손자.
사지가 뜯겨나갈 뻔했고, 뼈가 탈골되었으며 피는 살짝 얼었다. 그 가운데 얼음 송곳이 전신을 찔러오는 고통을 겪었다.
거기에 더해 완전 범죄를 노리고, 아예 모른 척 시치미를 떼려고 섭혼으로 기억까지 지우는 섬세함까지 보였다.
대체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환혼.
이쯤이면 화를 낼 만하지 않나?
하지만 검존은 차마 그렇게는 말할 수 없어 미소를 머금었다.
“가주, 서로간에 오해가 있었소이다. 하지만 이젠 풀린 듯하오.”
그렇게 검존은 좋은 말로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오해로 누가 이런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오! 검존, 꼭 식사는 하고 가시오.”
“?”
“밥에 돌을 가득 넣어 드릴테니.”
“??”
갸웃함도 잠시,
검존이 웃음을 터뜨렸다.
*
돌은 없었다.
무사히 식사를 마친 후 다시 둘러앉았다.
이제 해명의 시간이었다.
물론 그 몫은 풍제.
“어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환혼만 빼고.”
“…….”
검존의 물음에 막 환혼에 대해 말하려던 풍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풍제의 곤란함에 후공이 나섰다.
모든 일의 배후는 자신.
풍제는 애초에 잘못이 없는 것이다.
“검존, 환혼을 빼고는 이야기드릴 것이 없습니다. 화산의 검선께서 환혼에 대해 처음 언급하셨고, 풍제께서도 고대의 문헌을 떠올리셨습니다. 그러니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존, 대공자의 말대로입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아무렴.”
빙궁주 현음신녀가 거들고 나섰고, 화산의 검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자 검존도 어쩔 수 없었다.
“혼이 바뀌다니…….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들어봅시다.”
비로소 풍제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시 주화입마란…….”
주화입마는 어떤 열망에서 시작된다.
간절함이 무리함을 부르고, 조급함이 화를 초대한다.
빙궁의 궁주인 현음신녀도 같았다.
성취에 대한 갈망의 결과 주화입마를 당했고, 그것이 반로환동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면서 동시에 기억을 잃었다.
심마에 빠져들지 않은 이가 평온히 잠을 청하는 중에 주화입마를 당해 기억을 잃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환혼일 때는 가능하다.
환혼된 직후에는 원래 몸의 주인의 기억을 흡수하지 못한다. 정기신의 합일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바뀐 몸의 모든 기억을 가지게 된다.
그 기간이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검존의 경우 주화입마의 근거가 부족했다.
그리하여 떠올린 건 환혼.
환혼 후 모종의 문제로 인해 본래의 기억을 모조리 잃었거나 혹은 기억을 잃은 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거기까지 설명했을 때, 검존이 고개를 저었다.
“풍제, 그러니까 순전히 문헌만 믿고 그랬다는 거요?”
“그렇지.”
“너무 당당한 것 아니오!”
검존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환혼이 진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이오? 실제 환혼이란 것이 가능하고 막대한 기운을 모으고 발산하기 위해 진법이 필요하다 쳐도, 무당산에 생소한 진법이 설치된 적이 없거늘. 만약 그런 것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만무하지 않소!”
“흐음……. 대공자. 그 부분은 자네가 설명하는 게 좋겠군.”
슬슬 귀찮아진 풍제가 떠넘겼다.
후공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 정도면 풍제도 할 만큼 한 터.
“검존, 모산파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모산?”
“네, 우연히 휴화산에서 만나게 된 모산파는 화정을 찾고 있었고, 실제로 모산은 화정을 취했습니다.”
“오호?”
새로운 이야기에 검존이 반응을 보였다.
“그때 궁금하여 모산 장문인께 물었습니다. 이곳에 화정이 있는지 어찌 알게 된 건지 여쭈었더니, 뜻밖에도 모산은 영기를 탐지하는 진법을 지니고 있어 멀리서 그 좌표를 얻을 수 있노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허허, 영기를 탐지할 수 있다니 놀랍군.”
하지만 감탄도 잠시,
검존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데 괴이하군. 모산이 그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자네에게 들려주었다고?”
그런 모용을 부리는 진법이라면 보물 중의 보물.
또한 결코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극비사항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제가 모산이 화정을 찾을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탰습니다.”
“아……. 그러한가.”
검존이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모산이 그 정도의 비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면 대공자가 쏟은 힘이 작은 힘은 아니었을 터.
“자네가 거의 찾아주었거나 혹은 모산의 목숨을 구해주었나 보군.”
“하하, 그럴 리가요. 사소한 은혜에 큰 보답이 돌아왔을 뿐입니다. 여튼 모산을 통해 그러한 묘용에 대해 듣게 되면서 진법을 통해 영기를 추적하거나 영기를 이동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흠, 그렇군.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네.”
검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혼을 위한 진법이 바로 곁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멀리서, 좌표를 지정하여 이루어낼 수 있다.
“검존, 이제 마음이 좀 풀리셨나요?”
현음신녀의 말에 검존이 콧방귀를 뀌었다.
“전혀.”
“풀리셨군요. 다행이에요.”
“전혀라고 하지 않았소!”
“하하하, 네네.”
비로소 분위기는 편해졌다.
환혼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면서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가 오갔다.
**
그렇게 하루 이틀.
다들 천화서고에 조금 더 머물렀다.
이런 기회는 드물었고, 나눌 이야기도 많았다.
대공자와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를 궁금해했고, 신검에 대한 이야기도 오가니 시간 가는 줄 몰라 했다.
모두가 제 집처럼 편안해했지만,
정작 집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허어……. 너무 오래 머무는구나.”
큰손자가 오래 머무는 건 마음에 쏙 들었지만, 어째서 마교 교주와 사천당가주가 이렇게 오래 머무는가.
불안하게.
노가주의 근심에 윤이 다독이고 나섰다.
“할아버지, 너무 심려치 마세요. 이제 무당의 검존께서도 언제 싸웠냐 싶게 웃으며 본 서고를 거닐고 계시니, 더는 싸우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왜 웃으며 거닐고 있느냔 말이다. 왜 검존이 북해빙궁의 궁주와 함께 걷느냐고. 천화서고를!”
“그럼 가라고 할까요?”
“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헤헤.”
윤이 헤실거렸기에 노가주는 혀를 끌끌 찼다.
둘째 손자와 셋째 손자도 요즘 신이 나 있는 것이다. 떠들썩한 천공단 때문이기도 했지만, 빙궁의 궁주와 그녀의 사저인 현이신녀를 무척 잘 따르고 좋아하는 두 녀석이었다.
거기다 어째서인지 영영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제갈 군사까지.
집에서 걱정할 텐데……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
“할아버지, 다들 오래 있을수록 좋지 않아요?”
“좋긴 하지. 이제 누가 천화서고를 건드리겠느냐. 서문세가를 상대할 때를 생각해 보면 천지개벽이지.”
“그러니까요. 또 누가 안 쳐들어오나? 이럴 때 딱 누가 쳐들어오면 기가 막힐 텐데 말이에요.”
“허허……. 그거 생각만 해도 좋구나.”
그렇게 노가주가 두 손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후공은 송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공자님께 서신이 왔어요.”
“그래? 누가 보내온 것일까.”
후공은 서신을 받아들었다.
서신은 둘.
선풍표국 편으로 서신이 왔다는 건 이미 듣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몰랐는데, 역시 외부에 어떤 표기도 없었다.
서신 중 하나를 펼쳤다.
“공자님, 누가 보낸 거여요?”
“안 가고 있었냐?”
“네!”
송화가 씩씩하게 답했기에 후공도 씩씩하게 말해주었다.
“가!”
“헤헤, 넵!”
그렇게 보았다.
첫 번째 서신을 보내온 이는 동정용왕이었다.
- 대공자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려 서신을 보냅니다. 금취객…… 강유에게 소식을 받았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도 모두 들었습니다. 지금 강유는 그곳을 떠나…….
어린 날을 함께 보낸 친구가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의 말이 이어졌다. 다시 한번 동정호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으로 서신은 마무리되었다.
그다음 서신은 뜻밖이었다.
남해도 승명에서 온 서신.
유령곡의 남겨진 또 다른 아이들.
이령을 떠나보내던 밤,
그날 만났던 임유였다.
언제 오실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천화서고로 찾아뵙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후공은 붓을 들어 두 서신에 답했다.
반가운 마음을 담았고, 조만간 기꺼이 찾아가겠노라는 문장을 이어갔다.
그리고 바라기도 했다.
지금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이 서신들에 담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