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그런 추접함은 따라할 수 없다.
“대공자가 늦는구만.”
검선이 투덜대듯 혼자말을 내뱉었다.
기다림이 길어지고 있었다. 어느샌가 두 시진(약 4시간).
이 정도면 소향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파악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 검선의 마음은 전염되었다.
“소향객이 없는 건 아닐 텐데…….”
내내 고요히 기다리고 있던 검존도 슬그머니 불안이 피어올랐다.
소향객은 있을 것이다.
없다면 영특한 색관조가 이미 날아왔을 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이구려.”
“검존, 걱정 마세요.”
현음신녀의 다독이는 말에 검존이 미간을 좁혔다.
“현음신녀, 걱정이 안 되게 생겼소?”
“호호, 몰랐네요. 검존께서 이 정도로 대공자를 아끼시고 마음에 담아 두고 계실 줄은 말이에요.”
“내가 지금 대공자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오?”
“그럼?”
“누구긴, 소향객이지! 대공자가 이미 반 죽여놓고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검존은 이미 겪어본 터.
화공신타에게 호되게 당해본 터.
출발 때부터 지금까지 검존은 오로지 소향객 걱정뿐이었다.
하지만 겪어본 건 현음도 마찬가지.
대공자의 신중함을 알고, 생각의 깊이를 보았다. 70년 빙궁의 숙원을 풀어준 이가 대공자.
“어? 저기 오는군요.”
막 자신의 의견을 내보이려던 현음이 한 곳을 가리켰다.
색관조가 날아오고 있었다.
[까르르르르! 다들 아직 안 가고 여기 계셨네요? 주인님은 이미 멀리 떠나셨는데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걸까요?]
[극극극!]
“뭐?”
“대공자가 떠났다고?”
검선과 검존이 놀라 눈이 커졌다.
놀란 건 두 사람뿐.
현음과 현이는 빙긋 웃었고, 풍제와 당명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엉뚱한 소리 말고 이야기나 전해라. 깃털을 다 뽑아버리기 전에.”
[까르르르르르! 암향야는 너무 무서워. 그리고 너무 날 잘 알아! 하지만 나도 잘 알아요. 암향야께서 제 깃털을 절대 뽑지 않는다는 걸. 까르르르르르르!]
그렇게 전해졌다.
왜 시간이 이렇게 지연된 것인지.
소향객의 미묘함이 무엇인지.
그 외 요주의 인물이 누구인지.
시간은 오늘 밤.
**
돌아간 색관조는 주인의 처소에서 금섬과 놀았다.
[금섬아.]
주인의 목소리를 냈다.
[그윽!]
[나는 네게 크게 실망했다.]
[그윽?]
[아까 보니 넌 춤추는 실력이 너무 후지더구나. 연습을 더 해야겠어.]
[그으으으으윽!]
[옳지! 옳지! 잘한다!]
두 영물은 주인이 이곳에 있는 척했다.
그 사이,
스스슷!
후공은 산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무림맹 뒤편의 산이었다. 빠른 데다 은신까지 유지한 후공의 움직임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 천향의 수많은 선들도 아직까지 이어져 있는 터.
이내 더 올라 후공은 산의 암벽 앞에서 멈췄다.
암벽에 특이함은 없었다. 어떤 글자가 새겨진 것도 없었고, 작은 구멍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거친 감촉의 암벽.
하지만 후공은 알고 있었다.
맹의 폐관 동부(洞府) 중 하나.
요로선인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
현재까지 확인한 요주의 인물은 소향객을 포함 다섯.
과연 다섯이 전부일까?
흑주석이 바스러진 규모를 볼 때,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환혼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아직은 판단 불가.
그래도 환혼이라는 가정하에 움직여야 한다.
후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요로선인은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인물.
너무 공교로운 것이다.
이유야 갖다붙이기 나름이라지만, 맹의 진법이 와해된 직후에 폐관이라니.
만약 환혼된 것이라면 폐관은 유용하다.
정기신이 합일될 때까지, 적이 요로선인의 기억을 흡수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폐관 동부에서 정기신을 합일.
그렇게 요로의 기억을 취하고 나면 자연스러워진다.
굳이 변명을 위해 기억을 잃었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환혼이라는 가정 아래,
요로는 현 무림맹주.
누구보다 요로를 환혼시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후공은 암벽에 손을 가져가 점혈하듯 타점했다.
여섯 차례, 여섯 곳.
이어 수평으로 일자를 그었을 때,
암벽이 찰랑이듯 물결쳤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후공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타난 건 동부 안.
운기를 다급히 정리한 요로선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공자!”
‘기침이 없군.’
후공은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아직은 알 수 없다.
너무 놀라면 요로는 기침을 하지 않으니.
말도 빨라지고.
대공자라고 부르는 걸 보면 알아본다는 의미.
환혼이라면…… 이미 기억을 흡수한 상태.
“맹에는 언제 왔나? 그리고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것인가?”
“모용 군사가 알려주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니냐며 염려하고 있길래 제가 들여다보겠다고 했습니다.”
“콜록, 콜록. 그런 거였나? 콜록, 콜록…… 아니 모용 군사도 사람이 참 쓸데없는 걱정은. 콜록, 콜록. 덕분에 놀라 주화입마 당할 뻔했네그려. 콜록, 콜록.”
“별일 없으신 것 같군요.”
“일은 무슨. 그건 들었겠군.”
“네, 부서진 흑주석. 맹의 진법 태반이 와해된 건 확인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 콜록, 콜록, 콜록! 천지조화인지 어떤 호로새끼의 소행인. 콜록, 콜록, 콜록, 크어어어억, 콜록, 콜록!”
기침이 자연스럽다.
제법이군.
후공은 내심 웃음을 머금었다.
‘연습이라도 한 건가?’
하긴 요로선인의 잔기침은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자.
쩔러볼까?
“천하십객 중 한 분이 오셨더군요. 소향객이라고.”
“콜록, 콜록. 만났나 보구만. 재밌는 친구일세. 근데 어째서인지 재미가 없어진 것도 같고. 콜록, 콜록, 콜록!”
모용곽과 같은 반응이다.
환혼이라면 소향객의 달라진 느낌을 굳이 언급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요로의 심장 박동도 그대로.
1차 통과.
“콜록, 콜록. 혼자 온 건가?”
“네.”
“콜록, 콜록, 크어어억! 자네가 와서 화설난이 좋아했겠구만. 콜록, 콜록. 아니 이 썩을 놈의 기침이 계속 나 콜록, 콜록, 콜록!”
“한데 어찌 갑자기 폐관에 들 생각을 하셨습니까?”
“콜록, 콜록. 뭐든 인생사가 갑자기라네. 콜록, 콜록. 그날, 콜록, 콜록. 진법이 요동치던 밤, 이상하게 잠이 콜록, 크에에엑, 콜록, 안 오더군. 새벽에 깨서 눈이 말똥말똥해서 침소에서 나와 조금 걸었지. 콜록, 콜록! 그때 어떤 기운이 쓸고 지나갔네. 콜록, 콜록, 콜록, 어처구니없게도 사전에 느끼지도 못했어. 지난 다음에야 알았지. 콜록, 콜록. 그러면서 분위기가 이상한 걸세. 크에에에에엑! 퉤!”
요로가 가래를 뱉었다.
잘 안 뱉어져 가래가 길게 늘어졌다. 땅에 닿을 듯 하다가 올라오고, 다시 땅에 닿을 듯 내려갔다. 그걸 요로가 떼어내 보겠다고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에…….
‘2차 통과.’
너무 추접스럽다.
이런 추접스러움은 흉내낸다고 흉내낼 수 없다.
요로만이 가능한 일.
그렇기에 후공은 이제 나가고 싶어졌다.
괜히 와서 이 더러운 꼴을 본다 싶어졌다.
그날 침소를 벗어나 걷고 있었다는 말까지 들으니 2차고 뭐고 이 정도면 무조건 통과였다. 통과를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했냐!
“콜록, 콜록. 미안하네. 조금 더러웠지?”
“……………….”
이게 조금?
후공이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에 요로가 멋쩍게 웃었다.
“콜록, 콜록. 자네가 이해하게. 늙으면 이런다네. 자네도 늙어보면 콜록, 콜록, 이해할 걸세. 콜록, 콜록. 무슨 이야기를 하다 말았지? 콜록, 쿠에에에에엑! 콜록, 콜록, 쿠우우우우, 쿠쿠, 콜록, 콜록, 콜록! 아니 무슨 기침이, 콜록, 콜록!”
“……………….”
“콜록, 콜록. 크에에엑, 콜록, 콜록, 콜록, 퉤! 콜록, 콜록, 콜록, 크흐으으으으으…… 크르르르르…… 크크케켁켁! 콜록, 콜록, 콜록, 쿠우우우, 쿠쿠쿠,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아, 그 말을 하다가 이 지경이, 콜록, 콜록, 콜록, 그래서 그때, 콜록, 콜록, 크에에에에엑! 생각했, 콜록, 콜록!”
‘합격!’
후공이 내심 발표했다.
생각이고 자시고 이제 의미 없었다.
완벽히 통과.
이야기도 의미 없다. 들을 이야긴 다 들은 셈이고, 예의를 갖춰 듣는다고 했다간 이대로 하루가 지나도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할 터.
“선인, 쉬십시오.”
“콜록, 콜록. 가려고?”
“네.”
“콜록, 콜록, 그럼 나도.”
요로가 따라나서려 했다.
“아닙니다.”
“응?”
요로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커진 눈으로 바라본 건 앞쪽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어느샌가 대공자의 손이 가슴에 닿아 있었다.
“이건…… 뭔가?”
손만 닿은 것이 아니었다.
닿는 순간, 점혈.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기에 당혹스러운 눈동자로 바라봤다.
“하루만 누워 계십시오.”
“왜?”
“그때가 되면 설명드리겠습니다.”
“아니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대체 이런 경우가 어딨단 말인가!”
“맹을 위한 일입니다.”
“맹? 근데 나를 점혈한다고?”
“기침을 안 하시니 좋군요.”
“콜록, 콜록! 자네 대체 무슨 험악한 짓을 하려는 겐가! 대체 무슨 꿍꿍이인게야! 대공자, 자네 이런 사람 아니지 않나! 쿠우우우! 케에에엑!”
원래 이런 사람이다.
후공은 한 귀로 흘려듣고 요로를 들어올렸다.
“영차!”
그러곤 반듯하게 눕혔다.
“영차는 무슨! 대체 무슨 일인지 당장 말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
요로는 말을 멈췄다.
어느샌가 대공자가 눈앞에서 증발하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디갔냐? 언제 갔냐? 덩그러니 누워 눈동자만 굴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요로는 도리어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죽이지 않았어! 점혈만.
그렇다는 건 정녕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그러다 코끝이 가려워졌다. 긁으려다 손이 안 움직이는 걸 깨닫고는 다시 울화통이 터졌다.
“가렵다오오오오오오오!”
코끝을 찡긋해봐도 시원하지 않았기에,
“대공자아아아아아아아!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야아아아아! 납득할 수 없다면 내 가만두지 않겠네에에에에! 그땐 화산의 검선을 데리고 올 거네! 무당 검존도 불러올 거네! 그뿐인가, 내 반드시 풍제까지 데리고 올 걸세에에에에에! 콜록, 콜록, 쿠우우우!”
**
그 밤.
후공은 소향객과 마주앉았다.
장소는 소향객의 처소.
탁자 위에는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흐흐, 대공자 한 잔 받게.”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내가 영광일세. 그나저나 흐흐, 내가 조금 비싸게 굴었지?”
건들건들한 말투.
한쪽 팔까지 탁자에 걸쳐놓은 모습이었다.
1차 탈락.
심장 박동은 그대로.
이놈은 건들거려 본 적이 없는 놈이다.
요로를 마주할 때와 다르다.
후공은 시작부터 큰 격차를 느꼈다.
확신에 가까워졌다.
또 하나.
소향객이 건들거린다고 알려져있지만 그건 소향객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말. 소향객은 비싸게 굴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을 가려가면서 건들거린다.
소향객이 가장 존경하는 이는,
나!
무림맹주이자, 천하제일인!
존경하는 이의 신검을 찾아준 이에게 건들거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후공은 무심히 소향객의 눈을 바라봤다.
그 무심한 시선이 어쩐지 관통하는 것 같았기에,
소향객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마음엔 악의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