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48화 (348/460)

348화. 고맙다.

조금 구겨졌냐, 많이 구겨졌냐.

소향객의 처소에서 그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모용곽은 요로선인의 폐관 동부의 진식을 해제하고 있었다.

지금이 폐관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무림맹이 난리가 났는데!

모용곽이 막 동부로 들어서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자?”

“모용곽입니다. 선인, 지금 주무시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자고 있던 거 아니네!”

“그럼요?”

“대공자가 날 공격했어!”

“대공자께서요?”

모용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또 뭔 소린가?

금시초문이었다. 전혀 듣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대공자가 여길 어떻게 알고,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지?

모용곽은 의문이 떠오른 즉시 떨쳐냈다.

이 밤, 이해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다.

금마적성대주가 은밀히 자신의 처소로 스며들었고, 화산의 검선이 그런 금마적성대주를 제압했다. 검선께서 왜?

대답은 짧게 몇 마디가 돌아왔다.

그 대답만으로도 어안이 벙벙해, 모용곽은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검선께서 말하시길…….”

“검선이 왔다고?”

“네, 금마적성대주가 저를 해하려 할 때 검선께서…….”

“금마적성대주가 왜 자넬?”

“검선께선 대주가 환혼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이 바뀌다니, 자넨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겐가!”

“저도 아직…….”

“대체 무슨 꿍꿍이지? 대공자와 검선이 한패가 되어 일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라니.”

“선인, 오신 건 검선만이 아닙니다.”

“그럼?”

“풍제와 암향야, 무당의 검존. 거기에 북해빙궁의 궁주께서도 오셨습니다.”

“크에에에에엑! 콜록, 콜록, 콜록!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아, 아니 일단 나가세. 날 업어 주겠나?”

“점혈당하신 거로군요 제가 해혈을…….”

“대공자가 점혈했다니까!”

“아…….”

모용곽이 머리를 긁적였다.

정신이 없다. 대공자는 현경의 고수! 그런 고수가 점혈한 걸 자신이 무슨 수로 풀 수 있겠는가.

“잠깐만!”

“네?”

“나도 머리 좀 긁어 주게.”

“네!”

“거기 말고 옆에. 거기서 더 옆으로! 그렇지, 거기! 더 세게! 피나게!”

**

요로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환혼.

그리고 여러 절세 고수들의 등장.

과연 사실일까?

요로선인은 요란하게 들이닥쳤고 방 안의 풍경을 보고 더 요란해졌다.

“풍제? 명아? 검존? 현음신녀? 자, 잠깐만…… 저건 또 뭐야?”

면면을 둘러보고 놀라 요로의 눈이 커졌고, 기괴하게 구겨져 있는 사람을 보고는 더 커졌다.

업고 있던 모용곽도 놀라 와닷 경기를 일으켰다.

후공은 모용곽을 가까이 오라고 한 후, 요로선인의 몸에 손을 가져갔다. 이제야 해혈되는구나, 점혈이 풀리는 즉시 대공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주리라. 그렇게 다짐하던 요로선인의 생각은 어긋났다.

“흡!”

해혈이 아니었다. 아예 아혈까지 점혈당했다.

이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된 상황에 요로선인은 얼굴만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모용곽이 인지했지만, 왜 그러냐 따질 순 없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존재들.

함께 있다는 것조차 믿어지지 않는 존재들조차 대공자의 행사에 아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데 자신이 뭐라고 나설 것인가.

그래, 선인께서 시끄럽긴 했지.

더 시끄러워졌을 테고.

그렇게 합리화하고는 요로선인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요로선인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외면.

그때 후공의 시선은 악무극에게 향했다.

“악무극. 조금 더 들어보자.”

“이야기는…… 이미 다 했다. 이제 죽여다오.”

“후후, 그럴 수 있나.”

악무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태연히 흘려내는 미소가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환혼한 후 너흰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지?”

“이제…… 의미 없다.”

악무극이 처연히 답했다.

상황은 명백하다.

환혼된 이들은 모두 제압된 상황.

임무는 실패다.

물론 원하는 답을 얻긴 했다. 후공! 후공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사로잡혔고, 전할 수 없는 정보거늘.

“그래?”

그 말과 함께 후공이 기운을 흘렸다.

그 기운에 교릉이 반응했다.

드득, 드드드드득!

“?!”

줄어드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던 악무극이 이내 놀란 눈이 되었다. 몸이 펴지고 있는 것이다. 돌아갔던 팔다리와 목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프지도 않았다.

‘날 펴 주는구나. 그렇게 잔혹한 자는 아니었던가. 마음이 약해진……?’

그 생각도 잠시, 악무극이 눈을 부릅떴다.

착각이었다.

다시금 급격히 오그라들었기에 악무극이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말하겠다! 말할 테니 제발……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도 세 번의 반복.

지옥의 불구덩이가 차라리 더 낫겠다 싶은 심정이 된 악무극이 비명과 함께 말을 토해냈다.

“크아아아아아, 열섬망! 열섬망의 폭죽으로 무림맹에 있는 모두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열섬망?”

교릉이 일시 멈추었고, 그 사이 악무극이 빠르게 답했다.

“열섬망으로 맹의 모두를 죽인 다음, 그가 나타나는지 기다려 보려 했다.”

“후공?”

“그래. 환혼 시도 후 어느덧 1년. 환혼은 실패했으니 후공이 분명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공이 자결할 리 없으니. 대체 어디에 있을까? 웅크린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나타나지 않더군. 정말 죽은 걸까? 그럴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나서게 되었다. 무림맹이 피로 물든다면…… 맹의 모두가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면 그땐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었다.”

만약 그 후로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후공은 죽은 것이다.

이번 일은 그 결과를 얻기 위한 침투.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

악무극이 눈동자를 굴려 바라봤다.

눈동자가 다음 말을 건넸다.

‘너를 통해 후공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열섬망은 누구에게 있지?”

“아…….”

악무극이 웃었다.

보이기엔 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웃음이었다.

“설마 열섬망을 찾지 못한 건가?”

“다시 웃으면 곤란해.”

“…….”

이내 악무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그게 아니라 난 그저…….”

“누구에게 있지?”

“창천대주에게 있다.”

“창천대주?”

“그의 처소에.”

말을 내뱉은 다음 악무극이 갸웃했다.

왜 대공자가 허를 찔린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걸까? 무림맹 내 환혼된 이는 총 여섯.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

환혼도 알고, 몇 명인지도 알고 있었을 텐데?

아니면 괜히 고문할 명분을 찾으려는 건가?

그런 쓸데없는 명분 따위가 아니었다.

‘하나를 놓쳤다.’

후공의 눈이 가라앉았다.

파악한 건 다섯.

소향객.

비룡제천대주.

공옥대주.

금마적성대주.

유성건곤대주.

소향객의 처소에 모인 건 이들이 전부였기에 창천대주는 논외였다.

그때였다.

“창천대는 들어라!”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의가 가득했고, 이내 일단의 무리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칠십여 검수가 검을 뽑아 드는 소리가 이어졌다.

스릉, 스르릉!

그 소리에 악무극이 놀라 입을 벌렸다가 이내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대공자여! 놓쳤구나, 놓쳤어!”

창천대주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건 악무극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통쾌함이 말로 할 수 없었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 이제 다 죽는다! 열섬망은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의 폭죽, 그 아래 놓인 모든 것이 녹아내린다. 살갗이 녹아내릴 것이고, 호흡하여 들이마시게 되면 뼈와 내장이 녹아내리게 된다.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 구할 거냐! 크하하하하……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두드득, 두드드드득!

통쾌해하던 악무극의 몸이 더 오그라들었다.

밖에서는 창천대주의 외침이 들려왔다.

“창천대는 천화서고 대공자를 잡아라! 그와 함께한 이들을 잡아라! 어떤 모습으로 보이든 현혹되지 말라! 그것이 화산의 검선으로 보이든, 무당의 검존으로 보이든.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보이든! 실체는 다르다. 맹을 수호하라!”

그 외침에 창천대 칠십이 검수가 호응했다.

“맹을 수호!”

모두가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정작 현혹된 건 창천대.

창전대주의 말에 홀려 맹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상대가 강할지라도!”

그와 동시에 창천대의 뒤편으로 폭죽이 솟구쳐올랐다.

하얀 연기를 피워올리며 쏘아진 폭죽은 세 개.

“열섬망…….”

그 광경을 모용곽이 멍하니 바라봤다.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저 읽었을 뿐이고, 들었을 뿐이었다.

천여 개의 독과 약물을 배합해야 한다고 했고, 완성까지 칠십 년이 넘게 걸린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실전되어 더 이상 강호에 존재하지 않는 독공. 폭죽이 터지면서 흘러나오는 독기는 그 아래 모든 것을 녹인다고 했다.

한 호흡만으로 몸 내부는 녹아 내린다.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흘러내려 뼈가 드러난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정녕 열섬망일까?

맞겠지.

환혼조차 눈앞에 사실로 드러났으니.

‘도…… 도망쳐!’

모두에게 들리도록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짓쳐들며 다가오는 창천대! 높이 쏘아 올라가는 세 개의 폭죽. 그리고 이 소란에 무슨 일인가 하고 모여든 맹의 수많은 이들.

맹의 여러 무력대들과 정보대, 그리고 그 외 모두들.

시녀들까지.

모두가 무슨 영문인가 몰라 하며 그저 밤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도망친다 한들 이미 늦었다.

그때였다.

방 안에 바람이 불었다.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아니라, 바람은 안쪽에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밤하늘을 향해 쏘아져 갔다.

풍제, 암향야. 검선과 검존. 그리고 빙궁의 현음과 현이! 높이 올라가는 폭죽을 향해 신형을 날려갔다.

그 기세에 모용곽은 옷자락이 휘날릴 지경.

여섯 사람 모두가 폭죽을 향해 쏘아져 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아……!’

목숨을 도외시한 광경이었다.

어떤 망설임도 없는 모습.

짓쳐오던 창천대도 멈춰 시선을 들어 올려다봤다.

‘왜?’

모두가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이들은 강호의 절세 고수들의 모습으로 역용한 자들일 텐데? 창천대주는 왜 이 순간 폭죽을 날린 거지? 저 폭죽이 무엇이길래?

그런 의문에 답하듯 커다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그 누가 열섬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이 밤 무림맹은 피로 물들 것이다! 그러면 볼 수 있겠지! 살아있다면 나타나겠지! 하지만 모두의 주검을 보면 그도 미쳐버릴지도! 크하하하하하하!”

외친 이가 창천대주였기에 창천대는 물론이고 모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찌 창천대주가…….

저 폭죽의 의미가…….

하지만 틀렸다.

이미 무림맹주는 이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올라 폭죽 하나를 손아귀에 쥐었다.

폭발은 임박.

- 풍제, 내게 던져라!

- 신녀, 제게로!

그리고 흩어져 쏘아 올려진 두 개의 폭죽을 취한 풍제와 현이신녀에게 전음을 발했다.

풍제가 먼저 던졌고,

현이신녀가 그 뒤를 이었다.

대형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 것인가.

천화서고 대공자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 것인가.

각각 그런 생각으로 폭죽을 던졌다.

‘제발 무사하길…….’

현이신녀는 천천히 하강하며 대공자를 눈에 담았다.

그때 폭죽이 폭발했다.

파앙, 파앙, 팡!

쾅, 콰광! 콰콰쾅!

연달아 터지는 폭죽에서 미세한 가루가 거칠게 뿜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대공자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가루 때문은 아니다. 현이는 빙궁에서 본 적이 있었다. 현음을 상대할 때 한 번씩 대공자가 내보였던 아지랑이.

그 아지랑이가 커다란 원으로 대공자를 감싸고 있어 흐릿해 보였다. 가루는 밖으로 뿜어져 나오지 않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폭발이 계속 이어졌다. 마치 폭죽이 순차적으로 연달아 터지듯.

“대공자!”

모용곽이 소리쳤고,

“대공자님!”

“대공자!”

연향과 화설난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대공자가 혼자서 소멸시키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엔? 그 뒤에 대공자는?

끔찍한 결과가 떠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환명을 원형으로 둘러 열섬망이 빠져나가지 않게 두른 채 후공은 기운이 폭발하고 있었다. 삼악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봉양목을 취할 때처럼, 공청석유를 취할 때처럼, 풍열을 취할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도대체 어떤 독인가? 이런 독이 있었다고?

이렇게 맛있다고?

삼악이 포식하고 있었기에,

후공은 충만하게 채워지는 기운에 몸을 맡겼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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