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환혼, 환혼, 환혼, 환혼!
열섬망의 폭발은 멈췄다.
콰광, 콰콰쾅! 콰아앙!
하지만 삼악의 폭발은 이제 시작이었다.
흡수, 정화, 융화, 폭발.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서, 환명의 아지랑이 안에서 후공의 몸은 폭발하는 기운에 크게 출렁였다.
모두의 눈에는 반투명하게 보였고, 검은 윤곽으로 보였다. 하지만 대공자의 몸이 격렬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만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안 돼…….”
“대공자님…….”
“대공자…….”
똑같이 하나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각자 품은 마음에 따라 그 모습은 달리 보였다. 누군가에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여 심각해졌다. 울먹이고 흐느끼기도 했다.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쏘아올려진 폭죽의 정체. 열섬망이라 불리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독성을 지녔으며, 그 위력이 어떠한지.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 몸부림이 기쁨이 되었다.
‘흐흐, 괴로울 테지. 미쳐버릴 것 같겠지.’
‘크크, 용케 버티고 있다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
구겨진 악무극이 창 너머로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열섬망을 쏘아올린 창천대주는 웃음을 짓다가,
쩌저적.
빙궁의 궁주 현음의 손길에 온몸이 얼어붙어 의식을 잃었다.
두 사람만 관점이 달랐다.
풍제와 당명만은 뚱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경험치가 다르다. 경험으로 믿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이 대형을 걱정하는 일.
“교주님.”
부르는 소리에 풍제가 고개를 돌렸다.
작고 귀여운 연향을 내려다봤다.
연향은 눈이 퉁퉁 부은 채였다. 너무 부어올라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새 정이 든 건가?
“연향아, 눈 떠라.”
“교주님…… 괜찮은 거죠?”
“물론. 대공자는 식사 중이다.”
“식사요?”
“대공자는 뭐든 잘 먹지.”
“정말요?”
연향이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 눈을 크게 떴다.
풍제는 그런 연향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눈이 있었네?”
“헤…….”
연향이 웃으며 울었다.
어떻게 봐도 대공자님의 모습은 뭘 먹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아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교주님이 괜찮다면 괜찮은 것이다. 맹주님의 아우는 대단한 분이니까.
연향이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다르게 보였다.
식사 중!
“대공자님은 조금 거칠게 드시나 봐요.”
“하하하!”
그 말에는 풍제도 웃고 말았다.
거칠긴 하다.
그만큼 열섬망이 지독하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삼악이 좋아한다는 뜻일 테지.
대형에겐 독마녀의 고독조차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독을 침투시키고 그걸 고스란히 지켜봤던 독마녀는 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대형에게 직접 듣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도 의문이 흘러나왔다.
“가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오?”
“암향야, 대공자가 정녕 열섬망을 해독할 수 있는 거요?”
검선과 검존이 물었다.
당가주의 표정은 어떻게 봐도 걱정하는 모습이 아닌 것이다.
“삼악(三惡)을 이룬 자를 걱정할 게 있나.”
“오호! 삼악을 이루었던 것인가!”
“삼악이라니?”
반응이 엇갈렸다.
검선은 삼악에 대해 알고 있었고, 검존은 처음 들어 갸웃했다. 검선이 간략히 설명해주니 그제야 검존이 놀란 눈이 되었다.
“대공자가 그걸 먹었다고? 그 영악초를 먹었다고?”
육각망과 독양충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구경도 못 해 봤지만, 영약초는 검존도 복용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조금 베어물었다가 데굴데굴 사방을 뒹굴었던 어두운 역사가 있었기에 그 끔찍함을 잘 알고 있었다.
“대공자, 이제 보니 지독한 친구였구만.”
검존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영악초는 다른 둘에 비해 순한 맛이라는 검선의 설명까지 듣게 되자 새삼 대공자가 대단해 보였고, 걱정도 눈 녹듯 사라졌다.
진작 알았다면 걱정하지 않았으리라.
또한 대공자의 경지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삼악에 대해 듣게 되니 온당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 여겨졌다.
그때 밤하늘의 풍경이 달라졌다.
격렬히 출렁이던 대공자의 모습이 차분해졌다.
폭발은 끝.
삼악은 열섬망을 대부분 흡수해 그 주인의 몸에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선사했다.
그 나른함 속에 환명이 걷혔다.
지무(地無)를 운용한 상태였기에 허공에 뜬 채로 후공이 모두를 둘러봤다.
기운의 폭발로 천천히 너풀거리는 머릿결.
얼굴에 어린 광채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열섬망은?’
‘저 모습이 회광반조는 아니겠지?’
대부분은 여전히 근심스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회광반조일 리가.
경지는 비약적인 상승을 이뤘다.
드디어 10성을 돌파. 그러고도 중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알 리 없으니,
아직도 걱정하는 것 같았기에,
후공은 미소를 띠어 주었다.
그 미소가 괜찮다는 말보다 더 크게 들렸기에,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무림맹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
반면 암울해진 건 악무극.
자신을 구겨버린 이.
열섬망을 소멸시킨 이.
그 천화서고 대공자가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으니, 열섬망이 쏘아올려졌음에도 무림맹 내에 하나의 비명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기에 깊은 절망에 빠졌다.
“누군가는 착각하지.”
“……?”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악무극은 눈동자를 굴려 대공자를 바라봤다.
“지옥의 입구를 지옥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더 들어가면 그제야 깨닫게 되지. 그저 방금까지는 입구를 지나온 것에 불과했다는 걸 말이다.”
‘지금 이게 입구에 불과했다고?’
악무극은 이해했기에 몸을 떨었다.
현재의 고통이 지옥의 끝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더 큰 고통이라니. 뭘 어떻게 한다는 건가?
“말…… 말하겠다. 아, 아니 대공자님, 말하겠습니다.”
“늦었지.”
후공이 악무극의 몸에 우수를 가져갔다.
그리고 시작.
뚜드득, 뚜드드드득, 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절반이나 줄어들었던 악무극은 더 줄어들었다. 팔이 어깨를 파고들었고, 다리가 접히고 접히면서 쭈끄러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으으으, 크에에엑!”
울부짖음은 목이 거의 사라지듯 접혀가면서 기묘하게 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이 닿았던 지점, 능오침까지 발출되었다. 혈관을 타고 흘러 심장을 터뜨리는 능오침이었지만, 진기에 유도되어 뼈마디를 긁어갔다.
“크에에엑, 크에에에에엑! 커억, 컥컥!”
조금 큰 항아리 크기만큼 줄어든 채로 악무극이 눈을 뒤집은 채 몸을 떨었다. 제발 죽여줘. 제발. 이런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길 일식경(약 30분).
악무극은 고통에 익숙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익숙해질 정신조차 남지 않았다. 파묻혀 어딘가에 있는 작아진 눈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이젠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 상태.
현실인지, 꿈인지, 지옥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들려왔다.
“소향객의 생사 여부.”
“소……향객은 살아 있습…….”
“누구로?”
“나로…… 나의 모습으로…… 악무극으로.”
“좋아. 어디에 있지?”
“공동……파.”
“다른 이들은?”
“그들도 공……동.”
그들이란, 다섯 명.
비룡제천대주.
공옥대주.
금마적성대주.
유성건곤대주.
창천대주.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외 환혼된 이는?”
“청……우자.”
청우자는 천하십객 중 하나.
경지는 현경의 예.
“왜 청우자는 오지 않았지?”
“그는…… 아직…….”
아직 정기신의 합일을 이루지 못했다.
기억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공동파가 너희들의 수중으로 넘어간 시기.”
“……?”
악무극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후공은 친절을 베풀었다.
“후공을 향해 환혼을 시도하기 전인가?”
“그…… 후.”
후공은 이 대답으로 알게 되었다.
공동은 본거지가 아니다. 그저 거점 중 하나.
“너의 주인에 대해 들어보자.”
“주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만난…… 적이 없습니다.”
후공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넘어갔다.
악무극의 현재 정신 상태는 거짓을 꾸며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들어본 적은 있겠지?”
“회영부…… 주인은…… 회영부주라고만…….”
회영부(回永府).
돌고 돌아 영원히.
설마 끝없이 환혼을 거쳐온 건가?
언제까지나 새로운 몸을 차지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이름이었다.
삼백 년 동안 백혼곡에 갇힌 마두들보다 더하다.
만약 수천 년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후공은 생각했다.
환혼을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잊혀진 열섬망을 이 시대에 선보였으니.
“후공과 환혼을 시도한 건 누구냐.”
“그건…… 누군지는…… 듣지 못했습…….”
“귀운종에 대해서 아는 바를 말해 봐라.”
“귀운……종. 애송이들…… 겁먹고…… 머리를 처박고 있는…….”
누구에게 겁먹고 있는 것인지는 물을 것도 없었다.
무림맹.
천하제일인.
그리고 애송이들이라는 말에서, 귀운종에 대해 같잖게 생각하고 있음이 보였다.
즉 귀운종은 유령곡과 같다.
남해의 승명에 있는 아이들과 같다.
그리고 악무극은 ‘나’를 불러내기 위한 하나의 돌.
나를 향한 환혼이 실패했기에, 천하제일인이 자결했을 리 없다고 믿고 있기에 확인을 위해 던져본 돌.
한데 왜 회영부주는 스스로 나서지 않은 건가?
나설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건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
후공은 몇 가지를 더 묻고 답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어 나선 건 풍제.
섭혼을 통해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동일했다.
확인을 마친 후공은 풍제와 당명과 잠시 의논했다.
다른 이들은 그곳에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풍제와 당명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드디어 환혼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는 흥분감이 웃음에 맴돌았고, 두 눈에는 은은한 분노가 어렸다.
이 패거리는 무적이었다.
여태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다.
한데 처음으로 당했다.
이제 되갚아 주어야 할 때였다.
수천 년을 살았든, 수백 년을 살았든 상관없었다.
의논을 마친 후, 소향객은 펴졌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비로소 자리를 함께했다.
검선과 검존, 그리고 현음과 현이.
거기에 더해 요로선인까지.
“퍼졌네? 콜록, 콜록.”
이내 파악한 바를 공유했다.
그 결과,
환혼, 환혼, 환혼, 환혼. 환혼!
모두의 머리에 환혼이란 두 글자가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이제 더 이상 환혼은 망상도 착각도 아니었다.
그저 현실.
“대공자, 이제 어찌할 셈인가?”
검존이 향후 대책을 물었다.
얼마 전만 해도 풍제에게 던졌을 질문이었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주체가 바뀌었다. 대공자에게 길을 묻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먼저 환혼된 이들의 몸을 보존했으면 합니다.”
“보존?”
“네.”
고개를 끄덕인 후공은 현이를 바라봤다.
“현이신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물론이에요.”
현이가 미소를 보였다.
70년 동안 스스로를 빙벽에 가둔 여인은 바로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냥 가둬 둘 수도 있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것이 있다.
괜한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려면 얼려 두는 것이 낫다.
또 그렇게 하면 하루하루 뭘 먹일 필요도 없어진다.
보존이 편하다.
이렇게 내가 대공자에게 도움이 되다니.
그런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공은 이어 요로선인을 바라봤다.
“다음으로 선인.”
“콜록, 콜록.”
“무림맹을 해체했으면 합니다.”
“해체한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너무 놀랐는지 요로의 기침이 싹 사라졌다.
“임시입니다. 정확히는 임시로 옮긴다고 해야겠군요.”
“어디로 말인가?”
“섬서 남부 안강. 천공단의 본거지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천공단의 본거지?”
“네. 마침 천공단이 도착했군요.”
그때 들려왔다.
“우리 왔어요.”
“하하하하! 무림맹분들, 별일 없었습니까!”
“형님! 저희 왔습니다!”
“두목! 우리 왔어!”
“어째 다 끝나버린 것 같은데?”
“나무관세음보살! 소림이 맹을 구하러 왔소이다!”
오자마자 벌써 떠들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