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들켰나?
섬서 안강으로 향하는 길.
무림맹이든, 천공단이든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환혼!
환혼이 가능하다.
환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고, 엄청난 공능이었기에 머리에 끝도 없이 떠올랐고, 대화도 온통 환혼이었다.
- 선생, 환혼대법이라니 굉장하지 않습니까?
- 굉장하고 말고.
항마삼협 중 이열의 전음에 금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 영원히 산다라……. 전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 영원히 산다뿐일까. 남자라면 여자가 될 수 있고,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있을지도.
- 캬아,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겠습니다.
- 몇 년 살다 질리면 다른 육체로 갈아타도 되고.
- 흐흐, 사람이 무슨 마차 같군요.
- 자넨 어때?
- 네?
웃던 이열이 갸웃했다.
- 만약 환혼을 시전할 능력을 갖췄다면. 언제든 환혼을 할 수 있다면.
- 아…….
이열의 대답은 늦었다.
막연히 환혼에 대해 생각했을 땐 그저 신비하고 그 효능감에 취했는데, 그런 힘이 자신에게 주어진다 생각하니 망설여졌다.
환혼을 당하는 쪽의 마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몸을 강탈당한 이의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은 어느 정도일까.
청년이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노인이 되어 있다면…….
분명 소녀였는데 다 죽어가는 노파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절세 고수가 몸이 바뀌어 허약한 소년이 된 자신을 보게 된다면…….
고행 끝에 쌓아 올린 공력이 눈 녹듯 사라진 걸 알게 되었을 때 느낄 황망함은 어느 정도일까.
- 쯧! 못할 짓이로군요.
- 못할 짓이지. 원한도 쌓일 테고.
환혼 대상을 살려두든 죽이든 못할 짓이다.
죽인다 해도 원념(怨念)은 쌓일 터.
어떤 염원이든 거기엔 힘이 깃들어 있다. 귀기라는 것이 괜히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 저는 안 하는 걸로. 이번 생은 제법 마음에 들거든요.
- 후후, 나돌세.
둘은 같은 마음이었다.
이번 생은 천공단이 되었으니까.
제법 멋졌으니까.
지나온 길의 추억은 빛의 길을 걸은 듯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기에 충분히 만족했다.
몇 번을 더 산다 해도 천공단주와 천공단이 없다면 그리 재밌을 것 같지도 않고.
- 언니.
- 응?
- 언니는 만약 환혼을 할 수 있다면 누구와 하고 싶어요?
다른 한편에선 설영과 제갈혜의 전음이 오갔다.
- 글쎄.
- 저는 천공단주요.
제갈혜가 피식 웃었다.
- 천화서고 대공자라……. 의미 있으려나.
- 의미 없겠죠?
- 당연하지.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둘은 전음을 나누고 있다는 것도 잊고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 보니 우스운 것이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된다 한들 똑같이 할 수 있을 리가.
그리되려면 일단 삼악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건 못하지!
그걸 할 수 있을 리가!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선,
- 사형, 나 방금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어!
- 말해. 사제 새끼야.
- 왜 덥석 욕을 해.
- 너도 해.
- 알았다. 사형 새끼야.
- 흐흐, 그래서?
- 응, 내가 사형이랑 환혼되면 끝내주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내가 막 패고 굴리고 말이지.
그 전음에 은앙개가 미간을 찡그렸다.
- 차라리 욕을 해라. 환혼된 것도 서러울 텐데 너같이 더러운 새끼가 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뭐래, 같이 더러우면서! 아니야?
“뭐가 어째! 미친 새끼야, 내가 너보단 깨끗해!”
“사형 새끼야, 내가 더 깨끗하다고! 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만큼 더 굴렀잖아!”
“이 거지가 정신이 나갔네. 너 기억 안 나냐?”
“무슨 기억?”
“너 시발, 이 년 전에 시궁창에 들어가서 한 달 살기 하고 왔잖아!”
“아냐. 그 뒤로 한 번 씻었어.”
“그랬나?”
“응.”
“하여튼 꿈도 꾸지 마. 어쨌든 넌 더러운 새끼니까.”
“니가 더 더럽잖아아아아아아!”
“니가 더 더럽다고오오오오오!”
그 소란에 낭인왕이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저것들, 지금 누가 더 깨끗하냐로 싸우는 거야?”
무산쌍웅도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그러게. 살다 살다 별 희한한 광경을 다 보네.”
“상놈의 새끼들아, 오늘 무슨 날이냐? 똑같은 놈들끼리 적당히 해라. 죽여버리기 전에.”
“쌍웅, 제가 더 깨끗하죠?”
“상놈의 새끼야, 깨끗함이란 뜻을 니가 알기나 해?”
*
천공단이 옥신각신할 때,
후공과 일행은 탕현 부근의 산야에서 잠시 멈췄다.
이제 한 사람을 떠나보낼 때였다.
비둘기를 보낼 때였다.
“신투, 다녀와라.”
“네! 대공자님.”
무흔신투가 예를 취했다.
가야 할 곳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귀운종.
귀운종을 확인하러 가는 건 아니었다.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천하십객을 불러오는 일.
정확히는 열 명이 아니다.
소향객과 청우자를 제외한 여덟.
둘이 이미 환혼에 당했으니 나머지도 회영부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기 전에 찾아 합류시킨다.
그 임무의 적임자로 무흔신투만 한 이는 없었다.
은신과 경공이 뛰어날 뿐 아니라,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역용의 대가인 것이다.
그렇다해도 후공이 아예 염려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상대를 알 수 없음이 가장 큰 이유.
그렇기에,
“받아라.”
후공은 품에서 오행기를 꺼내 건넸다.
“네?”
받아 쥐며 무흔신투가 놀라 눈이 커졌다.
다섯 개의 작은 깃발. 모산의 보물.
그 의미를 모를 무흔신투가 아니었다.
‘대공자님께서 날 걱정하고 있어. 내가 잘못될까 봐……. 나를…… 나 같은 도둑놈을…….’
신투는 대공자님의 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널 잃고 싶지 않다.
위급한 상황이 오면 오행기 안에 숨어라.
반드시 살아 돌아와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신투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공청석유도 받았는데, 이번 여정엔 오행기다.
“대공자님…… 감사합니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그래야지. 오행기를 잃어버리면 내 손에 죽어. 너는 죽어도 오행기는 잃어버리면 곤란해.”
“……………….”
신투가 멍해졌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감동을 이렇게 부수다니.
‘어째 후공 같네.’
후공이 그랬다.
챙겨줄 것 다 챙겨주면서, 염려하고 있는 것 뻔히 아는데도 안 그런 척했다.
“그럼!”
무흔신투가 힘차게 말한 후,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녀오겠습니다!”
풍제는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고, 무당 검존은 손을 들어 보였다. 현음과 현이신녀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명은,
“너 아직도 안 갔냐!”
“헤헤!”
웃음의 끝, 무흔신투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휴식도 끝.
모두가 신형을 날렸다.
누구 할 것 없이 신형이 표홀하기 짝이 없었다.
한 사람만 빼고.
지귀객만 땀을 뻘뻘 흘리며 사력을 다했다.
대도 중 하나여서 빠르긴 해도 무흔신투만큼은 아닌 것이다.
‘젠장, 땅속으로 가는 거면 내가 1등인데.’
**
다음 날.
무림맹 부근에 남은 화산의 검선은 입이 부루퉁 나와 있었다.
이미 아침이 지났다.
정오도 넘겼고, 오후가 되었는데도 특이 동향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곳에만 머문 것도 아니었다.
탐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범위를 넓혔다가 좁혔다 하면서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한데 없다.
의심이 가는 움직임은 그 어떤 것도 포착할 수 없었다.
‘분명 누군가 와야 맞는데…….’
세상일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전부 이루어지는가.
계획을 완벽히 세웠다 해도 뜻하지 않게 어그러지는 일은 허다하다.
계획에는 반드시 실패를 염두에 둔 대비책도 포함된다.
특히 이 일은 ‘후공’에 관한 일.
회영부 입장에선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거늘.
한데 감감무소식이라니.
해도 조금씩 저물어간다.
‘다시.’
검선은 기감을 더욱 확장해 주변을 살폈다.
모든 소리에 귀 기울였다.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시선도 놓치지 않았다. 누군가 바라본다면, 그 무엇이든 바라본다면 바로 인지하게 된다.
느껴졌다.
한데 딱정벌레.
이어 하늘을 나는 새 떼.
회색 깃털의 새 떼였다.
무림맹 위를 날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향했다.
의미 없는 것들, 의미 없는 것들.
그렇게 검선이 시선을 돌렸을 때, 그 시선을 피해 새 떼에서 한 마리가 이탈했다.
유유히 날아가면서 새의 깃털이 변했다.
회색 깃털이 아닌 흰색 깃털로 변한 새는 검선의 뒤쪽 나무에 내려앉았다.
그렇게 앉아 검선을 바라봤다.
검선이 시선을 느끼고 뒤돌아봤을 땐, 그저 한 마리의 새.
검선은 새를 잠시 바라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큰 새가 아니다. 작은 새.
하얀 깃털. 그리고 노란 눈동자.
새가 파다닥 다른 나뭇가지로 이동해 나뭇가지를 쪼고 있었기에 검선은 다시 시선을 거뒀다.
하지만 새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조각된 새인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검선의 뒷모습을 눈동자에 담았다.
이미 새의 눈동자는 변해 있었다.
노란 색의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 채로,
‘악무극은 실패……. 어디에도 핏자국이 없다. 열섬망의…… 흔적이 없다.’
중얼거렸다.
하지만 검선은 듣지 못했다.
새의 입이 열렸다면 들렸을 테지만, 새는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무림맹은 어디로 갔지? 왜 화산의 검선이 이곳에?’
검선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건 새.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새는 다시 움직여 위치를 옮겨 내려앉았다.
‘역시…… 그렇게 된 건가. 후공은 살아 있음인가. 그렇다면…… 알아냈겠구나. 그럼 오고 있겠구나.’
새는 날아올랐다.
유유히, 그저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새일 뿐이라는 듯.
검선의 시선을 피해 몇 번인가 깃털 색을 바꾸면서, 그리고 검선의 시선이 닿지 않게 되었을 땐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질주했다.
***
그로부터 사흘.
후공이 공동파에 도착했을 땐 텅 비어 있었다.
샅샅이 뒤져 볼 것도 없었다.
지귀객을 제외한 모두가 지고한 경지.
공동에 발을 딛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사람의 숨결 자체가 없고, 개미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는 상태.
“어떻게 된 거죠?”
“설마하니 이미 소식이 전해졌단 말인가?”
“그럴 리가요.”
현음과 검존이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의아하기도 했다.
악무극이 제압되기 전, 그리고 제압된 후 주변 동향은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놓쳤다 해도 풍제가 놓쳤을리 없다.
천화서고 대공자도.
그런 생각은 후공도 마찬가지.
갸웃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그 전에 거점을 옮긴 것인가?
아니면 소식이 전해진 것인가?
확인이 필요했다.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죠.”
다들 흩어져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의미는 하나.
공동을 비운 시점이 언제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기에 불을 피운 흔적을 찾았고, 주방 쪽을 훑어보기도 했다. 방 안 곳곳의 먼지가 얼마만큼이나 쌓여 있는지도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이틀도 채 안 된 것 같습니다.”
지귀객이 외쳤고, 다들 그때는 각자가 파악한 상태였다.
방 안의 먼지는 쌓여 있지 않았다.
버려진 음식의 상한 정도가 이틀 안쪽.
서두른 흔적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 결과가 더 큰 의문이 되었다.
- 대형, 적이 실패를 인지했다는 뜻인데 이해할 수 없군요.
당명의 전음에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았을 테지.’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겠지.
사람은 아니다.
그럼?
후공은 하늘을 바라봤다.
새들.
그리고 그 중에 하나.
노란 눈동자를 지닌 새.
‘눈동자의 색이 바뀌었군.’
히얗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노랗게 변했다.
마치 감추듯.
새는,
노란 눈동자를 유지하며 다시 유유히 주변을 날았다.
‘들켰나?’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