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52화 (352/460)

352화. 사라졌다.

후공은 더 이상 새를 바라보지 않았다.

노란 눈동자의 새.

하지만 분명 방금 전까진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착각인가?

착각일 리가.

그리고 그건 이미 색관조도 보았다.

[주인님, 주인님! 방금 보셨나요?]

눈깔 색이 바뀌는 이상한 새를 본 것이 신기해진 색관조가 떠들며 날아왔다.

여기에서 더 떠들면 곤란해진다.

색관조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기에,

후공은 나직히 전음을 날렸다.

- 닥치렴.

[눈ㄲ…….]

색관조가 바로 입을 닫았다.

들려온 건 주인의 전음.

목소리를 숨기셨어!

영특한 데다 주인과 함께한 시간이 많은 색관조는 빠르게 상황을 알아차렸다.

주인님은 이미 노랑 눈깔의 새를 보셨구나.

저 새에겐 어떤 의미가 있구나.

기이한 새여서 사로잡아 주인님께 바치려고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 모른 척 은밀함을 요구했기에 색관조는 바로 어색하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눈깔이…… 눈깔이…… 따가워요! 주인님. 눈에 뭐가 들어갔나봐요!]

“칠칠맞긴. 눈 떠라. 불어주마.”

왼팔에 내려앉은 색관조의 눈을 호호 불어주며 후공은 천향사주를 운용했다.

탐향(探香) 그리고 연향(聯香).

수백개의 천향의 선이 뻗어나갔다. 공동파를 뒤덮었다.

대부분은 탐향이었다.

공동파에 남겨진 향의 채취.

이어진 천향의 선들은 나아가고 더듬으며 여러 향취를 찾았으며 그 정보를 빠르게 회신해왔다.

반면 연향은 한 곳으로만 운용되었다.

공동파 하늘을 천천히 맴도는 노란 눈동자의 새에게로 닿아 이어졌다.

[아! 시원해, 눈알이 시원해져요! 까르르르르르르르!]

[그윽, 그윽. 부우우우, 부우우우!]

따가울 것도, 시원할 것도 없는 색관조가 연신 눈이 시원하다며 떠들었고, 금섬은 자기도 불어주겠다며 입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 놈은 영리하고, 한 놈은 귀여웠다.

‘후후, 웃긴 놈들.’

후공은 웃음을 머금고는 색관조에게 손을 가져갔다.

향을 맡게 했다.

- 이 향이다. 네가 본 노란 눈동자의 새.

[꿀벌 잡으러 가자아아아!]

[그으으으으윽!]

색관조에게 있어선 늘 해오던 일.

사람이라면 맡을 수 없는 무향이었지만, 후각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색관조는 구별했고 기억했다.

꽃과 꽃 사이를 낮게 날았다. 금섬이 스치듯 꿀벌 몇 마리를 잡아 맛있게 먹고 있는 사이 사이로 색관조는 노란 눈동자의 새를 감시했다.

그때 검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풍제, 여길 보시오!”

이내 풍제의 옅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공동파 본청의 뒤뜰 쪽이었다.

함께 살피러 간 현음과 현이, 그리고 당명의 무거운 침음성이 이어졌다.

후공만 그리로 향하지 않았다.

한 전각으로 들어섰다.

뒤뜰의 광경은?

이미 본 것이나 다름없다.

화골산의 냄새. 수십 명이 화골산에 녹아내렸다.

공동의 제자이거나 시비들이었을 터.

그 주검들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검은 그뿐이 아니었다. 공동묘지도 아니거늘 곳곳에 오래된 시체 특유의 냄새까지. 파묻힌 주검이 수백 구.

시기는 대략 1년여.

천화서고 대공자가 된 시점,

악무극이 말한…… 공동파가 장악된 시점과 일치했다.

굳이 눈으로 확인할 것도 없는 일.

그렇기에 후공은 다른 흔적을 찾는 데 주력했다.

들어선 곳은 공동파 장문인의 처소였고, 최근까지 생활한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의미는 하나.

공동파 장문인은 환혼되었다.

침소로 이동해 몇 올의 머리카락을 찾았고, 향을 채취했다. 당장 쓸 일은 없겠지만, 부근에 이른다면 놈은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후공이 방 안에 있는 사이,

풍제와 검존등이 뒤뜰에 있는 사이,

새의 눈동자는 다시 하얗게 물들어갔다.

‘들키지 않았다.’

*

멀리 모처.

그 생각을 떠올린 건 추혼자였다.

‘들킬 리 없지.’

회색빛 머릿결을 지닌 노인이었다.

그의 두 눈도 하얗게 물들어 검은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들킬 리가.

새는 시안조(視眼鳥).

의식은 이어지고, 멀리서도 시안조의 시선과 청각은 공유된다.

하얗게 물들 때면 시안조가 본 것을 그도 볼 수 있었다. 시안조가 들으면 그도 들을 수 있었다.

노란 눈동자로 전환됨도 빠르다.

눈을 한번 깜박였다 뜨면 끝.

보지 못했겠지. 만약 보았다면 그에 대한 반응이 나와야 마땅하니.

그렇다고 마냥 안심이 되는 건 아니었다.

시안조가 발각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후공은 어디로 갔지?”

악무극의 계획은 실패.

아니, 다른 의미로는 성공이다.

무림맹을 친 건 후공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니, 실패임과 동시에 성공이었다.

후공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환혼을 분별해낼 수 있을 것인가.

후공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열섬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후공은 살아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정도는 후공에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파를 서둘러 비웠다.

또한 예상한 대로 몰려오기도 했고,

지금 보고 있기도 하고.

“한데 왜……? 대체 후공은 어디에 있는 건가?”

조금 더 둘러보자.

추혼자는 의식을 투영해 새를 조정했다. 공동파의 뒤뜰을 내려다보던 시안조는 높이 날아올라 주변 사방을 눈으로 쓸어담아갔다. 멀리 나아가보기도 했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그 어디에도.

추혼자의 미간이 더 깊게 파였다.

‘어디로 갔지?’

*

후공은 전각 안.

들어선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공자, 우리가 뭘 찾았는지 아나? 정녕 끔찍한 일이네.”

검존이 본 것을 말하며 머리를 저어댔다.

화골산에 녹아내린 흔적을 찾았으며, 몇 군데 땅을 파헤쳐 시신을 찾아낸 이야기를 꺼냈다.

검존의 탄식 후 현음신녀가 입을 열었다.

“대공자, 뭔가 찾았나요?”

“전혀. 그야말로 감쪽같습니다.”

후공은 태연히 거짓말하는 동시에 전음을 발했다.

- 찾았습니다.

“……?”

현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

“……?!”

풍제와 당명, 무당의 검존.

누구 할 것 없이 강호 경험이 풍부한 이들.

그리고 현이신녀는 얼음벽에 스스로 갇히지 않았다면 북해빙궁의 전설이 되었을 인물.

말과 전음이 상반되면 그 의미를 모를 수 없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구나.’

‘누가 듣고 있어!’

‘대형은…… 알아냈다는 걸 감추려 한다.’

‘하지만…… 누가?’

의도를 알아차림과 동시에 의문도 떠올랐다.

기감을 확장해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의심할 만한 기척은 없는 것이다.

- 누군가요?

- 어디에 있나?

현음과 검존이 물었다.

- 새입니다. 그리고 멀리 누군가와 새의 시야는 공유되는 것 같군요.

- 시, 시야가?

- 아마도 청각까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노란 눈동자의 새는 다시 부근에 있었다.

지금은 하얀색을 띠고 있을지도.

새에게 남겨놓은 천향의 선이 가까이 느껴졌기에 후공은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볼 수 있는데, 듣지 못할 리가.

- 그게 가능한 일인가?

검존이 전음을 발했다.

가능하기 이전에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가능하다.

확신도 있고.

정교한 데다 놀라운 공능이 아닐 수 없다.

과연 환혼을 다루는 자들이라 할 만하다.

- 선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후공이 본 건 새의 눈동자 색깔의 변화만은 아니었다. 새의 머리 부분에서 뻗어 나가는 길게 이어진 선도 보았다.

보이지 않는 선.

하지만 감지할 수는 있는 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인가.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가 없음인가.

전음은 들리지 않지만, 들린다.

이기어검은 검이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무공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 그리 보일 뿐. 기운에 유도된다.

비검으로 격전을 벌일 때면,

유도되는 그 선을 끊는 것도 공세 중 하나.

또 천향의 선도 같다.

존재하지만 누군가는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볼 수 없다.

- 새의 눈동자가 본래의 노란 눈동자로 돌아오면서 선이 사라졌으니, 아마 그 상황에선 볼 수 없을 겁니다.

- 아…….

- 놀랍군요.

이해된 검존과 현음이 탄성을 발했다.

풍제와 당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 대형!

- 대형…….

부르기만 할 뿐인 두 아우의 전음이었지만, 후공은 무슨 말이 생략된 것인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환혼의 좌표를 얻는 방법.

새의 시선을 통해서라면 멀리서도 환혼 대상의 위치와 현재 환혼 대상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지.

거닐고 있는지.

-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현음이 갸웃하며 모두에게 전음을 발했다.

바로 검존이 미간을 좁히며 침음성을 흘렸다.

- 흐음, 난해하구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안내자가 생겼다.

이제 새를 따라가면 된다.

그건 기쁜 일인데, 문제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막히는 것이다.

새가 돌아가 준다면 좋겠지만, 감시하는 눈길을 거두고 돌아갈 리가.

도리어 새의 눈으로 보고 있으니 새가 노출된 것을 아는 순간 다른 곳으로 유인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렇다고 새를 잡는다?

안내하라고 윽박지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시야와 청각이 공유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에서는 그 상황도 보이게 될 것이고, 말도 들리게 될 터.

어떻게 하면 새가 주인에게 돌아가게 할 것인가.

그다음 새의 뒤를 어떻게 몰래 뒤따를 것인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명과 검존, 현음과 현이가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

- 대형, 사라지죠.

풍제만은 답을 찾았다.

과연 패거리의 둘째였기에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 사라진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사라지면 새는 표적을 잃고 돌아갈 것이다.

새 너머에, 새와 연결된 이는 당혹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내 새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때 뒤를 쫓으면 된다.

- 일단 확인을 거친 후에.

- 네.

- 네가 이야기해라. 내가 너무 나서는 것 같거든.

- 후후, 그러죠.

풍제가 이내 모두에게 전음을 발했다.

계획을 말하자, 다들 단숨에 안색이 환해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계획이었고, 놀라운 한 수였다.

밖으로 나서며 검존이 분노를 터뜨렸다.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테니 더 넓게 주변을 살펴봅시다!”

검존이 앞섰고, 다들 그 뒤를 따랐다.

밖에 덩그런히 있던 지귀객도 합류.

지귀객은 나아가며 들었다.

- 네? 네? 네! 아…… 네!

암향야가 들려준 전음에 놀라는 한편,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마음에 새겼다.

당연하게도 의구심도 들었다.

‘새가 이어져 있다고? 시야를 공유해? 이거 날 놀리려는 장난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에 찡찡.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다들 사뭇 진지한 데다 무림맹에서 벌어진 일도 얼마 전이었으니.

노란 눈동자의 새는 따라왔다.

하늘에서 다른 새와 교차하면서는 깃털 색을 바꾸었다. 눈동자는 이미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쯧쯧, 뭘 찾겠다는 거냐.’

눈동자 너머에서 추혼자는 혀를 찼다.

그리고 검존과 현음, 현이신녀가 애매한 시선으로 새의 눈동자를 확인했다.

후공도 다시금 확인을 마쳤다.

눈동자뿐 아니라, 이어진 선까지.

그렇게 공동파 중심에 두고 크고 넓게 둘러 새를 확인한 후, 되돌아왔다.

다시 공동파 장문인의 처소에 들어선 후,

“자, 이제 돌아갑시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일단 천화서고로!”

“지금 바로!”

‘천화서고로? 왜? 저곳에서?’

그 대화를 들은 추혼자가 갸웃했다.

천화서고로 간다고?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지금 바로’라는 말이었다.

잠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다음에도 소리가 사라졌다.

‘?’

더 기다려도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기다리고 기다려 일식경이 지났음에도.

‘정녕 사라졌다고?’

다시금 일식경이 흘렀을 땐, 추혼자의 인내심은 사라졌다.

시안조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창가에 내려앉았다가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면서 추혼자는 방 안의 풍경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사…… 사라졌어?’

멀리 모처에 있는 추혼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감숙성에서 안휘로 이동할 수 있다고?

공동파에서 천화서고로 이동할 수 있다고?

추혼자는 경악에 차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을…… 전송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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