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지옥은 언제 끝날까.
검선은 여전히 무림맹 부근 산야에 있었다.
어느덧 일곱 밤이 지났다.
수상한 기척은 없고,
공동으로 떠났던 일행들도 감감무소식.
하루, 이틀, 사흘째까진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기도 했는데, 이젠 거의 석상이 되었다.
우두커니 서 있거나,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둘 중 하나.
지금은 서 있었다.
‘아무도 안 와. 아무도…….’
매 순간 기감을 최대한 확장해 살펴도 특이점은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누군가 오긴 했다. 하지만 의미를 둘 수 없는 이들. 맹의 이동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각대 문파에서 보내온 이들이었다.
어리둥절한 모습과 당혹에 찬 대화.
사람도 사람이지만 전서매는 더 많이 찾아들었다. 전서매도 다를 것 없었다. 무림맹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배회하다 돌아가곤 했다.
검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향객으로 환혼한 악무극의 패악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으니 그때 그 일이 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건,
색관조.
정확히는 공동으로 떠난 이들의 대응이었다.
발견했거나, 만났다면 자신에게 연락이 와야 했다. 색관조를 보내면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을 텐데 왜 색관조조차 보내지 않는 것인가.
검선은 불만 가득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성의가 없어. 날 뭘로 보고.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인지.”
하지만 마음 속 생각은,
‘……걱정되는구만.’
그렇게 무심하지 않은 이들이란 걸 알기에,
연락이 없는 것이,
색관조마저 보낼 수 없다는 의미가,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만 같았기에, 부디 그런 것만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투덜거렸을 뿐.
“뭐 이쯤이면 가 봐야겠지.”
여기에서 더 기다리는 건 의미 없다.
그저 불안한 마음만 커져간다.
‘그래, 가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해도,
자신이 간다 해도 마찬가지가 될지라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무심한 시선으로 화산의 검선이 신형을 날렸다.
허공을 갈랐을 땐, 이미 멀리 내려다보던 무림맹 전각의 지붕. 지붕을 디딘 다음 다시금 허공을 질주했다.
그런 검선의 모습은,
시안조의 하얗게 물든 눈동자에 담겼다.
추혼자의 눈동자에도.
*
‘대체 어디로 갔지?’
추혼자의 눈동자가 시안조와 다른 점이라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
시안조가 무림맹에 도착한 건 어제 아침이었다.
검선을 보았다. 검선만 있었다.
혹시 모르기에 하루를 넘겼다. 그리고 이 오후까지 검선을 살폈거늘 들려온 건 검선의 투덜거림.
검선의 투덜거린 목소리가 꾸며낸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그 안에 묻어나는 근심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녕…… 전송인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떠올리게 되니 추혼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루를 넘게 기다린 건 풍제와 그 일행이 신법을 펼쳐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감안해서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다.
검선만 덩그러니.
심지어 검선은 공동파로 신형을 펼쳐 나아가는 중.
추혼자는 눈동자를 하얗게 빛내며 두려움에 떨었다.
시안조를 운용하고도 놓쳤으니, 그 결과를 보고하려니 자신의 머리 위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 같았다.
‘최대한…… 최대한…….’
여러 곳을 살펴보자.
검선을 뒤따르던 시안조가 방향을 선회했다.
*
- 검선, 듣기만 하십시오.
‘대공자?’
검선은 신형을 급히 멈추고 돌아봤다.
대공자와 일행의 모습이 보였기에 갸웃.
보았다 싶을 땐 이미 근접.
- 가시면서 이야기하시죠.
멈추지 않고 나아갔기에 검선이 황급히 뒤따랐다.
- 어떻게 된 건가?
-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어디로 가시려던 길이십니까?
- 공동파지 어디겠나.
- 겁이 없으신가 봅니다. 소식이 없으면 죽은 건데, 그럼 멀리 도망치셔야지요.
검선이 짐짓 미간을 찡그렸다.
내내 걱정했고, 죽으러 가는 길인데 그 마음이 들킨 것 같은 것이다.
- 내가 걱정했을까 봐? 땅에는 묻어주려고 가던 참이네.
- 하하하!
‘젠장.’
대공자의 웃음에 검선은 찡찡.
‘들켰나 보네.’
들킨 정도가 아니었다.
도착한 건 어제 아침.
후공은 시안조도 보고 있었지만, 검선도 지켜보고 있었다.
시안조가 도착했을 때, 함께 도착했다.
하루 넘게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굳이 검선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시안조의 시야에 들어서지 않기 위한 신중함이었을 뿐.
- 검선, 질질 짜는 모습이 가관이던데?
- 검선께서 이리 정이 많으신 줄 몰랐네요. 그 마음에 빙궁의 얼음도 녹겠어요.
“끄응.”
당명과 현음이 놀려대자, 검선이 앓는 소리를 냈다.
진작 와 있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 대공자, 언제 왔나?
- 어제 아침.
- 한데 왜?
- 텅 비어있더군요.
이어 공동파에서 보고 겪은 바를 설명하니 검선이 놀란 눈으로 멀리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봤다.
눈동자가 하얗게 되었다가 노랗게 되었다가?
- 저 새가?
- 네.
- 선은 보이지 않네만.
- 자세히 보면 보입니다.
검선이 즉시 안력을 돋웠다. 그럼에도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얀 눈동자의 새를 색관조가 뒤따르고 색관조를 다시 뒤따르는 형국이라 그만큼 멀었다.
하지만 대공자는 보고 있는 듯했기에, 검선은 대공자의 무위와 안력이 새삼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역시 그 때문이겠지.
삼악을 이루었기 때문이겠지.
- 나도 도전해 봐야겠네.
- ?
- 삼악.
- 검선,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 …….
검선은 즉시 쪼그라들었다.
대공자의 전음이 너무 발랄해 ‘맛 좀 봐라’로 들리는 것이다.
‘……안 하는 걸로.’
그런 가운데 모두의 신형은 질주.
산과 들을 지났다.
겨울을 지나 완연한 봄이 찾아온 산야는 알록달록 꽃이 만발했다.
화무십일홍.
피어난 꽃잎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지만, 목련꽃과 개나리꽃이 떨어져나간 부근에는 이어받듯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나 있었다. 꽃은 떨어져도 괜찮았다.
연초록 잎사귀들에 햇살이 부딪혀 부서져 나가면서 눈부시게 반짝였기에 그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싱그러운 봄날의 질주 속에,
‘대형의 미녀도는…… 이제 38일.’
당명이 마음 속으로 남은 날을 헤아렸다.
**
화산 검선은 공동파로.
천화서고 대공자와 그 일행은 종적이 묘연.
더 넓게 다른 지역을 살피고 있으나 소득이 없음.
시안조는 거의 복귀 중.
보고의 끝.
한 명의 청년과 두 노인은 추혼자를 죽이지 않았다.
아직은 살려두었다.
당장은 이 보고를 기반하여 추론에 나서야 할 때.
“전송은 제외.”
“물론이지.”
전송이 가능하다면 검선이 우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시 먼 지역으로 이동할 수단을 갖춘 이들을 무슨 까닭으로 걱정할 것인가.
“눈치챘나?”
“그렇다고 봐야겠지.”
“시안조는 발각된 듯하군.”
“하지만 시야가 공유된다는 것까진 알아내지 못한 것 같군.”
“시안조를 뒤쫓을 가능성은?”
“불가.”
“시안조의 속도를 따라잡으면서 은신을 오래 유지하긴 힘들지.”
은신을 거둔 상태에서는 시안조의 감각을 벗어나긴 힘들다.
“문제는 후공이군.”
“곧 드러날 테지. 강호가 뒤집어진다면.”
이미 전서매는 날려보냈다.
강호는 조만간 대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그 혼란에도 후공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후공은 없는 것이다.
여태 우려한 건 후공의 존재.
후공에 대한 환혼이 실패하면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당장이라도 천하제일인의 자줏빛 신검이 들이닥칠 것만 같아,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검성이 어떻게 죽었음인가.
단 일 초식.
손을 튕겼을 뿐인데, 자줏빛에 찢겨나갔다.
미친 소리를 내뱉던 검성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후로, 반년.
그로부터 환혼 실패 후 다시 1년.
후공은 어디에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이쯤이면 확인해 볼 때라고 생각해 무림맹을 공략했거늘 무산되었다.
이 일에 후공이 관여한 것이 아니라고?
그럼 상대할 만하다.
찾아온다 해도.
“충분히.”
“후공만 없다면.”
“후공만 없다면.”
청년의 말에 두 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청년은 광충(狂蟲).
두 노인은 뇌극파와 안령비.
광충은 환혼을 통해 반로환동한 몸을 얻었다.
귀운종의 마령귀.
그리고 뇌극파는 귀운종의 혈해불.
안령비는 공동파 장문인의 몸.
환혼된 몸의 공능을 모두 부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강화한 터.
“놈이 탐스러운데 아쉽군.”
“천화서고 대공자?”
“그렇지.”
광충의 말에 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 강호에서 가장 탐나는 몸은 천화서고 대공자.
빼앗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현경에 이른 듯하지 않는가.
거기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까지.
그 모든 걸 흡수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겠지.”
“후후, 당연히.”
“아쉽지만.”
여러 문제가 있다.
여러 이유도.
몇몇 제약.
그리고 서열의 문제까지.
회영부 내에는 천화서고를 주시하는 이들이 많은 터.
세 사람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졌다.
전각의 삼 층 창가.
그 전각뿐 아니라 그들이 머물고 있는 거대한 장원에 노을이 드리우고 있었다.
*
대화가 이어지는 전각의 아래쪽.
더 아래쪽. 그보다 더 아래쪽.
지면 아래 전각의 지하.
위에서는 찻잔이 기울어지고 있었지만,
지하 석실에 있는 노인은 미쳐 갔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머리를 연신 찍어댔다.
쿵, 쿵, 쿵!
머리를 들었을 땐 그의 이마는 크게 부풀어올랐다.
험상궂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눈빛은 칙칙했다. 입매는 틀어져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인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곳은 특별했기에.
석실의 사면이 온통 거울.
천장조차 거울.
바닥조차 거울.
눈을 뜨고 있는 한은 어디를 바라봐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미칠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죽고 싶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죽고 싶어도 죽을 순 없었다.
“공동 장문인. 조용히 해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고 싶은 이유는 하나.
자신이 공동파 장문인이기 때문.
하지만 이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
“네 딸년의 눈을 뽑아 네놈 입에 처넣어야겠구나.”
“……………….”
죽지 못하는 건 딸 아이 때문.
또한 무공이 폐쇄되었기 때문.
단전은 파괴되었고, 내공이라곤 찾을 수 없는 몸.
죽고 싶어도 쉽지 않다.
죽고 싶어도 딸과 아들을 생각하면 죽을 수 없다.
환혼 후 갇혀 있는 세월이 어느덧 1년 여.
그동안은 공동파의 뇌옥에 있었는데, 최근 이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옮겨진 곳은 지옥이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거울.
거울.
거울.
“으으………….”
여기에도 타인.
저기에도 타인.
누워도 타인.
엎드려도 보이는 건 타인.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나는 누구?’
거울을 볼 때면 끝도 없이 떠오른다.
이 모습이 자신인가 싶을 때면, 들려온다.
- 공동 장문인.
그럼 또 미쳐 갔다.
“으으…………………….”
언제까지 이 지옥에 머물러야 하는 건가.
이 지옥은 언제 끝나는 건가?
*
곧!
그곳의 장원 위를 색관조가 날았고,
멀리서 후공이 장원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