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55화 (355/460)

355화. 혈종마군과 화공신타.

감숙성 북부 금창현.

그곳에서도 놈들의 은신처는 태언장.

서쪽 외곽의 거대한 저택.

멀리 떨어진 작은 산 언덕에서 후공은 태언장의 하늘 위를 높이 날고 있는 색관조를 바라봤다. 높이 날아야 했다. 상대는 분명 현경의 고수들일 터. 과거 흑전을 상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위협이 될만한 적은 몇 명인가?

최소 셋.

후공은 이미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들었다.

지금의 경지에서 듣지 못할 건 없다.

안휘 북부 천화서고에서 안휘 중남부에 위치한 남궁세가의 대화도 들을 수 있다.

고작 현의 영역을 살피고 듣는 건 우스운 일.

놈들의 방심도 한몫했다.

전음을 나눈 것도 아니고, 기막을 두르지도 않았다.

새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은 것이 화근.

셋 중 하나는 공동 장문인으로 환혼한 자.

악무극을 수하로 둔 놈.

악무극은 자신의 주인이 안령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했다.

나머지 둘에 관한 정보는 악무극에게 없었다.

교릉을 지나 풍제의 섭혼으로도 악무극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하긴, 악무극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

자결대.

천하제일인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투입된 시험지 같은 것에 불과하니.

세 사람뿐이라면 문제 될 건 없다.

네 사람이어도 마찬가지.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인질.

공동파 장문인과 장로들.

그들의 식솔, 그들의 핏줄.

그들의 소리는 불분명.

위치도 찾지 못했다.

소리를 차단한 것인가, 아니면 진법의 영향하에 있는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있다는 전제 아래 대응해야 한다.

그러니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건 무리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적을 눈앞에 두었는데 막막하군요.

현음신녀였다.

그 전음을 검존이 받았다

- 땅을 파고 들어가 구출하는 건 어떻소?

- 검존, 지하에 있다는 보장이 있나요?

- 흐음…….

검존은 침음성만 흘렸다.

풀을 건드려 뱀을 도발하는 격이다. 화를 입을 수 있다. 물론 화를 당하는 건 공동파 인사들.

검선도 미간만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한 비책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 인질에는 인질로 대응하는 것이 상책인데…….

- 오호!

당명의 전음에 검선이 탄성을 발했다.

하지만 당명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한데 환혼을 다루는 놈들에게 인질이 통할까?

- …….

좋아했던 검선은 이내 시무룩.

생각해보니 몸을 멋대로 바꾸는 놈들이 아닌가. 그런 놈들에게 사람의 정이란 게 남아 있을지 회의가 드는 것이다.

후공도 동감이었다.

인질로 맞대응하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그러니 이번엔 다른 방식.

후공은 풍제에게만 전음을 발했다.

- 풍제, 너와 내가 하자.

- 그때처럼?

풍제가 바로 이해하고 미소를 띄웠다.

그때처럼.

풍제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듣자니, 후공은 과거의 젊은 한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 후후, 그래.

후공은 풍제와 몇 마디 더 나눈 후, 모두에게 전음을 발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걱정의 말도 흘러나왔다.

그런 다음 후공은 홀로 신형을 날렸다.

그렇게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검선이 뚱하니 입을 내밀었다.

- 대공자는 사기꾼인가?

- 검선, 천재라는 좋은 말을 두고 왜 사기꾼이란 게요?

검존이 나무라듯 말했지만 검선은 동의하지 않았다.

- 이 정도면 천화서고의 천재가 아니라 어디 이름 높은 사파 출신이라고 해야 할 정도잖소! 어떻게 된 게 하는 일마다 괴상하기 이를 데 없으니.

- 그러고 보니…….

검존이 풍제와 암향야를 한 사람씩 바라보다, 다시 풍제를 바라보며 전음을 이었다.

- 풍제, 솔직히 말해보시오.

- 응?

- 일전에 날 납치하고 고문했던 일 말이오. 그거 사실 대공자의 생각 아니었소?

- 서생 나부랭이가 그렇게 지독할 리가.

- 그 서생 나부랭이가 꽤 지독해 보이오만?

- 전혀. 그때도 대공자는 엄청 말렸지.

- 근데 왜 웃고 있는 것이오?

- 후후,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름대로 순진했던,

첫 만남에서 따라 나오라는 말을 한 후, 곧 따라 나가겠다는 말을 믿고 계속 기다렸던 전적이 있는 마교 교주는 ‘사기꾼’ 이란 말에 사실 동감하고 있었다.

대형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정면 승부는 필요할 때만이 한다.

함정을 파는 걸 좋아한다.

뒤통수치길 좋아한다.

어떨 땐 사라져버리기 일쑤.

그저 최상의 결과를 원할 뿐이다.

대형은,

대형이면서 동시에 스승.

귀계와 음모는 모두 대형에게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때 이미 후공은 태언장 부근에 있었다.

이백여 장 너머였고, 커다란 주루의 지붕 위였다.

날은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

주루 아래쪽으로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고, 맞은편 객잔의 창가에서도 올려다보면 지붕 위를 볼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후공이 서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상태로,

탐향(探香)!

천향사주를 운용하니 수천 개의 선이 일시에 뻗어나갔다.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하강해 부딪혀 간 곳은 태언장.

수천 가닥의 선은 살아 움직이듯 향을 탐지했다.

이어진 선을 통해 후공은 각각의 향을 빠르게 분석했다.

태언장 내 사람의 숫자는 육십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쉬고 있는 이, 움직임이 없는 이들까지 모조리 파악했다.

하지만 정작 알고 싶은 건 공동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모든 곳을 샅샅이 탐색한 후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향이 전무한 한 곳이 있었다.

담벼락이며 지면의 흙이며 각각의 향이 탐지되건만, 유독 한 곳만은 향이 전무했다.

이 세상에 향이 나지 않는 건 없다.

무향(無香)이라 불리는 것조차 향은 존재한다.

하지만 향이 탐지되지 않는다면?

진법.

진법에 의한 교란.

태언장 내 북서쪽.

공동파 인사들은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들어갈까?’

잠깐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떨쳐냈다.

진법 내부의 상황을 모르는 가운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가장 안전한 길,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 상책.

돌아가자, 돌아가자.

요주의 인물들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추혼자라는 이름을 들었고, 노란 눈동자를 지닌 새를 시안조라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짐작대로 추혼자는 시안조의 시야를 공유하는 이.

어떤 공능인가.

궁금해졌고, 쓸만할 것도 같았다.

또 들려왔다.

검성에 대한 이야기.

검성은 환혼되었던 건가?

의미 없다.

후공은 세 명의 요주의 인물들에게 천향의 선을 남겨두고, 나머지 모든 선은 끊어냈다.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후, 신형을 날렸다.

*

춘와루.

봄이 피어난다는 뜻처럼 춘와루의 지붕은 연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으하아아아함!”

그 아래, 별채에서 춘와루주가 늘어지게 하품할 때였다.

슷!

‘뭐야?’

춘와루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확히는 눈은 그대로였다. 커지지 않았다. 그냥 본인이 느끼기에 그랬다.

갑자기 몸이 뻣뻣해져 눈을 깜박일 수조차 없었고, 목소리도 낼 수 없는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건 혈류뿐.

이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니 움직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싶었지만, 춘와루주는 안색만 창백해졌다.

방안에서 점혈된 것이다.

그것도 하품을 하다가.

‘누…… 누구?’

- 루주.

전음이 들렸을 때, 보였다.

스스스스.

눈앞에서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웃고 있는 입매가 보였다가 코가 보이고, 눈이 보였다.

‘아는 얼굴이야!’

어딘가 익숙한 얼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누구였지?’

아니, 그보다 내 눈앞에 있었다고?

루주는 침을 삼키고 싶어졌다. 잘 안 됐다.

은신이 풀리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제라면 이 정도의 절세고수와 친분이 없다는 것.

한데 왜 아는 얼굴 같지?

시간은 또 왜 이렇게 더디게 흐르는 것 같지?

머릿결이 드러나고, 목도 보였다.

이목구비도 더욱 또렷해졌다.

‘본 적이 있어!’

틀림없었다.

근데 왜 생각이 안 나는 거냐.

창백해진 건 안색만이 아니어서겠지. 머리도 얼어붙어서겠지.

눈동자로 두려움을 담고 물었다.

‘누구실까요?’

그때 들려왔다.

- 천화서고 대공자.

‘아……!’

그제야 알아본 루주가 웃었다. 웃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려다, 손까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고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이젠 기억났다.

만난 적이 없었다. 그저 보았을 뿐.

대공자의 초상화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너무 많이 봐서 지금은 너덜너덜해진 상태.

- 루주, 무례를 범했습니다.

‘……!?’

그러게. 왜 무례를 범했을까?

하오문의 친구인 우리 대공자께서.

- 귀 밝은 이들이 부근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하!’

- 이제부터는 전음으로 이야기 나누도록 하죠.

‘그럼세.’

이내 점혈은 풀렸다.

손이 닿지도 않아, 루주는 여태 삼키고 싶었지만 삼키지 못했던 침을 삼켰다.

- 대공자,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대체 누가 듣는다는 것인가? 누구를 상대하고 있기에 이렇게 조심스러운 것인가?

- 별일 아닙니다.

- 그래서? 아! 아니 그보다 나 지금 잠깐 춤 좀 춰도 되나?

감숙성 북서.

무림맹이 감숙성 남부에 있다 해도 자신에게까지 대공자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꿈도 못 꾸었던 루주가 덩실덩실 춤을 추려 했다.

- 안 됩니다.

- 어…….

차분히 앉아 전음이 오갔다.

- 태언장을 아십니까?

- 태언장? 알고 말고. 한데 태언장이 그렇게 대단한 곳이 아니네만…….

- 대단합니다. 너무 대단한 곳은 오히려 별 볼 일 없어 보이지요.

- 그, 그런가?

루주가 더듬거리며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 전각 몇 채를 부숴야겠습니다.

- 당연히 우리 것이어야겠지?

- 후후.

- 열 채 정도면 되겠나?

- 씀씀이가 크시군요. 마음에 듭니다.

칭찬에 루주의 입이 귀에 걸렸다.

- 열다섯 채 부를 걸 그랬구먼.

- 하하하!

- 이유는 들려주겠지?

- 그럴 리가요.

- 하하, 자네 대답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루주는 전음이지만 껄껄 웃었다.

대강 짐작할 순 있었다.

하오문이 괜히 하오문인가. 하오문에서 구른 세월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대공자가 전각을 이유도 없이 부술 리 만무하다.

혼자 부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건 그러니까 싸움이다.

거짓 싸움.

열 채의 전각은 속임수.

부수고 부수면서 최종적으로 옮겨갈 곳은 태언장.

대공자가 찾아온 이유라면,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

대체 태언장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그에 대한 답은 어떻게 해도 듣지 못할 것 같아, 루주는 질문을 돌렸다.

- 대공자, 누구와 싸우는 건가?

- 제가 싸우는 건 아닙니다.

- 응? 그럼?

- 화공신타.

- 화, 화공신타?

루주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 북교산에서 성숙노괴를 때려죽인?

- 네.

그 화공신타와 대공자 사이에 친분이 있었을 줄이야.

- 그, 그럼 화공신타의 상대는?

- 다른 괴물.

- 화공신타 외 다른 괴물이 또 있다고?

- 그리고 태언장에도 괴물들이 머물고 있지요.

- …….

*

그로부터 반 시진 후.

두 괴물이 날뛰었다.

“혈종마군! 내 오늘 너의 목을 부숴뜨려주마아아아아!”

“화공신타, 대체 내게 왜 그러는 것이냐!”

풍제는 혈종마군이 되었고,

후공은 화공신타가 되었다.

쿠콰콰광!

혈종마군의 몸이 전각을 지붕을 뚫고 처박히면서 뿌연 먼지가 피어났다.

“클클클, 지붕을 뚫고 숨었네?”

“시발, 이게 숨은 거냐!”

전각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어도 소용없어!”

“숨은 거 아니라고!”

“숨었잖아!”

화공신타가 킬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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