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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357화 (357/460)

357화. 앗, 따가워!

투명한 벌의 이름은 백봉(白蜂).

투명할 뿐 아니라 기척조차 없다.

빠른 날갯짓에도 어떤 소리조차 없는 건 백봉이 혼종인 탓이었다. 독벌과 풍열충의 혼종.

교배의 난이도는 높고, 결과물은 최상이었다.

꼬리에서 쏘아내는 독침 또한 독보적이다. 독침의 흐름은 현경의 고수라도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호신강기를 스며들 듯 돌파하며, 그 위력은 단 한 방만으로 사지를 마비시킨다.

그것이 누구라도.

만독불침의 존재라도.

- 광충(狂蟲), 백봉을 발출했나?

워낙에 은밀한 탓에 곁에 있는 뇌극파와 안령비조차 알아차릴 수 없었고, 극히 미세하게 풍겼다가 빠르게 사라진 향의 변화로 짐작했을 뿐이었다.

- 방금.

- 어느 정도.

- 절반.

- 하긴.

절반이라면 광충이 내보낸 백봉은 삼천 마리.

어떤 경우엔 한 마리로도 충분하고,

또 어떨 땐 백여 마리 정도면 넘쳐났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화공신타.

막대한 힘을 응축하고 있는 진법을 단 일 장에 날려버린 이.

단순히 미친 자라고 하기엔 무공 수준도 미쳤기에, 삼천 마리 정도로 대접받아 마땅했다.

생각지도 못한 수단이 있겠지.

놀라운 수단을 발휘해 떨쳐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삼천 마리가 차곡차곡 누적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그렇게 되면 보게 될 것이다.

등이 굽은 꼽추의 당혹에 찬 표정.

들창코에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눈이 흔들리는 광경도.

그땐 눈을 뽑아주마.

입을 찢어주마!

화공신타, 넌 어떤 수단을 갖추고 있느냐.

보여봐라!

불안함은 한 줌, 기대는 커다랗다.

그렇게 바라볼 때…….

후공은 이미 벌떼를 보고 있었다.

대략 벌떼의 숫자는 삼천 마리 정도.

느낄 수도 있었다. 향을 맡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혼종?’

벌떼에게서 풍열도 느낄 수 있었다.

천룡대전에서 접했던 풍열의 향과 비슷했고, 삼악 중 유독 독양충의 기운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식사 때라고, 오랜만이라고, 풍열은 언제나 환영이라면서.

그건 육각망과 영악초의 기운도 같았다.

융화의 한 부분인 풍열만이 아니라 독특한 기운이 느껴진다면서, 별식이라는 듯 전신경맥을 회오리치듯 날뛰었다.

맛을 좀 볼까.

후공은 독양충의 향을 흘렸다. 그 순간, 벌떼들이 폭격하듯 밀려들어 전신을 뒤덮고는 독침을 꽂아 넣었다.

스며들듯 호신강기를 관통.

‘놀랍군.’

관통 후 파고든 순간, 삼악이 미쳐 돌았다.

활력이 샘솟듯 솟아나는 가운데,

“앗 따거! 앗 따거! 이건 뭐야, 따가워!”

손을 휘저어대면서 방정을 떨어주었다.

지금은 화공신타이기에.

요란함도 잠시, 점점 나른해지는 너머로 삼악이 융화를 이루며 증폭하고 있었기에, 후공은 고개를 떨군 채 그 상태로 휘도는 기운을 음미했다.

그런 모습에 뇌극파와 안령비가 클클거렸다.

“역시로군.”

“이제 끝내도록 하지.”

하지만 광충은 아니었다.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어느샌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고개도 갸웃했다.

그 모습에 뇌극파가 전음으로 물었다.

- 왜 그러지?

- 뭔가 달라.

- 다르다니?

- 백봉이 화공신타의 몸에서 떨어져나가고 있다.

- 떨어져나간다고?

뇌극파는 볼 수 없었지만, 광충은 볼 수 있었다.

후두득, 후드득.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나가떨어지며 죽어가는 상황.

백봉이 독침을 발출했다고 죽는 일은 없다.

발출 후에는 돌아온다.

독침을 쏘아낸 후 그로부터 다시 이십여 일이 지나면 독침은 재생성된다.

한데 백봉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저 맥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형태가 괴이했다. 마치 모든 체액마저 다 빨린 것 같은 형태.

‘백봉을 흡수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을 수 없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였다.

시작부터 백봉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삼천 마리 중 일부만 전방으로 향하게 하고, 나머지는 측면과 후방, 그리고 머리 위쪽을 날게 하려고 했는데, 백봉은 멋대로 움직여 화공신타를 전신에 다닥다닥 붙은 터.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본 적이 있긴 하다.

독양충!

독양충을 마주하면 백봉은 미친다.

풍열과 혼종이기 때문.

하지만 독양충은 어디에도 없거늘.

화공신타가 독양충의 내단을 복용했다고?

사람이 그럴 순 없다.

사람이면.

아니, 내단을 복용했다고 해도 그건 내단일 뿐이지 않은가. 풍열과 백봉이 독양충에 유인되는 건 독양충이 뿜어내는 유인향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광충(狂蟲). 벌레에 미친 자라는 별호를 지녔기에, 광충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기이한 징후는 그뿐만이 아닌 것이다.

소맷자락에 머물고 있는 남겨진 삼천 마리의 백봉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대로면 모두 뛰쳐나갈 것만 같은 기세. 통제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왜…… 통제가…….’

그때 지하에서 혈종마군이 튀어나왔다.

“신타, 가만히 뭐해?”

“…….”

“뭐하냐고?”

“힘이…….”

“힘이?”

“힘이…….”

“그러니까 힘이 뭐?”

“힘이 넘쳐난다아아아아아아!”

고개를 쳐든 화공신타의 두 눈에서 신광이 뿜어져 나왔다. 줄기줄기 자줏빛 광채가 끝도 없이 뻗어 나가니, 거의 눈으로 포효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땐 소맷자락 안에 머물던 나머지 백봉들도 이지를 상실했다. 백봉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향취. 독양충의 향취가 짙게 풍겨 나왔기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빨려들어갔다.

화공신타의 자줏빛 신광은 더욱더 강렬해졌고, 전신에서도 기운이 넘실거렸다.

“더! 더! 더!”

이젠 후두둑 소리가 날 지경.

빠르게 진액을 빨리고, 빠르게 죽음에 이른 백봉들이 들러붙었다 싶은 순간 떨어져나갔다.

그제야 볼 수 있게 된 혈종마군이 광충 쪽을 바라봤다.

“이 새끼들아, 나도 줘!”

“…….”

“…….”

“…….”

광충과 뇌극파, 안령비는 들리지도 않았다.

화공신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뇌극파와 안령비에게조차 이제 백봉의 사체가 보이는 것이다. 화공신타의 발아래 백봉이 쌓여가면서 연한 회색 빛깔로 보이고 있는 터.

무엇보다 화공신타가 문제였다.

화공신타가 발산하는 기운이 폭풍처럼 주변을 휩쓸어가면서 광풍이 태언장에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대체…….‘

‘왜……?’

놀라움은 이어졌다.

두득, 두드득, 두드드드득.

화공신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가 연신 터져가면서 얼굴이 변하고, 체형이 달라졌다. 흉악스러움은 사라지고, 점점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미청년으로.

처음 보는 얼굴.

누군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본 적이 없다.

‘화공신타가 아니라고?’

“너, 너는…… 누구냐?”

“누굴까?”

“처…… 천화서고 대공자!”

알아본 이가 있었다.

경악성을 토해낸 건 다른 쪽 전각의 이 층 창가. 시안조를 통해 낯을 익힌 추혼자였다.

그땐 이미 풍제도 역용을 해제하였기에,

“풍, 풍혼마제!”

알아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추혼자가 휘청였다.

그리고 그땐 이미 다른 이들도 태언장에 신형을 내려서고 있었다.

“헉!”

추혼자가 격하게 숨을 들이켰다.

이젠 추혼자의 외침이 없어도 광충 등은 알 수 있었다.

암향야와 검선과 검존.

그리고 두 여인.

공동파에서 추혼자가 시안조를 통해 보았던 이들.

무림맹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 뒤 공동으로 향하던 검선까지 합류한 듯 보이지 않는가.

빙 둘러보던 광충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격렬히 웃음을 터뜨렸다.

뇌극파와 안령비가 그 뒤를 이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자신감 따위가 아니다.

그야말로 완패.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광경을 보고 있어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진작에 와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 있으려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시안조를 부리고도,

공동파 장문인을 비롯한 여러 인질을 최후의 보루로 잡고 있었음에도 완패. 완전히 농락당하고 말았기에, 나오는 건 웃음밖에 없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 해도!

“하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생의 마지막이 될 웃음을 다시 한번 터뜨린 광충과 뇌극파, 안령비가 신형을 쏘아갔다.

오직 한 사람.

화공신타를 향해.

천화서고 대공자를 향해.

*

웃길 잘했다.

안령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쿠우웅!

“끄으으윽…….”

지면에 처박히는 데까지 십여 초도 걸리지 않았다. 비검이 날아들고, 공방이 이어진다 싶을 때 소녀의 손이 스쳤을 뿐인데 얼어붙으며 신형이 무너졌다.

그래도 자신의 처지는 광충과 뇌극파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광충은 두 다리가 쓸려나간 채 두 팔로 기고 있고, 뇌극파는 복부에 구멍이 뚫려 피를 연신 게워내고 있으니.

이걸 낫다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아니겠지.

안령비는 자신의 몸이 멀쩡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몸은 공동파 장문인.

환혼 대상이 귀운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환혼을 시키려 하는 것이겠지.

“끄으으으으…….”

가능할까?

아마도.

반시진 전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화공신타, 아니 천화서고 대공자를 보기 전까지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을 터.

하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진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

추혼자는 도주 중이었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신형을 날렸다.

시안조를 챙길 만한 여유는 없었다.

더 달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바라봤다.

시안조가 따라온다. 시안조가 속도에 맞춰 따라오고 있었다.

‘오지 마! 다른 곳으로 가! 멀리, 아주 멀리!’

연결된 의식을 따라 시안조를 떨쳐냈다. 지금은 함께하면 안 된다. 하지만 시안조는 듣지 않는다. 여전히 따라오고 있을 뿐. 시안조가 자신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란 건 알지만, 그건 추혼자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상대는 경이로운 이들.

진즉에 시안조를 발견한 이들.

그러니 자신은 잡힐 가능성이 컸다.

시안조, 너는 살아라.

시안조, 너만은.

따라오면 죽어!

제발!

그때였다.

“어디 가냐?”

“으허헉!”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온 목소리에 추혼자가 놀라 신형이 헝클어지면서 뒹굴었다.

데굴데굴 굴러 몸을 일으킨 추혼자의 눈에 뻗어오는 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손 너머의 얼굴까지.

‘……암향야.’

이내 몸이 굳고, 감싸졌다.

이어 엄청난 바람이 얼굴에 불어닥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땐, 태언장이었다.

덜덜.

추혼자가 몸을 떨었다.

어찌 그렇지 않을 것인가.

광충, 뇌극파.

하늘보다 대단해 보이던 두 사람이 피투성이로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떨 수밖에 없었다.

*

시안조는 부록처럼 따라왔다.

잡힌 주인을 따라 태언장 위를 맴돌고 있자니,

[안녕, 난 색관조라고 해. 누군가는 묵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그래서 넌 누구니?]

[그으으으으으으윽!]

말하는 새와 금빛 두꺼비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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