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60화 (360/460)

360화. 마치 전서구를 띄우듯.

추혼자를 처리한 당명이 밖으로 나왔다.

혼자는 아니었다. 나온 건 둘. 하지만 다른 하나는 시신.

축 늘어져 질질 끌려 나오는 주인의 모습에 시안조가 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기절한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연결은 완전히 끊어졌다. 주인과 다시 만날 수 없음에 시안조가 구슬프게 울었다.

[꾸우우우우우우우우우.]

쌓인 시체 더미 위에 던져진 주인의 모습에서 시안조는 눈을 떼지 못했고, 낮게 날았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주인님은 천하제일이야!]

[그윽, 그윽!]

[그리고 현이신녀님은 바보 멍청이고!]

[그으으으으윽!]

그렇게 믿고 싶은 색관조와 금섬이 밖으로 나온 주인을 향해 날아갔다.

주인이 팔을 내밀었기에 팔에 내려앉았다.

[주인님, 이것 좀 봐요! 우리가 드리려고 따왔어요!]

[그윽, 극극!]

후공이 보니 산딸기였다.

탱글탱글 신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디 맛 좀 볼까?”

후공은 산딸기 하나를 집어 맛을 음미했다.

“크흐음.”

[왜요? 맛이 별로일까요?]

“그게 아니라…… 천하제일인이 된 것 같은 기분? 공청석유보다 더 좋은데?”

[까르르르르르르! 말도 안돼. 까르르르르르르르르!]

[큭큭큭큭!]

색관조와 금섬이 뒤집어지며 웃었다. 정신 놓고 웃다가 팔에서 떨어졌다가 화들짝 올라와서도 또 웃었다.

주인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주인님은 듣고 계셨던 걸까.

그러셨을 테지.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이겠지.

괜찮다고,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라고.

그랬다.

후공은 추혼자와 마주하고 있는 중에도 하나의 의식을 분리해 주변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현이신녀와 색관조의 대화. 그 안에 담긴 두 영물의 불안도.

하등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별을 걱정했다는 것에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지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후공은 색관조와 금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색관조와 금섬이 손이 닿을 때마다 머리를 더 들이밀었다.

그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후공은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작작 문질러! 손에 구멍 나겠다!”

[까르르르르르, 너무 치댔을까요?]

“그래.”

[극극극!]

“천하제일인이 된 기념으로 추격전 한번 하자.”

[좋아요!]

[그윽, 그극!]

그 순간, 땅 속에서 네 자루의 검이 튀어나왔다.

화공신타가 되면서 땅속 깊이 파고들어 지하에 머물고 있던 검령과 번쾌친이었다. 일제히 검집을 벗어나며 천둥 소리를 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쿠르릉!

네 줄기 자줏빛 광채는 교차하며 주인의 몸 주위를 선회하다 한 방향으로 일제히 날아갔다.

“잡아라, 천하제일조! 천하제일섬!”

[까르르르르르르! 이놈들아, 거기 서라!]

[그으으으으으윽!]

검이 날고, 새와 두꺼비가 쫓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검도 새도 볼 수 없었다.

후공이 검집들을 불러와 등과 허리춤에 체결할 때, 한 전각에서 기막이 거둬지면서 전음이 들려왔다.

- 대공자, 잠깐 들어와 보시겠어요?

소녀의 목소리. 현음신녀였다.

후공이 방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기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공동파 장문인 학정이 머리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금제구나.’

후공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 이처럼 괴로워하는 건 과하다. 짙은 한숨이나 탄식이면 모를까.

떠올렸을 기억은 장문인 자신의 기억이 아니다.

바뀐 몸의 기억. 안령비의 기억.

“신녀, 무슨 일입니까?”

“금제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걸로 보여요.”

“놀랍군요.”

“같은 생각이에요.”

놀라울 수밖에 없다.

공동파 장문인의 몸 안에 안령비는 없다. 두 개의 혼이 머물고 있는 것도 아닐진대, 단순히 기억에 불과할진대 그것만으로 금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질문이었습니까?”

“회영부주, 그리고 그들의 본거지에 대한 것이었어요.”

“다행이군요.”

그나마 다행.

그 외 정보는 들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물론 공동파 장문인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에는 최근 일 년의 기억이 없다. 환혼은 일 년 전에 일어났으니.

“대공자, 여기에서 멈춰야겠어요.”

“물론입니다.”

후공은 바로 수긍했다.

어차피 공동파 장문인의 기억은 검증을 위한 것일 뿐.

실제 필요한 정보는 뇌극파와 안령비를 통해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둘에게도 금제가 발동하겠지만, 금제가 발동하는 조건에 해당하는 질문이 아니라면 말하게 될 터. 듣게 될 터.

후공은 괴로워하는 공동파 장문인에게 다가갔다.

“장문인.”

“으으으으으으으…….”

머리를 쥐어뜯듯 하면서 신음을 발하던 장문인이 일그러진 얼굴로 올려다봤다.

‘천화서고 대공자…….’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군요. 그 아래 드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초원을 하얀 말이 마음껏 달리고 있습니다.”

“…….”

장문인 학정의 머리에 그 광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나뭇잎과 풀잎들이 천천히 나부낍니다. 그곳을 달리는 하얀 말을 바라보고 있자니…….”

“……?”

학정이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어느새 자신의 오른손이 대공자에게 잡혀 있었다.

손이 맞닿아 있었고, 맞닿은 손을 타고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는군요.”

“아……!”

학정은 순식간에 마음의 평온을 찾아갔다.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고, 기운도 차올랐다. 일시적으로 흐트러진 정기신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만큼 대공자가 주입한 진기는 따스하고 웅혼했다. 기경팔맥을 감싸며 천천히 이동하면서 머리가 맑아져 갔다.

어떤 기운인가?

내력이 어느 정도인가?

이토록 강대한 진기 유도는 그로선 처음 겪는 일이었다.

“대공자…….”

“평온해지셨습니까?”

“사실이었군.”

“초원을 달리는 백마 말입니까?”

후공은 빙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학정도 따라 웃었다.

“맞네. 백마!”

사실이었다.

현음신녀에게 듣기는 했어도 믿지 않았거늘.

학정은 이제 알 수 있었다.

대공자가 자신을 구했음을.

*

검선과 검존도 심문을 멈췄다.

심문하고 있던 건 안령비.

금제가 발동되면서 더 이상 심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안령비의 눈이 붉게 물들면서 피눈물이 차오르고 당장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변했기 때문이었다.

마혈이 점혈되었음에도 괴로움에 몸을 꿈틀거릴 정도라면 멈출 수밖에 없다.

안령비의 모습은 공동파 장문인 학정.

이대로 죽게 둘 순 없다.

기약은 없지만, 이 몸은 보전해 두어야 한다.

소향객의 몸을 보전해 둔 것처럼.

수혈을 점하고 점해 가까스로 잠들게 한 후, 현이신녀를 불렀다.

이내 안령비의 몸이 꽁꽁 얼어붙었고,

두터운 얼음벽에 갇혔다.

하지만 뇌극파의 사정은 달랐다.

살아야 할, 살려 두어야 할 이유가 없는 뇌극파는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에도 죽지 못했고, 금제가 발동되었음에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영부주는?”

축 늘어져 몸이 둥실 떠 있는 상태.

그 상태로,

“회영부주는, 회영부주는……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발버둥쳤다.

그럼에도 풍제는 멈추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채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다시 묻는다. 너의 주인은 누구냐?”

“헉헉…… 나의 주인은…… 나의 주인은 풍혼마제…… 천마신교의 위대한 존재…….”

“그래, 회영부주는 내 손에 죽는다.”

“회영부주는 주인의 손에 죽습니다.”

“내가 놈을 죽일 수 있게 도와다오.”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제 모든 걸 다 바쳐! 반드시!”

“회영부주가 있는 곳을 듣고 싶다.”

“회영부주는…… 회영부주는…….”

뇌극파의 눈이 텅 비어 갔고, 한순간 눈을 질끈 감는가 싶더니 다시 비명을 토해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두려워할 것 없다.”

“저는…… 회영부주가…… 두렵습니다. 그는, 그는……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급기야 뇌극파가 피를 게워냈다.

눈은 붉어지다 못해 검게 변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눈가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다시.”

“끄윽, 끅. 다시!”

“회영부주는 누구냐?”

어느 순간부터 끝도 없이 똑같은 질문이 던져졌고, 대답도 같았다. 그저 비명 소리. 그 가운데 뇌극파는 죽어갔다. 두텁게 핏대가 목의 혈관이 터졌고, 코와 귀로도 피를 흘렸다.

거의 전신이 피로 물들고, 그가 흘린 피가 바닥을 적실 때까지도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이 이어진 후.

“…………………….”

이제 더 이상 대답은 없었다.

둥실 떠올라 축 늘어진 뇌극파가 있을 뿐.

그럼에도 풍제는 몇 번 더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

“회영부주.”

뇌극파를 바라보며 불렀다.

마치 회영부주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기다려라. 곧 찾아가마.”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뇌극파는 추혼자의 몸 위로 던져졌다.

높게 쌓인 시체 더미 앞에서 후공은 화극을 일으켰다.

염화.

지옥의 불길을 던지자 순식간에 타올랐다.

푸른 불꽃이 뒤덮었고, 그 열기에 놀란 하오문 루주가 뒤로 연신 물러났다. 한참을 물러나도 열기가 느껴져 더 물러나야 했다.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공동파 인사들도 주춤했다.

타고 있었지만 연기는 없었다.

그저 순식간에 녹아내리듯 스러져 줄어들어갈 뿐.

그 불길 속으로,

[꾸우우우우우우…….]

노란 눈동자의 시안조가 날아들었다.

불길에 닿았다 싶을 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화극의 염화가 모든 것을 녹이는 가운데 불꽃이 점차 줄어들어 갔다. 항아리 크기 정도로, 그리고 더 작게. 더 작게. 그 불꽃 속에 모든 것이 갇혀 있었다.

추혼자도, 시안조도.

그리고 광충과 뇌극파도 칠십여 검수들도.

불꽃은 이제 더 작아졌다.

주먹에 쥘 수 있을 만큼의 크기였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겼다.

더 작아져 작은 구슬 크기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염화의 푸른 불꽃이 사라졌다.

붗꽃이 사라지면서 그제야 연기가 피어났다.

연기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몇 사람만 알아보았다.

풍제와 당명, 그리고 검선과 검존, 현이와 현음.

연기가 아니다.

실은 연기처럼 작은 알갱이로 흩어지고 있음이었다.

영원을 꿈꿨던 영혼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단지 신기한 광경만은 아니었다.

‘대공자는 남겨 두고 싶어하지 않는군.’

검선은 대공자의 마음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검존은 대공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무엇도 영원할 순 없다.’

꿈을 꿀 순 있어도 영원할 순 없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서도 안 되고.’

무심히 바라보는 풍제의 마음에도 떠올랐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혼자 남는 건 지옥이 될 수 있다. 처음은 넘겨도 그다음엔, 그다음엔……. 그땐 죽음이 소망이 될 수도 있다.

‘그걸 견뎌내려면 인간이길 포기해야 할 테고.’

그리고 당명의 눈에는,

흩어지는 연기가 다르게 보였다.

대형이 회영부주에게 전서구를 날려보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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