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소림으로.
주변 정리는 끝.
향후 대책을 위해 일행은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먼저 각자가 캐낸 정보를 끄집어냈다. 면밀히 비교했다. 그 과정을 통해 정보의 허허실실을 가려냈다.
대부분 사실이었다. 다름이라면 세밀함의 차이.
섭혼을 통해 심문한 풍제 쪽의 정보량이 많았고, 정확도가 높았다.
환혼 세력에 크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정보량이었고, 금제로 인한 아쉬움도 오가는 대화 속에 희석되어 갔다.
대화에 쓸데없는 말은 없었다.
오가는 대화도 빨랐다.
모두가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취합되고 분류된 정보는 그렇게 각자의 머리에 새겨져 갔다.
시안조는 사십 여 마리.
시안조를 운용할 수 있는 이들도 그 정도.
추혼자가 알고 있던 것보다 많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회영부의 탐지 능력은 극상의 수준.
어디에서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안조는 빠른 데다 깃털 색까지 자유자재로 바꾸니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의 공능이었다.
물론 보고 듣는다는 것이 승리의 요건이 되는 건 아니다.
모르고 당하는 것과 알고 대응하는 건 천지 차이. 잘못된 걸 보게 하고, 잘못된 걸 듣게 하여 도리어 함정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또한 시안조의 운용에는 제약도 있다.
거리의 제한. 운용할 수 있는 거리는 무한이 아니다. 가장 높은 수준이라도 하나의 성을 살피는 데 그친다. 그 정도도 놀랍지만, 거리의 제약이 있는 건 다행인 점이었다.
그리고 회영부의 핵심 인물은 이십여 명.
회영부주, 오인의 호법, 두 명의 암주, 그리고 회영십존이라 불리는 이들.
회영부주는 금제의 장막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고, 오인의 호법과 두 명의 암주에 대한 건 뇌극파에게조차 아예 정보가 없었다.
드러난 건 회영십존.
십존은 모두가 환혼을 이룬 이들이었다.
뒤바뀐 이들의 면면은 생소한 이도 있고, 익히 알고 있는 자들도 있어 놀라움을 주었다.
환혼 전에는 누구였는지도 알게 되었고,
환혼 전의 공능도 오가는 대화 속에 마음에 새겨졌다.
그들의 위치는 금제로 인해 알 수 없었다.
회영부주는 누구인가?
장막에 가려진 그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어떤 자이기에 영원을 꿈꾸었나?
또한 그걸 실현했나.
환혼의 시작점이 어느 때인지도 의문 중 하나.
오래 전이라면 그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환혼한 것일까. 오래 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호의 과거사를 돌아봐도 전례가 없는 것이다.
오래 전이라면 드러나야 마땅했다. 과거 백 년 전의 절대 강자, 오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 강호에는 수많은 혈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져 내려온 강호사에 환혼은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회영부주, 그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금제의 장막 너머에 숨어 있는 걸 보면 그는 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
후공!
후공에게 환혼을 시도했으나 실패.
원래는 회영십존이 아니었다.
회영십일존.
십일존 중 하나가 환혼 후 후공이 되기로 했다.
그는 벽뢰존.
사전 작업으로 벽뢰존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단전이 파괴당했고, 기경팔맥은 모조리 끊어졌다. 팔다리는 잘려 나갔다.
멀쩡한 건 눈과 귀, 입뿐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환혼이 되었을 때, 후공이 새로운 몸을 얻게 되었을 때, 절망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혹여 놀라운 공능을 발현할 수도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엉망으로 만들어 두었다.
그 지경을 만들어 놓고 웃었다.
그 지경이 되었음에도 웃었다고 한다.
그 지경이 된 몰골을 부러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차피 새로운 몸을 얻게 되니,
이제 차지하게 될 몸은 천하제일인 후공의 몸이니.
하지만 환혼은 실패.
처음에는 실패를 믿지 않았다.
벽뢰존이 자신은 그대로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환혼이 실패했다고 해도 비웃음과 비아냥만이 쏟아졌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에 다시금 고문이 가해졌을 뿐이었다. 한쪽 눈이 뽑혔고, 인두로 몸 곳곳이 지져졌다. 원래라면 달구어진 인두라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벽뢰존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 와중 남아있던 한쪽 눈도 잃었다.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쳐도 소용없었다.
기억이 합일되기 전이니 과거에 있었던, 그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었다.
후공이니까.
천하제일인이기에.
두려움과 경계심에 후공이라면 기억을 곧바로 흡수할 수도 있다며, 과거의 어떤 특정한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았다.
밝혀진 건 이틀 후.
전서를 받은 뒤였다.
무림맹을 멀리서 살피던 시안조 편으로 후공의 죽음이 전해진 뒤였다.
엄청난 충격이 회영부에 들이닥쳤다.
환혼에 성공한 벽뢰존이 죽을 리 없기에, 그제야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터. 후공의 몸을 차지하고, 후공의 기억은 물론이고 그 무공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벽뢰존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리 만무한 것이다.
후공은 왜 자결했지?
그런 의문 대신 공포가 머리에 자리 잡았다.
후공은 죽지 않았다.
후공이 온다!
이제 그 후공이 올 것이다!
그로 인해 숨죽여 지낸 일 년여.
시안조를 통해 강호의 곳곳을 살폈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후공은 찾을 수 없었다.
후공을 못 찾았다 해도 후공을 만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후공이라면 반드시 만나고 찾게 될 사람이 무심결에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해 곳곳을 염탐했다.
무림맹,
제갈세가,
사천당가.
그리고 마교.
제갈혜의 동공은 텅 비었다.
한 달이 지나도, 맹을 떠나 제갈세가로 돌아온 뒤에도, 세 달이 지나도.
사천당가에는 웃음소리가 없었다.
암향야의 눈은 늘 먼 곳을 초점 없이 바라봤고, 입에서는 공허한 탄식만이 터져 나왔다.
마교는 접근이 불가했다.
사천당가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진법이 사방을 뒤덮고 하늘까지 이르러 두 마리의 시안조가 죽음을 맞았을 뿐이었다.
듣기는 했다.
외부로 나온 마교 지도부 중 누군가의 대화.
교주님을 볼 수가 없다.
교주님이 심마에 들까 두렵다.
후공에 대해서는, 교 내에서 그 이름을 꺼냈다가는 그 누구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대화를 들었다.
그 가운데 강호를 들썩이게 한 이는 천화서고 대공자.
그가 유령곡의 혈겁을 막고, 제갈혜를 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천공단주로 불린다는 것도.
그 천화서고 대공자가 후공의 신검을 찾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신검을 운용할 수 있음도.
하지만 단지 그뿐.
무림맹은 감숙성이고,
천화서고가 있는 안휘는 멀다.
그리고 신검은 도난당했을 뿐이었다.
후공이 천화서고 대공자에게 준 것이 아니었다.
그 후공이 내줄 이유도 만무하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하나하나 찾았음을, 그가 지나온 길을 훑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고, 험난한 여정이었음도 알게 되니 천화서고 대공자는 논외.
그때부터였다.
후공이 정녕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떨쳐낼 때였다.
그리하여, 그리하여 확인에 나섰다.
천하십객 중 소향객과 청우자를 환혼.
그중 소향객을 통해, 열섬망을 통해 무림맹을 파탄내면 후공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 확인은 실패.
이후 시안조를 통해 공동파에서 본 이들.
무림맹에 홀로 남겨진 화산의 검선.
그리고 지금.
벽뢰존의 생사는?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실수한 것이 아님에도, 그는 그저 팔다리가 잘리고 무공이 폐쇄당하였고, 그저 희망에 차 있었을 뿐임에도 죽음을 맞이했다.
다른 몸으로 환혼해 달라는 벽뢰존의 요구는 묵살당했다.
환혼의 실패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그에게 쏟아졌다.
“회영부주는 실패를 염두에 두었음이 틀림없어요.”
“그럴 테지.”
현음신녀의 말에 풍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그 자신이 환혼을 시도했으리라. 회영십일존 중 하나가 아닌.
“이제 대책을 세워 봅시다.”
대화를 나눈 지 일다경(약 15분).
무당 검존이 서두름을 보였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뇌극파와 안령비를 통해 얻은 건 하나가 더 있었다.
회영부의 두 번째 확인.
광충과 뇌극파, 안령비는 이미 전서를 띄웠다.
전서매가 향한 건 회영십존.
구대문파를 혼란에 빠뜨리려 한다.
표적은 구대문파의 장문인이었다.
장문인들을 환혼시켜 혈겁을 일으킨다.
그 과정을 통해 후공을 재확인한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소. 짧게는 닷새. 길게는 한 달여.”
여유롭게 길게 볼 순 없었다.
환혼 후 정기신의 합일이 있기 전이라도 혈겁은 일어날 수 있다. 장문인을 누가 의심할 것인가. 그러니 최선은 환혼이 이루어지기 전에 막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구대 문파가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고 천하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 모든 문파에 경고를 보내는 것도 난제였다.
“대공자, 좋은 방법이 없나?”
검존이 물었다.
대책을 의논해 보자며 말하고, 스스로 생각해 봐도 마땅한 대응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화서고 대공자라면 이미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았을까. 어느 순간부터 의지하게 되는 마음이 자리잡은 터라 대공자를 바라봤다.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저에겐 색관조가 있습니다.”
“아!”
검존이 탄성을 발했다.
색관조의 빠름은 시안조를 추적하는 중에 충분히 겪은 터. 하지만 이내 다른 걱정이 솟아났다.
그건 검선도 마찬가지.
검선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흐음, 색관조가 빠른 건 두말할 나위 없네만, 팔대문파가 색관조의 말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가 걱정이네. 화산과 무당은 색관조를 보았지만 다른 문파는…….”
팔대 문파라 칭한 건 공동파가 이곳에 있기 때문.
“소림을 제외하곤 모든 문파가 색관조를 알고 있습니다.”
“전부?”
“네.”
화산과 무당만 본 것이 아니다.
종남파가 알고 있고, 점창파가 겪었고, 아미와 곤륜, 청성파도 색관조를 알고 있다. 공동파는 이제 알게 되었고.
후공의 미소는 짙어졌다.
구대 문파를 하나하나 떠올리자니 지나온 길 인연을 맺은 이들과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반가워할 겁니다.”
“하하하! 그럼 우린 소림으로 떠나면 되겠군.”
검선이 웃음을 터뜨렸다.
검존도 따라 웃었다. 현음신녀도.
의심은 없었다.
겪어 보았으니, 대공자가 장담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풍제와 당명은 웃지 않았다.
대형이 지나온 길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는 터.
함께 다닌 것처럼 상세해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무심한 시선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있을 뿐.
벽뢰존이 내내 마음에 떠올라서였다.
대형이 천화서고 대공자가 아니라 벽뢰존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치가 떨리는 것이다.
팔 다리가 잘려나간 모습.
그런 다음에도 더 처절하게 당하는 모습.
그 모습이 대형과 겹쳐 보이니 웃을 수 없다.
‘죽인다.’
‘가장 처절하게.’
이제는 소림.
어차피 소림이 최우선이었다.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소림은 다른 문파와는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는 탓이다.
검성에 의해 백팔나한을 잃은 소림은 이번에는 멸절된다.
회영십존이 나선다고 했다.
후공에 의해 겨우 목숨을 부지한 소림을 아예 절망에 빠뜨리려 하고 있었다.
십존 중 전부가 나선다고 해도 문제고, 하나여도 방심할 수 없다. 그들은 치명적으로 강화된 이들. 그리고 특별한 묘용.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이건 그저 기회였다.
그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
풍제와 당명이 그렇게 생각했고,
후공 또한 같았다.
그리고 후공은 이번에는 늦지 않을 생각이었다.
소림의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