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소림에 원하는 것.
색관조는 가히 전속력.
목적지는 곤륜.
날갯짓 세 번에 산에서 산을 이동했다. 깃털은 뒤로 누웠고, 바람의 저항에 색관조의 머리는 뜨겁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등에 탄 금섬은 색관조의 깃털을 꽉 붙잡고는 머리를 처박고 들지 않았다.
그렇게 곤륜에 도착했다.
대청 앞을 거닐고 있는 장문인이 보였지만, 색관조는 먼저 곤륜산 주변을 빠르게 돌았다.
노란 눈동자를 가진 새가 있는지,
하얀 눈동자를 가진 새가 있는지.
새는 물론이고 수상한 사람도 없었기에 그제야 곤륜으로 진입했다.
[곤륜 장문인!]
“오호! 색관조로구나. 대공자가 온 것이냐!”
대청 앞을 거닐고 있던 곤륜 장문 제금이 반겼다.
[주인님은 오지 않으셨답니다.]
“그래? 그럼 전할 말이 있는 게로구나.”
[맞아요. 그리고 시간이 촉박해요.]
“들려주렴.”
제금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색관조가 까르르 웃지도 않고, 두꺼비는 땅에 내려서지도 않으니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사이 곤륜의 장로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대공자와 천공단이 왔다는 생각에 웃음을 머금고 달려왔던 그들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을 듣고는 조용히 곁에 머물렀다.
색관조의 말이 끝났을 땐,
“환혼?”
“회영부?”
“당장 곤륜을 떠나라니, 넌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장문인 제금 이하 모두가 미간을 좁히며 갸우뚱했다.
듣도 보도 못한 말이었고, 그 어느 것 하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환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 중에 거론된 이들도 현실감이 없었다. 풍제와 암향야, 검선, 검존, 그리고 북해빙궁의 궁주와 궁주의 사저까지 함께 움직이고 있다니.
각자 결이 다른 이들.
맹주가 살아 있다면 몰라도 그들이 함께할 리 없다.
가당치도 않다.
“하하하! 대공자, 장난은 그만하는 것이 어떤가!”
머리가 큰 제광이 주변을 둘러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공자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공단이 먼저 부근에 도착해 색관조와 작당을 하고 장난을 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제광의 웃음에 장로들과 장문인도 비로소 껄껄거렸다.
반면 색관조는 속이 타들어갔다.
이런 반응을 보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마음이 급해 색관조는 등에 식은땀이 솟아날 지경.
[지금 웃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장난도 아니라고요!]
“허허, 장단도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맞출 것이 아니냐.”
[그럼 이렇게 해요.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백 일 동안만 숨어요. 그럴 수 있죠? 주인님이 베푼 은혜를 잊은 건 아니죠?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허허허, 됐다. 먹을 걸 내줄 테니 먹고 쉬어라. 아니, 그 전에 얼른 가서 천공단이나 불러오너라.”
[으으으으으으!]
열 받은 색관조가 날개를 앞으로 모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금섬도 그 위에서 눈을 매섭게 떴다.
그 모습은 귀엽게만 보였다.
곤륜은 다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으으으으으으으으!]
[그으으으으으으으윽!]
하지만 색관조와 금섬은 이제 한계였다.
주인님께서 실망하실 모습도 떠오르고, 지금은 웃고 있는 곤륜이 펑펑 울게 될 모습도 떠올랐다.
[바보 멍청이!]
색관조가 날아올랐다.
[곤륜은 말똥구리, 개똥구리, 소똥구리!]
가장 가까운 전각으로 날아간 색관조가 전각의 벽을 향해 날개를 휘둘렀다. 쿠궁! 벽이 구멍이 뚫렸고, 그 안으로 들어간 색관조가 날아다니며 전각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금섬도 어느샌가 뛰어내려 지붕을 뚫고 튀어나와 기와를 박살 냈다.
“……”
곤륜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들은 이야기도 현실감이 없었는데, 지금 보고 있는 광경도 현실감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전각의 벽이 허물어져 가고, 두꺼비의 발길에 지붕이 주저앉고 기둥이 터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젠 곤륜의 모든 제자들까지 튀어나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감히 태운각을!”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너흰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제광을 비롯 장로들이 엄히 소리쳤다.
하지만,
“다들 조용.”
장문인 제금은 달랐다.
대공자의 영물들이 어디 보통 영물들인가. 영특할 뿐 아니라 주인인 대공자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놈들이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다.
이제 태운각은 뼈대만 겨우 남아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 그럼에도 영물들이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으니,
“곤륜은 들어라!”
장문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곤륜 제자들의 귀에 파고들었다.
[고마워요. 다들 또 봐요오오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아미파.
아미파에선 부수지 않았다. 부술 것도 없었다. 백혼곡의 신륜염제에 의해 모든 전각은 초토화되어 아미는 재건 중.
아미 장문 멸화사태의 반응도 곤륜과는 달랐다.
그녀는 이미 크게 교훈을 얻은 터라 아미를 떠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청성파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향한 곳은 운남.
색관조와 금섬이 점창파를 향해 날아갈 때,
사아아아아아.
회영칠존 흑야존이 소림을 향해 질주했다.
그가 산을 지나면 산은 어둠에 잠겼고, 강을 건너면 강은 칠흑같이 변했다.
소리와 시선을 잃은 산짐승들이 얼어붙었고, 강의 물고기들도 그 순간만큼은 물살을 가르지 않았다.
마을이 멀리 보였을 때, 마을에서 누군가 말했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걸 보니 비가 오려나 보구만.”
먹구름이 아니었다.
흑야존.
그가 마을을 훑고 지나니 어둠이 임했고 소리도 사라졌다. 길을 걷던 이들은 놀라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누군가는 벽에 부딪혔고, 누군가는 그릇을 놓쳤다.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 자신이 이미 죽어 지옥에 떨어진 것인가 하고 창백해졌다.
계단을 내려오다 구른 이들이 속출했다.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어 자신의 귀가 먹고 소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기의 엄마는 눈앞에서 아기를 잃었다.
방금까지 아기를 보며 미소 짓던 여인은 미치광이처럼 소리 지르며 아기를 찾아 더듬거렸다. 아기를 끌어안고 보았지만 아이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불러도 소용없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아이의 울음도 없어 여인이 절규했다.
어둠은 이내 가셨다.
소리도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금 빛과 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는 사방의 풍경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어둠이었을 뿐인데 폭풍이 쓸고 간 것만 같았다.
히이이잉!
달리던 마차가 객잔을 들이받고 전복되었고, 마차의 말들이 객잔 안을 미쳐 날뛰었다.
“으아아아아앙!”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기의 울음 소리에 안도하며 여인은 아기를 품에 더욱 끌어안았다.
“으으, 이게 대체…….”
“으으윽!”
2층 난간에서 추락한 이들이 꿈틀거렸다.
칼부림 중이던 건달 하나는 두려움에 어둠 속에서 칼을 휘젓다 자신이 두목의 배에 칼을 꽂아 넣고 있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중에는 화경의 극에 이른 고수도 있었다.
여섯 제자들과 반점에 있던 중원칠괴 중 일인인 천잠노괴는 빛이 돌아오고 소리가 돌아온 뒤에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듕듕?”
천잠육도 중 태대도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태미가 물어왔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무엇이었을까?
천지조화인가?
기이한 자연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잠노괴의 생각은 달랐다.
극단적인 정적 속에서 천잠노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치를 가늠하는 건 불가능.
‘어떤 자인가?’
만약 자신이 상대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다.
즉사!
소리를 잃으면서 균형도 동시에 잃었기에, 두리번거리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 터.
이런 공능을 지닌 자에 대해선 들은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숭산 소림.
밤을 맞아 소림 방장 릉찬은 홀로 처소에 있었다. 한쪽에 놓인 작은 불상을 향해 절을 올리고, 또 절을 올렸다.
서른 번, 이른 번, 아흔 번.
무릎을 꿇고 머리를 깊게 숙였다가 일어나 합창.
불호를 외운 후, 다시 무릎을 꿇었다.
백팔 배였다.
불당에서 하루 세 차례 올리고, 밤이 되면 다시 한번 백팔 배를 올리는 건 그의 일과 중 하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아흔셋, 아흔넷, 아흔다섯.
아무도 없는 방.
하지만 릉찬은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을 작은 부처상이 반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또 부처님은 어디에도 계시기에.
아흔아홉.
그런 릉찬을 바라보고 있는 건 부처님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릉찬의 뒤쪽.
서생. 청년의 모습.
후공이 보고 있었다.
일흔두 번째부터였다.
후공으로선 지금이 몇 번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시작이라 해도 기다려줄 의향이 있었다.
소림에 도착한 건 일다경 전.
도착해 숭산을 살폈고, 시안조의 존재 여부를 탐지한 터. 시안조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와중 소림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통해 달라진 소림에 대해 인지했다.
백팔 번째.
릉찬이 합창을 마치고 돌아섰기에 후공이 말을 걸었다.
- 장문인, 놀라지 마십시오.
귀를 파고든 전음에 릉찬이 놀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방 안에 있다. 밖에서 보내온 전음이 아니다. 그건 틀림없었다. 어느샌가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진 상황.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 전체가 기막으로 둘러싸였음이다.
“어디에서 오신 고인이십니까.”
놀람도 잠시 릉찬이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언제부터 들어와 있었던 것인가.
언젠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가.
알 수 없다. 누군지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경이로운 존재.
그리고 악의가 없다는 것.
평온히 기다리니 눈앞에서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에 릉찬의 눈은 깊은 의혹으로 물들었다.
‘누, 누구……?’
상상조차 못 한 인물이었다.
청년이어서 그랬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지도 일식경.
릉찬은 내내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로선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되는 건 하나 뿐.
눈앞의 청년이 천화서고 대공자라는 것 정도.
강호를 쩌렁쩌렁 울리는 명성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자라는 것만 이해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혼, 회영부, 구대문파의 장문인이 환혼의 표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대공자, 솔직히 이야기해 보게.”
“지금보다 솔직할 수는 없습니다만.”
대공자가 빙긋 웃었기에 그 모습에 릉찬은 내심 혀를 찼다.
“그대가 소림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소림의 대환단일 수도 있고, 소림의 무학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이룬 경지도 놀라운데 더 욕심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릉찬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릉찬이 깊어진 눈으로 천화서고 대공자의 눈을 들여다봤다.
마주한 눈이 말해온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소림.
그저 소림.
일년이 지난 후에도 네가 백팔 배를 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