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65화 (365/460)

365화. 대환단 내놔!

화공신타가 머리를 쳐들고 갸웃.

릉인, 아니 화영자가 눈동자를 굴려 그 시선을 따라갔다.

위치는 천장과 벽의 모서리.

‘뭘 보는 거지?’

화영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벽의 모서리에는 거미줄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화공신타는 보았다.

벽의 모서리가 아니다. 그 너머. 이어져 있는 천향의 선. 시안조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천여 장 너머.

여유롭게 날며 이제 구백여 장.

시안조를 통해 여기 이놈을 확인하려 한다.

정기신의 합일이 순조로운지, 환혼의 경과를 보려는 것이겠지. 시안조는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으니.

시안조에게 노출되면? 곤란하다.

여기에서 화공신타의 모습이 드러나는 건 화를 자초하는 일. 놈이 제압당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도 마찬가지.

시안조를 유인한다?

그건 하책.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최선책이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좌정하고 있는 모습이어야 하고,

시안조를 알아보고 여유 있는 미소도 띄워주면 좋겠지.

‘어떻게?’

여기 이놈이 시킨다고 따를까.

그럴 리가.

불확실한 확률에 운명을 맡기는 건 어리석은 일.

하지만 꼭두각시로 만든다면?

화공신타는 소매를 떨쳤다.

파팟.

“흐읍!”

화영자는 순간 몸이 이완되었기에 마혈이 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혈도 풀려 옅은 신음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이게 무슨……?’

화영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단숨에 점혈이 풀려서는 아니었다.

수많은 기운이 가닥가닥 전신을 휘감아 오고 있었다.

칠십 개? 팔십 개?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팔을 휘감고, 다리와 허리를 휘감았다. 가슴과 어깨도 순식간에 장악당했고, 기운은 목으로도 파고들었다. 기도와 식도를 휘감고, 또 다른 기운은 입안을 뱀처럼 기어다녔다.

혀는 순식간에 구속. 이어 눈 주변까지 뻗어 올라 눈가에 아른거렸다. 말을 해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혀도 움직이지 않았고, 목은 잠겼다.

놀라 눈을 부릅떴지만 그것도 생각에 그쳤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완전한 구속이었다.

굳이? 왜?

혈도만 제압해도 되지 않나?

대체 무슨 의도인가.

화영자가 의문을 띠고 바라볼 때였다.

화공신타가 똑바로 응시하며 못생기고 비뚤어진 입을 열었다.

“꿀꺽.”

꿀꺽.

화영자가 바로 침을 삼켰다.

“깜박, 깜박.”

이번엔 눈을 두 번 깜박였다.

‘으…….’

화영자는 질려버렸다.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꿀꺽 소리를 들었어도 침을 삼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눈을 깜박일 생각도 없었다. 한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침을 삼킬 때 목을 휘감은 기운이 삼키도록 목젖과 식도가 정교하게 조율 되었고, 눈을 깜박일 때는 눈 주변의 근육이 빠르게 당겨졌다 펼쳐지면서 저절로 깜박여진 터.

이쯤이면 인형이 된 셈이었다.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그 말이 맞았다.

이는 후공의 절학 중 기뢰(氣儡).

여러 다발의 기운으로 만드는 꼭두각시.

피부는 물론이고 근육과 신경까지 자극한다.

경지가 상승하면서 다룰 수 있게 되어 운용해 보았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시안조는 이제 오십여 장 너머.

이제 암자를 두른 기막을 거둘 때였다.

“클클, 잘하자.”

“이 새끼야, 눈동자 차분하게 해야지. 땀 흘리지 말고.”

“……네.”

혀가 휘감이며 목이 울리며 저절로 말이 나왔다. 이마의 모공들이 기운에 막히면서 식은땀이 멈췄다. 눈빛도 이내 차분해졌다. 모두 자신이 한 것이 아니었기에 화영자는 넋이 나가버렸다.

이 괴물은 외모가 미쳤는데, 무공 수준은 더 미쳤다.

인체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란 말인가.

가닥가닥 휘감고 있는 기운이 정확히 모공을 틀어막고 시신경까지 조율해 당혹에 찬 눈빛마저 잠재운 것이다.

대체 왜?

‘난 이제 영영 이 괴물의 꼭두각시가 되는 건가?’

그건 틀렸다.

시안조는 이제 삼십여 장.

화공신타는 암자를 두른 기막을 거둬들이고, 은신했다. 덩그런히 서 있던 화영자가 자리에 앉았다. 정좌를 취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고, 두 손은 포개어 늘어뜨렸다.

꾸우우.

그때 시안조가 창가에 내려앉았다. 하얗게 물든 눈동자로 화영자를 바라본 후 방 안을 천천히 살폈다.

시안조가 보았기에,

멀리 이어져 있는 추영자도 보았다.

“화영자는 운기 중입니다.”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확인해라.”

뇌신존의 말에 추영자가 의도를 흘려 시안조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정좌한 추영자 앞에 내려앉은 시안조가 울음소리를 냈다.

그제야 화영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숨결을 흘려보냈다.

하얗게 물든 시안조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화영자가 미소 지었다.

“후후.”

더 나아가 화영자는 손을 뻗어 시안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소는 입가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도 웃고 있었다.

“순조로운 듯합니다.”

“소림의 경내와 그 주변을 살펴라.”

“네!”

시안조가 창 밖으로 유유히 날아갔다.

하지만 남겨진 화영자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시안조를 보며 웃어서가 아니었다.

꼭두각시처럼 몸을 움직여서도 아니었다.

꼭두각시가 된 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 시안조까지 알고 있었어?’

시안조를 본 순간, 심장은 철컹 내려앉았다.

괴물이 왜 자신을 꼭두각시로 만드나 했더니만…….

괴물은 시안조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오고 있는 것까지 인지해 대응.

시안조를 통해 보고 들을 수 있음도 괴물은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대체 이 괴물은 누구인가?

‘설마 단혼각인가?’

“화공신타.”

“네? 어?”

화영자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기운이 전신을 휘감고 있었지만, 목과 입의 억압은 풀려 있었다.

근데 이자가 화공신타였다고?

“예정일은?”

“넌 대답 대신 비명을 지르고 싶나 보구나.”

“……내일입니다.”

“릉인은?”

“멀리, 아주 멀리. 저도 그곳을 모릅니다.”

“회영십존 중 누가 와 있지?”

회영십존이 거론된 순간, 화영자가 굳어버렸다.

그것이 화를 불러왔다.

화영자의 전신을 구석구석 두르고 있던 기뢰가 가느다란 바늘이 되어 화영자의 몸을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칠 듯 몸부림치며 화영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 사이로 ‘뇌신존’을 겨우 말하고서야 고통에서 벗어났다.

비명 소리는 컸지만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이미 기막이 형성되어 소리는 차단.

“뇌신존이라……. 그놈 외에는?”

“그 외는…… 신타 님 앞에 의미 없습니다.”

“나랑 누가 더 셀 것 같냐?”

“당연히…….”

“대답 잘해.”

“화공신타 님이십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제대로 대답한 것 같은데 화영자는 다시 기뢰에 당해 몸부림쳤다.

이유라면,

“이 새끼가 대답에 확신이 없어.”

“화공신타 님이…… 더 강하십니다!”

“늦어!”

“………….”

“아는 대로 다 말해 봐.”

“제가 아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금제?”

“허억!”

화영자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금제를 안다는 건 금제가 드러날 때까지 몰아붙여 본 적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어 화영자는 술술 입을 열었다.

백여 개에 가까운 바늘이 파고드는 고통은 지옥.

무엇보다 금제까지 아는 상대였기에 거짓이 간파되기 쉬웠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별것 없군. 쓸모 없는 놈.”

“넌 여기 남아 고통당하고 있어라.”

네? 라는 말을 분명히 한다고 했는데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이미 점혈. 마혈에 이어 아혈까지 점혈되었고, 그다음엔…….

뚜드드, 뚜드드. 뚜드드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영자가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지옥보다 더한 지옥.

백여 개의 바늘보다 더한 고통 속에 구겨져갔다.

‘뇌신존 하나일까?’

암자를 나온 후공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예정일은 내일.

그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가 아닐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변수가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미 소림에 변수가 생기기도 했고.

릉찬이 노려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릉인이 이미 환혼되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찾아내 타격하는 것보단, 끌어들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회영부가 먼저 없애고 싶을 표적이 되자.

이내 화공신타의 모습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지무를 펼쳐 숭산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연천봉을 순식간에 지나, 준겁봉에 이르렀을 땐 소림의 경내가 보였다.

두 개의 선을 매달고 날고 있는 시안조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천향의 선, 하나는 시안조와 연결되어 보는 자의 선.

구르르르르.

그르르르르르르릉.

땅 밑으로는 검령과 번쾌친이 검집째 따라오는 가운데 소림 경내는 이제 발 밑.

그대로 하강하며 목청을 높였다.

“소림이여!”

쩌렁거리며 울려퍼진 소리가 숭산을 뒤흔들었다.

우우우웅.

대기가 찢어지고, 길게 메아리쳤다.

경내를 걷던 소림승들이 놀라 두리번거렸고, 누군가는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내공력이 약한 동자승들은 고막이 흔들리면서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외침은 이어졌다.

“내가 왔다! 화공신타가 왔다!”

그제야 소림 장로들과 사대금강 정도가 위치를 파악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소림 방장 릉찬까지.

“……??”

너무 높아 고개를 한참 젖혀야 볼 수 있었다.

그 높이에서 엄청난 속도로 흑의를 걸친 한 사람이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내 얼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체형도.

흉측하게 못생긴 얼굴, 곱추.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떨어져내리는데 이 속도라면 땅을 뚫고 들어갈 것만 같았지만,

이내 순식간에 회전.

똑바로 선 형태로 지면에 격하게 내려섰다.

쿠웅!

뿌옇게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그 흙먼지 속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나 화공신타! 소림의 대환단을 훔치러 왔다!”

어떻게 봐도 훔치러 온 것 같은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먼지가 가라앉은 후 드러난 화공신타의 얼굴은 당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당장 대환단 가져와라!”

“이 새끼들아, 안 들리냐!”

“누가 소림 방장이냐? 너냐?”

화공신타가 넋이 나간 소림승들을 둘러보다 한 사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소림 사대 금강 중 하나였다.

그가 팔을 허우적거렸다 싶을 땐 이미 모가지가 화공신타의 손아귀에 빨려들어간 뒤였다.

“크윽!”

“당장 대환단을 가져와. 아니면 이놈은 죽는다! 이렇게!”

뚜드득.

사대 금강 중 하나의 목이 꺾여 축 늘어졌다.

현실성 없는 광경에 소림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화공신타가 사대 금강을 버렸다.

“에잇, 죽어버렸네. 어쨌든 이런 식이야! 이렇게 죽는 거야. 그러니까 당장 대환단 가져와! 대환단 내놔아아아아아아아!”

소림의 눈은 이제 더 이상 화공신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사대 금강 중 하나.

원광의 주검만을 한없이 바라봤다.

그 광경을 시안조가 보았다.

그 너머 추영자가 보았다.

그리고 뇌신존과 흑야존이,

들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