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67화 (367/460)

367화. 화는 금을 극한다(火克金).

후공이 뇌신존을 향해 돌아섰다.

뇌신존에게 시선을 준 다음, 그 너머를 응시했다.

오백여 장 너머.

칠흑같은 어둠이 일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자령안이 그 어둠을 꿰뚫으며 헤집었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더 짙은 그림자를 찾아냈고, 그림자의 눈을 들여다봤다.

‘저놈이 흑야존.’

그 눈길에,

어둠 속 흑야존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단 한 차례의 시선.

머뭇거림 없는 시선에 자신이 드러난 것이다.

- 놀랍군. 놈이 나를 정확히 찾아냈다.

- 놀라울 것까지야.

뇌신존은 무심히 답했다.

그는 이미 한차례 부딪혀 본 것이다.

이미 날려버린 것이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많은 공능이 오갔다.

화공신타의 우수에 다섯 줄기의 하얀 광채가 떠올랐고, 발출되었다. 뇌전이 그 광채를 가둬 흩어버렸을 땐, 화공신타의 좌수에서 거대한 장력이 뻗어나왔다.

장력은 뇌전에 흩어지지 않았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끝을 알 수 없는 기운이 뇌전을 소멸시키려 했다.

그렇게 다섯 번의 공방.

기묘한 선회와 기운을 흩으려는 힘이 나타났고, 그 사이사이에 기이한 아지랑이가 피어나 방패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뇌전에 찢겨나갔다.

이 격돌에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번의 호흡.

무엇보다 일격에 진기가 진탕되면서 놈은 역용마저 풀렸으니, 흑야존을 찾아낸 것으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정작 그보다 놀라운 건,

“천화서고 대공자. 넌 듣던 것과는 다르군.”

화공신타가 천화서고 대공자였다는 점은 놀랍다. 소림을 몰살하려는 것도 의외였다. 화공신타라면 모를까, 놈이 천화서고 대공자이니.

“뇌신존, 너도 들은 바와는 다르구나.”

웃음 아래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 의미하는 건 태언장에서 들었다는 뜻.

광충, 뇌극파, 안령비가 잡혀 실토했을 것이다. 회영부에 대해, 회영십존에 대해서도. 각각 어떤 공능을 지녔는지 말했을 테니 뇌전을 보는 것만으로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뇌신존의 의문은 더 커졌다.

왜 혼자인가?

왜 화공신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가?

소림을 처참하게 짓밟은 이유는?

“내가 환혼에 관심이 많아.”

뇌신존이 갸웃했다.

천재라더니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이 들려온 것이다.

“그래서?”

“뇌신존, 넌 머리가 나쁜 편이로군.”

“우리 쪽에 서겠다?”

“이제야 알아듣는군. 환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영원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걸 알았는데…… 후후, 내가 그 기회를 놓칠 리가.”

‘환혼이 가능하다고?’

‘영원히 생을 이어 간다고?’

소림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쓰러진 채, 죽은 듯 움직이지 않은 채 비로소 현 상황이 벌어진 진실을 알게 되었기에 누구 할 것 없이 충격에 빠졌다.

대화를 이해한 건 단 한 사람.

장문인 릉찬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건 대공자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거짓이라는 것.

증거는? 살아 있는 자신들이다.

지금 대공자는 그저 소림에 선을 긋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과 소림이 관계가 없다고, 소림을 구하기 위해 꾸민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드러나게 되는 순간 소림은 끝이다.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대공자는 모두를 지킬 수 없을 것이고.

사정을 알 것 같기에 소림은 그렇게 들렸고,

대공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소림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격정에 사로잡혔다.

대공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지금 너희가 보고 있는 광경은 내가 회영부에 보내는 선물이다. 물론 너에게 맞아 준 것도 선물이었지. 이 정도면 제법 근사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냐?”

“후후, 넌 재밌는 말을 하는군.”

“후후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풍제, 암향야, 검선, 검존, 북해빙궁. 그들은 어디에 있지? 설마 네가 그들 전부를 죽였다고 말하진 않겠지?”

“하하하하하!”

느닷없이 터진 화통한 웃음에 뇌신존이 미간을 좁혔다.

웃음은 끝에 이르러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뇌신존, 넌 머리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장식이냐? 생각이란 걸 도통 하질 않는군. 벌써 잊었나?”

“환혼은 소림만이 아니다. 구대문파의 장문인을 환혼시키려는 상황이다. 자, 그럼 화산의 검선은 어디로 달려가야만 할까? 무당의 검존은 또 어디로 가야 마땅하지? 소림인가? 그럴 리가. 다른 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풍제도, 암향야도 빙궁도 마찬가지지. 각자 인연이 닿아 있는 곳을 향해 떠날 수밖에. 그것이 내겐 기회가 되었다. 너희와 닿아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거짓말.’

소림은 하나같이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천화서고 대공자를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된다.

대공자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진실은 깊이 감춰 둔 채.

그러니 아마도 모두가 소림으로 오고 있을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뇌신존의 눈은 여전히 깊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후공은?”

살아있는가? 함께 있었나?

그런 물음이었다.

“저기 저곳.”

대공자가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곳엔 네 자루의 신검이 자줏빛 광채를 발하며 둥실 떠 있었다.

뇌신존이 손길을 따라 바라봤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의미를 이해했다.

후공이 살아 있다면 신검이 여기에 있을 수 있겠는가!

대공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음이다.

‘하긴…….’

후공이 함께하고 있었다면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제일 먼저 와야 하는 이는…… 천화서고 대공자가 아니다. 후공이어야 했다.

저 애송이가 후공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후공이 애송이에게 소림을 맡겨 둘 리도 만무하고.

“후공은 없다는 건가?”

“그래. 넌 금세 똑똑해졌구나. 자,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짓자.”

“후후후후…….”

그 말에는 뇌신존이 웃고 말았다.

뭘 마무리 짓자는 건가. 이보다 어이없는 말이 어디에 있을까. 애송이는 고작 이 짧은 대화로 이미 회영부의 일원이 된 것처럼 말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본성이 원래 화공신타인가?

천화서고 대공자는 껍데기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

그때 대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어? 넌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보군. 내가 너희에게 구걸이라도 할 줄 알았나? 회영부주도 아닌 고작 너희에게? 너희는 관심없다. 오늘 이후 내가 충성을 맹세할 이는 단 한 사람. 오직 회영부주다! 난 부주에게만 충성한다. 부주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될 것이고, 부주의 명이라면 그곳이 어디라 해도 갈 것이며, 부주를 거스르는 자는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부로 회영일존이 된다!”

“……………….”

뇌신존은 머리가 혼란해졌다.

너무 황당한 상황과 직면하니 웃어야 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그건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흑야존도 마찬가지.

갈수록 가관이었다. 회영일존이 되겠다니.

종잡을 수 인간은 여럿 봤지만, 천화서고 대공자 같은 놈은 처음이었다.

- 뇌신존, 죽이지 마라.

- 당연하지. 하지만 죽이고 싶어지는군.

- 그럼 놈의 팔 하나로 만족해라.

- 그건 괜찮군.

특이한 놈인 데다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부주께서 관심을 가질 만한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목숨만은 살려두어야 했다.

뇌신존이 한 걸음 내디디며 입을 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 네가 회영일존이 되고자 한다면 나를 넘어야 할 것 같구나. 어떠냐? 가능할 것 같으냐?”

“가능하고말고.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리네.”

“후후, 좋다. 나도 궁금해지는군.”

뇌신존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팔이 뜯겨 나가고 난 다음 애송이가 짓게 될 표정이 궁금해졌고, 또 그때 가서는 어떤 말을 하게 될지도 빨리 보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승부는 뻔한 것이다. 이미 한차례 전력으로 부딪혀 보았고, 놈의 공능은 다 보았다. 어떤 기운이든, 어떤 묘용이든, 몇 개의 아지랑이가 피어나든 상관없었다.

비록 다른 점이라면 허공에 떠 있는 천하제일인의 신검들이 가세한 것이었지만, 상대는 천하제일인이 아니지 않은가.

파지지지지.

파지지지지지직!

기운을 끌어올리니 뇌전이 그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휘감듯 드러났다.

‘대공자…….’

‘제발…….’

‘천화서고 대공자! 부디…… 부디…….’

소림이 마음으로 염원했다.

상대는 환혼을 다루는 이들이다.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을 현실화한 이들이 얼마나 강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대공자가 화공신타의 모습으로 이미 일격에 나가떨어진 것을 보았기에 염려하는 마음이 가득 떠올랐다.

‘대공자님……. 대공자님께선 해내실 것이다!’

누구는 간절함이 지나쳐 마음의 염원임에도 존대를 할 정도였다.

그건 다름 아닌 혜륜.

첫 번째로 당해 목이 돌아가버린 혜륜은 목이 돌아가고도 살아 있는 스스로가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그 공능이 경이로웠기에 자신도 모르게 존칭을 붙였다.

또한 승리를 확신하기도 했다.

‘대공자님이시라면 반드시 승리…….’

혜륜의 생각은 끊어졌다.

“저리 꺼져! 왜 여기에서 죽어 있는 거야!”

‘으윽!’

혜륜이 붕 떠올라 멀리 날아갔다가 처박혔다.

대공자의 목소리였고, 대공자의 발길질이었다. 그럼에도 혜륜은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원망할 수 없다. 기분은 좀 그래도 대공자님은 자신이 다칠까 봐 염려해서 멀리 쳐 내보낸 것이 아닌가.

‘대, 대공자님……. 반드시……. 으윽…….’

혜륜이 신음을 참고 있을 때,

후공도 기운을 끌어올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앙!

주인의 의식에 감응한 번쾌친과 검령이 자줏빛 광채를 찬연하게 빛내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내,

‘다들 진정해라.’

주인의 의식에 따라 폭주를 가라앉혔다.

주인이 따로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자신들은 저 멀리에서 지켜보는 어둠을 경계해야 함을 인지했다.

후공은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태언장에서부터.

회영십존에 대한 대처에 대해.

그 중 뇌신존은 금의 정화를 품은 자.

놈을 제압하는 건 간단하다.

오행에 있어 화는 금의 상극.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수는 화를 극하고,

화(火)는 금(金)을 극한다. 압도적으로 제압한다.

뇌신존과의 첫 격돌에서 기묘한 느낌도 받은 터.

화극의 기운이 금의 정화를 원하고 있었다.

소멸하려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의아해졌고 의문을 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답을 찾았다.

화극은 삼악의 기운과 융화하는 한편으로 따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어떤 기운을 원하는 건 이번이 첫 번째.

금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부에서 오행을 이루고자 함이다.

그러한 이치에 닿았기에,

단숨에!

‘화신(火身).’

화르르르르르.

후공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른 불꽃에 휩싸인 채로 뇌신존을 향해 짓쳐들었다.

“?”

뇌신존이 뇌전을 내뻗었다.

푸르고 하얀 번개가 후공의 몸을 휘감아 찢어내려다 화신에 닿아 소멸되었고, 화극의 염화, 지옥의 불길이 뇌신존을 집어삼켰다.

뇌신존의 두 눈동자에 염화가 가득 들어찼을 땐,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뇌신존이 불길에 휩싸여 몸부림쳤다.

그건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잠시, 뇌신존의 몸은 이내 잿더미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하나의 구슬은 남았다.

뇌신존이 한 줌 재가 되고 먼지가 되어 흩어져 갈 때, 뇌신존 몸 안에 있던, 그의 심장에 박혀 있던 찬란한 금빛을 발하는 작은 구슬만은 빛을 발하며 천천히 내려왔다.

후공이 손을 내밀어 구슬을 받아냈다.

손안으로 금의 정화가 녹아들듯 빨려들어갔다.

후공의 시선은 이제 흑야존을 찾아 바라봤다.

‘그다음…… 너는 수(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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