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68화 (368/460)

368화. 어둠 속에서 찾아내다.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 소리에,

‘아……!’

소림 장문인 릉찬의 심장은 주저앉았다.

‘설마?’

릉찬만이 아니었다.

혜륜도, 사대 금강도.

뿔뿔이 날아가 처박힌 백팔 나한도 비통에 잠겼다.

누구의 비명인가는 보지 않았음에도 알 것 같은 것이다.

천화서고 대공자.

비명 소리가 너무 빨랐다. 그야말로 순식간.

‘나무관세음보살…… 대공자여, 극락왕생하소서.’

‘그대는 어찌하여…….’

슬픔 속에서 대공자의 희생을 마음에 새겼고, 몇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 목소리가 소림에 울려퍼졌다.

“흑야존, 어떠하냐?”

거만함과 오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대공자의 목소리였기에 소림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이 정도면 내가 회영일존이 될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만.”

이어진 말에 소림은 희열이 피어났다. 들끓었다.

틀림없다!

이건 대공자의 목소리!

몸 어딘가에 이 많은 희열이 숨어 있었던 걸까. 끝도 없이 끓어오르는 희열에, 이대로면 몸이 터져 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

‘대공자가 살아 있어!’

‘대공자가 죽은 게 아니었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반면 흑야존이 받은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언제나 깊은 고요.

아득한 어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해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 수심(水心)을 이룬 그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동요에 어둠이 출렁일 정도.

뇌신존은 거의 즉사. 너무 빨랐다.

비록 뇌신존이 금극(金極)의 극한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이렇듯 허무하게 소멸될 인물인가?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다.

놀란 건 결과만이 아니었다.

‘놈은…… 화극의 주인.’

전신이 푸른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보았고, 장심에 맺힌 맹렬한 불꽃도 보았다. 화가 금을 극했다. 분명 화극의 주인이 틀림없었다.

회영십존 중 오행의 극을 품은 건, 넷.

다섯이 아니다. 화극이 없었다.

지존은 긴 세월 화극을 원했지만 화극만큼은 찾아내지 못한 터.

그런 화극을 천화서고 대공자가 품고 있다니.

대체 어떻게?

이유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존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것.

놈을 사로잡는다.

하하하하하!

지존 앞에 놈을 데리고 간다!

산 채로, 한 줌 숨결만 붙여둔 채로!

결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목극토, 토극수, 금극목. 화극금.

그리고 수극화(水克火)!

놈이 오행의 화를 극한으로 연성한 자라면, 자신은 수의 극한. 수는 화를 극하니. 수는 화를 멸하니!

이내 어둠이 확장되었다.

소림 경내를 뒤덮고 있는 밤하늘이 주저앉은 것처럼 온통 어둠에 잠겼다.

빛이 사라졌고, 소리도 사라졌다.

마치 깊은 바다에 잠긴 것 같았다. 깊고 깊은 아득한 심해가 이런 풍경일까.

빛을 볼 수도 없고,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위이이이이잉.

어딘가에서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뭐지?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소리일까. 아니면 환청인가?

극단의 어둠과 정적 속에서 소림 장문인 릉찬은 자신이 깜박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꿈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이 잠들 때인가.

잠에서 깨자! 볼을 세게 꼬집었다. 통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기에 릉찬은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게 무슨?”

놀라 목소리를 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더 크게 고함쳤다.

그런 고함들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난 죽은 건가?”

“내, 내가 지옥에 떨어진 건가?”

어느샌가 스스로 인지조차 못하고 이미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또 누군가는 몸을 일으켜 어둠 속을 천천히 내딛기도 했다. 빨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만으로 균형감각이 무너져내린 탓이었다.

비틀대며 걷다 벽에 부딪혀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가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어린 동자승은 울음을 터뜨렸다.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더 크게 울면서 악을 쓰는 지경이었다.

발길에 멀리 날아가 처박혔던 혜륜도 모가지가 뒤로 돌아간 채 허공을 더듬거렸다.

“아, 아무도 없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목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목이 돌아가서일까요?”

몇 번 더 크게 목소리를 냈음에도 자신이 낸 소리를 들을 수조차 없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허공을 주춤주춤 더듬거리는 이들.

그렇게 고함치고 울먹이는 이들.

어쩌다 서로의 몸에 손이 닿았을 땐 화들짝 놀라 주저앉기도 했다.

누군지도 알 길이 없어 멀어지기 바빴다. 본능적으로 누구냐 물었다. 서로가 묻기만 바빴다.

여긴 정녕 지옥인가.

아니면 소림이 지옥이 된 것인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리라.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불심이 깊은 이들은 아예 지옥이라 상정하고 염불을 외웠다. 물론 자신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흑야존은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볼 수도 있었다.

심해에 사는 생명체가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어둠 속을 꿰뚫어 보듯 기민하게 눈동자를 굴리듯 그의 눈에는 환한 대낮이었다.

그렇기에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화공신타의 거친 손길에 사방으로 날아가 처박혔던 소림승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소리치고, 허공을 휘저으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재밌군.’

소림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 어느 누구도. 모가지가 돌아간 놈조차.

천화서고 대공자가 소림을 구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에 흑야존은 헛웃음이 나왔다.

재밌는 건 또 있었다.

천화서고 대공자의 모습이 재밌었다.

고요히 선 채로 화극을 운용해 전신에 불길을 일으키는 모습이 재밌고,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도 재밌다.

자줏빛 광채를 발하는 신검들이 지키려는 듯 대공자의 몸을 휘돌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인 것도 재밌다.

대공자여!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화극의 불길은 깊은 물에 잠겨 빛조차 밝힐 수 없고, 너의 눈에는 신검들조차 볼 수 없을 텐데!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게 된 자를 상대하는 건 마치 나뭇꾼이 나무를 찍어내리는 정도의 수고로움 정도.

찍어내자.

놈의 팔을 찍어내고, 다리를 찍어내자.

나무꾼의 도끼질처럼.

흑야존이 신형을 날릴 때,

후공 또한 이 상황에 흥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화극은 통하지 않는다. 손에 염화를 피워냈지만 염화는 이내 사그라들었고, 치솟았던 불길조차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소리도 마찬가지. 무음의 세계로 바뀐 지금의 공간에선 카릉거리는 검령과 번쾌친의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보는 것도 불가능.

검령과 번쾌친이 주변을 선회하고 있음은 의식을 통해 상호 인지됨이지 보이는 건 아니다.

흑야존의 위치도 마찬가지.

자령안이 통하지 않는다. 멀리서 흑야존을 바라볼 땐 분명 꿰뚫어보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때의 어둠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어디에 있는가?

감지할 수 없다.

더 가까워져야 할 테지.

내부로 받아들인 금극을 활용하는 것도 불가.

삼악이 금의 정화를 흡수하면서 융화를 시작했지만, 활용은 다른 차원이다. 화극을 운용함에 화극의 요결이 필요한 것처럼, 금극을 운용하려면 금극의 요결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일식경, 반시진. 이 정도의 시간이 아니다.

닷새, 혹은 열흘.

그럼 할 수 있는 건?

놈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천향사주.

‘탐향!’

그 순간 천향의 선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위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거의 삼천 가닥.

후공은 비로소 눈을 떴다.

어둠 가운데 천향의 선이 보였다.

세 가지 색. 하나는 초록빛, 하나는 잿빛, 또 하나는 검붉은 빛을 띠었다.

색이 다른 건 탐향에 실은 향이 무향이 아니기 때문.

세 개의 색, 세 가지 향. 삼악의 향이다. 각각 따로 따로. 천 개의 향에는 육각망의 향, 천 개의 향은 영악초의 향, 나머지 천개의 향은 독양충의 향.

삼악이 혼합된 향기는 신비롭고 감미롭지만, 따로따로일 때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 보일 것이다.

놈이 향에 뒤덮인다면.

그리고 걸려들었다.

전면.

출렁! 천향의 선이 춤추듯 출렁임과 동시에 짓쳐드는 무언가를 휘감아갔다.

전면만이 아니다. 전면의 천향의 선이 휘감는 동시에 위쪽과 아래쪽, 그리고 좌우측을 향해 뻗어가던 탐향의 선이 방향을 틀어 전면으로 쇄도했다.

그 빠름이 말로 할 수 없었다. 오백여 개의 선이 휘감으면서 짓쳐들던 인영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천오백여 개의 천향의 선이 가세하여 휘감으면서는 이제 완연히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그 존재가 흑야존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흑야존은 삼천 개의 선, 삼천 개의 빛깔에 휘감긴 탓에 형형색색이 되었다. 머리 쪽은 초록빛이 두드러졌고, 가슴은 잿빛이, 두 다리와 팔은 검붉은 빛이 유독 강했다.

이젠 드러났다.

이젠 서로가 볼 수 있었다.

후공이 미소를 지어보였기에 흑야존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흐흐, 여유 있는 모습은 뭐냐? 설마 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흑야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네 줄기 자줏빛 광채가 자신을 향해 정확히 방향을 잡고 쇄도해 오기 전까지는.

카르르르르릉!

크르르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검령과 번쾌친이 울부짖었다.

잠시 주인의 위치를 잃었다.

그건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밤이 떠올랐다.

언제나 이어져 있던 주인이 사라진 밤.

그 상실감이 떠올라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또한 분노하게 된다.

방금까지 주인이 곤란해하던 마음이었기에, 그리고 주인의 명백한 적의와 되돌릴 것 같지 않은 살의를 느낄 수 있기에!

그 울음 소리를 후공은 들을 수 없었지만, 느낄 순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이는 흑야존.

‘무, 무슨?’

놀라 암영기를 발현했다.

순간 물보라가 일듯 기운이 물결치며 그의 전신을 보호했다.

카가강!

크르르릉!

일순 암영기에 튕겨나간 검령과 번쾌친이 다시금 미친 듯이 물의 장벽을 강타했다.

‘놈은 나를 본다. 나를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건 천향사주.

그리고 토극수(土克水).

향(香)은 본시 토(土)를 기반하니 완전한 극은 아닐지라도 어둠에 잠기지 않는다.

떨쳐내려 해도 떨쳐지지 않는다.

씻는다고 씻겨 나가지도 않는다.

그렇게 휘감아 드러냈을 뿐 아니라 급기야 흑야존에게 향을 뿜어내기도 했다.

하나는 초록빛. 하나는 잿빛. 또 하나는 검붉은 빛.

각각 육각망, 영악초, 독양충의 향이 흑야존을 자극했다.

‘이, 이게 무슨?’

실낱같은 선들에 불과했지만, 그 향은 흑야존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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