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69화 (369/460)

369화. 죽음을 선사한 경이로운 존재를, 눈동자에.

흑야존은 다급히 숨을 멈췄다.

지독한 악취였다. 이런 악취는 처음이었다. 인상이 찌뿌려지는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숨을 참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소림이 악취로 뒤덮인 것인가?

‘그럴 리가.’

천화서고 대공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놈은 향을 다루는가?

설마 향주(香主)인가?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흑야존은 지존의 말이 떠올랐다.

향주, 그리고 만향칠주!

육각망, 영악초, 독양충.

삼악을 이룬 자는 향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그것을 이루었던 이가 삼악을 기반으로 집대성한 공법의 명칭이 만향칠주.

삼악을 이루는 건 인간이 도달할 수 없고, 설령 도달했다 해도 만향칠주의 공법은 이미 실전되어 그 기예는 누구도 펼쳐낼 수 없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그런데 오늘 향주를 만났다.

천화서고 애송이는 어떻게 삼악을 취하고, 만향자의 만향칠주에 닿은 것일까.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놈이 만향칠주를 기반하여 자신을 명백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분명했다.

우웁!

구역질까지 나면서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졌다. 펼쳐낸 암영기의 장벽이 출렁였다. 그 틈을 타고,

신검들이 강렬한 기세로 암영기를 뚫어내려 했기에,

‘풍지, 승장, 비통.’

흑야존은 세 곳의 혈도를 차단했다.

후각을 차단했음에도 불쾌한 기운은 남았다. 이번엔 미각에 영향을 받았다. 흑야존은 급기야 인당혈과 영양혈까지 차단한 뒤에야 악취에서 벗어났다.

후각과 미각의 차단.

두 개의 감각을 잃어 잠시 공허함이 찾아왔지만, 그뿐.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면 충분했다.

‘수륜(水輪)!’

흑야존은 암영기의 장벽을 거둬들임과 동시에 수륜을 펼쳤다. 흑청빛을 띤 일곱 개의 륜이 흩어져 나가는 암영기를 뚫고 신검을 공략했다.

키키키키킹!

맹렬한 소리를 내며 남은 세 개의 수륜은 짓쳐드는 대공자를 향해 나아갔다.

‘네가 이것도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다.

기기기기기기깅!

후공은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옅게.

흑야존의 전신을 휘감은 삼천여 개의 천향의 선 중 일부, 천여 개가 분리되어 나오면서 작은 쟁반 크기의 륜을 삼키듯 모조리 휘감은 것이다.

이어져 있는 천향의 선을 통해 소리가 들려왔고, 형체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원래의 색과는 다른,

초록빛, 잿빛, 흑청빛이 섞인 형태로 보였고, 후공이 볼 수 있으니 검령과 번쾌친도 볼 수 있었다.

친과 쾌가 륜을 피해 땅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후공은,

‘환명!’

마주오는 세 개의 륜이 거의 몸에 닿을 듯 가까워졌을 때, 환명의 아지랑이를 겹겹이 피어냈다.

스으으으윽!

환명은 끝을 알 수 없는 늪.

지옥의 늪.

륜이 일곱 겹의 환명에 갇혀 발버둥치는 사이, 후공은 지무를 운용하며 신형을 솟구쳐 흑야존에게 다가갔다.

천람의 산들 바람이 동행했다.

우수에는 능오침이 드러났다. 양분인 듯 금극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던 삼악이 금극을 버려두고 능오침에 기세를 실었다.

지이이이잉!

기세가 오른 능오침이 백광을 찬연히 발하니 일시적으로 어둠 속에서 빛이 드러날 지경.

우수에는 분절칠십이검식이 장법으로 변환되었다.

검식 중 반극(半戟)이 두 개의 날카로운 창인 양 나뉘어 능오침과 함께 쏘아졌다.

무엇이든 뚫고 지나간다.

층층이 누적된 암석이든, 철벽이든.

천람이 동행하기에!

‘?’

순간 흑야존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륜이 허공에 잡혀 몸부림치고 있었고, 눈앞에는 일곱 광채가 쏟아지는 것이다.

다급히 암영기를 발현, 물의 장벽으로 전신을 둘렀다. 신검이 뚫지 못한 암영기를 저 일곱 광채가 뚫어낼 수 있을 리가.

그렇게 생각했다.

천람의 묘용을 몰라서였다.

경쾌한 산들바람이 일면서 암영기의 장벽에 맺힌 기운을 흩어가는 틈새로 능오침과 반극이 파고들었다.

‘헙!’

다급히 숨을 들이켠 흑야존이 급격히 신형을 물리며 손을 내뻗었다.

‘선회!’

흑왕결을 기반한 흑쇄!

바다에 던지는 갈고리처럼 흑쇄의 갈고리가 일곱 광채를 향해 뻗어나가 붙들었다.

처억!

흑야존은 흑쇄를 틀어 일곱 광채의 방향을 틀었다.

젖혀진 탓에 내동댕이쳐지듯 방향이 바뀐 능오침과 반극이 흑야존 곁을 지나쳤다.

겨우 떨쳐낸 흑야존이 한숨을 돌릴 틈은 없었다.

‘아래, 발 밑!’

두 개의 기운이 임박하고 있었기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인지했을 땐, 발 밑을 뚫고 두 줄기 자줏빛 광채가 솟구쳤다.

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아앙!

수륜을 피해 땅 속으로 파고들었던 친과 쾌였다.

흑야존의 다리를 휘감으며 쓸어가는 공세에 흑야존이 기겁해 신형을 띄웠다.

그와 동시에,

‘만암(萬暗)!’

어둠을 담은 수천 개의 작은 침이 자줏빛 광채를 향해 폭사해갔다. 자줏빛 광채는 완전히 갇혔지만 진정한 위기는 따로 있었다.

“후후!”

웃음 소리에 흑야존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한 사람이 들어찼다. 같잖다는 웃음을 머금고 있는 천화서고 대공자의 얼굴. 비웃음.

‘헉!’

파아아앙!

손이 닿았다 싶을 땐 흑야존은 실 끊어진 연처럼 훌훌 날아갔다.

“크으으윽!”

호흡이 끊기고 기혈이 뒤틀리는 가운데 신형을 겨우 바로 했을 땐, 갑자기 머리가 화끈해졌다.

흑야존은 지면에 처박힌 뒤에야 자신이 타격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널브러진 채 올려다봤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허공에 뜬 채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륜은 사라진 지 오래. 자줏빛 신검들이 그의 곁에서 호법인양 검끝을 겨누고 있었다.

흑야존은 이제 두려워졌다.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한 삶만을 꿈꾸었는데…….

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지나도, 그로부터 다시 수천 년이 지나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보이는 것이다.

‘두려워하자. 더 두려워하자.’

흑야존은 마음 속에서 두려움을 키웠다.

처절하게 고문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고, 소멸의 공포도 떠올렸다.

‘으으으…….’

공포는 금제를 자극하니.

두려움은 지존의 금제를 불러오기에.

두려움이 커지면서 머리가 터져 나갈 듯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렇게 금제를 일깨우는 것으로 스스로의 몸을 자극했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수극(水極)의 극대화.

수극을 극한으로 팽창하면 이 몸은 감당할 수 없다. 버텨낼 수 없다. 부서지고 망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 무엇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어찌 맞선단 말인가.

그러니 부서져야 한다. 부서져도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살아남는다면 환혼을 통해 새로운 몸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이내 수극이 팽창.

물의 정화 중의 정화! 수극이 폭발적으로 기운을 뿜어내면서 거친 물살이 되어 흑야존의 전신 혈맥을 폭주했다.

몸을 일으킨 흑야존의 피부가 수극의 폭주에 쓸려나갔다. 이내 살점도 조각 조각 떨어져나갔다.

어둠은 더 깊어졌다.

소리는 아예 사라졌다.

소림은 더없이 깊은 어둠에 잠겼다.

방금 전까지 희미하게 빛을 볼 수 있었던, 소림이 품었던 희망은 더 짙은 흑암에 삼켜졌다.

다시 허우적거렸고,

다시금 아무리 소리쳐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흑야존이 내지른 괴성도.

고통에 겨운 괴성이었고, 천화서고 대공자에게 반드시 죽음을 선사하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괴성이었다.

그 소리는, 그 모습은,

후공조차 듣지 못하고 볼 수 없었다.

이제 천향의 선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후공은 상관없었다.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어둠이 깊어져 보이지 않을 뿐이지 천향의 선은 여전히 흑야존을 친친 휘감고 있고, 이어져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다.

폭주로 인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천향을 삼킬 정도로 어둠이 짙어졌기에,

이는 폭주.

오래 버티는 건 무리다.

몸을 상하게 할 정도의 폭주는 언제나 그렇다.

지금은 살점이 뜯어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조금 더 지나면 뼈도 부서져나갈 것이다.

후공은 시간을 가늠했다.

‘서른 번의 호흡.’

하지만 흑야존은,

‘스무 번의 호흡.’

후공은 넉넉히 잡았고, 흑야존은 냉정하게 잡았다.

스무 번의 호흡 전에 끝내지 못하면 그 이후는 버틸 수 없다. 그 이전에 끝내야 하고, 가라앉혀야 한다.

‘시간은 충분해.’

흑야존이 신형을 끌어올렸다.

허공에 떠 있는 대공자를 향해 쏘아져가며 수륜을 발출함과 동시에 흑쇄를 내뻗었다.

폭주하는 수극의 기운에 스물네 개의 수륜이 쏘아졌고, 회피할 곳을 예측해 흑쇄의 갈고리를 발출했다.

그러한 모습에 후공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허공에서 아예 밤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후공으로선 굳이 맞설 이유가 없었다.

‘스물아홉.’

서른 번의 호흡이 다하면 스스로 자멸할 놈에게 굳이?

그 광경에 흑야존은 창백해졌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였기에 도망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터.

‘열아홉.’

남은 시간을 세는 한편으로 외쳤다.

“하하하, 꼴사납게 도망치다니!”

웃음을 터뜨리며 도발.

도발은 먹히지 않았다.

후공은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이다.

뒤늦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흑야존이 입술을 떨었다.

이대로면, 이대로면…….

‘……열여덟.’

살점이 무수히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폭주한 수극의 힘을 빌어 허공답보로 질주하며 뒤쫓아도 결코 닿을 수 없었다. 상대는 구름을 뚫고 사라졌고, 이내 종적이 드러날 땐 어느샌가 반대편 구름 쪽에서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자유자재.

단순히 허공답보의 수준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수륜은 닿지 않고, 결코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허공답보는 어느샌가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공력의 많은 부분을 허공답보에 쏟아야 하는 것도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시간도 놀랍도록 빠르게 흘렀다.

‘일곱.’

급기야 얼굴에 살점이 모조리 떨어져나가면서 뼈가 드러났다. 얼굴은 앙상해진 채, 줄어드는 숫자와는 반대로 공포가 증폭되었다.

천화서고 대공자에겐 다가가지 못하고,

죽음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다섯.’

이제 이번 생에 남겨진 호흡은 다섯 번.

영원을 꿈꾸었거늘…….

죽음이 너무 빠르다.

‘넷.’

끝이 온다면 후공일 것이라고 생각했거늘, 아니었다.

‘셋.’

흑야존은 이제 멈췄다.

구름 위에서 선 채 저 멀리 구름을 딛고 선 천화서고 대공자를 바라봤다.

어둠도 걷혀갔다.

밤하늘의 풍경이 돌아오고, 달과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태연히 바라보는 대공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흑야존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손이 먼지처럼 부서져 나가는 것도 우스웠다.

팔도 부서져나가면서 소맷자락이 축 늘어져 바람에 흔들렸다.

후공이 온다 해도 어둠 속에서라면 두렵지 않았는데, 어이없게도 천화서고 대공자에게 소멸 당한다.

‘둘.’

소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마도 소림의 모두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겠지.

흑야존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영원을 꿈꾸고, 영원을 장담했던 자신에게 죽음을 선사한 경이로운 존재를 마지막까지 눈에 담았다.

흑야존의 쓴웃음 속에,

‘하나.’

흑야존의 얼굴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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