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또 지나가. 또 스쳐가. 꼭.
소림 장문인 릉찬과 장로들이 주춤했다.
‘대공자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누구 할 것 없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대공자는 소림을 구한 이.
한데 소림의 전임 장문인을 우그러뜨렸다?
양립할 수 없는 두 상황이 충돌을 일으키니 이해가 될 리가.
후공은 설명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이 소림에게 대답이 되었다.
‘설마…… 환혼?’
‘환혼!’
‘사형은 이미 환혼…….’
소림은 바보가 아닌 것이다.
이미 장로들도 장문인을 통해 회영부와 환혼에 대해 들은 터.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기에 장문인과 장로들은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공자, 정녕 환혼된 것인가?”
“보여드리죠.”
후공은 화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화영자가 물건인 양 끌려와 후공의 손에 잡혔다.
후공은 일시 교릉을 멈추고, 아혈도 해제했다.
큰 항아리 정도로 구겨진 화영자가 뒤틀린 눈으로 올려다봤다. 공포와 고통에 얼룩진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별호.”
물음에 화영자가 입을 열어갔다. 잘 열리지 않았다. 입술이 틀어져 그 위치가 귀와 가까웠다. 옹알이하듯 뻐끔거리는 중에 침을 질질 흘렸다.
겨우 입을 열었다.
“누……구?”
화영자는 처음 보는 것이다.
“더 구겨 줄까?”
“으…… 괴, 괴물…… 님?”
화영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괴물의 모습이 아니고 잘생기고 고결한 느낌의 청년이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더 구겨 줄까? 라는 말을 할 때의 느낌이 비슷했다.
“화……, 화영자.”
“소속.”
“회, 회영부.”
이 대답으로 충분했다.
소림의 릉찬과 장로들이 일제히 탄식을 터뜨렸다.
심지어 장로 중 릉경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 비틀거리까지 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환혼이 가능함이 눈앞에 드러났고,
환혼된 이가 전대 장문인인 사형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아무것도…….’
탄식은 커졌다.
환혼은 이미 이루어졌고, 거기에 더해 소림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거늘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릉인 사형은 어떻게 되었느냐? 어디에 있지? 살아있겠지?”
“그보다…….”
릉찬의 물음에 화영자가 눈동자를 옮겨 대공자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침이 되면…… 회영십존이…… 옵니다. 회영십존 중 뇌신존이 옵니다. 그는 뇌전(雷電)을 일으키는 이로…….”
“대공자의 손에 뇌전은 지나갔다! 어둠도!”
릉찬이 안광을 불태우며 화영자의 어깨를 붙들었다. 잡고 보니 어깨가 아니라 허벅지 같았지만 그걸 따질 때는 아니었다.
화영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렸다.
“으어어어…….”
괴물, 아니 대공자를 바라보면서였다.
아니다. 아니다. 대공자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불러야 했다.
뇌전이 지나고 어둠도 지났다는 건,
뇌신존에 흑야존까지 대공자의 손에 끝나버렸다는 의미였다.
왜 몰랐지?
뒤틀리고 몸부림치느라.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뇌신존은 그렇다 쳐도 어찌 흑야존까지…….
그때 대공자가 흔들렸다.
릉찬이 다시금 화영자의 몸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말해라! 릉인 사형은 어떻게 되었느냔 말이다!”
화영자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 시각,
섬서 남서부 안강.
오후쯤에 무림맹과 함께 안강의 천공단 대저택에 도착한 천공단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먼 여정이었고, 전력을 다해 쉼없이 달려온 길이어서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누워도 잠들지 못했다.
삐리삐이이~~ 삐리리~~ 삐이이~~
지붕 위에선 금적자가 잔잔한 음률을 피리에 실어 멀리 흘려보냈다.
그리고 항마삼협은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나 쐬자!”
“같이 가자고!”
낭인왕과 무산쌍웅이 따라 붙었다.
“어린 놈들은?”
“아까 나갔어.”
“후후, 빠르구만.”
이내 한 주루로 들었다.
이 층 창가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그저 술병을 들어 빈 잔을 채웠고, 다시 잔을 입술에 가져갔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환혼, 환혼, 환혼, 회영부.
그리고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 허전함.
다 쓸데없는 것뿐이었기에 입을 닫았다.
말을 꺼낸 순간 재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단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괜히 호기롭게,
“크으으, 술맛 죽이네.”
“취한다, 취해!”
술에 취해 가는 척했다.
마셔도 전혀 취하지 않는데도.
떠오르는 걱정을 술과 함께 입에 털어넣었다.
“뭐가 어째!”
투당탕! 쨍그랑!
호통과 함께 탁자가 뒤집어지면서 접시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주루의 벽쪽에 자리잡고 있던 일곱 명의 사내들이었다.
이내 서로 칼을 꺼내 겨누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다른 탁자에 있던 손님들이 놀라 몸을 움츠렸지만, 천공단에겐 언짢음이었다.
“야, 조용히 좀 하자!”
“여기서 칼부림하면 죽어. 나가서 해.”
삼협 중 이열과 낭인왕이 타일렀다.
일곱 사내의 사나운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너흰 또 뭐야?”
“우리?”
“그래, 너흰 뭔데 안강에서 감히 독사파의 행사에 끼어드는 거냐!”
“너희 독사파였어?”
“후후,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
사내는 말을 맺지 못했다. 또 사라져버렸다.
‘어디갔냐?’
남은 독사파 여섯이 두리번거렸다가 주루의 벽이 뚫린 걸 보고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왜 벽을 뚫고……?’
그러다 보았다.
눈앞이었다. 장발에 기골이 장대한 자였고, 허리에 도를 차고 있는 중년인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방금까지 저쪽에 앉아 있었는데 언제?
그런 그들을 향해 낭인왕이 고개를 절레거렸다.
“여기 치안이 왜 이 모양이야. 너!”
지목당한 사내가 주춤 물러났다.
동료가 언제 어떻게 날아간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 간이 있는대로 오그라들었다.
“독사파 두목 데려 와라.”
“누, 누구시라고?”
“광견파 부두목이 보잔다고 해.”
“광견파셨습니까?”
“들어본 거야?”
“처음 들었…….”
“근데 왜 아는 척인데?”
“죄, 죄송합니다.”
“안 튀어가냐?”
사내가 혼자 뛰어가고, 다섯은 남았다.
그 다섯을 앞에 두고 낭인왕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이 새끼들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면 안 돼! 착하게 살아야 해! 힘이 있다고 사람 막 패고 다니면 안 된다는 말씀이야. 대답 안 하냐!”
대답이 없었기에 힘 있는 낭인왕이 힘없는 독사파의 머리를 후려쳤다.
이후에도 일장연설이 이어졌고, 또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쯤 독사파 두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층으로 올라서자마자 칼을 빼들고 찔러왔다.
“광견파! 죽어라!”
터엉.
이상한 소리가 나버렸다.
원래는 쑤욱, 하고 칼이 박히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왜 쇠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건가?
소리도 소리였고, 무엇보다 칼이 박히지 않았다.
심지어 옷도 뚫리지 않았기에 찌른 자세 그대로 독사파 두목이 낭인왕을 올려다봤다.
그런 독사파 두목의 뺨을 낭인왕이 갈겼다.
찰싹.
독사파 두목이 모로 쓰러져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손으로는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독사파 두목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칼이 박히지 않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강호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회경이라고 했던가? 화경이라고 했던가? 화경인 것 같다. 화경이라는 절세적인 경지에 오른 이들은 만나기도 힘들지만, 만나게 된다면 숨도 크게 쉬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떠올랐다.
“……자,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독사파 두목이 겨우 입을 열었다.
차마 올려다볼 수 없어 눈은 아래로 내리깐 채였다.
낭인왕이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 아주 머저리 새끼는 아니네.”
“죄송합니다.”
“들었지? 내가 누군지?”
“네, 광견파…… 부두목님이시죠.”
절대로 광견파 따위가 아니고, 부두목 따위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독사파 두목은 괜한 화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 오늘부터 독사파는 일을 한다.”
“안강 구석구석 다니면서 청소를 하고, 치안을 담당하는 거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도 하고.”
“저기…… 광견파 부두목님.”
“뭐?”
“그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네, 안강에는 저희 독사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있어?”
“네! 회오리파라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말에 낭인왕이 터져버렸다.
그건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항마삼협과 무산쌍웅도 마찬가지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슨 오리?”
“회오리는 또 뭐야? 시발, 겁나 무섭네. 하하하하하하!”
“미친, 회오리바람이 부는 거야?”
독사파 두목의 안색이 핼쓱해졌다.
눈앞의 한 사람도 문제인데, 패거리가 있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것도 다섯이나 더 있었고, 그중 두 사람의 얼굴은 흉악스럽기 그지 없어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려왔다.
‘이게 뭐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자빠져 있을 땐가.
독사파 두목은 이내 자세를 고쳐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두목이 꿇으니 객잔에 있던 부하들도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배꼽 잡고 웃던 낭인왕이 독사파 두목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너.”
“지금 가서 회오리파 두목 데려와라.”
독사파 두목이 일어났다.
놓친 칼을 서둘러 챙기고 되도록 빨리 다녀오려고 창가로 향했다.
막 뛰어내리려 창에 한 발을 올리고 뛰어내리려던 독사파 두목이 갸웃했다.
“왜? 가기 싫어졌냐? 그냥 죽을래?”
낭인왕이 채근했다.
독사파 두목이 발을 올려둔 채로 고개만 돌려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아니라…… 회오리파 두목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요?”
“그래?”
“네, 근데 혼자가 아닙니다.”
“어디 봐.”
낭인왕이 창가로 움직였고, 원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무산쌍웅이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항마삼협도 고개를 내밀었다.
그 모습에 저 멀리에서 걸어오던 남궁연과 언교운이 손을 흔들었다.
“여어~ 쌍웅!”
“삼협!”
둘만이 아니었다.
모용진과 은앙개, 소천개까지 함께였다.
소천개가 크게 소리쳤다.
“낭인왕 아저씨, 거기서 뭐 해요? 우리 회오리파 두목 잡았어요. 하하하, 회오리파 이름도 웃겨. 이젠 독사파 두목 잡으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요?”
“독사파 두목 여기에 있어!”
“그래요? 하하하, 잘됐네!”
회오리파 두목의 얼굴색이 죽어갔다.
갑자기 이상한 놈들과 시비가 붙어 두들겨 맞고 일장 훈계를 들었는데, 패거리가 더 있는 것이다. 독사파 두목도 잡힌 것 같고.
그렇게 남궁연 등이 객잔에 가까이 다가갈 때였다.
[야, 멍청이들아~~~~~!]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깃털의 새가 한순간 찬란한 빛깔의 깃털색으로 바뀌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금섬도 색을 바꿔 금빛을 내보였다.
색관조와 금섬이었기에 천공단이 일제히 소리쳤다.
“묵언아!”
“우리 금두꺼비!”
“야, 끝난 거야?”
“여기 여기! 여기로 내려와!”
하지만 색관조는 이내 깃털색을 검게 물들이면서 빠르게 지나갔다.
“야, 어디 가!”
[까르르르르르, 우린 지나가던 길이야.]
“어디로 가는데?”
[비밀이야. 까르르르르르!]
색관조는 빠르게 멀어져갔다.
소천개가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외쳤다.
“또 와! 또 여기 지나가. 또 스쳐가!”
[까르르르르르, 생각해볼게.]
“꼭이야! 꼭!”
[꼭? 꼬옥? 꼬끼오오오오오오! 까르르르르르르르!]
[큭큭큭!]
색관조와 금섬의 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천공단은 그곳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잠깐이었지만 색관조를 본 것으로 단주를 본 것만 같았다.
또 색관조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 웃음이 안심하라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