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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374화 (374/460)

374화. 너를 환혼시킬 사람.

“매향자를 진 안으로 옮겨라.”

시안조가 화산파를 향해 날아갈 때, 매향자는 환혼진 안으로 옮겨졌다.

앉아 있을 순 없었다.

다리가 없다. 앉혀 놓으면 기우뚱.

그렇기에 매향자는 눕혀져 밤하늘을 바라보며 신음을 흘렸다.

‘일비신수, 이 미친 새끼…….’

팔다리가 뜯겨 나간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일비신수에 대한 원망은 커져만 갔다.

이제 곧 환혼이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시안조가 화산으로 떠났으니 짧게는 일다경, 길면 한 시진. 그 안에 환혼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 팔다리는 다시 생겨난다. 새로운 몸을 얻게 된다.

그렇다해도,

현 상황은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미리부터 할 일인가? 충분히 환혼을 마친 후에 해도 될 일이었다.

“으으윽…….”

왼쪽 팔이 욱신.

매향자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 왼팔을 만지려 했다. 오른손은 오지 않았다. 아, 그렇지? 올 수 있는 오른팔이 없지?

근데 왼팔은 왜 아프지?

팔이 없는데?

팔이 있는 것처럼 몸이 느끼는 환상통임을 뒤늦게 깨달은 매향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시이이이발!”

욕을 내뱉고 나니 눈앞의 광경이 달라졌다. 밤하늘의 별 대신 일비신수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비신수가 갸웃했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매향자, 방금 환청이 들린 것 같은데 너도 들었느냐?”

“착각하지 마라. 너를 대체할 사람이 없을까? 내가 널 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어. 그럼 넌 어떻게 될까?”

“현명하게 굴어라.”

매향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이 최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기서 버려진다면? 구를 수도 없는 몸. 들짐승의 먹이가 되고 까마귀의 밥이 될 것이다. 뜯어먹히면서 서서히, 천천히 죽어갈 것이다. 상상만으로 끔찍해 매향자는 오금이 없는데도 오금이 저려 왔다.

“요, 용서하십시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고통은 잠깐이다. 그러니 기쁘게 기다려라.”

“마,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일비신수가 웃음을 흘렸다.

매향자의 겁에 질린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겁에 질린 눈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즐겁다.

더 즐거운 일도 남아 있었다.

잠시 후면 이 눈동자는 화산파 장문인의 눈동자가 되는 것이다.

그땐 눈을 뽑아 주마.

하나씩, 하나씩. 시간을 두고.

혀도 잘라 주마.

조금씩, 조금씩.

일비신수는 추굉자 곁으로 향했다.

“시안조는?”

“화산에 근접했습니다.”

가부좌를 튼 추굉자가 일비신수를 바라보며 하얗게 물든 눈동자로 답했다. 시안조와 시선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의 눈에는 일비신수의 모습과 멀리 보이는 화산파의 정경이 겹쳐 보였다.

화산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동화(同化).’

추굉자가 시안조에게 깃털색을 더 정교히 다룰 것을 주문한 다음 화산파를 눈에 담았다.

그 순간,

화산의 풍경이 괴이해 추굉자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화산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불빛을 볼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제까지만 해도 화산의 밤은 불빛이 넘실거렸고, 화산파 도인들이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화산이…… 이상합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일비신수가 버럭 소리쳤기에 추굉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 잘못 본 것이겠지. 다시 눈을 떠 살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빛이 없는 화산이 보일 뿐이었다. 어느샌가 추굉자의 이마엔 식은땀이 송글송글. 시안조에게 의식을 투영해 낮게 날게 했다. 소리를 들어보자. 소리는 들리겠지.

‘들리지 않아. 어떤 소리도…….’

시안조의 청각은 사람의 수천 배.

시안조가 볼 수 있는 건 자신이 볼 수 있고, 시안조가 들을 수 있는 건 자신도 들을 수 있었다.

한데 들리지 않는다. 숨소리라도 들려야 하는데 그마저 없으니, 이는 화산이 텅 비어있다는 의미였다.

추굉자가 덜덜 떨었다.

“화, 화산이 텅 비었습니다. 어떤 소리조차 들을 수 없습니다. 화산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일비신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추굉자가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동공조차 한껏 축소되어 있으니 다그칠 수 없었다.

농담일 리도 만무했다.

방금 매향자의 팔다리를 뜯어냈는데 농담할 분위기인가.

‘화산이 알았구나. 눈치챘구나.’

하지만 어떻게?

‘태언장이 이미 무너졌다고?’

일비신수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맞지 않았다.

이번 계획은 공동파에서 풍제와 검선 일행을 시안조를 통해 확인한 뒤 실행에 옮긴 터. 분명 그렇게 들었다. 그러니 이 계획이 드러나는 건 태언장이 적의 수중으로 넘어간 경우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

또 다시 ‘어떻게’ 라는 의문이 치솟았다.

태언장을 빠르게 찾았다 해도, 그곳엔 광충이 있다.

광충의 투명한 벌을 상대해야 한다.

광충의 백봉(白蜂)은 볼 수도 없고, 감지할 수도 없어 회영십존조차 경지와는 별개로 광충을 까다롭게 여기고 있었다.

어디 광충뿐인가.

그곳엔 뇌극파, 안령비도 있거늘.

하지만 결과가 말해준다.

화산파에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볼 수 없다면 태언장이 당한 것이라 봐야 했다.

적의 움직임이 예상을 뛰어넘는다.

갑자기 등줄기가 스산해져 일비신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추굉자.”

“소림을 살펴라. 뇌신존과 추영자를 찾아 도움을 청해라.”

소림은 지금쯤 뇌신존에 의해 마무리되고 있을 터.

소림은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소림의 전대 장문인 릉인이 환혼되기도 했고, 회영십존 중 뇌신존이 그 과정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으니.

잠시 후,

추굉자의 당혹성이 터져나왔다.

“허억! 소, 소림도…… 비었습니다. 소림에도 아무도 없습니다!”

“추굉자, 넌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인내심을 잃은 일비신수가 추굉자의 목을 틀어쥐고 들어올렸다.

“크윽, 사…… 사실입니다.”

“그럼 뇌신존은?”

“보, 보이지 않습니다. 추영자도 추영자의 시안조도…….”

“그걸 믿으라고?”

일비신수가 추굉자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으르렁거렸다. 일비신수가 왼손으로 추굉자의 어깨를 붙들었다. 손가락 한 마디가 어깨를 파고들었다.

‘으으으……. 파, 팔이 뜯겨 나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추굉자의 눈빛이 본래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왔다. 소림을 맴돌던 시안조가 주인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마지막 연결 시점에 겁에 질린 주인의 의식을 느꼈기에 길게 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자, 잠시만 들어보십시오! 소, 소림에 격전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막 팔을 뜯어내려던 일비신수가 멈췄다.

“소림의 여래전…… 관음전…… 미륵전 그 외에도 여러 전각들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한데 피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체가 한 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외 특이한 점이라면…… 불에 탄 흔적입니다.”

“뇌신존이 뇌전으로 불태운 건가?”

“그, 그렇다고 하기엔…… 잿더미가 크지 않습니다. 불태워졌다해도 고작 한 사람 정도로 보입니다. 그 광경만으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는…….”

“뇌신존이 죽었을 리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그래, 그런 것이겠지. 소림은 화산처럼 알게 된 것이겠지. 그래서 모두 도망친 것이겠지. 뇌신존은 뒤쫓고 있는 중일 테고!”

추굉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비신수도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뇌신존이 소림을 지켜보고 있는데 소림이 어찌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어린 동자승들까지? 소림승 한 명만 붙잡고 있어도 소림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다. 결코 도망치는 선택을 할 수 없다. 그것이 불문의 소림이고, 그것이 구대문파의 정체성이다.

그걸 일비신수가 모를까.

자신이 말하면서도 모순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저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회영십존인 뇌신존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두려운 것이다.

결단은 빨랐다.

망상을 붙잡고 고집을 피울 만큼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모두 신속히 철수한다!”

이십여 검수들이 환혼진을 거둬들였다.

오가는 대화를 들었기에 이유는 물을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환혼진을 수습한 다음, 한 검수는 매향자를 서둘러 등에 업었다. 차분히 신경 써서 다루지 않아 검수의 손길은 거칠었고, 받치는 손도 매향자의 엉덩이가 아닌 뜯겨나간 허벅지 쪽에 닿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매향자가 고통에 겨워 비명을 내질렀다.

소리가 컸기에 일비신수가 손을 튕겨 매향자의 아혈을 점혈했다. 이제 소리를 낼 수 없게 된 매향자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토해냈다.

지혈된 부위가 다시 터지면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다시 지혈해 달라고 말할 틈은 없었다. 말도 나오지 않는 상태고. 그렇게 모두가 내달리니 급격한 출혈 속에 매향자는 머리가 어질거렸다.

‘이제 나는? 환혼은……?’

절망도 찾아왔다.

일비신수가 지금처럼 당황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회영십존이 죽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정녕 후공이 살아있음인가?

후공은 환혼당한 적이 없으니.

후공에 대한 환혼은 실패했으니.

‘일비신수, 이 미친 새끼!’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다시금 일비신수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무사히 벗어난다면…….

언제가 기회가 찾아온다면…….

반드시 너의 팔다리를 잘라주마! 죽여 주마!’

무사히?

그런 요행이 찾아올 리가.

“윽!”

“큭!”

짧은 비명과 함께 신형을 달리던 검수들이 쓰러져갔다.

순식간에 아홉이 달리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처박혔다가 데굴거리며 굴렀다.

매향자가 놀라 두리번거렸다.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더욱 가까워졌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남은 검수들이 빠르게 허물어졌고, 공기도 차가워졌다. 단순히 느낌이 아니었다. 분명 늦봄인데 한순간 겨울로 접어든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산야를 감돌았다.

겁에 질려 달리는 검수의 숨결마다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매향자가 고개를 돌려 바라볼 때, 시선이 어지러워졌다. 순간 보인 건 밤하늘. 자신을 업고 있는 검수의 신형이 무너지면서 함께 굴렀다.

멈추고서야 보았다.

검은 연기로 된 거대한 괴인영 하나가 소용돌이치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려움에 차 매향자가 바라보고 있자니, 괴인영의 한쪽 입매가 올라갔다.

히죽 웃어 보인 염혼이 이내 신형을 솟구쳤다.

쿵, 쿵, 쿵!

그 뒤를 이어 다섯 염혼이 미친 속도로 뒤따랐다.

어떤 건 달리고, 어떤 건 허공을 질주했다. 연기처럼 흩어져다가 다시 뭉치기도 했다.

‘뭐, 뭐지?’

매향자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실패.

손이 없다.

그사이 추굉자는 검선과 현음신녀의 손에 떨어졌다.

그리고 일비신수는 가장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뒤쪽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마치 저승사자가 다가오는 것 같았기에 미친 듯이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염혼이 문제가 아니다.

[주인님, 여기요! 여기!]

색관조가 이미 일비신수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고, 쾌는 추월했다. 눈부신 자줏빛 광채가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가 선회해 쏘아져 왔기에 일비신수가 방향을 틀었다.

뒤를 돌아봤다가 다시 앞을 봤을 때, 보인 건 하나의 손.

허공의 한 공간을 찢고 나온 손이 일비신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일비신수의 목은 꺾이지 않았다.

달리던 속도를 감안해 후공은 조금 밀려나주었다.

일비신수의 눈이 불신으로 물들어갔다.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현경의 예에 이른 자신이 단 일수에 잡힌 것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놀란 건 상대의 외모였다.

상대가 고작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인 것이다.

“누, 누구?”

공포에 질린 눈으로 물었다.

대답이 들려왔다.

“너를 환혼시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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