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약왕문 그리고 원신단.
검선은 한참이나 사질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었다.
이런 날은 술 한잔하는 것이라며 검선이 권했기에 술잔도 오갔다.
이런 날?
무슨 날인데?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화산은 괜찮았다.
사숙인 검선이 기분이 좋아 보이니 그것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동이 터올 때까지 이어졌다.
그 시각.
색관조는 안휘 남서쪽에 진입했고, 이내 약왕문 창공 위를 날았다.
[주인님의 심부름 왔어요오오오오오!]
갑자기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에 약왕문이 잠에서 깨어났다.
[영롱하고 똑똑한 새와 금빛 찬란한 멍청한 두꺼비가 왔어요오오오~~~.]
그 말에는 금섬이 색관조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땐 이미 약왕문이 모두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새?’
‘두꺼비?’
‘어디?’
있었다. 들은 대로였다. 똑똑하고 멍청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약왕문의 하늘 위로 영롱한 빛깔을 띤 새가 날고 있었고, 새의 등에는 금빛 두꺼비가 타고 있었다.
기이하고 신비한 광경이었고, 의문도 일었다.
‘영물들?’
약왕문 수비대가 이미 강궁을 당겨 겨냥하고 있었기에 부문주 용화운이 멈춰 세운 후 입을 열었다.
“너희의 주인이 누구인지 듣고 싶구나.”
[주인님은 천하무적!]
“아! 너흰 마교에서 온 것이로구나.”
[땡! 까르르르르르르.]
“그럼 누구지?”
[천하무적하면 바로 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요?]
“허허, 도통 짐작이 안 가는구나.”
[드높은 이름, 천공단주! 천화서고 대공자! 까르르르르르르. 약왕문은 바보 같아.]
패앵!
그 말에 수비대 중 하나가 강궁을 날렸다. 천화서고 대공자라는 말에 너무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그만 활 시위를 놓친 것.
강궁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안돼!”
용화운이 놀라 소리쳤다. 거의 직격. 은인인 대공자의 영물이 죽는다 싶어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금섬이 앞발을 뻗어 강궁을 붙잡았다.
[그으으윽!]
화운이 놀라 멍해졌다.
새의 위치가 조금 하강한 것도 찰나였고, 고작 손바닥만 한 금두꺼비가 강궁을 붙잡은 것이다.
강궁을 잡는다 해도 그 속도에 두꺼비가 딸려 날아가는 것이 상식인데 날아가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버티고 있으니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천만다행이기도 했다.
“당장 강궁을 내려라!”
수비대를 향해 호통친 화운이 이내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내려오렴. 약왕문에 온 걸 환영한다.”
[화살 또 쏠 건가요?]
“방금은 실수였다. 사과하마.”
[왜요? 재밌었는데! 또 쏴 봐요! 한꺼번에 쏴도 좋고요. 까르르르르르르.]
색관조는 내려가지 않았고, 금섬은 붙잡은 강궁을 신바람을 내면서 마구 휘저었다.
그 모습에서 약왕문은 확신했다.
확인할 것도 없이 이 두 영물의 주인이 천화서고 대공자라고 생각했다.
‘하는 짓이…….’
‘천공단이네.’
‘틀림없어!’
말하는 것이며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새와 두꺼비도 천공단스러움이 가득한 것이다.
[안 쏠 거여요? 그럼 여기 무당벌레 혹시 있을까요? 금섬이 좋아하는데.]
이윽고 자리를 함께했다.
사람은 셋.
화운, 화청, 그리고 약왕문주 용악이 금섬이 건넨 서신을 살폈다.
“하하, 아버지! 대공자의 필체가 확실합니다.”
“하하하, 마치 대공자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화운과 화청이 웃음을 터뜨렸고, 이젠 정신 착란에서 온전히 벗어난 용악도 미소를 머금었다.
“은인인 대공자가 약왕문을 잊지 않고 있었다니 나도 기쁘구나. 넌 색관조라고?”
[네, 온전한 이름은 ‘영롱한 색관조’인데 줄여서 색관조라고 하는 편이에요.]
용악이 웃음을 터뜨렸고,
화운과 화청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 뒤를 이었다.
[뭐라고 쓰여있어요?]
“원신단을 청하는 글이다. 궁금하구나. 너의 주인은 큰 싸움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상대는 누구지?”
[회…….]
회영부라고 말하려다 색관조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주인께 듣지 못한 것이다.
“회?”
[회헤헤헤헤헤헤!]
[웃었어요.]
“너의 웃음소리는 까르르르…… 이거 아니었던가?”
[사실 웃음소리는 두 개랍니다. 회헤헤헤헤헤헤!]
“흐음.”
약왕문주 용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소리일 리 있겠는가.
그저 말하려다 아차 싶었을 테지.
보통 영특한 영물이 아니다 싶고, 숨겨야 하는 사정도 있겠다 싶어 용악은 재차 묻지 않고 말을 돌렸다.
“경계할 것 없다. 우리가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어서 물어본 것이다.”
[아마 그건 주인님께서 바라는 것이 아닐 것 같아요.]
“왜?”
[그걸 몰라요?]
“이런, 알고 있어야 했나?”
[이미 주인님 곁에는 강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요. 까르르르르르르!]
“천공단?”
[천공단요? 뭔 갑자기 개풀 뜯어먹는 소리여요!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아, 웃겨. 천공단이래, 천공단.]
“끄응.”
용악이 앓는 소리를 냈다.
새와 두꺼비가 너무 웃는 것이다.
배를 움켜쥐고 거의 자지러지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천공단은 충분히 강한 이들이 아니던가.
특히 금적선생과 항마삼협은 어지간한 문파는 가볍게 멸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이들이고.
“색관조야, 자세히 이야기해 보거라.”
“그래, 네 주인 곁에 강한 이들이 누가 있다는 거냐?”
곁에서 지켜보던 화운과 화청이 물었다.
뒤집어지며 까르르거리던 색관조가 자세를 바로 하고 답했다.
[듣고 놀라지 마세요.]
“어서 이야기나 해 보거라.”
[먼저 북해빙궁의 궁주님과 궁주님의 사저가 주인님 곁에 있답니다.]
“북해빙궁의 궁주?”
“혀, 현음신녀가 말이냐?”
화운과 화청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용악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빙궁의 궁주만으로 놀라운데 이게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색관조가 말 머리에 ‘먼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화산의 검선!]
“뭐라고?”
“검선까지?”
연이어 놀라 하는 반응에 색관조의 모가지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금섬도 곁에서 어깨를 추켜올리고 거만하게 턱을 추켜세웠다.
[에헴, 아직 끝이 아닌데요?]
“또 있다고?”
[그다음은 무당의 검존! 그리고…….]
“그리고? 아니 또 있단 말이냐?”
[아직 두 사람 더 남았어요.]
“둘이나? 어서 말해 보거라. 어서!”
[우리 맛있는 거 줄 거예요?]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까르르르르, 좋아요. 난 물고기, 금섬은 무당벌레 잡아주세요. 그럼 남은 두 사람은……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넌 언제까지 두근거릴 참이냐!”
지켜보다 용악이 역정을 냈다.
[까르르르르르르. 그건 바로 암향야와 풍제랍니다.]
그 말에는 용화운과 용화청이 차게 식어버렸다.
용악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다른 사람은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풍제와 암향야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그 두 사람은 누구와 함께 일을 도모할 사람이 아니었다.
[까르ㄹ……. 어…… 분위기 왜 이래요?]
“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천공단 아니랄까 봐 매사 장난이구나.”
[진짠데요?]
“됐다.”
용악이 굳은 얼굴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여태 영물에게 놀아났다 싶어 더 이상 마주 하고 싶지 않아졌다.
“원신단은 챙겨줄 테니 가져가거라.”
그렇게 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도도도!]
그 말에 용악이 돌아섰다.
색관조가 다시 말했다.
[도도도! 도운연!]
그 말에는 다시 용악의 눈이 커졌다.
화운과 화청은 무슨 말인지 몰라 갸웃거렸지만 용악은 알고 있었다.
‘도도도…….’
이 이름을 들어 보았다.
후공과 함께할 때였다. 암향야가 함께할 때였다.
풍제의 아들의 태명에 관해 들었다.
이건 지어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직접 듣거나,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손이 덜덜 떨렸다.
과거의 한때, 그때의 추억이 쏟아져 오는 것이다.
‘진짜였구나. 대공자는…….’
어떻게 풍제와 암향야까지 인연을 맺게 된 것인가?
그것이 걱정을 불러오기도 했다.
‘……누구를 상대하고 있음인가?’
**
섬서 화산.
검선은 화산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루가 채 되지 않아서였다.
이틀째에는 떠났던 이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무당파로 향했던 풍제와 현음신녀가 먼저였다. 회수한 환혼진을 짊어지고 오느라 두 사람은 각각 큰 보따리를 든 채였다.
“풍제, 신녀! 고생 많았소이다.”
“고생은 풍제가 했답니다. 저는 구경만 하다 왔어요. 한데 검선께선 줄곧 이곳에 있었던 건가요?”
현음신녀의 말에 검선이 웃었다.
“누구 덕분에 이 노도는 사질들을 만나고 왔소이다.”
“누구 덕분일까요?”
검선이 대답 대신 풍제를 바라봤다.
현음신녀가 탄성을 터뜨렸다.
자신은 거기까지 미처 생각지 못했거늘 풍제는 세심한 배려심을 보인 것이다. 그렇기에 현음은 풍제가 새롭게 보였다.
“풍제, 원래 이런 분이었나요? 마음 씀씀이가 천마신교의 교주가 아니라 마치 맹주 후공을 보는 것 같군요. 역시 후공의 아우이기 때문일까요?”
“흥!”
풍제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대형이 자신에게 떠넘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없고, 겸양하기에도 낯이 간질거렸다. 이 찬사는 대형이 받아야 할 찬사인 것이다.
“풍제, 아예 이참에 천마신교의 교주와 무림맹주를 겸임하는 건 어떻소?”
검선이 거드는 말에 현음이 좋다고 박수 갈채를 보냈다.
“하하하, 그거 멋지네요.”
현음이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기에,
풍제는 다시금 콧방귀를 뀌어 주었다.
그것도 잠시,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이제야 오는군.”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당명과 검존, 현이신녀가 정오의 햇살을 뚫고 화산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큰 보따리가 함께였다.
“허허, 늦었소이다.”
검존이 입을 열었고,
당명은 풍제를 향해 예를 취했다.
“늦었습니다.”
꽤 늦은 귀환이었다.
소림에서 함께 출발해 나누어 떠난 길.
소림에서 화산이나, 소림에서 종남까지의 거리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벌써 닷새가 지난 것이다.
화산을 마무리 지은 건 고작 하루에 불과했고, 환혼진을 살피는데 사흘을 보냈다. 그 후 풍제는 무당파까지 다녀왔음에도 더 빠르게 돌아오지 않았던가.
“넌 어디 유람이라도 다녀온 모양이지?”
“흐흐. 네, 여기저기 구경을 하느라.”
당명이 실실거리며 웃었다.
물론 실상은 달랐다.
은신이 뛰어난 자가 도주했고, 그자를 찾는 데 애를 먹어 시간을 소비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우리도 왔어요!]
[잠자리를 잡아먹고, 무당벌레도 잡아먹고 화산으로 돌아왔어요. 까르르르르르!]
색관조와 금섬이 날아들었다.
떠들썩하게 나타나 곧장 주인에게 향했다.
[주인님, 주인ㄴ…….]
창 너머로 주인의 좌정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색관조가 입을 꾹 다물고 사람들 쪽으로 돌아왔다.
“너흰 어딜 다녀온 거냐?”
[네, 무당파 할아버지. 우린 주인님의 심부름으로 약왕문에 다녀왔답니다. 근데 있잖아요. 무당벌레와 무당파는 무슨 관계에요?]
검존이 말문이 턱 막혀 멍해졌다.
약왕문이란 말에 당명이 관심을 보였다.
“약왕문에? 용악을 만난 거냐?”
[네, 문주님을 만났어요. 원신단을 얻어 왔어요.]
“용악은 잘 지내고?”
[네, 멀쩡하던데요?]
“그럼 됐다.”
당명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현음신녀와 검선, 검존은 달랐다.
“방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원신단을 얻어 왔다고?”
“약왕문이 그걸 순순히 내주었단 말이냐?”
약왕문이 결코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 것이 원신단이었다. 그것이 철칙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까르르르르르. 뭘 그리 놀라시나요. 약왕문은 주인님이 간이라도 빼달라고 하면 빼줄 것 같던걸요?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약왕문에서 무당벌레를 대접받은 금섬도 신나게 폴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