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주인님, 같이 가요!
청심반점.
화산파가 자리한 화음현에서 제법 큰 규모를 갖춘 이곳은 요리 맛이 뛰어나 늘 손님들로 가득했기에 조용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고요.
특히 이 층이 그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방금 전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는데, 그들의 생김새가 문제였다. 하나같이 악랄해 보이고 험악하게 생겨, 그들이 들어선 것만으로 반점의 공기가 달라진 것이다.
그 무리에 여인과 소녀가 있었지만,
분위기는 비슷했기에…….
“어, 엄마!”
한 어린아이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쉿! 울면 안 돼. 얼른 먹으렴.”
“아니야. 엄마, 그냥 집에 가자.”
부모의 다독임에도 아이는 가자고 보챘기에 부모는 어쩔 수 없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몇몇 손님들도 요리를 남겨둔 채 뒤따랐다.
아직 앉아 있는 손님들은 조용히 식사를 서둘렀다.
그런 모습에 현이신녀는 미안해졌고, 미안함을 담아 바라봤다가 마침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중년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현이신녀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안심하라고. 사실은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그런 의미를 담아 사내를 향해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사, 살려주십쇼.”
사내가 오들오들 떨었다.
현이 입장에선 따스했지만 그건 본인의 생각일 뿐. 중년 사내의 눈에는 그 미소가 ‘뭘 꼬라봐? 죽여줄까?’로 보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이의 얼굴은 눈매며 입꼬리며 이목구비가 잔뜩 치켜올라가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머리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으니, 따스한 미소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이, 이게 아닌데…….’
현이신녀가 슬며시 입술을 깨물 때, 화공신타가 쇠 긁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주문이 왜 이리 늦어! 여기 점소이들 다 죽었어? 독응마군!”
갑작스런 호명에 무당 검존이 멍청하니 답했다.
화공신타가 미간을 찡그렸다.
“뭘 멍 때리고 있어! 당장 점소이 잡아와야 할 것 아니냐!”
“어, 그래.”
“마희, 너도!”
검존과 현이신녀가 수긍했다.
대공자의 의도를 모르겠는가. 이건 훈련의 의미였다. 대공자는 깽판 치는 기회를 준 것.
아니, 근데 대공자는 왜 이렇게 잘하는 건가?
원래 서생 아니었나?
책 속에 파묻혀 지냈을 텐데 어찌된 게 자연스럽기가 말로 할 수 없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대공자가 화공신타의 모습이 될 때면 심지어 대공자라는 사실을 잊게 될 정도인 것이다.
그렇게 검선과 현음신녀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킬 때였다.
우르르르르.
손에 칼을 든 십여 명이 이층으로 올라왔다.
“복쾌님, 저기 저 험악한 자들이 문제의 손님들입니다.”
여태 안 보이던 점소이가 손으로 가리키자, 복쾌가 한쪽 입꼬리며 올리며 갸웃했다.
“평범한데?”
사십 대 초반.
하오문에서 칼 밥을 먹은 것도 어느덧 이십 년.
복쾌는 한눈에 꿰뚫어봤다.
‘그저 못생겼을 뿐이야.’
오래 바라볼 것도 없었다.
그렇다. 그저 험악하게 생겼을 뿐이다. 누구 할 것 없이 무공을 익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고수라면 기운은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눈빛에 정광이 흐르기도 하고. 한데 어떻게 봐도 평범하다.
그런 놈들이 있다.
위협용으로 얼굴에 칼자국을 내고 다니는 놈들.
혹은 험악하게 생긴 얼굴을 무기로 사용하는 놈들.
그런 부류로 보였다.
‘아주 떼로 몰려다니면서 민폐를 끼치는구만.’
일단 말로 구슬려보자.
복쾌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거기 계신 분들, 나가주셨으면 좋겠소이다.”
검존이 앞으로 나서며 미간을 찡그렸다.
“몰라서 묻는 겁니까? 다른 손님들이 불쾌해하고 있는 모습이 안 보입니까? 이거 민폐입니다, 민폐.”
검존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라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
그건 현이신녀도 마찬가지.
복쾌가 실실 웃었다.
“자자, 그럼 이해했으면 꺼져 주세요. 그쪽은 모가지도 돌아가 있는데 어디 가서 침이라도 한 대 맞으시고.”
검존이 흠칫했다.
목이 살짝 돌아가 있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찔끔하고 말았다.
결국 나선 건 검선이었다.
“시발놈이 누구더러 침을 맞으라 마라야! 니들 오늘 송장으로 들려 나가고 싶냐?”
잘했다.
잘했기에 검존이 부러운 눈으로 화산의 검선을 바라봤다.
복쾌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송장이라. 이거 무서워서 살 수가 없군. 당신, 이곳이 어디인 줄 설마 모르는 건가?”
“이곳이 어딘데?”
복쾌가 창 너머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화산이 보이지 않나? 여기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화산파가 가만히 있을까? 지금도 듣고 있을걸?”
“누가?”
“위대하고 드높은 이름, 화산의 검선.”
검선은 듣고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기에 잠시 막말하는 걸 잊어버렸다.
화산의 검선조차 멍해진 모습에 결국 당명이 혀를 끌끌 차고 일어섰다.
“그만하자. 그만해.”
복쾌 앞으로 나아가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금빛이 번뜩였지만 복쾌는 미처 보지 못했다.
복쾌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이번엔 너냐? 하하하, 넌 또 멍청하게 생겼네?”
“이곳의 주인. 너의 상관에게 안내해라.”
“왜 그래야 하지?”
“뒤를 봐.”
복쾌가 그 말에 뒤돌아볼 때, 뒤편에 서 있던 그의 수하들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맥없이 주저앉아 혼절한 모습에 복쾌의 안색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반박귀진?’
무공을 익히지 않아 무공의 흔적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은 경지에 올랐기에 평범하게 보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누, 누구십니까?”
“악인곡의 만악귀.”
“아, 악인곡요?”
명색이 하오문이다. 한데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기에 복쾌가 어리둥절해할 때, 악인곡은 모두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못생긴 자가 입을 열었다.
“시체로 끌려갈래? 그냥 앞장설래?”
복쾌가 주춤 물러났다가 크게 외쳤다.
“앞장서겠습니다! 악인곡은 화산파보다 더 위대합니다! 화산파도 곧 악인곡 앞에 멸문당할 겁니다!”
목소리에 내력을 실어 말했다.
주변에 화산파 매화검수가 있다면 듣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드높은 이름, 위대한 검선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라 내성이 생긴 검선이 히죽 웃었다.
“이 새끼 머리 굴리는 것 좀 봐. 답답한 새끼야, 검선은 이미 죽었어. 낄낄낄.”
그 말에 복쾌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럴 수밖에.
화산의 검선이 죽고, 악인곡의 흡혈악이 된 걸 모른다면야.
하오문 점주를 향해 가는 길.
- 암향야, 이거 쉽지 않구려. 어떻게 해야 빨리 습득할 수 있는 거요?
검존이 전음을 발하며 조언을 구했다.
당명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 검존, 군자는 한마디의 말을 할 때도 세 번 생각한 뒤 말한다고 하지. 그럼 악인은 어떨까? 생각을 안 해. 거르지 않아. 즉시. 머리에 떠오르는 즉시.
- 오호! 그저 떠오르는 대로?
- 그렇지.
- 오호!
- 염병, 오호는 무슨. 지랄 났구만.
- 시발 놈, 말하는 것 좀 봐.
- 그래, 그렇게.
칭찬을 받은 검존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도착.
하오문 산하 섬서 남부를 담당하고 있는 하오문 점주는 보자마자 머리를 박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복쾌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들어선 데다 그 뒤로 험악한 용모의 무리가 따라오니 설명이 없이도 점주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기에,
“도, 돈이 필요하십니까? 드리겠습니다. 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머리를 거칠게 땅에 찧다가 하오문 점주가 갸웃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머리를 아무리 박아도 머리가 땅에 닿지 않는 것이다. 지면 바로 앞에서 멈출 뿐이라 고개를 들었다.
“돈은 우리도 많아.”
말한 건 무리 중 가장 흉측하게 생긴 자였다.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
“그, 그래도 드리고 싶습니다만.”
“쓸데없는 소리.”
“그럼 무엇을?”
돈이 필요가 없다니.
그 외 노릴 만한 다른 보물은 없는데?
점주가 의아해할 때, 들려왔다.
“나는 화공신타다. 들어봤지?”
“헉! 화, 화공신타…… 님?”
많이 들었다.
주로 악명.
그렇기에 점주는 더욱 와들와들 떨었다.
“신타 님께서 어쩐 일로?”
“너 이 새끼, 계속 엎드려서 말할 거야?”
“일어날까요?”
점주가 일어나 조신하게 손을 모으고 섰다.
“우리 나쁜 사람이야.”
“그, 그렇습……. 죄송합니다.”
점주가 대답하다가 황급히 멈췄다.
“오늘 여기 온 건 천화서고 대공자가 보내서다.”
“네에?”
“나랑 친해.”
“그, 그렇습니까?”
“저길 봐.”
화공신타가 하늘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방금까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하늘에서 갑자기 새가 나타났다. 그 위에 타고 있는 금빛 두꺼비도 볼 수 있었다.
[맞아! 화공신타 님과 주인님은 엄청 친하지. 까르르르르르!]
하오문 점주가 멍해졌다.
‘색관조? 금두꺼비?’
대공자의 영물들이었다.
하오문이라면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제야 점주가 긴장이 풀려 웃음을 터뜨렸다.
“화공신타 님께서 우리 대공자와 친분이 깊을 줄 몰랐습니다. 하하하하하, 영광입니다. 하하하하하! 그럼 대공자의 부탁을 받고 오신 것이로군요. 진작 말씀을 하시지.”
한참이나 웃은 점주는 이제 여유가 생겨 한 사람 한 사람 천천히 돌아봤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역시나 흉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하, 근데 왜 그렇게 다들 얼굴이 못생겼습니까?”
대공자의 친구라고 하고, 영물들도 보게 되니 이젠 점주는 아예 겁을 상실해버렸다.
그 말이 폭언을 불러왔다.
“시발놈아,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검선이 쌍욕을 했고, 검존도 뒤따랐다.
암향야의 조언대로 바로 내질렀다.
“개자식아, 넌 잘생겨서 좋겠다!”
“아, 아니 뭐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좀 친해지려고.”
“한 개도 안 부러워! 시발, 자랑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으니까!”
“저기 그게…….”
“세상엔 말이야. 부러운 걸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나야. 나라고! 알겠냐? 시발 새끼야, 난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하오문 점주가 땀을 삐질 흘렸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어떻게 봐도 부러워하는 것 같은데.’
대공자에 대한 걱정도 되었다.
대공자는 어떻게 된 건가?
어쩌다 이런 막장들과 인연을 맺은 걸까.
점주는 하오문의 친구인 대공자가 염려되었고, 지랄맞다는 천공단은 순한 맛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제가 도움을 드릴 일이라면?”
“소문을 내라. 악인곡이 풍제와 암향야, 그리고 화산의 검선과 무당의 검존을 죽여버렸다고. 천화서고 대공자도 행방을 알 수 없노라고.”
“악인곡이 소림에서 큰 싸움을 벌였다는 것도 퍼뜨리도록 해.”
“저, 저기 사실은 아니시죠?”
“너 이 새끼, 하오문 맞아? 정신 안 차릴래?”
머리는 한없이 복잡해졌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이게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은 아니겠지? 접근한 방식은 분명 대공자의 방식이지 않는가. 색관조도 쾌활하고…….’
“너!”
“잘할 수 있지?”
“네, 맡겨 주십시오.”
“잘하자. 간다.”
“사, 살펴…….”
하오문 점주가 머리를 조아렸다가 고개를 들었을 땐,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은 아니었다.
[주인님, 같이 가요오오오오오! 까르르르르!]
색관조와 금두꺼비가 뒤늦게 한 방향으로 떠나는 것을 보며, 하오문 점주는 망치로 뒷통수를 가격당한 듯한 충격에 빠졌다.
‘화, 화공신타가…… 대공자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