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86화 (386/460)

386화. 흡혈악은 종달새를 타고.

왜 지켜보고만 있냐고?

‘들었으니.’

구릿빛 안색, 구릿빛 피부.

그 반면 성성한 백발.

거대한 독수리 위에서 회영육존 쇄후존은 마음으로 답했다.

반양장으로 날아오는 와중 멀리서 추굉자와 추영자가 고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뇌신존과 흑야존의 죽음에 대해 들었고…….

악인곡에 대해서도.

흑야존은 회영칠존.

흑야존이 칠존이라지만 정작 육존인 자신과 격차는 없었다. 흑야존은 오행의 수극(水極)을 취했고, 최근 급진전을 보여 그 운용이 극한에 이른 이. 맞붙는다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솔직해지자.

흑야존과 맞선다면 동귀어진이 최선일 것이다.

흑야존의 영역 안에서는 어떤 것도 볼 수 없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음이니 그보다 까다로운 이가 없다.

그런 흑야존을 죽인 이들!

그들이 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보았다.

먼저 여인의 끔찍한 귀곡성이 들려왔고, 순식간에 반양장의 지붕 위로 인영들이 내려섰다.

밤하늘의 별빛 아래,

밤하늘의 구름 위에서 바라보고 있을 때,

꼽추와 눈이 마주쳤다.

구부정한 몸을 하고 이상한 각도로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보는 꼽추의 눈길에는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밤의 구름을 뚫고 바라볼 수 있음에 놀랐고, 그다음 공령존을 구겨버리는 모습에는 터무니없어 절로 웃음이 났다. 공령존의 공세 따위는 솜뭉치에 불과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그럴 수밖에.

그리고 들려온 말.

- 쇄후존, 넌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이지?

큰 외침이 아니었다.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대기의 압력과 바람조차 화공신타의 목소리를 흩어버리지 못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공능이었다.

그러나…….

공령존의 비명 소리는 더한 충격.

공령존은 고통을 모르는 자.

공령존이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는 걸, 공령존의 비명을 처음 들었다.

그러니 어찌 내려갈 것인가.

“쇄후존, 당장 내려와. 오순도순 차분히 이야기하자.”

화공신타가 채근했다.

그렇다 해도 내려갈 수 있을 리가.

쇄후존은 그저 구름 위에 머무르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악인곡은 술렁이고 있었다.

“뭐야? 하늘에 누가 있는 거냐?”

“쇄후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회영육존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검존과 현음신녀가 두리번거리며 떠들었다.

어렴풋이 보고는 있었다.

대공자가 바라보았던 지점 위쪽이었다. 밤하늘의 구름층이 깊어 그 너머까지는 선명히 볼 수 없었지만, 흐릿하게 거대한 독수리와 그 독수리의 등 위에 서 있는 음영이 보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척 소란을 떨었다.

악인곡의 악인이니까.

면면이 제정신이 아닌 악인이므로.

“멍청한 것들, 저쪽이잖아!”

현이신녀는 엉뚱한 구름을 가리켰다.

물론 현이는 처음부터 알아보았다. 반양장에 당도하기 전에 감지했다.

나만? 대공자는 어떨까. 알아차렸을까?

그렇게 대공자를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공자는 이미 밤하늘의 그 지점을 슬쩍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탓에 그녀는 시선을 올리지 않았다. 그저 귀곡성을 내는 데 집중했다.

그건 풍제도 마찬가지.

이미 보았다. 그럼에도,

“빙심마희, 눈알을 침소에 놔두고 온 거냐? 안 끼웠어?”

“그럼 어디에 있는데?”

풍제가 정확히 그 지점을 가리켰다.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어! 있네, 저기 있어!”

“야! 쇄후존, 당장 내려와라!”

“좋은 말로 할 때 내려와! 안 내려오면 죽여버린다!”

쇄후존은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악인곡을 접한 건 처음.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놈들의 면면에 대해 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안 내려온다고? 좋다. 그럼 이 독응마군께서 올라가 주지!”

검존이 신형을 솟구쳤다.

순식간에 하늘로 올랐다가 한계를 맞이했다. 그때부터는 허공답보로 허공을 딛고 올라갔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는 것처럼, 그 계단을 거의 백여 보를 딛고 나아가다 그마저도 한계에 봉착.

“으어어, 나 떨어져어어어~~~.”

실 끊어진 연처럼 회전하며 추락했다가 지면에 이를 즈음 신형을 휘돌아 착지했다.

그 꼴사나운 모습에 검선이 혀를 찼다.

“독응마군, 넌 생각이란 걸 안 하고 살기로 한 거냐! 널 보고 있으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모르겠어!”

“흡혈악, 너는 뭔가 굉장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

“당연하지!”

“흥, 좋다. 네가 나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면 인정하지.”

“흐흐, 보여주마! 나도 탄다. 나도 새를 타고 날아오른다!”

검선이 밤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침 검선의 머리 위를 날아가던 종달새가 그 기운에 이끌려 검선의 손아귀로 빨려들었다.

이내 검선이 종달새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올라탔다.

“날아가자아아아!”

꾸우우우우우!

종달새는 날개도 펼치지 못하고 애처롭게 울음을 터뜨렸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끌려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리 사이에 왜 끼워졌는지도.

이대로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아 두려움에 떨었고, 잡힌 목이 당장이라도 부러져나갈 것 같았기에,

꾸우우우우우우…….

그럼에도 검선은,

“날으라고오오오오! 날아오르라고오오오오!”

윽박지름을 멈추지 않으니, 그 모습에 주변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 머저리 새끼!”

“하여튼 저건 언제 죽나 몰라.”

모두가 깔깔댔고, 그 웃음에 검선도 함께 깔깔거렸다. 검선이 이내 종달새를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널 죽일까, 말까? 죽일까 말까?”

꾸우우우우…….

“살려준다! 불쌍하니까!”

손을 풀자 종달새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히 날아갔다. 그런 다음 검선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쇄후존, 방금 내가 새 살려준 거 봤냐? 못 봤냐?”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장 내려와! 종달새처럼 너도 안 죽일 테니까!”

쇄후존은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악인곡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깊숙이 담았고, 그 각각의 별호도 마음에 새겼다.

그러다 미간을 찡그렸다.

독응마군과 흡혈악을 지나 다시 전각의 지붕을 딛고 있는 화공신타 쪽을 보면서였다.

“가자아아아아! 날아올라아아아!”

또다.

또 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화공신타도 검은 새를 잡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새를 다그치고 있었다.

“얼른 날으라고오오오!”

‘미친놈들…….’

쇄후존은 이제 한숨이 나올 지경.

화공신타가 잡은 새는 종달새보다는 컸지만 그렇다고 많이 큰 것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이러고 있는 모습이 한심했고, 또 그걸 보고 있는 자신도 한심할 지경이었다.

그건 악인곡도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

“신타,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 꼽추 새끼야, 하나도 안 웃기단 말이다!”

“곡주, 왜 날 따라 하는 거냐!”

“닥쳐!”

화공신타가 무시하고 몇 번 더 날아오르라고 한 다음 아무 소용도 없자, 새를 잡아 패대기쳤다.

“에잇, 그냥 죽어!”

검은 새가 지붕을 뚫고 들어가 바닥에 처박혔다.

꾸우우…….

슬프게 울다 그 소리마저 끊어졌다.

하지만 죽은 건 아니었다.

검은 새 곁으로 금두꺼비가 다가가 흔들었다.

검은 새, 아니 색관조는 한쪽 눈을 뜨고 날개를 끌어와 입에 가져갔다.

쉿!

그러는 사이, 화공신타가 입을 열었다.

시선은 쇄후존을 향한 채,

“쇄후존, 장난은 여기까지 하자.”

쇄후존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단순히 미친 자들이겠는가.

단순히 미친 자들은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

놀라운 무위를 보았고,

섭혼을 걸어 추적에 나선 것도 보았다.

또한 이들에게도 규칙은 있다.

격식이 없을 뿐이다.

규칙은 화공신타.

악인곡주.

그가 모두를 아우르고 있음은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신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군.”

“알고 있을 텐데?”

“글쎄…….”

“너 이 새끼, 머리가 나쁜 편이구나?”

“우리도 끼워 줘! 함께 하자. 악인곡과 회영부. 서로 싸울 것 없잖아. 너도 봤지?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클클클.”

“쇄후존, 꼴값 떨지 마라.”

쇄후존의 눈이 차가워졌다.

화공신타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쇄후존, 너의 의견 따윈 아무 의미 없다. 중요한 건 너의 주인의 생각. 너의 주인에게 가서 고해라! 악인곡이 회영부에 동맹을 청한다고. 또 말해라. 악인곡주가 흑야존을 먼지처럼 날려버렸다고. 공령존이 비명을 내질렀다고! 그리고 악인곡은 환혼에 미쳐 있다고! 영원히 살 생각에 머리가 아주 얼얼할 지경이라고!”

쇄후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동맹을 제안할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날 봐! 내 모습을 봐! 어떠냐? 네가 볼 때 내 얼굴은 어떠냐?”

굳이 대답을 해야 하나?

괴물이다.

화공신타보다 추악한 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악인곡의 면면이 괴이하다지만 화공신타에는 비할 바 아니었다. 쇄후존은 정녕 처음 보는 추악함이었다.

“클클, 네가 보기에도 잘생겼지? 그렇게 생각하지? 놀랍지? 하지만 난 더 잘생겨지고 싶다. 사람 마음이 그래. 만족을 모르지. 나도 그래.”

화공신타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쇄후존은 갸웃.

뭘 하려는 건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향의 선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고, 거대한 독수리의 몸통을 휘감았지만 쇄후존은 볼 수 없었다.

그저 쇄후존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을 뿐이었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 자리를 순식간에 벗어났다. 더 높이 올라갔다가 서북쪽으로 멀어졌다.

그럼에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쇄후존, 이제 꺼지는 거냐? 꺼졌다가 다시 돌아와! 꼭이야. 꼭! 나는,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리겠다. 그리고 명심해. 돌아올 땐 기쁜 소식을 들고 와야 해. 안 그러면 죽어. 그땐 더 높이 떠 있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쇄후존과 그를 태운 독수리가 아득히 멀어지며 사라졌다.

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고, 목소리도 전달할 수 없었다.

한계 거리를 넘은 탓에 천향의 선도 단절되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다가가려 했다면 후공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쇄후존을 살려보낸 건 회영부에 악인곡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소문은 퍼져가고 있지만,

회영부의 눈으로 직접 볼 필요가 있었다.

악인곡이 실존한다는 것을 회영부 수뇌부가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색관조를 보낼 것도 없었다.

이제 오길 기다리면 그만.

색관조를 뒤따르게 하는 건 위험이 따르는 일이기에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일도 아니었다.

쇄후존이 곱게 물러났지만 회영팔존인 공령존과 회영십존인 환비존과는 비교 불가의 존재.

“검은 새야, 죽었냐?”

[끼이이이이이.]

전각 안에서 다 죽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었네.”

화공신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편 흡혈악이 주절거렸다.

“이제 우리 뭐하지?”

뭐하긴.

기다려야지.

이내 반양장에 장작불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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