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화. 딸랑, 딸랑, 딸랑.
청해성 남단 하늘 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구름층에 머물고 있는 거대한 독수리의 등에서 추인자가 물었다. 추인자의 동공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시안조를 운용 중이었기에 시안조가 보는 것을 그도 보고 있는 상황.
소리도 들려온다.
분노에 찬 마교가 소교주의 지휘 아래 천지사방 휘젓고 있었다. 악인곡을 찾고 있고, 또한 곤륜을 찾고 있었다.
곤륜이 악인곡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습인지라, 이 정도면 확인은 끝난 셈이었다.
풍제는 악인곡의 손에 정리되었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돌아갈 것인지를 쇄후존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쇄후존의 시선은 아래의 한 지점을 향해 있을 뿐.
정확히는 도운연을 보고 있었다.
아득히 멀었지만 그는 마치 곁에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저놈이 탐나는군.”
풍제의 아들.
이름이 도운연이라고 했던가.
반듯한 이목구비며 근골까지 살필 수 있었기에 쇄후존은 탐이 났다. 환혼의 재목으로 쓸 만해 보였다.
“데려가시겠습니까?”
시안조가 이동해 도운연을 눈에 담았기에 추인자도 도운연을 볼 수 있었다. 과연 쓸 만한 재목이다 싶었다. 또한 마교 소교주를 환혼시킨다면 마교를 손에 쥐는 것도 쉽다.
쇄후존이 웃으며 눈을 빛냈다.
그의 눈동자에 탐욕이 가득 차올랐다.
도운연을 납치한다면,
도운연까지 사라진다면,
지금도 뒤흔들리고 있는 마교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것도 꽤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쇄후존의 눈동자는 이내 차분히 가라앉았다.
[크르르르…….]
도운연 곁에 있는 푸른 늑대가 몸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영물도 탐나고.’
푸른 늑대의 시선이 정확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데다, 늑대의 두 눈에 적의가 선명했다.
이어 도운연 곁에 있는 또 다른 존재도 무심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광명좌사인가, 광명우사인가?’
좌우든 문제될 건 없다.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아니다. 돌아간다.”
쇄후존의 의지에 따라 거대한 검은 독수리가 날개를 펄럭여 선회했다. 시안조도 주인의 뜻을 따라 되돌아왔다.
지금은 아니다.
당장은 악인곡에 집중해야 할 때.
하나씩, 하나씩 나아가야 한다. 마교는 악인곡을 정리한 후 다시 찾아도 늦지 않다.
‘은령존은 귀운종을 찾았을지 모르겠군.’
귀운종의 후인들을 찾아 떠난 은령존은 아직 악인곡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
만약 은령존이 악인곡과 조우한다면 유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악인곡은 반양장에 머물며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갑자기 귀운종을 향해 나아갈 리는 만무한 일이다.
악인곡은 나아가고 있었다.
화공신타!
악인곡주가 귀운종을 향해 질주했다.
아무도 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갑자기 거친 광풍이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숲을 관통할 때면 새와 곤충들이 바람에 밀려 멀리 날아갔다가 배를 까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오늘 바람이 부는 날씨가 아닌데?
그런 것 없었잖아?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새와 곤충들은 황망함에 빠져 쭈그리가 되었다.
계속해서 쭈그리들이 늘어났다.
화공신타는 그만큼 서두르고 싶은 것이다.
풍제의 섭혼을 통해, 공령존의 자백을 통해 알게 되었다.
회영오존인 은령존이 귀운종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귀운종에는 무흔신투를 보내놓긴 했지만, 무흔신투에게 맡긴 임무는 귀운종에 가 있는 무림맹 천하십객의 복귀.
천하십객이 그곳에 있어도 안심할 수 없고, 이미 귀운종을 떠났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귀운종의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강호에 해악을 끼친 건 전대의 귀운종이다.
그러니 막는다.
그러니 지킨다!
그렇게 나아가며 화공신타는 환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공령존이 실토한 정보는 의외로 알찼고, 많았다.
회영십존 중 뇌신존과 흑야존, 환비존은 소멸시킨 탓에 섭혼의 기회가 없었지만, 공령존은 살려둔 터라 이전에는 몰랐던 환혼의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건 환혼의 제약에 관한 것이었다.
‘환혼의 운용 주기는 최소 십 년.’
환혼을 한 뒤 재환혼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환혼한 다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내일 다시 새로운 몸으로 환혼할 수 없다. 재환혼까지는 최소 십 년.
그런 이치로 열 살 아래 아이의 몸은 환혼이 불가능.
그 외에도 환혼에는 여러 제약이 있었다.
몇 번의 환혼을 거친 다음에는 한 번의 긴 안식의 세월을 거쳐야 한다든지…….
또한 단혼각에 대한 것도 새로운 정보 중 하나.
단혼각은 회영부에서 파생된 조직이었다.
회영부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 단혼각과 조우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갈 때였다.
“신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나아가는 길에는 동행이 있었다.
빙심마희의 모습을 한 현이신녀였다.
다른 이들은 반양장에 남겨 둔 채, 후공은 현이신녀에게만 동행을 청한 터. 회영부는 급변한 사태에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할 테니 빠른 움직임을 보일 순 없을 것이다.
설령 빠르게 온다해도 반양장에 풍제와 당명이 있으니 문제될 일은 없었다.
그리고 현이신녀를 동행한 이유라면,
“마희, 왜 시비냐!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봐?”
제법 그럴싸한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강호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해빙궁의 현이가 아닌, 악인곡의 빙심마희로서.
“실망이네. 난 그런 줄 알았지.”
“그럼 넌 내 생각하고 있었냐?”
“호호호, 물론이지. 선물도 준비했는걸.”
“선물?”
“그래, 멋진 선물이야. 너에게 어울리는.”
표독스러운 얼굴에 잔혹한 미소를 띠며 현이신녀가 뒤춤에 감추고 있던 오른손을 내밀었다.
“꽃이야. 너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아까 꺾었어.”
화공신타의 얼굴은 썩어들어갔다.
꽃이라고 다 좋을까. 꽃도 꽃 나름이다.
“호박꽃? 내가 호박이란 거냐!”
“호오오……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박!”
화공신타가 호박꽃을 잡아챘다. 그러곤 이내 호박꽃을 입으로 가져가 씹어먹었다.
“이딴 걸 선물이라고.”
“그걸 먹으면 어떡해! 아닌가, 호박이 호박꽃을 먹는 건 당연한 건가? 호호호호호호, 박! 호호호호호호호!”
현이신녀가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숲을 지나던 차, 지나고 나서도 그녀의 웃음소리는 숲에 여운처럼 남았다.
갑자기 불어닥친 광풍에 숲속에 있던 곤충들이 쓸려나갔다가 쭈그리가 되어 이내 아득히 멀어진 웃음소리를 듣고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화공신타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제법 농담도 할 줄 알게 된 현이신녀의 모습이 기특해 보였지만, 칭찬해줄 수는 없는 일.
악인곡이니까!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겠지. 나도 꽃을 선물해 주지.”
“호호호! 어떤 꽃일까 무척 기대되는걸.”
화공신타는 숲을 스치며 부지런히 꽃을 찾았고, 여러 꽃을 지나쳤음에도 꽃을 꺾지 않았다.
“신타, 얼마나 예쁜 꽃을 주려고 그냥 지나쳐?”
“젠장, 왜 안 보이냐?”
“무슨 꽃인데?”
“할미꽃.”
“호호호호호호호호호, 박!”
“찾았다! 받아.”
“고마워.”
현이가 고맙다며 웃었다.
물론 그래봤자 악독한 미소가 떠올랐을 뿐이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또 선물을 받는다.
그동안 여러 가지 선물을 받았지만…….
대공자에게 꽃을 선물받은 건 처음.
비록 할미꽃이지만 소중했다.
총 열두 개의 꽃과 줄기를 다듬어 둥글게 팔찌를 만들어 손목에 채웠다.
“뭐해! 안 씹어먹고.”
“당장 씹어먹으라고!”
고함에 현이가 눈물을 글썽였다.
“너 누구야? 아무리 봐도 빙심마희가 아닌 것 같은데?”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현이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여기서 눈물이라도 흘렸다간 대공자 성격상 돌아가란 말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훈련.
현이신녀는 이내 매섭게 쏘아보며 할미꽃 팔찌를 씹어먹었다.
“넌 못생긴 꼽추새끼야! 아주 나쁜 새끼야!”
“쯧쯧, 한심해 죽겠네.”
화공신타가 혀를 차고는 신형을 하늘 위로 날렸다.
찰나지간에 아득히 허공에 둥실 떠올라 체공한 채 입을 열었다.
“나 혼자 간다.”
“아…… 아냐! 같이 가!”
“흥! 따라오려면 따라와 보든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공신타가 허공을 질주했다.
어떨 땐 매몰차게 대해야 한다.
크게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큰 실의도 겪어 봐야 하는 법.
떼놓는 데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지무(地無)를 펼쳐 날아가는 중,
화공신타는 뒤쪽에서 익숙한 감각을 느끼고 멈춰 뒤돌아봤다.
‘응?’
그곳엔 현이가 허공을 달려오고 있었다.
허공답보가 아니었다.
그녀의 발이 허공을 딛을 때마다 그녀의 발 아래로 원반 형태의 얼음이 떠올랐다.
현이는 그걸 반발력 삼아 빠르게 뒤쫓아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환명을 딛고 허공을 질주하던 모습과 흡사했기에,
“오호! 제법이네.”
후공은 탄성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발 아래 얼음 원반은 지나오면서 순식간에 녹아내리면서 물이 되어 떨어져내리는 형태.
이 정도면 나름 훌륭했기에 후공은 기다려주었다.
이내 곁에 이른 현이신녀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내가 못 따라갈 줄 알았어?”
“어.”
“흥! 난 어디라도 따라가!”
“역시 할미꽃!”
후공은 엄지를 들어 보였다.
현이신녀도 화답했다.
“역시 호박꽃!”
그러다 이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나아갔다.
지면을 가를 때도 빨랐지만 이제 조금 더 빨랐다.
그런 탓에,
크르르르르르릉!
땅속으로 이동하면서 주인을 따라가던 번쾌와 검령이 뒤처질 것을 걱정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척, 처억, 척!
검집째로 주인의 몸에 다가가며 허리와 등 뒤쪽으로 체결되어갔다.
“빙심마희! 더 높이, 더 빠르게!”
“좋아!”
악인곡의 곡주와 빙심마희는 더 높이 솟구쳤고, 더 빠르게 나아갔다.
청해성과 신강의 경계.
청해성으로서는 북쪽, 신강에서는 남쪽.
그곳을 향해 방울소리가 빠르게 이동했다.
딸랑, 딸랑.
숲을 지나면서 산짐승들이 연신 널브러졌다.
나뭇가지를 딛고 앉아 있던 새들이 맥없이 떨어져 발버둥쳤고, 산돼지는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울었다.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엑!
방울 소리가 머리를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더 나아가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내 방울 소리는 옅어졌지만,
한참이 지난 후에도 환청에 시달렸다.
숲을 지난 방울 소리는 이내 마을로 향했다.
딸랑, 딸랑, 딸랑.
방울 소리에 신금현에 사는 이들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길을 걷던 이들은 속절없이 쓰러져 나뒹굴었다.
그래도 몇몇은 버텼다.
커다란 장원인 대운장 장주의 호위인 선운교도 그중 한 명이었다.
“누구냐! 누구길래 감히 사술을 펼치는 것이냐!”
장원 내에 모두가 나뒹구는 모습에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대답이 들려왔다.
“넌 귀운종을 아느냐?”
“귀운종?”
선운교가 갸웃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어서였고, 귀운종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순 없어서였다.
“모르는군. 그렇다면…….”
방울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퍼석
호기롭게 외쳤던 선운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방울 소리가 멀어졌다.
회영오존 은령존이 빠르게 마을에서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