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살아남아라. 내 고향이여.
환혼대법은 천지조화의 역행.
삼라만상의 흐름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것이 얼마나 정교한 것인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느낄 때가 있다.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려 할 때.
역행하고자 할 때.
물을 아래에서 위로 흐르게 한다든지, 세월이 지나감에도 점점 어려지게 한다든지. 또는 남자가 여자가 된다든지, 여인이 사내가 된다든지. 다른 이와 환혼하여 상대의 몸 속에 내 혼이 깃들게 한다든지.
그런 시도를 할 때면 알게 된다.
천지의 순행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 건지 비로소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천지순행의 미세한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거기에 따른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
막대한 기운을 끊임없이 소모하든,
생명이 단축되든.
몸 어딘가가 부서지든.
환혼대법도 그랬다.
여러 제약과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
환혼 후 재환혼까지는 십 년이 지나야 하고,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환혼에는 길고 긴 안식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누군가는 세 번째.
또 누군가는 네 번째.
징조는 갑자기 기운의 운행이 일시 멈추고, 정신은 아득해진다.
그 징조가 처음엔 세 달 간격, 다음은 두 달 간격.
그렇게 조금씩 간격이 줄어간다.
그러다 결국 영원과 같은 잠에 빠져든다.
또 다른 부작용이라면,
환혼 후 정기신의 합일이 흩어지는 상황.
그 결과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
본래의 자신의 기억뿐 아니라 환혼하여 차지한 몸의 기억까지 모조리 흩날려,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다.
징조는 현기증.
평소라면 그 어떤 높은 곳에 올라 까마득한 땅을 내려다봐도 어지러움을 느낄 수 없는 존재라도, 그때는 그저 평평한 지면에 서 있는 것만으로 균형을 잡기 어렵다.
그것이 시작되면,
새로운 몸을 찾아 환혼해야 한다.
지금 은령존이 그랬다.
빛나는 은발을 지닌 노인.
은령존에게 갑자기 현기증이 찾아온 것은 세 달 전.
그리고 열흘 전 다시금 신형의 균형을 잃었다.
그러니 새로운 몸을 찾아야 했다.
서둘러야 했다.
“너는 귀운종을 아느냐?”
돌아오는 목소리에 막연함이 실렸기에,
은령존은 머리를 터뜨렸다.
퍼석!
계속 물었다.
“나는 귀운종을 찾고 있다.”
“귀운종이라니?”
“귀운종은 오래전에…….”
“들어본 적이…….”
막연함, 막연함, 막연함. 막연한 대답들.
퍼석! 퍼석, 퍼석!
계속 터뜨렸다.
그가 귀운종을 찾는 이유는 한 가지.
새로운 몸이 필요하기 때문.
사람은 타고난 근골이 다르고,
가능성도 다르다.
천재로 태어났다 해도 무학의 경지와는 거리가 먼 체질이 있고, 또 누군가는 언변이 뛰어나나 몸을 잘 쓰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감수성이 뛰어나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천재가 아니어도 된다.
언변이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감수성이 탁월하여 생각지도 못한 감성에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은령존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
높은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 근골을 지닌 이가 필요할 뿐이었다.
퍼석! 퍼석!
귀운종의 후인들 중에는 그러한 재목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귀운종을 찾고 있었다.
진경의 극에 닿을 수 있는 근골을 타고난 이들은 십만 명 중 하나. 화경에 이를 수 있는 자는 더 적다. 백만 명 중 하나. 화경의 극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자는 수백만 명 중 하나.
그걸로는 부족하다.
족히 현경에 이를 수 있는 근골이어야만 한다.
그런 근골을 타고난 이는 희박하기 짝이 없지만…….
‘귀운종이라면…… 그 후인들이라면…….’
“귀운종을 아느냐?”
“으아아아아아아악! 머리, 머리가! 으아아아아아악!”
“으으으윽!”
“으아아아아아아아앙!”
방울 소리를 들은 이들은 머리를 감싸 안고 뒹굴었다. 반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이들도, 길을 걷던 이들도, 단잠을 자고 있던 갓난아기도 울음을 터뜨렸다.
“안돼, 안돼!”
아기의 엄마는 자신의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어린 딸에게 달려가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비명을 지르듯 울었기에 어머니는 아기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가야, 아무 일도 없을 거다.”
당장 자신의 고막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아도 어머니는 자신의 귀를 틀어막지 않았다. 그저 아기가 무사하길 바랐다.
방울 소리는 거대한 장원인 유평장에도 휘몰아쳤다.
장주를 비롯한 모두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으으으, 손…… 손 대협! 손 대협은 어디에 있…… 크아아아아악!”
유평장에서 손 대협이라 불리는 손광은 뜨락에 서 있었다. 그는 쓰러지지 않았고, 비명도 내지르지 않았다.
방울 소리에 몸이 덜덜 떨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음공.’
피가 춤을 춘다.
기혈이 들끓으면서 기운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숨도 거칠어진다.
음공이었다.
음파에 대항하려 했지만 들려온 방울 소리가 자신의 기운을 연신 흩어가니 손광은 그저 서 있는 것이 전부. 덜덜 떠는 것이 전부.
어디쯤인가.
어디쯤에서 들려오는가.
감지해 보려 했지만 감지할 수 없었다.
삼십 대 후반.
경지는 화경의 예.
그럼에도 손광은 옴짝달싹조차 하기 어려웠다.
대체 어떤 자인가?
얼마나 무서운 자인가!
그때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에 손광은 더 격렬하게 떨었다.
그 목소리에는 마음까지 떨려왔다.
그리고 목소리가 퍼져 나가지 않는다. 전음이 아님에도 자신에게만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 놀랍지만…….
그보다는,
‘귀……운종?’
상대가 귀운종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찾아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귀운종의 후인.
아버지의 별호는 구혼사존(勾魂邪尊).
귀운종의 칠대 호법 중 일인.
‘이자는…… 복수를 위해서 온 것이구나.’
손광은 그렇게 생각했다.
귀운종은 강호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귀운종에 의해 많은 이들이 이유 없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어렸기에 몰랐지만 결국은 알게 되었다.
귀운종의 후인들은 따로 촌락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고, 때때로 복수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귀운종의 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달프다.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감춘다고 해도 어찌 온전히 감춰질 것인가.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게 된다.
그렇게 찾아온다.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그 죗값을 치르라며 살기에 찬 눈동자를 보야야 했다.
그렇기에 귀운종은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계속해서 거처를 옮겨 다녔다.
아예 무리를 떠난 이도 있었지만, 남은 이들이 더 많았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떠났어도 연락은 해왔다.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회신을 주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옮겼는지, 어떻게 찾아오는지 듣곤 했다.
무리가 모여 있는 촌락은 모두에게 고향과 같았다.
자주 옮겨도 고향이라 느꼈다.
손광도 그랬다.
이곳 유평장의 식객으로 지내며 손 대협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다. 자신이 귀운종임을 잊지 않았다.
방울 소리가 멈추고, 대신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불어왔다 싶을 때, 손광은 눈앞에 선 은발의 노인을 볼 수 있었다.
“후후, 너는 알고 있구나.”
손광은 부인하지 못했다.
부인하기에는 늦은 것이다.
이미 떨리는 동공이 실토했고, 두려움에 찬 표정이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대는 최소 현경의 예.
무엇을 숨길 수 없는 존재.
“알고…… 있습니다.”
“현명하군. 방금 너의 말이 이곳에 있는 모두를 살렸다.”
“감사합니다.”
떨지 않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손광은 저절로 떨려 나오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그런 손광을 은령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이름은?”
“손광입니다.”
“귀운종의 후인이겠구나.”
“그렇습니다.”
“아쉽군.”
손광은 죽음을 직감했다.
귀운종의 후인이냐 묻는 말은 확인.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로선 지금 죽는 것이 아쉬울 뿐.
하지만 손광의 생각은 틀렸다.
은령존은 죽일 생각이 없었다. 손광의 근골을 살폈을 뿐이고, 아쉬움은 근골에 대한 것이었다.
나이에 비해 성취가 빠른 건 분명하나 한계가 명확해 보이는 것이다.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화경의 극.
“손광, 귀운종은 네게 어떤 곳이냐?”
“떠난 지 오래고, 잊은 지도 오래입니다.”
“좋다. 너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 길을 안내하라.”
“그 전에…… 약속해 주십시오.”
“약속?”
“저는…… 살려주신다는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은령존이 갸웃했다.
뚫어질 듯 손광의 눈을 들여다봤다.
동공이 춤을 추고 있었고, 이미 흰자위도 혈선이 난무한 모습에서 삶에 대한 열망을 읽었다.
“후후, 너의 말이 날 기쁘게 하는군.”
목숨에 집착을 보이는 놈만큼 확실한 놈이 어디에 있을까.
“너는 살려주겠다.”
손광이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위치는?”
“청해의 남서. 사천과 맞닿은 경계입니다”
“뜻밖에도 꽤 멀리 갔군. 가자.”
은령존이 손광의 허리를 휘감았다.
이내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은령존의 신법은 놀라웠다.
엄청난 속도였다.
손광은 여태 이런 무위를 지닌 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산이 보였다 싶으면 어느샌가 산이 지나갔다.
‘후공도 이 정도였을까.’
문득 손광은 본 적도 없는 후공이 떠올랐다.
명실상부 천하제일인.
귀운종을 멸살한 이.
아버지를 죽인 이.
그렇게 들었다.
후공은 귀운종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늘 후공이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림맹이 귀운종의 후인들을 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맹의 천하십객 중 몇몇이 찾아올 때도 있었고, 무림맹은 거짓 소문을 강호에 퍼뜨려 교란하기도 했다. 후공의 지시가 아니면 누구의 지시겠는가.
그런 후공이 별안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그저 덤덤히 그 소식을 흘려들었다.
‘만약 그 후공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나타났을 테지.
분명 지켜주었을 테지.
어느 날은 떠올리며 원망하고, 어느 날은 허허롭게 웃기도 했는데 지금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허망하게 가는 건 뭐란 말인가.
이제 귀운종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결국 이자는 찾아낼 테지.
‘내가…… 엉뚱한 장소로 인도하고 있어도.’
손광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금니 부위에 감춰둔 독(毒)이 터져 나갔다.
독은 빠르게 전신으로 퍼져갔다.
얼굴이 새까맣게 물들어가고 기식이 흐트러졌다.
은령존의 눈이 분노로 물들었다.
“이노오옴!”
어느덧 청해성 중남부.
손광은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이지만 시간을 벌었다.
조금이나마 멀리 오게 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은령존의 손이 손광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네놈이 감히!”
그래도 손광은 웃었다.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대라신선이 온다 해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기뻐 손광이 웃었다.
‘살아남아라. 내 고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