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화. 대공자님, 맡겨 주십시오!
대환단을 밀어넣은 후,
“뭐하는 새낀데 길막이야! 저리 꺼져라!”
화공신타가 칠절선생을 내던졌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칠절선생이 한 모옥을 뚫고 들어갔다.
쿠우웅!
큰 충격음이 따라왔다.
어찌나 그 소리가 큰지 땅이 흔들렸다. 지진이 났나 싶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지면을 뚫고 땅에 박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이 정도면 몸이 바스러졌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예 비명 소리조차 없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왜? 왜?’
칠절선생만은 아니었다.
그저 미친 듯이 의문이 떠올랐다.
거칠게 던져진 건 맞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닌 탓이었다. 실상은 전혀 달랐다. 던지기 직전 꼽추는 기운을 흘려보냈다. 그 기운이 자신의 몸을 휘감았다.
모옥을 뚫고 들어갈 때 그 기운은 보호막이 되었고, 지면에 처박힐 때도 마찬가지.
아니, 아니다. 더했다. 보호벽을 능가했다.
이보다 더 평온하게 땅에 닿을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 그만큼 한없이 부드러웠다.
소리만 컸을 뿐이었다.
분명 땅이 울리고 흔들린 건 맞지만 그건 몸이 땅에 닿아서가 아니었다. 땅에 닿았다 싶은 순간 꼽추의 기운이 찰나지간 빠져나가면서 땅을 타격한 탓.
도리어 거기에서 반탄되어 나온 기운에 칠절선생은 포근히 감싸이듯 내려설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대체 어떤 경지란 말인가?
붙잡고 내던진 짧은 순간에 발현된 기이한 묘용들은 하나같이 경이로운 것들이었다.
음공을 상쇄시켰으며, 산을 때려 소를 타격한다는 격산타우를 뛰어넘는 신기까지. 반탄까지 계산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신속했을 뿐 아니라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분명 말은 꺼지라고 했는데,
이쯤이면 다르게 들리게 된다.
죽지 마라!
살아남아라!
깨닫게 되니 칠절선생은 이렇게 들렸다.
‘한데 왜? 독약은 왜?’
그러다 칠절선생은 또 다른 의문에 사로잡혔다.
꼽추가 보인 수면 아래 의지는 염려였고, 살아남으라는 것이었는데 독약을 먹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답이 들려왔다.
‘어?’
몸 속이었다.
한줄기 기운이 피어나면서 독의 발현. 온화하고 중후한 기운이 전신 경맥을 휘돌며 흐트러진 내부 진기를 바로잡고 있었다.
독이 아니라 영단?
영단의 기운이 빠르게 뒤틀린 기운을 복원했고, 회복해가는 자신의 기운과 함께 손상된 내부 장기까지 치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칠절선생은 다시금 환청을 들었다.
이 영단이 얼마나 대단하고 높은 가치가 있는지 깨닫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호인들이라면 꿈에서조차 바랄 영단이리라.
한데 그걸 나에게?
이 귀한 걸 나에게?
‘왜?’
그렇게 모든 걸 깨달았기에 칠절선생은 더 큰 의문에 사로잡혔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흐으으음…….”
그 신음 소리에 화공신타가 갸웃.
“뭐야? 아직 안 죽었어? 너 대체 뭘 처먹은 거야? 딱 기다려. 끝나고 배를 갈라줄 테니까. 뭘 처먹었는지 난 꼭 확인한다.”
그렇게 말을 이은 다음 주변을 둘러보니, 그 시선을 받은 귀운종 모두가 주춤 물러났다.
엎친 데 덮친 격. 더한 놈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흉악한 외모가 말해준다. 잔혹한 손속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귀운종은 누구 할 것 없이 창백한 얼굴이 아예 파랗게 질려버렸다.
그래도 단 한 사람은 알아봤다.
무흔신투만 내심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공자님이 오셨어! 시발, 대공자님이 오셨다고! 이제 살았다. 만세! 이제 살았다고오오오오오!’
마음 같아선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곤 펄쩍펄쩍 뛰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훑어보던 화공신타의 시선이 은령존에게 이르러 멈추었을 때, 은령존은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본 것이다.
꼽추가 오는 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감지한 건 백여 장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쯤.
밀려나가던 놈을 붙잡았을 땐 자신의 음공인 파천오종(破天五鐘)의 기운을 가볍게 상쇄시켰다. 비록 삼성의 공력을 발현한 것에 불과하다 해도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강호에 이런 자가 있었던가?
“넌 누구냐?”
꼽추를 응시하며 물었다.
바로 답변이 튀어나왔다.
“시발놈아, 나는 왜 안 물어보냐! 나 안 보이냐!”
꼽추의 곁에 있는 여인이었다.
뒤에서 누가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만 같은 표독스러운 외모의 여인이었다.
은령존이 미간을 좁혔고,
그건 화공신타도 마찬가지. 바로 성질을 냈다.
“내가 곡주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
“니가 곡주인 건 맞는데, 저 새끼가 날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잖아. 여자라서 무시하는 거잖아. 그래, 안 그래?”
“좋다. 그럼 네가 먼저 이야기해.”
“그냥 짜증 나. 갑자기 말하기 싫어졌어!”
“아주 염병을 하네.”
“호오오오~~ 호호호호호호호호호!”
“에휴…….”
화공신타가 혀를 끌끌 찬 후 다시 은령존을 바라봤다.
“내 소개를 하마. 나는 세상의 두려움, 만인의 공포. 처절한 죽음을 선사하는 이. 자, 이제 방울 소리 네 차례다. 넌 누구지?”
대답 대신 은령존은 눈을 가늘게 떴다.
소개라기엔 엉뚱한 말에 불과했지만 이미 오가는 대화를 통해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다.
‘화공신타. 악인곡…….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도 들었다.
귀운종을 찾아다니는 와중 여러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중에는 악인곡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터. 풍제와 검선, 검존, 천화서고 대공자가 악인곡에 당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악인곡주는 꼽추.
곡주가 화공신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저 괴이한 소문이라고 생각했거늘 진실이었을 줄이야.
직접 눈으로 경지를 확인하니 풍제와 검선 등의 죽음이 이해되었다.
“대답이 없네? 뭐 그건 그렇다치고. 귀운종을 멸살하는 건 내게 맡기는 건 어떠냐. 난 이놈들을 모조리 죽여야겠거든.”
“그런 거 알아서 뭐해. 너도 어차피 내가 물어도 대답 안 하잖아. 상놈의 새끼가 맨날 물어보기만 하네. 자꾸 그러기야?”
빙심마희가 좋다고 웃었다.
그 모습에,
미친놈들이로군.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
은령존은 파천오종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화공신타의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걸렸다.
“흐흐흐, 마희. 저리 꺼져 있어라. 그리고 귀운종. 너흰 그 자리에 있어. 한 놈이라도 도망치면 귀운종부터 쓸어버린다.”
그 말에 귀운종이 얼어붙었다.
진득한 살기만으로 칼바람이 스쳐가는 것 같아 베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꼽추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가 스스로를 소개한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나는 세상의 두려움.
만인의 공포.
처절한 죽음을 선사하는 이.
‘죽는다.’
‘이렇게 죽게 되는구나.’
‘결코…… 벗어날 수 없어.’
모두가 죽음을 받아들였고, 염백도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음공의 대가와 꼽추가 격돌하게 되면 그 여파만으로 죽음에 이를 터였다.
겨우 살아있게 되더라도 결국 죽게 된다.
누가 찾아온다 해도 두렵지 않았었다.
누가 온다 해도 상대할 수 있노라 자부했다.
후공은 귀운종을 남겨두었을 뿐 아니라 무공을 익히는 것도 허용했다. 아량, 혹은 같잖음. 아니 후공이라면 둘 다일지도. 덕분에 화경의 극에 이를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오든 두렵지 않았다.
한데 지금 염백은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염후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니 더 두려워졌다.
또 느껴지는 바도 있었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전대의 귀운종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이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떤 저항조차 못할 막막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다 죽음을 맞이했던 건가?
아마도.
아니, 분명하다.
그들의 두려움이 지금 눈앞에 있지 않는가.
‘내가…… 틀렸구나. 내가…… 틀렸어.’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기며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는데, 복수를 위해 찾아온 이들을 겁박하고 쫓아내기 바빴는데…….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후야, 괜찮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염백은 웃어 보였지만 마음으로는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번 생은 여기까지. 너를 만날 수 있어 행운이었다. 너를 만나 보낸 시간이 축복이었다. 밤하늘의 별이 되어 다시 만나자.
당연하지, 라는 말에 대한 대답인 걸까.
아니면 밤하늘의 별이 되어 다시 만나자는 말의 대답일까.
염후가 활짝 웃는 걸 보면 안심한 듯하고,
염후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밤하늘의 별이 되어 만나자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작별은 이르다.
- 신투, 기회가 많지 않다. 상대는 회영부의 은령존. 격돌의 순간이 세 번째에 이르면 더 이상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귀운종을 겁박하는 목소리 아래, 후공은 무흔신투에게 전음을 보낸 터.
신투는 마음으로만 답했다.
전음으로 답하는 것조차 혹여 적이 듣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의미는 명확했다.
대공자님은 귀운종을 살리는 데 관여할 수 없다.
여력이 없어서겠는가. 아니다. 귀운종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귀운종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순간 상황은 급변하게 되는 것이다.
은령존이 귀운종을 인질로 삼는다면?
그보다 최악은 없다.
심지어 대공자님까지 위험해질 터.
‘대공자님, 맡겨 주십시오.’
신투는 마음으로 답하고, 손을 들어 가슴을 어루만졌다.
모산의 보물,
오행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행기를 넓게, 모두를 오행기 안에!
무흔신투가 그렇게 다짐할 때,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화공신타가 짓쳐들었다.
딸랑.
은령존의 손에서 파천오종이 울렸다.
세 개의 금색 방울과 하나의 은색 방울이 부딪혔고, 그 음파는 거대한 창이 되어, 수백 개의 창이 되어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해 쏘아져 갔다.
‘천람!’
밀려오는 건 더 이상 소리가 아니다.
거대한 해일, 혹은 거대한 창.
후공의 천람이 그 기운을 휘저었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천람과 파천오종이 뒤엉키며 허공에 갈라지듯 균열이 일었다. 그 틈사이로 후공이 나아갔다. 우수에 떠오른 건 다섯 개의 백색 광망.
능오침.
동시에 우우우웅.
왼쪽 소매 안을 맴돌고 있던 친이 검집을 벗어나 발출되었다.
자줏빛 광채가 창을 스러뜨렸다.
그렇게 천람과 친이 열어놓은 틈을 따라 후공이 나아갔다.
비뚤어진 시선으로,
튀어나온 광대뼈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채.
은령존이 웃음을 머금었다.
놀라운 모습이긴 하다만 고작 비검일 뿐이다.
고작 몇 개의 창이 흐트러졌을 뿐이다.
‘파천오종, 진파(眞波)!’
다섯 개의 방울이 동시에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