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95화 (395/460)

395화. 오행기의 신묘함.

쩌엉!

다섯 개의 방울이 동시에 부딪히며 그 파장은 거대한 창이 되었다. 친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순식간에 친이 음파에 갇히면서 허공에 멈춰 부르르 떨었다.

고통스럽다는 듯 친이 울부짖었다.

고통이 맞다.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후공은 친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찰나간에 수십만 번의 음파. 소리의 파장. 가히 친은 수십만 번을 두들겨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친의 울부짖음은 고통이요, 분노.

땅속에 머물고 있는 번과 쾌, 검령이 동요했다. 분노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부를 때가 아니었다. 지금 나왔다가는 친과 같아진다. 친을 가여워할 겨를도 없었다.

‘금(金)은 음속을 가속시킨다. 수중보다 얼음속보다 더.’

음공에 대한 파악이 먼저였다. 음공에 대해선 잘 모른다.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음공의 고수를 만나보긴 했다. 과거엔 달랐다. 그땐 달랐다. 이전의 경지에선 그저 소리를 내는 놈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 소리는 그저 조금 특이한 기예일 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삼악이 음파에 반응해 흔들리고 있다.

내부의 수극과 금극도 다를 건 없었다. 금극과 수극을 품었던 뇌신존과 흑야존의 서열이 왜 은령존 아래인지 알 수 있는 부분.

반면 화극만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음파를 늦추고 분쇄하기도 했다.

후공은 수극과 금극의 기운을 억누름과 동시에 화극은 극대화했다. 외부로 화극을 돌리는 건 무리. 화극은 삼악을 진정시키는 쪽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삼악이 빠르게 결집.

‘환명.’

열두 겹의 환명으로 짓쳐드는 음파를 방어했다.

파아앙, 파앙, 팡!

쩌저어어엉!

부딪히면서 음파의 일부는 굴절되었고, 일부는 환명을 찢어갔다. 환명은 물이 끓는 것 같아졌다. 몽글몽글 분리되면서 흩어졌다.

‘음파는 튕겨 나가고 굴절. 일부는 투과.’

통격으로 흘릴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해지면 지면에서 상대한다.

굴절된 음파가 선회하여 뻗어오고, 마지막 환명이 끓어오르며 흩어질 때 후공은 지상으로 내려섰다.

발이 땅에 닿을 때 음파가 가슴을 직격했다.

소리가 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후공만은 들을 수 있었다. 극렬한 음파가 몸 전체를 삽시간에 뒤흔들었다. 피가 끓고 진기가 요동치면서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몸이 수천수만 개로 조각나 흩어지는 건가.

그런 착각이 들 정도.

‘마음에 드는군.’

통격은 실패.

발밑은 움푹 파였을 뿐이다.

온전히 흘려냈다면 거대한 분화구가 생성되었을 것이고.

그래도 소득이 크다.

후공은 시선을 들었다. 은령존을 눈에 담았다. 미소를 지었다.

‘웃어?’

은령존은 미간을 좁혔다.

분명 파천오종의 진파에 직격당했다.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버텨낸 것만으로 놀랍지만 웃으면 곤란했다. 이미 전신이 진탕 되었을 텐데 꼽추 놈이 웃다니.

웃을 수밖에.

후공으로선 소득이 컸다. 고통을 감내할 만했다.

토(土)는 영향이 극소.

이제 해야 할 일이라면,

- 신투. 아직이다. 기다려라.

무흔신투가 움직이려 했기에 멈춰 세웠다.

이어 움직일 시점과 오행기의 운용을 알려주었다.

그다음,

- 빙심마희!

현이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들려오는 전음이 끝났을 때 현이의 심장은 내려앉았다.

입술도 미미하게 떨었다.

- 대공자…….

- 누가 대공자냐!

- 신타, 괜찮겠어?

- 괜찮다마다. 두껍게, 보이지 않게.

현이신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두근, 두근.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다.

악인곡주이자 천화서고 대공자는 거스를 수 없다.

또 대공자는 길을 찾는 이.

그러니 찾아낼 것이다.

그래주길 바랐다.

그 순간, 후공이 신형을 날렸다.

‘빠르게! 음속보다 빠르게!’

대기 중 소리의 속도는 눈 깜빡할 사이에 백십여 장(약 300미터).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면, 마치 빛과 같아지다면!

가공할 속도에 뒤쪽 공기가 터져나왔다.

콰앙, 콰아앙, 쾅!

지나는 길, 순간적으로 수증기가 둥그런 구름처럼 일어나기도 했다.

‘생각은 좋다만.’

은령존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쩌어엉, 쩌엉!

엄청난 가속으로 짓쳐드는 모습에 뒤로 물러나며 파천오종의 중첩을 운용했다.

금방울 세 개가 부딪혔고, 그 울림이 끝나기도 전 은방울 두 개가 뒤따랐다. 다른 음파, 하지만 하나의 화음. 음파에 음파를 중첩하면 음파는 가속된다. 음속을 뛰어넘는다. 마치 빛과 같아진다.

그러면서도 음파는 초점을 잃지 않았다.

오직 한곳.

강맹함에 속도를 더해 파장으로 화공신타를 향해 쏘아져 갔다.

콰광, 콰앙, 콰앙!

곱추의 신형이 현란하게 움직일 때마다 굉음이 터지고 구름이 일었다. 속도가 더해진 음파를 비껴내면서 선회하고, 나아가며, 물러났다.

‘근접, 더 가까이.’

후공은 물러났다가도 다시 빠르게 짓쳐들었다.

놈의 약점 중 하나를 본 것이다.

놈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음파의 위력은 가중될 텐데 왜?

그건 두려움.

후공은 놈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음공을 제외하면 대수로울 것이 없음을 놈도 아는 것이다.

회영팔존인 공령존 수준.

아니, 회영십존 중 십존인 환비존 수준.

그렇기에 놈은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도리어 후공은 중첩된 음파에 몇 번이고 격중당해 신형이 흔들렸다.

그때마다 화극의 불길이 치솟아 삼악을 바로잡았다.

또 그럴 때만 겨우 볼 수 있었다.

그 외의 상황은 보고 있음에도 귀운종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정녕 사람인 건가? 그 꼽추인 건가?’

‘하아…….’

‘날고 있어.’

염백도 넋을 놓았다.

누군가의 격돌을 눈으로 쫓지 못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 격돌의 결과에 대해서조차 잠시 잊을 정도였다.

그건 맹의 칠객도 같았다.

이런 격전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후공이 떠나고 없는 이 시대에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이미 음파에 쓸려나가지 않았던가.

이미 겪어보지 않았던가.

아직까지 흐트러진 진기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데 꼽추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빠르게 파훼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음파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됨에도 끊임없이 길을 찾고 있으니, 악인곡을 떠나 한 명의 강호인으로서 경이로움이 떠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두가 넋을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무흔신투는 손을 품에 넣고 오행기를 움켜쥐었고, 현이신녀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결과가 기쁨이길,

결과가 안도이길.

그렇게 바라며 격전의 외곽을 빙 둘러 휘돌았다.

서서석, 쩌쩌저어어어억.

그녀가 지나는 길에 빙벽이 솟아올랐다. 빨랐고, 두꺼웠다. 삽시간에 빙벽으로 형성된 원형의 거대한 울타리가 처졌다.

둘러쳐진 빙벽 위로 한기가 몰아치면서 원형의 천장까지 생겨났다.

이제 외부에서는 안쪽의 격전을 볼 수 없었다.

보고 있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여기에 더해 두꺼운 얼음 장벽이 불투명한 막을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볼 수 없다는 불만보다는 의문이 컸다.

귀운종과 천하칠객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볼 때, 신투가 오행기를 꺼내 던졌다.

넓게. 그리고 오행기 중 넷.

토는 손에 쥔 채 움직였다.

먼저 아이들부터 옮기며 연신 전음을 발했다.

- 빨리, 저곳으로! 모산의 오행기 안으로 이동해!

귀운종과 천하칠객이 멍해졌을 때는 현이신녀도 가세했다. 머뭇거리는 이들을 잡아 오행기의 영역 안으로 옮겼다. 몇몇이 반사적으로 반항했지만 그런 건 현이 앞에선 어린아이 손짓에 불과했다.

그렇게 붙잡혀 옮겨지기도 하고, 제압당해 놓이기도 했다.

내부 진기가 진탕되어 겨우 버티고 선 천하칠객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왜 마녀가……?’

왜 악인곡의 마녀가 신투와 함께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아이들을 포함해 거의 삼백여 명.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순 없다.

하지만 설명이 없어도 알게 되었다.

무흔신투가 칠절선생을 안고 왔기 때문이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칠절선생이 살아 있고 혈색까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쓸려나간 어깨 쪽의 피부가 벗겨져 나가 있는 것을 제외하곤 안광도 좋아 보였다.

“누구십니까?”

무연객이 물었다.

멍청이가 아니다. 이쯤이면 악인곡이 아니란 걸 모를까.

현이신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빙벽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자신의 빙벽은 저렇게 부서질 수 없어야 한다.

어떤 강기라도, 어떤 검강이라도.

그런데 부서지고 있었다.

대공자도 이미 부서진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빙벽 안에서 음파는 증폭되는 것이다. 튕겨 나가며 더 거칠게, 알 수 없는 변화로 대공자를 몰아세웠을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그래서 심장이 주저앉았었다. 그래서 거절하고 싶었다.

쩌저, 쩌저적.

이내 빙벽에 금이 가는가 싶더니,

콰광! 콰아아앙!

쿠르르르르, 빙벽이 허물어졌다.

그렇게 드러난 광경에 현이가 눈물을 글썽였다.

‘살아 있어!’

연신 거대한 수증기를 일으키며 대공자가 움직이고 있었기에, 비로소 현이는 참았던 숨을 들이마셨다.

누군가는 안도했지만, 누군가는 분노했다.

왜 빙벽이 둘러진 건지 의문이었는데, 그 이유가 고스란히 두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날 속여? 감히 날?’

악인곡의 마녀가 귀운종과 천하십객과 함께 있으면 모를 수 없었다. 악인곡은 귀운종을 지키려 한 것이 아닌가. 이 꼽추 새끼는 귀운종을 살리려 온 것이 아닌가!

벌써 두 번이다.

손광에게 속고, 곱추에게 속았다.

‘모두 죽여주마.’

한데 모여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도리어 모여 있으니 죽이기 쉬울 뿐이다.

꼽추를 향해 중첩을 가하는 동시에 음파를 나누어 무리를 향해 쏘아 보냈다.

쩌저어엉, 쩌저엉.

음파가 수만 개의 칼날이 되어 쏘아져갔다.

무흔신투가 손에 쥐고 있는 토(土)의 깃발을 역으로 꽂았다.

그 즉시,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모여 있는 귀운종과 천하십객은 이명을 들었다.

시야는 그대로인데 놀랍게도 소리가 사라진 것.

‘??’

본래 오행기의 작용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다. 또한 안에서는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밖에서는 오행기 안쪽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것이 기본적인 운용이었지만,

토가 역행하면서 달라진 터.

이제 반대가 되었다.

바깥에서 안쪽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안쪽에선 바깥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상황.

“어떻게 된 거지?”

“살았어?”

“바깥의 소리가 사라졌어!”

모두 놀라 두리번거렸다.

서로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음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뿐 아니라 바깥의 바람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모산의 보물이 이런 묘용이 있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서로가 놀라 떠드는 소리를,

은령존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하지만 꼽추는 웃음을 터뜨렸다.

멀리 물러나 허공에 둥실 떠오른 채,

“클클클…… 은령존, 넌 이제 끝이다.”

후공은 파훼법을 찾은 터.

또한 귀운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떨쳐낸 터.

홀가분해져 기분좋게,

그리고 유쾌하게 활짝 웃었다.

“클클클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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