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398화 (398/460)

398화. 소교주가 멍청이라지?

반양장을 향해 나아가는 길.

신형을 날리며 후공은 상념에 잠겼다.

회영십존 중 남은 건 이제 다섯.

그 너머에 회영부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공은 베일에 쌓인 회영부주도 떠올렸다.

남자인가, 여자인가.

노인인가, 젊은 모습인가.

막연할 뿐이다.

아니, 어떤 모습인지는 의미 없겠지.

연이은 환혼으로 외형은 계속 바뀌는 것이니.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회영부주는 필시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는 점.

오백 년? 아니면 천 년?

최소 삼백 년이다.

회영부는 환혼의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유추가 가능했다.

여러 부작용.

여러 후유증.

거듭하며 커진다.

존재를 잊기도 한다. 은령존이 눈앞에서 증명했다. 정기신이 분리되며 존재를 까마득히 잊었다.

여러 가지가 있다지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작용은 긴 안식기. 몇 차례의 환혼 후에는 안식기가 필요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캐낼 때마다 같았다.

그리고 그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미 몇 번이고 환혼을 통해 긴 세월을 건넜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안식기 때문일까?

지나간 강호사에는 환혼과 회영부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 각 시대마다 천하제일인의 이름은 대대로 전해지며 회자되는데 환혼에 관한 건 없었다. 안식기가 그만큼 길었던 것인가?

“신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현이신녀가 말을 걸어왔기에 후공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니 생각.”

“호오오~~ 호호호호호호호호!”

현이신녀가 좋아했다.

후공은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무흔신투는 아니었다.

“신녀님, 어디 아프십니까?”

원래 알고 있던 현이신녀가 아니었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거의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는데, 그건 악인곡이니까 그렇다 쳐도 문제는 웃음이었다. 호오오~ 라니. 이건 어떻게 봐도 정신 나간 년 같지 않는가.

“닥쳐라!”

무흔신투가 즉시 쪼그라들었다.

신녀의 인상도 무서워 순간적으로 목이 콱 막힐 정도.

“도적놈의 새끼가 감히 본녀의 대화에 끼어들다니.”

“……죄송해요.”

“그만 말해!”

신투가 입을 닥쳤기에 현이는 시선을 돌렸다.

“신타, 내 생각을 했다고?”

“그래. 넌 어떻게 그 얼굴로 살아가나 신기해서.”

“호오오~~ 호호호호호호호! 개새끼.”

“클클클.”

후공은 기분 좋게 웃었다.

당연히 현이신녀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빙궁.

“마희, 사람이 천 년을 살 수 있을까? 너라면 어떨 것 같아?”

현이는 물음의 의미를 이해했다.

빙벽 안에서 칠십 년을 보냈다.

그럼 천 년도 가능하냐는 물음.

“잠든 채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깨어있는 상태로는 무리다.

천 년은 긴 세월.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버티는 것은 어렵다.

만약 시간이 더 흘러 사매들이 세상을 떠났다면 그녀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얼리고 잠들어 천 년 후에 깨어나는 건?”

“깨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누군가 깨워준다면?”

“그렇다면 가능하겠지.”

현이는 수긍하는 동시에 숨겨진 의미도 이해했다.

“깨우기 위해, 깨울 날을 위해 천 년을 살아남아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회영부주가?”

후공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말도 안 되지……. 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무심코 떠올린 생각.

회영부주는 누군가를 다시 만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환혼이 시작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자는 천하를 지배하지도 않았고, 천하제일인으로 명성을 떨치지도 않았으며 지독한 악명조차 남기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지금에 와선 처음 마음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지금에 와서 마화한 것은 아닐까.

그런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떠올라 물어보았을 뿐.

“신타, 거기엔 문제가 있어.”

“듣고 있다.”

“천 년을 흘려보낼 이유가 없어. 얼려 둔 사람이 그 시대의 의술로는 손 쓸 수 없는 병에 걸려 그 병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를 기다린다 해도 너무 막연해. 그리고 천 년은 너무 긴 세월이야. 오백 년이라 해도 긴 세월인 건 마찬가지지.”

후공이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회영부주는 환혼대법을 완성한 자.

얼마나 뛰어난 자인가.

만약 그런 이유라면 회영부주는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는 망상.

그래,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것만이 그 사람을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회영부주는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마희, 넌 똑똑해졌구나.”

칭찬에 현이신녀가 다시금 괴상하게 웃었다.

그사이 무흔신투는 여러 얼굴로 계속 역용을 하고 있었다. 못된 얼굴, 악랄한 인상, 못생긴 얼굴이 떠올랐다가 끊임없이 바뀌어 갔다.

처음에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지만 들어도 뭔 소린가 싶어, 자신도 이제 악인곡의 일원이니 악인곡에 걸맞은 모습이나 새로 갖추자고 생각한 터.

그 가상함에 후공은,

“너 뭐하냐?”

신투가 역용을 멈추고 바라봤다.

바로 폭언이 터졌다.

“누가 너 따위 신경 쓴다고 역용이야! 아주 얼간이 새끼였네!”

“………………네.”

무흔신투는 많이 시무룩해졌다.

마침 딱 멈춘 역용 상태가 얼간이 같은 얼굴이어서 더 불쌍해 보였다.

“클클.”

비둘기는 역시 시무룩한 모습이 재밌다.

웃음을 흘린 후공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멀리, 더 멀리. 반점 안에서 흘러나온 소리, 주루에서 술잔과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 술잔 사이로 오가는 대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쏟아지듯 들어왔다.

우수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뭔가 번쩍한다 싶을 때, 색관조는 이미 팔에 내려앉았다.

“아직 말 안 했어!”

[아!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금섬도 재밌다고 색관조의 등 위에서 방방 뛰었다.

“쯧쯧, 한심한 놈들. 지금 바로 천화서고로 가라. 무사하다고 전해라. 쉬지 말고, 잠자리 잡아먹지 말고!”

색관조와 금섬이 다시 날아올랐다.

색관조와 금섬도 듣고 있었다.

어느 주루에서, 어느 반점에서 여기 저기 사람들의 대화들.

악인곡이 날뛴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죽었다.

풍제가 죽었다.

마교와 사천당가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

조만간 그 이야기는 멀리 안휘에도 퍼져 갈 테니 미리 가서 알려야했다.

[죽었다고 생각해야 하니까 할아버지에게 대성통곡을 하라고 해야겠어.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윽, 그윽?]

[눈물이 안 날 것 같다고? 그럼 어때. 웃으면서 울어도 좋지.]

[그윽, 그으윽, 그윽, 극극극!]

[맛있는 것 먹으면서 곡소리를 내는 것도 좋겠다고? 까르르르르르르, 넌 정말이지 돼지 두꺼비야!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사이 반양장이 가까워졌다.

커다란 세 개의 산을 연달아 넘으면 되니, 거의 지척.

첫 번째 산을 넘다 현이가 미간을 좁혔다.

‘누구지?’

누군가 있었다.

감추고 다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강대한 기운.

기이한 기운.

앞쪽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측방에도, 좌측방에도 포진하듯 서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현이는 경각심을 가졌지만, 후공은 달랐다.

“마희, 긴장해라.”

“누구인지 알겠어?”

“너도 만난 적이 있다.”

“나도?”

현이는 더 큰 의문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내 가까워지며 알아차렸다.

바로 긴장이 풀렸다.

‘아…….’

이내 볼 수도 있었다.

숲속.

나무 위. 무성한 잎사귀들 사이로 검은 인영이 보였다. 두 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풍제의 염혼이었다.

풍제는 멀리 사방으로 염혼을 보내 혹여 다가올 적을 감지하고 있었던 터.

서로 보았기에 후공이 손을 들어 보였다.

“여어~~.”

염혼이 보는 건 풍제도 본다.

염혼이 듣는 건 풍제도 들을 수 있었다.

염혼이 훌쩍 뛰어내렸다.

보았기에, 들었기에 풍제가 웃었다.

풍제가 웃으면 염혼도 웃는다.

염혼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는 얼굴이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형…………제……여……. 어서…… 오라.]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형님이라고 부를 뻔했다.

임기응변으로 넘기려다 보니 웃긴 말이 되고 말았다.

후공은 이유를 알았기에 웃었지만, 현이와 무흔신투는 아니었다.

“돌아버린 거야?”

“저기…… 교주님 맞는 걸까요?”

[크흐으음.]

풍제도 순간 난감해했기에 그에 반응해 염혼이 머리를 긁적였다.

반양장.

그렇게 다시 둘러앉은 자리.

분위기는 흉흉했다.

악인곡이다.

다들 외모가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은령존이 결국 기억을 잃었군.”

이미 상황에 대해서는 들었다.

제때 귀운종을 만난 것에 안도하고, 은령존의 공능에 대해서는 놀라워했다.

그런 은령존을 멸한 대공자는 더 놀라웠다.

당명이 입을 연 건 그런 말들이 오간 후였다.

조금은 씁쓸하게 흘러나왔다.

기억을 잃었다.

존재 자체를 잊었다.

환혼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드러난 건 느낌이 달랐다. 마음 한쪽 불안함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환혼된 이는 이쪽도 있는 것이다.

대형.

대형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까 두려워진 것이다.

“만악귀.”

그런 당명의 반응에 검선이 의아해했다.

“너 그놈과 친하냐? 왜 표정이 어두워?”

“기억을 잃었다니까 짜증 나서 그러는 거 아니냐!”

“하하, 그런 거였어? 난 또 안타까워하는 줄 알았네. 하여튼 너도 지독한 놈이다. 하하하!”

검선이 껄껄 웃었다.

사천당가가 여간 지독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억을 잃게 된 탓에 은령존이 참담해하는 마음조차 갖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을 안타까워할 줄이야.

하지만 아니다.

당명과 풍제는 진심으로 염려되었다.

정기신의 분리가 최소 두 번의 환혼, 혹은 세 번의 환혼 때 발생하고, 또 그저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걱정되는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럴 리 없겠지.’

‘그래선 안 돼.’

만약 대형이 존재를 잊는다면…….

그 파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상상하지 말자.

그럴 리 없으니.

“그럼 이제 회영십존 중 남은 건 다섯. 놈들은 올까?”

빙궁주 현음의 말에 후공이 답했다.

“오겠지. 소문도 가득하고 거기다 마교 놈들까지 날뛰고 있으니. 놈들은 그 모습을 이미 확인했을 테고. 거기 소교주가 멍청이라지?”

그 말에는 어쩔 수 없이 검선이며 검존, 현음신녀까지 풍제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악인곡 행세를 하고 있다고 해도 풍제의 면전에서 할 말은 아니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

풍제는 그저 미소를 머금었다.

대공자는 대형.

화공신타가 또 대형.

더 심한 말이 나와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대형을 잘 안다.

대형이 도운연을 끔찍이 아끼고 있는 것도.

“흐흐, 그 멍청이 얼굴을 보고 싶군.”

“으하하하하하하!”

풍제의 말에 그제야 검선과 검존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와 함께 반양장의 밤이 깊어갔다.

그 시각 먼 곳.

어느 곳에서 누군가 나직히 목소리를 냈다.

병약한 목소리였다.

“이제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천 년……. 다시 볼 수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아이인지 모를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떠 보였지만,

스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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