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온 강호가 뒤흔들리는 중에.
‘헛소리!’
‘거짓말!’
윤과 부몽, 송화가 반점을 뛰쳐나갔다.
확인이 필요했다.
반점이나 객잔에서 떠도는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마침 낯익은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 소저,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들었습니까?”
청월문 장문인의 딸, 반교인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기도 했고, 그녀는 이미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그리고 그건 소문만이 아니었다.
이미 아버지가 염화각을 다녀온 터. 그곳에서 백화장주와 서문세가, 그리고 대륙전장의 장주까지 만나고 오셨다. 각 가문의 인척들을 통해서도 소식이 날아들어 사실로 확인된 일이었다.
무림맹이 해산된 상태요, 구대문파는 종적을 감췄다.
직접 소림에 향화객으로 갔다가 텅 빈 소림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는 대륙전장 지부의 전서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쉽게 말이 나올 것인가.
하지만 그녀의 머뭇거림이 대답. 윤과 부몽, 송화에겐 백 마디 말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외치며 뛰어가는 모습에 반교인이 눈물을 글썽였다.
‘어떡해…….’
어느 때부터인가 마음 깊이 흠모하고 있었기에 그녀도 소식을 듣고 이미 많이 울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어디 혈육에 비할 것인가.
반교인의 눈물이 떨어져내리고, 윤과 부몽의 눈물은 바람에 흩날렸다. 송화는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앞이 온통 뿌옇게 변한 탓에 제대로 달릴 수 없었다.
멈춘 건 저만치 절벽이 보일 때쯤.
“형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부몽의 말에 윤이 탄식을 토해냈다.
부몽의 말뜻을 모를까.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드려야 할지, 숨겨야 할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지? 잠시 슬픔을 밀어두고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숨기는 것이 옳다.
“……말씀드려야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냐.”
큰 형님의 명성은 너무 드높다.
강호를 뒤흔들었다.
큰형님의 명성만큼이나 죽음도 강호를 뒤흔들 것이니, 속인다는 건 손으로 해를 가리고는 해가 없다고 말하는 격.
그러다 윤은 송화를 바라봤다.
송화는 바다를 삼킨 걸까.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송화야, 그만 울어라. 우리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느냐.”
이내 절벽의 진법이 열리며 허공이 평지가 되었다.
항상 걷던 길이었지만 낯선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이런 소식을 마음에 안고 걸어야 하다니. 발을 뗄 때마다 천근이요, 만근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 멈췄다.
윤과 부몽, 송화는 덜컥 심장이 주저앉았다.
들려오는 소리.
“흑흑흑…….”
“대공자님……. 우리 대공자님…….”
“대공자님, 어찌 이렇게…… 허망하게 가신단 말입니까!”
이미 천화서고는 온통 눈물바다인 것이다.
누구 할 것 없었다.
누구는 주저앉아 있고, 누구는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울음은,
“큰아이가 죽었을 리 없다. 이건 꿈이다! 이건 꿈이야!”
할아버지.
윤과 부몽이 비틀거렸다.
송화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소식을 전할 것이 걱정이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큰형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는데…….’
‘정녕 큰형님을 다시 볼 수 없다고?’
큰형님과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윤과 부몽은 급기야 복받쳐 대성통곡했다.
[할아버지, 혼이 실려 있지 않잖아요! 다시, 다시!]
쾌활한 목소리, 두꺼비 소리.
‘이게 뭐야?’
‘색관조, 금섬?’
윤과 부몽, 송화가 퉁퉁 부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난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는구나.”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뭘 잘했다는 거야?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충분히 잘하지 못했어. 아주 믿어야 한다니까요. 내가 한번 해 볼게요. 잘 듣고 따라해 봐요.]
“그래, 어디 들어보자.”
[으허허허허허허헝, 으허허허허허허헝, 내 손자야! 대체 왜 나보다 네가 먼저 간단 말이냐. 으허허허허허허허헝.]
“어째 영 별로 같은데?”
[뭐가 별로야. 내가 가르쳐줘도 고집을 피울 거예요?]
“오냐, 오냐. 야단치지 마라. 내가 해 보마. 으허허허허허헝, 으허허허허허허헝~~~.”
[까르르르르르르르르! 하란다고 진짜 하는 것좀 봐. 으허어엉, 이래. 할아버지는 너무 순진해. 너무 웃겨. 까르르르르르르!]
“이런 괘씸한 놈들 같으니!”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시발, 이게 뭐여?
윤과 부몽은 자신들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웃고 있었다.
색관조와 금섬도.
어떻게 봐도 이건 큰형님이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주변도 마찬가지.
몇몇이 힘들다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힘드네. 쉬었다 울어야지.”
“이 정도 연습했으면 됐지 뭐.”
“더 해야 하지 않아?”
그제야 윤과 부몽도 웃을 수 있었다.
어느샌가 일어난 송화와 함께 서로 어깨를 감싸안고 방방 뛰었다.
“으허허허허허헝! 으허허허허허헝!”
“형님, 혼이 담기지 않은 것 같은데요.”
“너나 많이 실어라.”
모두가 웃으며 연습했다.
큰손자는 죽었다.
큰형님은 죽었다.
대공자님은 죽었다.
그렇게 알려져야 했다.
이건 천화서고 천재의 또 다른 계획.
거기에 모두가 기쁘게 장단을 맞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휘 북부의 명문가의 수장들이 천화서고를 찾았지만, 그들이 본 건 슬픔에 잠긴 천화서고였다.
색관조와 금섬은 볼 수 없었다.
진실에 닿지 못한 곳은 많았다.
아니, 천화서고와 구대문파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척, 척!
그렇다고 슬픔에 잠겨 있지만은 않았다.
소요파는 검을 들었다.
장문인 목령자가 앞장서고, 화령자가 그 곁에 함께했다. 소요의 정예들이 뒤따랐다.
소요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천화서고 대공자의 친구는 우리의 친구.
천화서고 대공자의 적은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그렇게 외친 적이 있었다.
그 약속을 지킨다.
슬픔을 묻어 두고 강호로 나선다.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비록 악인곡에 죽음을 맞을지라도!
소요파만은 아니었다.
남궁세가도 가주의 지휘 아래 가문을 나섰다.
남궁세가의 상징인 대나무 잎사귀를 알아본 이들이 그 소식을 퍼뜨렸고, 하오문은 더 크게 퍼뜨렸다.
다른 천룡의 가문들도 같았다.
모용세가, 진주언가를 필두로 산동악가 외 천룡의 십대 가문 대다수가 악인곡을 찾아 나섰다.
약왕문도 가세했다.
대공자가 원신단을 부탁했던 것이 최근이니 그 일을 어찌 잊겠는가.
큰 격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원신단은 악인곡을 상대하려 했음이구나.
부문주 용화운과 용화청이 직접 지휘에 나섰다.
산속 깊이 들어가 있던 성숙노괴도 튀어나왔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어찌 이리도 빨리.
장강수로채도 움직였다.
동정용왕도 그날을 잊지 않고 있었다.
대공자의 죽음이 결코 통쾌하지 않다.
비록 독살하려 했다가 도리어 죽임당할 뻔했지만, 대공자와 마주한 그날은 온 마음이 뒤흔들렸다.
왜 이렇게 슬프지?
왜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지?
찾아나서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다.
‘애송이! 부디 살아 있어라.’
살아 있다면 그 앞에서 애송이라고 부르리라.
많이 맞겠지만, 그게 낫다.
구대문파 중에서도 찾아나서는 문파는 있었다.
곤륜과 소림, 화산과 무당은 윤곽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곳은 진실에 닿지 못한 터.
청성과 아미, 운남의 점창도 정예를 이끌고 나섰다.
서로는 만나기도 했고, 만나 교감하며 의기투합하기도 했다. 그러다 또 다시 흩어져 강호를 종횡했다.
천하가 요동쳤다.
이미 마교와 사천당가가 날뛰고 있는 와중.
여기에 더해진 셈이니, 온 강호가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가 한 사람을 찾길 원했다.
그리고 천공단.
천공단은 어디로 간 걸까?
천공단도 쓸려간 것인가.
천산신녀도 대공자를 찾아 나서는 한편으로 제자의 생사가 염려되었다. 그녀는 밝은 대낮인데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앞섶은 젖어든 지 오래였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죽음을 맞이했다면 천공단이라고 살아있을 것인가.
그렇게 진실은 감춰졌다.
비밀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값진 법.
후공의 생각이 그랬다.
모두가 안다면 비밀도 아니고, 위험은 증가한다.
천공단은 안강에 버젓이 머물고 있었지만 철저히 가려졌다.
모두 하오문 덕분이었다.
건달들을 쥐잡듯 잡고 때때로 사냥도 다니면서 돼지도 구워 먹고 있었지만 하오문이 두꺼운 장막으로 혼돈을 일으켰기에 노출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오문의 장막을 뚫고 들어간 자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똑똑.
안강의 대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어떤 새낀데 친절하게 문을 두드리냐.”
“그냥 들어와!”
삐리리리~~ 삐리삐삐~~~~.
고기를 구워 먹고 있던 천공단이 손님의 친절함에 오만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소천개가 코를 킁킁거렸다.
“잠깐만 이 냄새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은앙개도 소천개를 따라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면서 보였다.
문 너머 서 있는 것이 취운개였기에 환하게 웃었다.
“와아, 대사형!”
“사형, 여긴 어쩐 일이야?”
취운개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상놈의 새끼들 보게!”
소문을 가장 빠르게 들었던 취운개였다.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소식도 들었다. 소천개와 은앙개가 안강에 있다는 전서였다.
확인해 보자. 그렇게 달려온 것이 지금.
“하하하! 왜? 우리 죽은 줄 알았어?”
“그랬네, 그랬어! 사형, 울었지? 울었네. 울었어! 분명 병신같이 울었겠지. 하하하하하!”
소천개와 은앙개가 깔깔거렸다.
취운개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손을 뻗어 웃고 있는 사제들 사이를 가르고 한달음에 장작불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와작!
둘러앉은 천공단에게 인사도 없이 고기를 집어 뜯었다.
“캬아, 맛있네. 나도 천공단이나 할까?”
그 즉시 사방에서 폭언이 쏟아졌다.
“넌 뭐하는 새끼야!”
“왜 다짜고짜 고기부터 뜯는 건데!”
“시발놈아, 뚫린 입으로 인사부터 안 하냐!”
낭인왕은 진짜 누구인지 몰라서 물었고,
항마삼협과 무산쌍웅은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시비를 털었다.
취운개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인사는 개뿔. 강호가 뒤집어졌는데 다들 태평하구만. 걱정할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고기가 넘어가냐. 밥이 넘어가! 이 상놈의 새끼들아!”
“이 어린 놈의 새끼가! 너 몇 살이냐아아아!”
그 말에는 금적자가 일어나 씩씩거렸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요로선인이 콜록거리며 걸어왔다.
“콜록, 콜록, 콜록! 왜들 또 난리냐. 좀 조용히 좀 지내면 안 되냐!”
“조용히 있었는데 이 거지 새끼가 갑자기 나타나 시비를 터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
“그만 좀 처 먹어. 이 거지 새끼야!”
“사람이면 안부도 묻고 잘 지냈냐고 다정하게 이야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이 새끼가 누구냐고!”
난리도 아니었다.
강호도 뒤집어졌고, 안강의 대저택도 못지않게 소란스러웠다.
그래야 했다.
악인곡이 악인곡으로 남아야 하니.
또한 소란스러움으로 자꾸만 떠오르는 걱정되는 마음을 가려야 했으니.
아무렇지 않은 척….
멍청한 놈들인 척….
그리고 그때는,
‘화극삼주 만화(滿火)!’
후공이 화극삼주의 극의에 이르렀다.
환한 대낮인데 하늘과 땅이 붉게 물들어 갔다.
후공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