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405화 (405/460)

405화. 짹짹짹.

대형의 축 처진 고개.

호흡이 없다. 기식은 극히 옅다.

하지만 분명 숨은 붙어 있다.

살아있어!

풍제는 그저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손을 가져가 확인했다. 여전히 호흡은 없고, 맥박은 극단적으로 느렸다. 하지만 분명 뛰고 있다. 혈행도 비록 느렸지만, 느린 가운데 안정적이었다.

마치 대형이 귀식대법을 펼쳐 죽은 척하고 있는 듯한 모습.

하지만 죽은 척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고 봐야 했다.

- 대형은 살아있다.

불행 중 다행인 상황.

당명도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전음을 발했다.

- 미녀도 안으로 들어가신 걸까요?

대형의 의식을 잃게 한 후 여인이 그림에서 나온 것일까? 당명은 처음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변 어디에서도 여인을 볼 수 없었다. 어떤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여인이 나온 것이 아니니 대형이 들어갔으리라.

대형이 말하지 않았던가.

여인이 초대하겠다는 말을 남겼노라고.

풍제가 손으로 가리켰다.

- 여길 봐라.

- 어?

당명의 눈이 커졌다.

손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대형의 머리 쪽. 대형의 정수리 백회혈에서 흐물흐물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경황이 없어 미처 보지 못했고 기운이나 영기가 느껴지지 않아 당명은 이제야 볼 수 있었다.

그 아지랑이는 길게 이어졌고 미녀도까지 닿아 있었다.

그건 마치 통로처럼 보였다.

대형은 저 길을 따라 미녀도 안으로 들어간 것인가?

갔다면 돌아올 수도 있겠지?

반드시 그래야 해.

한데 미녀도는 왜 예정보다 일찍 발현된 건가?

무슨 조화인가?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 뭐 해! 놈들이 온다!

- 신타! 혈종! 만악귀!

밖에서 검선과 검존, 현음신녀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당명이 풍제를 바라봤다.

- 형님, 제가 여기 남겠습니다.

누군가는 대형 곁을 지켜야 한다.

한 명은 남아 호법을 서야만 한다.

풍제가 그 뜻을 모를까.

- 아니.

- 네?

당명이 의아해할 땐 이미 두 개의 검은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고, 소용돌이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두 염혼이었다.

풍제가 당명을 못 미더워한 건 아니었다.

도리어 믿어서였다. 두 염혼보다 당명이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터.

하지만 그것도 잠시,

풍제는 이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불러낸 두 염혼을 그대로 흩어버렸다.

- 기운이 읽힌다. 놈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 아!

당명은 바로 이해했다.

지키는 건 하책.

자신이 남든, 염혼이 남든 기운은 드러날 테고, 그럼 도리어 적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방 안에 누가 있기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기에?

놈들에게 그러한 의문을 안겨다 주는 셈이 된다.

소중한 것은 곧 약점이 되는 법.

그러니 허허실실.

의미를 부여하면 잃고, 반대로 의미를 두지 않으면 지킬 수 있다.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도리어 관심은 사라진다.

대형의 기운도 극히 미약하니, 설령 감지한다 해도 그저 의미 없는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곧 당명은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형님, 색관조를 활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방치라는 이름의 호법을 남겨두는 것도 좋지만, 색관조가 대형의 목소리를 낸다면 적을 흔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 저 꼴을 보고도?

창가였다. 그곳엔 색관조와 금섬이 돌처럼 굳어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거의 정신이 나간 상황.

- 너도 정신 차려라.

- …….

당명을 질책한 풍제가 다시 색관조와 금섬에게 전음을 날렸다.

- 한심한 놈들. 아직 제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다니.

[……?]

- 거추장스럽다. 멀리 꺼져라.

색관조가 날아올랐다.

눈물도 날아갔다.

‘요호오~ 주인님 죽지 않았나 봐.’

‘그으으으으으으으윽!’

‘신나~~~~.’

‘극극그윽~~~~.’

그럼 그렇지. 주인님이 누구신데 죽겠는가.

근데 누구신 게 따로 있었나?

그으윽??

그때 풍제와 당명은 밖으로 나갔고, 두 사람에게 전음이 쏟아졌다.

- 무슨 일이야?

- 뭘 하느라 꾸물거려!

- 잠깐만. 신타는?

- 응?

다들 비난을 퍼붓다 갸웃했다.

이제야 나온 것을 힐난하고 있자니 정작 나온 것이 두 사람뿐인 것이다.

- 다들 놀라지 마라. 신타는…….

풍제는 간략히 설명했다.

미녀도의 발현. 그리고 현재 화공신타의 상태.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였다.

- 그, 그게 무슨…….

- 왜 시간이?

- 의식을 잃었다고?

- 대, 대공자…….

모두 놀라 동요했다.

미녀도의 발현도 발현이지만, 대공자의 의식이 없다는 건 형용하기 힘든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사이 풍제는 시선을 옮겼다.

강대한 기운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산악이 달려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벌써부터 압박감까지 들 지경.

하나는 지상, 하나는 지하.

거추장스러운 건 최대한 떨쳐내자.

- 신투, 지귀! 멀리 도망쳐라. 숨어라.

즉시 무흔신투와 지귀객이 신형을 날렸다.

둘도 전음을 들은 터. 대공자님이 의식이 없고, 적이 오고 있는 것이다. 곁에 있어 봐야 걸리적거릴 뿐. 그저 마음의 염원만 남겨두었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웃을 수 있길…….’

그때 풍제는 다시금 모두에게 전음을 발했다.

- 모두 원신단을 준비해. 머금고 있어라.

그 말에 누구 할 것 없이 원신단을 매만졌다.

손길도 마음도 한없이 무거워졌다.

화공신타가 없다.

대공자가 함께 하지 않는다.

단순히 한 사람의 부재일 뿐인데 왜 이리 빈자리가 커 보이는가?

그동안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내내 곁에 있기도 했고, 언제나 대공자는 선공이었다. 앞장선 것만이 아니다. 대공자는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안내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길을 잃은 느낌.

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친 느낌.

그런 허전함.

대공자의 나이가 어렸지만 나이는 잊은 지 오래였다. 정신적인 지주가 사라진 것 같으니 대체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검선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공자여, 이제 본도가 의지가 되어주마.

웃음 속에 마음을 드러냈다.

뒤따라 웃음이 터져나왔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회영부 어서 와라!”

“느려! 더 속력을 높여 달려와라!”

“호오오~~ 호호호호호호호!”

모두가 무거운 마음을 웃음으로 털어내며 악인곡이 되었다.

각자가 누구인지도 자각했다.

악인곡. 그리고 그 이전 한 사람 한 사람 강호의 전설.

웃음 속에서 마음에 날을 세웠다.

그때 들려왔다.

“너흰 재밌군.”

나직한 음성이었다.

이내 땅이 흔들렸고, 일진광풍이 휘몰아쳤다. 자욱이 피어난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모습이 드러났다.

중년인? 사십 대? 아니 삼십 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기묘한 분위기의 중년 서생이었다.

차분히 뒷짐을 진 채 지면에서 삼 장여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단연 돋보이는 건 서생의 눈동자였다.

눈동자 외곽.

여덟 개의 보석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알아봤다.

회영이존, 명정존!

아직 땅속에 머물고 있는 건 삼존인 제금존.

풍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명정존, 우리의 제안은 생각해보았나?”

명정존은 대답 없이 옅게 미소만 지었다.

그의 시선은 악인곡에 닿았다가 전각들을 훑다가 이내 먼 발치를 바라봤다.

- 꼽추가 보이지 않는군.

전음은 땅 밑으로 파고들었다.

지하에 있는 제금존이 답했다.

- 전각 안에 하나가 있다. 하지만 죽어가는군. 꼽추는 아니다.

- 의미가 있을까?

- 의미를 둘 만한 인물이라면 저리 방치해 둘 리가.

- 옳다. 하지만 도주한 두 놈은 의미가 있을 듯하군. 이곳에서 방금 떠났으니.

- 어느 쪽이지?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제금존이 물었다.

악인곡이 도피시킨 자들이라면 효용성은 크다. 소중한 사람은 언제나 유용한 법.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간단히 주도권을 쥐게 된다.

- 동북방.

- 내가 가지.

- 잠깐.

- 방금 땅으로 들어갔다.

- 후후후, 더 좋군.

쿠르르르르르…….

제금존이 빠르게 땅을 헤집으며 나아갔다.

소리는 옅게 났다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명정존, 너 이 새끼 왜 대답 없이 웃기만 하냐? 내 말이 우습냐?”

풍제의 채근에 명정존이 다시 웃었다.

“동맹이라…… 대답할 가치가 있던가? 그게 될 리 없다는 건 서로가 잘 아는 사실 아니더냐.”

“눈치챘냐?”

“하하하하!”

명정존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을 이었다.

“한데 꼽추는 어디 갔지?”

“어디에 있을까?”

비릿한 웃음이 실린 말에 명정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겠지. 잠시 후 너는 비명 소리와 함께 고스란히 토해내게 될 테니.”

그 말과 함께 명정존의 안광이 폭사했다.

각각의 눈동자에 박힌 여덟 개의 보석이 찬란한 빛을 뿌리니, 한밤의 반양장이 대낮처럼 밝아질 지경이었다.

그와 동시에 악인곡의 기운도 폭발했다.

입에 머금고 있던 원신단을 삼킨 순간, 그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힘이 전신경맥을 휘감으면서 여태 닿을 수 없었던 경지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

그때 후공은 긴 동굴을 지나고 있었다.

끝도 없었다. 동굴인 것도 확실치 않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어디론가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던 한순간,

화아아악~.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 풍광은 달라졌다.

푸른 하늘, 그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구름.

그 아래 새가 날았다.

그리고 대나무 숲과 계곡. 바람도 불었다.

쏴아아, 잎사귀가 노래했다.

첨벙, 첨벙.

물을 딛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아이야, 반갑구나.”

여인이 해맑은 웃음과 함께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고, 또 잘 어울렸다. 웃을 때면 초승달이 되는 눈매.

미녀도에 그려진 그 여인이었다.

“솔직히 놀랍군.”

후공으로선 솔직한 감상이었다.

여태껏 기괴한 일을 수없이 겪었고, 환혼까지 한 마당이지만 그림 안에 자신이 들어온 건 실로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현실감이 놀라웠다.

스쳐가는 바람, 공기, 흐르는 계곡물까지. 실제 세상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이 감탄하고 있을 때인가?

여인이 물에서 올라와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처억!

후공은 이미 여인의 목을 틀어쥐고 들어 올렸다.

“케엑, 켁!”

여인이 몸부림치며 발을 굴렀다.

후공이 그런 여인의 눈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난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그, 그게…… 이틀 정도는.”

“말했을 텐데.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 그럼 어떻게?”

“난 당장 이곳을 나가야겠다. 약속한 날에 다시 오마.”

“그럴 수 없어.”

“응?”

후공이 미간을 좁혔다.

여인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여인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기운이?’

기운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여인의 웃음이 짙어졌다.

“난 널 보내줄 생각이 없거든.”

“……?”

“아이야, 날아올라 보는 건 어떠냐?”

“?”

날아오르다니. 무슨 말인가?

의문을 떠올린 순간, 퍼엉!

소리와 함께 후공은 시야가 달라진 걸 느꼈다. 손도 사라졌다. 발도.

대신 자신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새였다.

황당해 말을 내뱉었다.

나온 소리는,

[짹짹.]

‘나…… 새 됐네?’

후공은 어처구니가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짹짹짹. 째째잭,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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