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그녀는…….
후공은 날아올랐다.
파다다닥.
작은 새라서 날갯짓이 바빴다.
날며 뒤돌아봤다.
여인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아주 표독스러웠고, 입가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후공도 웃어주었다.
웃으면서 여인을 향해 서늘한 목소리를 냈다.
[짹짹! 짹짹!]
‘…….’
하지만 나오고 만 소리는 짹짹.
원래대로라면 ‘그대는 나를 죽일 셈이로군.’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알아들은 모양.
여인이 즉시 콧방귀를 뀌었다.
“흥! 넌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덕분에 후공은 더 세차게 날갯짓을 해야 했다.
파닥, 파닥, 파다다닥.
높이 날았다.
구름에 닿을 순 없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숨이 차, 일정 높이 이상은 오르는 건 무리.
산 위를 날면서 아래쪽 풍광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숲이었다가 기암절벽을 만났고, 더 나아가서는 약초를 캐는 약초꾼도 볼 수 있었다.
어느 쪽에선 밥을 짓는지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더 나아가 그곳을 볼 수 있었다. 솥단지 앞에서 노인은 장작불을 보고 있었고, 그 부근 밭에서는 노파가 옮겨 다니며 여러 채소를 따고 있었다.
그러다 노파가 소리쳤다.
밥이 타요!
그래? 깜박했네.
노인은 부랴부랴 솥단지를 들어 내려놓았다. 왜 자꾸 잊냐며 노파가 타박했다. 노인은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후공도 웃었다.
깜박한 것이 아니겠지.
아마도 노인은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된 것이 틀림없다.
여유 있게 웃고 있을 틈은 없었다.
뒤쪽에서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여인이 날아오고 있었다.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가소롭군.”
‘대체 왜 날 죽이려고 하느냐.’
“그걸 모른다니, 난 널 반드시 죽여야겠다.”
‘고약하군.’
짹짹.
‘그대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답고 마치 선녀가 지상에 내려온 것 같은 미모이거늘, 마음은 어찌 이리도 악독하단 말인가.’
“호호호호!”
여인이 웃었다.
“그런 아부의 말로 애쓴다고 네가 살아날 것 같으냐! 어림없다.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허어…… 악독한 여인이로고. 어?’
째에엑, 짹짹. 째액?
부지런히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가자니 순간 광풍이 몰아쳤다. 작은 새다. 후공은 바람에 휩쓸려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여인의 큰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겨우 균형을 잡았을 땐, 비가 쏟아졌다.
이내 폭우가 되어 내려치니 몸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비에 흠뻑 젖은 깃털이 천근만근이었다.
거기다 천둥도 쳤다.
쿠르르, 쾅!
구름 아래로 수십 개의 번개가 작렬해 바로 곁을 황금빛이 스쳐 지나갔다.
‘안 되겠다. 일단 숨어야겠어!’
후공은 즉시 하강해 숲으로 파고들었다. 숲에도 번개가 내리꽂혔다. 벽력을 맞은 나무가 쪼개져 쓰러지고 또 불타기도 했다.
쓰러지고 불타는 나무들 사이를 지날 때, 보였다.
‘저기다.’
동굴이었다. 물먹은 깃털을 세차게 흔들어 털어내니 조금은 날기 수월해졌다. 빠르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불빛이 보였다. 이내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귀여운 새로구나. 너도 비를 피하려고 여기 들어온 것이냐?”
‘뭐 그렇지.’
짹짹짹.
중년 사내는 듣지 못한 모양.
불빛은 장작불이었다. 사내는 장작불 너머에 있었고, 인상이 우락부락했다. 또 그의 곁에는 한 자루의 낡은 검이 놓여 있었다.
사내가 껄껄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육포를 뜯어 내밀었다. 후공은 슬금슬금 다가갔다. 두 걸음, 세 걸음.
“괜찮다. 걱정 마라.”
다시 세 걸음. 그렇게 내민 육포를 입에 물었다. 맛이 좋았다. 여태껏 여러 육포를 맛보았지만, 이 육포와 비교하자면 다른 육포들은 나무껍질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
“하하, 옳지, 옳지. 많이 먹어라. 그래야 내가 널 구워 먹을 때 더 양이 많아질 것 아니냐.”
후공이 씹다 말고 올려다봤다.
그 뚱한 표정에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농담이다. 농담. 넌 무척 똑똑한 새로구나. 사람 말을 알아듣다니 말이다. 내 이제부터는 말을 가려 하마.”
그럼에도 후공은 일곱 걸음이나 물러났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고, 사내에게서 눈도 떼지 않았다.
사내는 다시 웃었고, 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던 한순간, 강호를 노래하던 사내가 노래를 그치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
후공이 물었다.
중년 사내는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가져갔다.
“쉿!”
사내가 검을 집어 들고 동굴 입구 쪽에 섰다.
그제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호호호호!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숨었을까. 나의 작은 새. 조그마한 녀석아, 숨는다고 내가 찾지 못할까?”
웃음소리가 함께 했지만, 여인의 목소리는 악독함이 묻어났고 살기등등했다.
중년 사내의 미간이 좁혀졌다.
스릉. 검을 살짝 뽑았다.
여인이 새를 찾고 있었지만 진짜 새를 찾고 있는 건 아니리라.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인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내 널 만나려 180년을 기다렸다. 잠들고 또 깨도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렇게 기다렸는데 내가 널 놓칠까? 호호호호호!”
여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럼에도 중년 사내는 신중했다. 한참 뒤에야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얼마나 긴장했음인지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휴우…… 대체 누구였을까.”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사내가 털썩 주저앉고는 땀을 훔쳐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구나. 실로 무서운 여인이다. 난 이제껏 이런 고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사내는 그러다 바라봤다.
“설마 널 찾고 있는 건 아니겠지?”
후공은 맞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이 생각해도 헛소리 같았는지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한데 기묘하구나. 180년이라니. 어찌 사람이 그리 오래 살 수 있는 건지. 아, 그러고 보니 여인만이 아니로군. 그녀가 찾고 있는 이도 그 세월을 지나온 게야. 허허, 실로 강호는 신묘함이 가득하구나.”
말을 알아듣는 너도 그러하고.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잠시 후 쏟아지던 폭우가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제법 내리는 비였지만 사내는 일어섰다.
“난 이제 가봐야겠다. 장작불은 남겨둘 테니 마저 깃털을 말리거라. 비가 그치면 떠나도록 해. 후후, 또 인연이 되어 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후공이 답했다.
사내는 머리를 쓰다듬고는 신형을 펼쳐 사라졌다.
혼자 남은 후공은 날개를 펼쳐 말렸다.
잘 말리려 바짝 붙었다가 열기가 확 느껴졌다.
‘앗 뜨거!’
혼자 구시렁거렸다.
그러다 종종걸음으로 동굴 입구로 향했다. 나가진 않고 고개만 살짝 내밀어 살폈다. 좌측으로, 우측으로.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휴우~ 없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장작불 곁에 자리했다. 따스한 기운에 깜박 잠들었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밖을 바라봤다.
다람쥐 한 마리가 동굴 앞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도토리를 꼭 끌어안은 채였다.
‘놀랬네. 꺼져.’
호되게 야단치자 다람쥐가 꽁무니를 뺐다.
밖은 아직 환했다. 비는 조금 더 줄었다. 여기 너무 오래 머물렀어.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후공은 용감하게 동굴을 나섰다.
얼마나 날았을까.
빗줄기는 다시 굵어졌다.
아래쪽에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와 내려다보니, 젊은 남녀가 달리고 있었다.
하하, 비가 다시 쏟아져!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봐.
괜찮아. 내가 막아주고 있으니까.
그랬다.
달리는 중에 젊은 남자는 여인이 비를 맞지 않도록 겉옷을 벗어 우산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다 들이쳤다. 비가 많이 온다.
그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청춘의 설렘을 볼 수 있었다.
비가 온 건 사실 두 청춘이 바라던 바인 것처럼 보였다.
‘좋을 때다.’
후공은 웃었다. 짹짹.
조금 더 날았다. 번화가가 나타났다.
어느샌가 비는 그쳤고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길을 걷는 이들이 많아졌고, 반점과 주루 안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쯧쯧, 태평하구먼.’
사람들을 구경하려 하강하려 할 때였다.
“이노오옴! 여기 있었구나!”
여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니, 여인이 하얀 광채 덩어리가 되어 날아오고 있었다.
짹짹?
후공이 날개를 펄럭였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작은 새다. 울상이 되어 혼신의 힘으로 파닥거리며 날아갈 때였다.
“멈춰라!”
쩌렁 울리는 소리와 함께 지상에서 푸른빛이 쏘아져왔다. 빛을 봤다 싶을 땐 이미 여인을 막아서고 있었다.
쿠우웅!
허공에서 백색 광채와 푸른빛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굉음이 터졌고, 푸른빛이 튕겨 나갔다.
여인이 광채를 거두고 지상을 내려다봤다.
“혼원자, 감히 네가 나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것이냐!”
그 호통에 지상에서 한 노인이 날아올랐다.
여인 앞에서 멈춰 둥실 뜬 채로 노인이 예를 갖췄다.
“선자께서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흉악한 놈을 뒤쫓고 있었거늘 너로 인해 놓치고 말았다. 너는 이 일을 어찌 감당하려 무모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흥!”
그사이 후공은 번화가를 지나 다시금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끼이이이이!
하필이면 다른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나무였기에 쫓겨났다.
‘젠장!’
다시 날아 한적한 나무에 내려앉았다.
밤이 찾아왔고, 여인은 찾아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져가며 후공은 웃었다.
느낌이 맞았다.
짐작대로였다.
이곳은 여인의 세상.
여인이 만든 세상.
여인이 보고 살아온 세상.
여인은 좋은 사람이다. 따뜻한 사람이다.
이곳에서 본 모든 것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밥이 탄 것도 모르냐며 타박했던 노파의 말은 정겹다. 아마 노인은 어느 날부터인가 냄새를 맡지 못했던 것이겠지.
여인은 언젠가 그런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을 것이다.
동굴에서 만난 사내도 좋은 친구다.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언젠가 그녀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었을 테지.
건네진 육포는 맛이 좋았다.
그녀가 건넨 것이었다.
그녀의 선물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나란히 달리는 청춘도 그녀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나 보다.
이곳의 모든 것이 그녀 안에 있는 것.
그녀가 본 것.
그녀가 겪은 것.
그녀가 생각하는 것.
느낌이 맞았다.
짐작이 맞았다.
좋은 느낌. 유쾌한 느낌.
여인은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녀는…….
후공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외로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