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411화 (411/460)

411화. 진정한 초대.

그 시각,

카르르르르르르릉.

네 줄기 자줏빛 광채가 땅속을 돌파하며 반양장으로 돌아갔다.

주인의 의식이 없다.

아니, 옅다.

주인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

탐지를 위해 멀리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졌던 번쾌친과 검령이었다. 적을 감지했고, 주인의 의지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주인과의 연결이 희미해진 것이다.

그날과 같았다.

1년 전.

주인이 떠난 날.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

의식이 희미해지다 결국 주인과 단절되었다.

그날의 상실감이 다시금 번쾌친을 덮쳐왔기에, 번쾌친은 검령보다 빨랐다.

주인은 이제 지척.

주인을 다시 잃을 순 없다.

누군가 주인 곁에 있다면 조각 낸다.

누구라도!

그렇게 처소의 바닥을 뚫고 솟구쳐올랐다.

없다, 없다, 없다.

세 줄기 자줏빛 광채는 방 안을 빠르게 휘젓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주인 곁을 지켰다. 둥실 떠오른 채 각각 방위를 점하고 호위가 되어 머물렀다.

부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충돌하는 강대한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번쾌친은 관심 없었다.

크아앙!

뒤이어 검령이 튀어나왔다.

선회한 후 주인에게로 향했다.

지이이이잉.

검끝으로 주인을 바라봤다가 이내 회전하며 하강했다.

주인의 눈앞. 바닥에 꽂혀 번쩍번쩍 점멸하며 주인을 기다렸다.

주인이 깨어나면 곧바로 자신을 쥘 수 있도록.

그렇게 신검의 호위 아래,

후공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었다.

미녀도 안.

의식의 세계.

여인은 믿을 수 없었다.

손님이 온 건 하루가 지났을 뿐인 것이다.

한데 이자는 하루 만에 극복해내고 나아가더니, 결국은 자신을 넘어섰다.

작은 새가 되게 하고, 늑대가 되게 했던 것이 어제.

한데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자신이 여우가 되었다.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은 자신을 여우로 만들었다.

본래의 모습을 찾으려 해도 스스로 털조차 변화시킬 수 없었기에,

완전한 잠식.

그 결과 그녀의 세상도 무너져갔다.

쿠구구구구구궁!

스스스스스…….

산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혔다.

그녀가 만든 세상, 그녀가 만나보았고, 바라보았던, 그렇게 구현된 그녀의 세상이 사라져갔다.

사라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손함이 사라졌다. 예도 사라졌다.

자신에게 선배라고 칭하며 스스로를 낮추던 남자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연능화, 환혼당해 본 적이 있나?”

무심한 시선이 물어왔다.

“자신을 빼앗겨 본 적이 있나?”

없었다.

아니, 있다.

바로 지금.

바란 적이 없었는데 여우가 되었다.

털이 있다. 시야도 다르고,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환혼보다 더한 지경.

하지만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연능화는 답하기 어려웠다.

이 상황에서조차 사매를 걱정하는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연능화는 남자의 눈을 바라봤다.

‘보여다오. 알려다오.’

그녀가 청했을 때,

화악!

눈동자가 다가왔다. 그녀의 시야에는 이제 후공의 눈동자만 보였다. 눈동자가 커진 것일까. 눈동자가 덮쳐오는가.

쏴아아, 쏴아아아, 눈동자는 바다. 파도가 친다.

자줏빛으로 일렁이는 드높고 거센 파도가 보였다. 그 바다가 다가왔다. 덮쳐왔다.

연능화는 그 바다로 빨려들어갔다.

푸우우우욱.

물에 빠져 보글보글 공기방울을 피워내던 연능화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사람의 손. 여우의 손이 아니었다.

몸이 돌아왔다.

여긴 어디지?

떠올리자마자 그녀는 답을 찾았다.

남자의 의식 깊은 안쪽.

자신이 남자를 초대했는데, 이젠 초대받았다.

발밑을 바라보았다. 자줏빛 광채가 통로인 양 일렁이는 것이 보여 그녀는 그곳으로 향했다. 지났다.

이제 바다는 아니었다.

아침. 전각이 보였고, 누군가 울부짖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야. 이건 짐승의 울음소리.’

무슨 일일까. 왜 짐승이?

그녀는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한 사람이 죽어 있었다.

피가 낭자했다.

짐승은 없었다. 그저 한 젊은 여인이 노인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제갈혜.’

이유는 알 수 없다.

연능화는 이름이 떠올랐다.

뒤이어 사람들이 몰려왔다.

“맹, 맹주님!”

“후공!”

‘아……!’

알게 되었기에 연능화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이곳은 그의 의식 안.

그의 생각. 그가 느낀 감정들.

그를 잃은 자의 슬픔.

크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 주변 풍광이 일변했다.

밤이었다. 그리고 침소였다.

병약한 청년이 비틀거리며 내려서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고 있었다. 청년이 혼잣말을 했다.

“젊어졌구만. 살도 빠지고.”

그제야 누군지 알아봤다.

천공단주. 무림맹주. 후공.

‘이렇게…… 환혼되었구나.’

하지만 왜 죽었지?

천하제일인의 몸을 차지한 이는 왜?

그 의문에 답하듯 광경이 바뀌었다.

“너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었다. 자, 받아라.”

환약.

실은 독약.

비쩍 마른 노인이 약을 내밀었다. 노인은 억지로 약을 먹였다.

풍광은 다시 돌변했다.

여러 슬픔이 보였다.

그중에는 흩어지는 자도 있었다.

후공의 죽음을 들은 그는 격동하다 온몸이 산산이 흩어졌다. 흩어지는 중에도 왜인가? 그의 눈물은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는 후공이 있었다.

팔굽혀펴기를 마친 뒤, 물끄러미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를 떠올렸다.

마기를 줄기줄기 뻗어내는 노인도 있었다.

눈빛에는 살기가 그득했고, 그의 격동에 지축이 흔들렸다. 수만에 이르는 마인들이 엎드려 숨을 죽였다.

울음은 없었지만 울고 있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는 후공을 볼 수 있었다.

송화라는 이름의 시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며 마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생각. 그가 느낀 감정.

그의 슬픔.

주변 광경이 빠르게 바뀌어갔다.

‘천화서고…….’

천화서고의 나날이 보였다.

범항의 고뇌도 볼 수 있었고, 육각망의 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는 웃었다.

개방도를 보았고, 서문세가에서의 연회를 보았다. 서문세가와의 일전도 볼 수 있었다.

그가 마음을 내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연능화는 주마등처럼 볼 수 있었다.

천공단이 다시 보여 저절로 미소 지었다.

약왕문의 비밀은 월토기.

두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다.

‘따뜻한 사람…….’

남궁세가에서는 모두를 구했다.

풍열을 끌어당겨 불태웠고, 모두에게 신비한 향을 선사했다. 그 향도 맡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

말하는 새를 그때 만났구나.

하오문과의 만남에는 다시 웃었다.

‘재밌는 사람…….’

그리고 소요파.

소요파 장문인의 대제자를 납치해 죽일 때는 절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자비가 없는 사람.’

하지만 목령자를 깨우칠 때의 모습에선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멋진 사람…….’

그 후, 그 후.

그녀는 유령곡을 보았고, 성숙노괴를 만났다.

모산을 만났으며 북해빙궁으로 떠났다.

어느 밤. 별빛이 유난히도 반짝이는 밤.

구름 위에서 울부짖던 짐승이 드디어 웃었다.

“백부님!”

제갈혜의 격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밤하늘을 달렸다. 자줏빛 광채를 발하는 신검들이 그녀를 위해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드디어…… 알게 되었구나.’

바라보며 연능화도 함께 기뻐했다.

그리고, 그리고.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던 이와 마기를 뿜어내는 자도 웃음을 되찾았다.

그 길을 지나며,

‘도도도.’

다시 더 나아가 지금.

연능화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 사람의 모든 밤과 낮을 보았다.

매 순간 그가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세월의 간격이 크다 해도 그는 나보다…….

‘……어른이구나.’

그녀가 감은 눈을 떴다.

풍경은 달라졌다. 구름 위. 여우의 모습. 눈앞에는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

연능화는 웃었다. 울었다.

바라본 그 모든 광경들에서 밀려든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환혼을 당해 본 적이 있나?

자신을 빼앗겨 본 적이 있나?

그 물음에 이젠 답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부르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마워요.”

천 년의 간격이 있다 해도 더 이상 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연능화는 더 이상 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아졌다.

고맙기도 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준 것이다.

감추고 싶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까지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이런 것이로군요. 그대의 세계를 볼 수 있어서 고맙고, 다행입니다.”

방금 자신이 받은 초대를 생각하니 자신의 초대는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짐승의 울부짖음.

제갈혜의 울음소리가 아직까지 들리는 듯하다.

“나의 사매는…….”

그 말을 꺼낸 순간, 세상이 빙글 돌았다.

연능화가 다시 바라봤을 때는 정취 넘치는 연못 위 팔각정이었다.

개굴, 개굴.

연꽃이 피어있고, 개구리가 연꽃 위를 뛰어다녔다.

낯익은 곳이었다.

‘와본 적이 있어. 아……! 남궁세가.’

후공의 의식 안으로 빨려들어갔을 때 보았던 남궁세가의 별채였다. 어린 소녀도 보였기에 틀림없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소혜? 아니 소예.

“하하하, 저기 개구리 좀 봐. 팔딱, 팔딱.”

소예가 난간을 붙잡고 개구리를 잡으려는 듯 올라섰다. 그런 소예를 후공이 끌어당겼다.

“소예야, 그러다 물에 빠지겠다.”

“방금 어떻게 한 거야? 하하하하, 또 해! 응?”

“크흐으음.”

“자, 넘는다. 넘을 거야.”

또 스르륵 끌어당겨지자 소예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연능화도 미소를 지었다.

사매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후공이 말하고 있었다.

들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사매는…… 회영부주.

지금 시대의 환혼진은 사매의 것.

천 년 전 사매가 보여주었던 그 진법에 의해 후공은 환혼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니 분명히 사매는 수많은 환혼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니 후공에게 맡겨두자.

사매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사매가 아닐지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 건 나의 자만이겠지.

그리고 그럴 리 없다면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은 분별할 것이다.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이 강제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 것인가.

그의 지나온 길이 대답이었고,

그리고 지금 이 모습이 대답.

“하하하하하, 또, 또. 또 해 줘. 자, 봐, 나 개구리 잡으러 간다. 이번엔 진짜야! 안 잡으면 나 물에 빠질 거야!”

소예의 웃음이,

그런 소예를 바라보는 후공의 미소가 대답이었다.

연능화가 다시 불렀다.

후공이 소예를 품에 안고 바라봤다.

“나의 세계에도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이번 초대는 미녀도 안으로 불러온 것과는 다르다.

그녀도 자신의 지난날을 보여주겠다는 의미.

후공이 미소 지었다.

“기꺼이.”

그리고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그 말에 소예는,

“어디 가려고요?”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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