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415화 (415/460)

415화. 주인이 나를 생각해준 것이 좋아서.

갇힌 제금존은 이를 악물었다.

감옥에 갇힌 것이다.

땅속에 감옥이 있을 줄이야.

원래 그에게 지하는 하늘과 같았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처럼, 지하에서는 그도 새였다. 언제나 자유로움을 느꼈다.

한데 땅속에서 자유를 잃었다.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었지만 길은 없었다.

신검들이 자줏빛 광채를 발하며 겁박하고 있는 것이다.

카르르르릉.

크르르르르릉!

분명 검인데 야수인 양 으르렁거린다.

자신의 신세가 초식 동물과 같았기에 비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도주? 의미없다. 토벽을 생성해도 신검들은 두부인 양 뚫고 쫓아왔다. 또한 자신보다 빠르기까지 하니, 도주한들 얼마를 갈 것인가.

‘한데 왜……?’

그러니 의문이 들었다.

왜 죽이지 않는 것인가?

왜 가둬두기만 하는 것인가?

명정존의 비명은 이미 들었다.

대체 어떤 죽음을 맞이한 것인가. 명정존이 그토록 처절한 비명을 내지를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한 일.

그래서 의문은 깊어진다.

회영이존인 명정존을 죽인 자가 왜 자신을 살려두는가?

후공이 그 의문에 답했다.

카릉! 카릉!

주인의 의식에 번과 쾌가 다가들며 검끝을 들이밀었다. 각각의 검끝이 제금존의 눈동자에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반면 친과 검령은 하강했다.

제금존의 발밑으로 내려가 압박해갔다.

이 뜻을 모를까.

천화서고 대공자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올라와라.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기에,

쿠르르르르르.

제금존은 땅을 뚫고 올라가 마주했다.

상대는 꼽추.

거리는 지척. 고작 일 장여(약 3미터).

이 정도의 거리는 변수가 나기 좋다.

‘토창(土槍)으로 꿰뚫을 수도 있고…….’

토극의 공능 중 하나인 토창.

놈의 발밑에서 수백 개의 창을 생성해 놈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방심한 틈을 탄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놈이 부상을 당하게 되면 신검들도 제힘을 발휘하긴 힘들 테니.

하지만 그 전에,

“명정존은 어디에 있지?”

명정존의 시체를 볼 수 없었기에 물었다.

“화장했다.”

제금존은 멍해졌다.

아까의 비명이…….

그러고 보니 잿가루가 하늘하늘 떨어져내리고 있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날 왜…… 살려두는 거냐?”

“너의 재주가 제법 쓸모가 있어 보인다. 내가 데리고 다니는 놈보다 월등해서 마음에 든다.”

“나를…… 거두겠다고?”

“기회를 주겠다. 제대로 된 대답만 한다면 살려줄 뿐 아니라 널 수하로 삼겠다.”

“어떤…….”

제금존이 마른침을 삼켰다.

수하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나중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회영부주에 대해 들어보자.”

“내가…… 알고 있는 건 많지 않다.”

“이름.”

제금존이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땅을 바라봤다.

갸웃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주란.”

그 말에 이번엔 후공이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잔혹한 미소를 머금었다.

방금의 물음은 던져본 것에 불과했다.

회영부주의 이름이 주란인 건 이미 알고 있다.

그저 확인 차원이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이었다.

“클클, 너는 금제를 당하지 않았군.”

회영십존 중 높은 서열은 금제의 영역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짐작이 맞았다.

“설마…… 알고 있었나?”

제금존이 한껏 미간을 좁혔다.

금제 밖에 있는 건 회영삼존인 자신까지.

하지만 그보다 놀란 건 놈이 지존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존인 명정존은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고, 일존은 마주한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클클, 천 년의 약속도 알고 있다만.”

“……!?”

그 말에는 제금존이 흠칫했다.

후공은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미녀도 안에서 알게 된 모든 것이 진실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천 년의 약속은 얼마나 남았지?”

“그건…… 모른다.”

“실망스럽군.”

“하,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다.”

서둘러 해명하는 제금존을 바라보며 후공은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태도가 점점 더 날 기쁘게 하는군. 좋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어보자.”

“회영부주는 어디에 있지?”

“그, 그건…….”

제금존이 더듬거렸다.

“왜?”

“가장 중요한 걸 모른다고?”

“부주는 떠났다. 다섯 호법이 함께하고 두 암주가 동행했을 뿐이다. 부주는 우릴…… 부르겠다고 했다.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그때까지 우리가 맡은 일은 두 가지.”

“하나는 후공의 생존을 확인하는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단혼각이겠군.”

“너의…… 말대로다.”

이 정도면 해명은 충분하다.

제금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사실이었고, 자신이 아는 한 진실이기도 했다.

이제 자신은 악인곡과 함께한다.

화공신타, 아니 천화서고 대공자의 수하라는 명목 아래 도주의 기회를 엿보면 되는 일.

“신타, 언제 죽일 거냐!”

“살려둘 생각은 아니지?”

“우리가 악인곡이란 걸 잊으면 곤란해.”

어느샌가 두 사람 주위에는 풍제와 당명, 검선 등이 에워싸고 있었다. 태도는 불량했다. 쪼그려 앉아 있기도 했고, 부근 바위에 걸터앉아 퉤, 침을 뱉기도 했다.

제금존이 움츠리며 주춤 물러났다.

이들이 와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이 틀리지 않는가.

“신타…….”

아까 약속한 말은?

벌써 잊은 건가?

제금존이 그런 시선으로 물었다.

후공이 클클거렸다.

“제금존, 내 얼굴을 봐라.”

“이 얼굴이 약속을 지키게 생긴 얼굴이냐?”

“이런 개새ㄲ…….”

욕은 다 맺지 못했다.

토창을 생성하기도 전, 후공은 이미 제금존의 눈앞에 있었다. 제금존이 물러나면서 토벽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토영(土影)도 발현했다.

흙이 꿈틀대는가 싶을 땐 사람의 형태가 되어 후공을 향해 장력을 발출했다.

후공은 이미 견식해본 적이 있었다.

지천을 상대할 때.

비록 지금은 지천 때보다 강맹했지만, 후공도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에 이른 터.

그때도 지천주를 죽일 수 있었던 것처럼,

파아앙, 파앙!

허운의 풍익이 일고, 통격이 운용되면서 비껴내고 기운을 흘려내면서 제금존의 왼쪽 어깨를 붙들었다.

우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제금존의 어깨가 바스러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제금존이 손을 내뻗었지만 이미 후공은 그곳에 없었다. 환영처럼 제금존의 뒤편에서 제금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뗐다.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교릉이 발동.

제금존이 미친 듯이 뒤틀려갔다.

통제력을 잃은 제금존의 팔다리가 춤을 추고 허리가 활처럼 꺾였다가 갑자기 숙여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구겨져갔다.

뚜득, 뚜드득, 뚜드드득.

몸이 작아지는 만큼 비명 소리도 작아졌다.

결국 작은 항아리 크기로 구겨진 제금존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옅게 겨우 숨을 내쉬었다. 팔이 어디에 있는지,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숨을 내쉬고 있으면서도 입이 어디쯤에 있는지 가늠되지 않는 지경.

진기를 운용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자, 검증해보자.”

태연한 얼굴. 혈종마군. 풍제!

바라본 순간 제금존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원래라면 섭혼이 통할 리 없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현경의 고수가 아니었기에,

“회영부주의 이름.”

“부……주……는…… 주란…….”

그렇게 방금 전에 건네진 질문이 다시 던져졌고, 제금존의 대답은 모두 같았다.

결국 위치는 모른다.

“쓸모없는 놈.”

풍제가 툴툴대고 물러났다.

그 자리를 후공이 대신했다.

소멸의 두려움 속에 제금존이 바라봤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거늘…….

진정 영원한 삶을 거닐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했거늘 이렇게…….

‘…… 죽는다.’

그의 마지막 상념을 화극이 뒤덮었다.

화르르르르르르!

타오르는 불길이 제금존의 소망도 미련도 태워버렸다.

몸부림조차 치지 못하고 제금존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 흩날림 속에 적흑빛의 구슬 하나가 떠올랐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

오행의 정화 중 하나인 토극!

토극은 적흑빛을 발했다가 잦아들었다가 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후공이 손을 뻗어 토극을 끌어당겼다. 손에 쥐었다. 토극이 빠져나가려는 듯 거칠게 요동쳤지만 삼악이 그보다 더 흥분해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토극이 손에서 자취를 감췄을 때 후공의 안광이 폭사했다. 저절로 개방된 기운에 주변 일대에 회오리가 쳤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넘실대는 기운에 지켜보는 모두의 머릿결이 휘날렸다.

그런 광경에,

‘후후, 좋구나.’

풍제는 미소를 떠올렸다.

대형의 경지가 다시금 상승했음을 느낄 수 있으니 그저 기뻤고, 나오는건 웃음 뿐.

그리고 당명은,

‘오행의 극은 이제 넷. 하나가 남았다.’

오행 중 남은 것이 하나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제 목(木)이 남았다.

오행을 완성하면 대형은 본래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자신이 토극을 취하는 것이 아님에도 뿌듯해져 목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괜찮은 건가?”

검선과 검존, 현음과 현이는 놀라운 광경 앞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공자가 이미 오행 중 삼극을 취한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는 건 처음.

오행의 극 중 하나를 품는 것도 크다. 난해하다.

그 하나를 감당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란 걸 알기에 내심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사이 삼악의 광란은 차츰 잦아들었다.

토극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그 포만감에 취하니 후공의 폭사하던 자줏빛 안광도 옅어져갔다.

‘남은 건 하나.’

화(火), 금(金), 수(水), 토(土).

오행 중 네 개의 극이 각자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는 삼악.

목(木)이 채워지면 어떤 변화를 맞을 것인가.

알 수 없다.

오행의 극은 각자의 묘용이 기이하고 신비로우니, 남은 하나의 자리가 채워지면 아마도…….

짐작가는 부분이 있어 후공은 그 묘용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나른해지는 느낌 속에 후공이 돌아섰다.

모두가 반양장으로 향했다. 조용하지는 않았다. 누구할 것 없이 궁금한 것이 많은 것이다.

“신타, 말해봐라. 어떻게 된 거냐?”

풍제가 채근했고,

“뭘 하긴 한 건가? 너무 빨리 나왔잖아!”

당명은 의아함을 과장했다.

미녀도에서 나온 후 대형의 경지는 분명 상승했다. 믿고 있지만 그래도 툴툴거렸다.

현음신녀가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을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툴툴 대는 유쾌함으로 그녀의 기억을 허공에 흩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검선과 검존이 동조했다.

“야, 신타! 너 어디 갔던 거 아니지? 좋게 말할 때 솔직히 말해라. 멋지게 보이려고 늦게 나타난 거지? 내 말이 틀려?”

“만약 그런 거면 넌 개자식이야!”

두 사람은 현음신녀를 생각해주고 있기도 했지만 솔직히는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다. 고작 일각에서 조금 지났을 뿐인 것이다.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행 중에는 상식의 범주를 넘어본 적이 있는 이가 있었다.

“신타, 미녀도 안의 여인은 어땠어? 그림처럼 아름다웠어? 나보다 예뻤어?”

그녀는 믿었다.

미녀도 안의 시간은 달랐을지도.

그리고 많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의 외모가 얼마나 출중한지. 자신보다 더한 미모를 지녔는지.

“빙심마희, 너 거울 안 보고 다닐래?”

표독스런 외모가 된 현이신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사이 후공은 천 년 전의 절세고수를 떠올렸다.

연능화를 떠올렸다.

“엄청나. 엄청나게 예쁘더라고.”

“진짜?”

“어, 진짜.”

현이신녀는 괜히 시무룩해졌지만, 후공은 웃었다.

“꽤 즐겁기도 했지. 그곳에선 금섬이 말하기도 했고.”

다들 갸웃할 때, 하늘 위 금섬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윽!]

[야, 너 미녀도 안에 언제 들어갔었냐?]

[그으으윽?]

영문을 모르는 금섬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것도 잠시, 주인이 자신을 생각했다는 것이 기분 좋아 웃으며 펄쩍 펄쩍 뛰었다.

[극극극!]

[야, 이 미친 두꺼비야! 그러다 떨어지겠어.]

[극극극극!]

[까르르르르르, 그렇게 좋아?]

[그으으으으으으으윽!]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