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그날 아우는.
‘돌아와라.’
흔적은 모두 지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마치 꿈인 양.
후공은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하길 바라며 귀환을 명했다.
[넵!]
색관조가 답하고 날아올랐다.
[그으으으으으윽!]
금섬이 호응했고, 검령도 검집을 체결한 후 솟구쳐 올라갔다. 땅은 느리다.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길이기에, 빨리 복귀하고 싶었기에 하늘의 경로를 택했다. 순식간에 색관조보다 높이 솟구쳐 구름층을 뚫고 숨어 더 빠르게 날았다.
[까르르르르! 검령아, 나랑 경주하자고? 어림없지!]
색관조가 속도를 높이며 검령을 순식간에 뒤쫓았다.
후공은 색관조의 시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이내 내부에 집중했다.
단혼각의 얼음 호수를 향해 달려가는 길.
신형을 날리는 와중에도 수극의 팽창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멈춰 잠잠해질 것 같다가도 수극은 다시 폭주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화극의 성취 속도와는 비교 불가. 화극을 이룸도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었는데, 수극의 성장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로 인해 의식은 시시각각 더욱 넓어졌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해지기도 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또 들리기도 했다.
‘단예령, 멋진 선물이다.’
의식의 범위와 명료함만을 놓고 보자면 지난날 이룬 경지를 이미 넘어선 상태.
그 시작점이 삼 호법 섬악이 발한 단혼각의 산공독이었다는 점에서, 단혼각주 단예령은 초대만 한 것이 아니라 선물을 보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우우…….”
후공은 깊게 숨을 토해냈다.
수극이 순식간에 이주에서 삼주를 돌파한 상황.
그 결과 전면의 시야가 다시금 달라졌다.
이번엔 보이는 모든 것이 환상처럼 보였다.
지면의 광경이 달리 보인다.
땅의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지력의 흐름이 백색 광채로 보였다. 어느 쪽은 선명한 백광이 넘실거렸고, 또 어느 쪽은 빛이 옅었다.
지력이 왕성한 곳에는 풀과 나무도 강건했고, 지력이 옅은 곳은 그렇지 못했다.
풀과 나무들도 전혀 다른 형태로 보였다.
풀의 내부 흐름이 아지랑이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고, 나무도 내부를 투시하는 것처럼 수액(樹液)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강건함과 허약함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 현상은 비단 풀과 나무에게만은 아니었다.
앞서 달리고 있는 풍제와 당명의 모습도 후공의 눈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겹쳐 보였다.
마치 나무처럼.
신법을 펼치고 있는 풍제와 당명이 운용하는 기운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풍제의 기운은 찬란한 붉음이었고, 당명의 기운은 금빛이 넘실거렸다. 기운이 어느 혈도에서 어느 혈도로 이동하고, 어느 지점에서 머물렀다 폭발하듯 뻗어나가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 반복되는 흐름을 보고 있자니 마교의 최상급 신법과 사천 당가의 독문 신법의 묘체가 이해되었다. 구결을 적으라고 한다면 적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주변에서 한 번씩 오고 가는 전음도 더욱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 형님…….
- 곧 도착합니다.
- 그래.
당명의 전음이었고, 풍제가 답했다.
전음임에도 당명의 목소리는 떨려나왔고, 풍제의 대답은 무거웠다.
후공도 마음 속으로 답했다.
‘……그래.’
그래. 곧 도착한다.
얼음 호수는 아니다. 그곳은 한참을 더 가야했다.
눈 덮인 산도 주변에 없다.
그럼에도 풍제와 당명은 격동하고 있었고, 그건 후공도 같았다. 깊은 허전함과 그리움이 몰려왔다.
‘이곳을 다시 오는구나.’
이곳은 환혼 후 처음.
하지만 환혼 전에는 한 번씩 혼자 오곤 했다.
저 멀리 낮은 구릉이 보였다.
사방이 탁 트인 구릉은 작은 언덕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원래는 평지가 아니었다.
저곳은 산이었다.
산의 중턱에는 여러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 중 하나로 칠광지주(七光蜘蛛)가 들어섰다.
백대 영물 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일곱 빛깔을 띤 지네.
제갈유가 보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헉! 칠광지주?’
그렇게 외치며 제갈유가 동굴로 들어섰다.
그것이 작별의 시작이었다.
동굴은 동굴이 아니었다.
환상.
제갈유가 동굴로 들어선 뒷모습을 보았다 싶은 순간 풍광이 바뀌었다. 환상이었다.
환상진이 걷혔을 때 그곳은 절벽이었다. 허공을 딛은 제갈유가 신형을 선회하려 할 때, 수만 개의 선이 제갈유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산산이 조각나기 전 제갈유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살려줘…….’
‘대, 대형! 대……!’
후공은 신형을 날려 붙잡으려고 했지만 튕겨졌다.
그 직후 제갈유가 거짓말처럼 부서져내렸다.
그것을 눈 앞에서 보았다.
겁에 질린 제갈유의 마지막 눈동자를, 부서져내리는 모습을 후공이 보았고, 풍제와 당명이 보았다.
‘안 돼!’
풍제의 외침이 산을 울렸다.
당명은 그대로 허물어져 주저앉았다.
‘거짓말이지?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당명이 울었다.
제발 제발 부탁할게. 누가 거짓말이라고 말해줘! 장난이라고 말해달라고!
한참이나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산을 뒤졌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없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갔다.
또 다시 새 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맞이한 새 날의 햇살은 더 이상 빛나지도 따스하지도 않았다. 떠나기 전 산을 날려버렸다.
원래는 산이었던 곳.
제갈유를 떠나보낸 곳.
바로 그곳이었다.
풍제와 당명이 먼저 멈췄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그곳에 멈췄다.
“왜 그래? 잠시 쉬어가는 건가?”
영문을 모르는 건 단혼각 삼 호법 섬악뿐이었다.
히죽대면서 말하다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고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있으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답 대신 들려온 건 당명의 한숨이었다.
당명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당명은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봤다.
멍하니 있던 풍제도 그날을 떠올렸다. 한 손을 들어올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뭔가를 잡으려는 듯,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손짓이었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풍제는 제갈유가 있는 것만 같았다.
‘유야…….’
풍제는 아우의 절규도 다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왔다. 넌 어떠냐.’
늘 잊으려고 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래도 떠올랐다.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거냐.’
모두가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주었다.
알고 있는 것이다.
후공의 아우들에게 이곳이 어떤 의미인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갈유.’
‘제갈 선생…….’
검선과 검존, 현음신녀는 알고 있었다.
최근에 알게 된 현이신녀도 고요히 바라보는 것으로 그 마음을 위로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잠깐, 잠깐!”
단혼각 삼 호법 섬악은 뒤늦게 깨달았다. 하얗게 질려 뒷걸음질쳤다.
그런 섬악을 풍제가 바라봤다.
서늘하기 그지없는 눈빛에 섬악은 더 물러났다.
“우리가…… 아니다. 나, 나는 설명할 수 있다.”
섬악은 이제야 이곳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 이곳은 원래 산.
후공이 아우를 잃은 곳.
풍제가 절규했을 산.
사천당가주가 형님을 잃은 곳.
이들은…… 후공의 무리.
“여, 여긴…… 회영부주가 놓은 덫이었다. 회영부주의 환영진이 있었다.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아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서둘러 해명했다.
단혼각의 얼음 호수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에 이곳이 나타났으니 단혼각이 설치한 진법이라고 생각할까 두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풍제는 시선을 거뒀다.
해명을 듣고 이해해서는 아니었다.
애초에 해명은 쓸데없었다.
이미 섭혼을 통해 단혼각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 그 경로에 놓인 이곳에 대해서도 물었고 들었던 바.
회영부와 단혼각은 끝없는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우는 거기에 휩쓸렸다.
단혼각을 잡기 위한 회영부의 덫에 아우가 쓸려갔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이젠 아니다.
그러니 회영부를 상대하는 것은 복수이기도 했다.
아우의 복수이자, 대형의 환혼에 대한 보복.
풍제는 몸을 낮춰 흙을 한 줌 쥐었다.
한참이나 흙내음을 맡았다.
‘유야, 잠시만 기다려라.’
모두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오래 머물러도 괜찮다.
시간이 더 흘러도 괜찮다.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후공은 아니었다.
낮게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꼽추의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그 눈동자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무심함 속에,
“출발.”
그 말과 함께 먼저 신형을 날렸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눈길 속에 신타의 뒷모습을 봤다가 이어 풍제와 암향야를 바라봤다.
이래도 되는 건가?
각자의 눈동자에는 그런 의문과 염려가 떠올랐다.
대공자도 알 텐데 왜?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더.
또한 풍제와 당명에겐 이미 천화서고 대공자가 아니었다.
대형. 천하제일인.
누구보다 제갈유를 아끼던 사람.
누구보다 분노한 사람.
그렇기에 이래도 된다.
무엇을 해도 괜찮다.
곧바로 대형의 뒤를 따라 풍제와 당명은 신형을 날렸다. 뒤따라 달리던 때가 많았다. 여기에 제갈 아우가, 제갈 형님이 함께했었다.
지금은 함께하고 있지 않지만,
죽음에 대한 복수는 이제 멀지 않았다.
그 광경에 검선과 검존이 멍해졌다.
현음과 현이도 서로를 바라봤다.
출발을 말해야 한다면 그건 풍제여야 했다. 다른 곳이라면 신타가 말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선 달라야 했다.
‘괜찮나?’
‘뭐……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긴 하지.’
그래도 의문은 남았다.
가장 뒤처진 삼 호법 섬악도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
‘기묘하구나.’
날이 어두워졌다.
밤이 깊고, 달빛은 낮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어둠을 질주하여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다시 한 번의 아침.
주변 풍광은 변했다.
눈 덮인 산이 나타났고, 온 천지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멀리 얼어붙은 호수가 보였다.
거대한 호수여서 마치 바다를 보는 것만 같았다.
“후후, 굉장하군.”
호수를 딛으며 당명이 말했다.
후공도 동감이었다.
“북해보다 멋지군.”
추위만 놓고 보자면 북해보다는 덜했다.
하지만 호수의 드넓음은 북해의 어느 곳보다 인상적이었다.
“신타, 섭섭하네.”
북해빙궁의 궁주인 현음신녀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후공이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라 불러야지.”
그 말에는 현음신녀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난날, 반로환동한 때 얼어붙은 호수 아래에서 만난 걸 대공자가 상기시킨 것이다.
한참이나 오라버니라 불렀었다.
그리고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현음의 웃음을 뒤로하고 후공이 시선을 들었다.
한 곳을 바라봤다.
이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까르르르르르, 내가 이겼지! 어림도 없다고 했냐 안 했냐! 까르르르르르!]
색관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검령이 나타나 이내 주인을 향해 쏘아졌다.
한 바퀴 휘감던 검령이 주인의 등에 안착했다.
때를 같이 해 밑바닥에서 번과 쾌도 튀어나와 휘감겨 왔다.
쾌는 허리춤에, 번은 검령과 교차하며 등에 자리잡았다.
우우우우웅.
다시금 주인과 체결된 것이 기뻐 번과 쾌, 검령이 울었다.
그때는 후공도 화공신타의 모습을 떨쳐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되었다.
뒤따라 당명과 검선과 검존등의 교릉을 해제하니 모두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삼 호법 섬악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바뀐 모습의 의미를 알기에 당연하게도 그의 말투와 태도도 달라졌다.
“단혼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단혼각은 호수 밑.
호수의 중앙으로 섬악이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