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432화 (432/460)

432화. 알게 뭐냐!

조약돌 곁에,

만적탄 다섯 개가 놓였다.

외형은 둥그런 공과 같았다. 크기는 작았다.

고작 어른 주먹만 한 크기.

[세 개를 줬는데, 다섯 개가 되었네. 까르르르, 이득이야.]

[그윽, 그윽.]

색관조와 금섬이 좋아했다.

영뢰각주는 미소를 지으며 만적탄의 사용법을 설명했다.

만적탄의 둥그런 표면은 아홉 개의 색이 혼재되어 있었고, 여러 갈래의 줄이 음각으로 파여 있었다. 그 음각을 따라 돌리면 돌아갔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돌리고 멈추냐에 따라 용법이 달랐다. 색상과 색상의 배열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폭파 시간도 달리할 수 있었고, 위력도 조정할 수 있었다.

[간단하네.]

“다 외웠다고?”

[주인님이 천화서고의 천재인데 제가 멍청이일까 봐요?]

영뢰각주가 멍청하니 답했고,

만적탄을 가져왔던 두 장로는 각주 곁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확인했다.

색관조의 장담대로였다.

암기가 완벽했기에 과연 영물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포장했다.

기름종이로 각각의 만적탄을 감싸고, 다시 두껍게 완충재로 여러 번 둘러 충격에 대비했다.

그 보따리를 금섬이 들었다.

깃털이라도 든 듯 보따리를 붙잡고 가볍게 색관조의 등에 올라탔다. 떠날 준비를 마친 창가 앞에서 영뢰각주가 물었다.

“새야,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물어도 될까?”

적이 누구인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려고 하는가.

현 강호는 혼돈 그 자체다.

마교의 지존이 죽었고, 사천당가주가 죽었다.

후공의 두 아우가 죽음을 맞았다.

무림을 뒤흔들던 천화서고 대공자도.

마교는 불같은 분노로 악인곡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사천당가에 의해 사천은 거의 쑥대밭이라고 들었다.

거기에 구대 문파가 검선과 검존의 죽음을 밝히려 집결하여 강호를 쓸고 다니고 있고, 천하 십대 가문도 대공자의 복수를 위해 구대문파와 합류한 상태.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한데 진실은 달랐다.

모두 살아있다.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가.

왜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야 했나.

강호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답이 들려왔다.

[짹짹짹.]

영뢰각주와 두 장로가 멍해졌다.

[짹짹, 짹짹.]

다시 짹짹거리는 소리에는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 이해했다. 너의 대답은 훌륭하구나. 알면 안 되는 것이겠지.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이겠지. 그래야만 하는 것이겠지. 잘 가거라. 또 언젠가 너희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풍제와 암향야에게도 전해라.

후공은 떠났지만 후공의 그림자를 보아 기뻤노라고.

그리고 두 분이 살아 있어 다행이라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다오.

뒤따라온 말은 마음에서 맴돌았다.

그 마음의 말에 색관조와 금섬이 날아오르며 대답했다.

[짹, 째짹, 짹!]

[극극!]

퍼억, 퍽!

호수 위, 눈뭉치가 날았다.

“야, 매섭네. 자칫하면 사람 죽이겠다?”

“한 대도 안 맞아놓고 저런다.”

무흔신투와 지귀객은 진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싸움이랄 것이 없이 일방적이었다.

지귀객이 많이 맞았다.

“야, 이제 그만하자.”

“배고프네. 근데 선배, 여기가 단혼각이 맞긴 맞는 거요?”

“맞겠지. 그보단 다들 이미 떠났을지도. 색관조 따라갈 걸 그랬나?”

“근데 말이오.”

“말해.”

“우리가 여기 있는 게 맞을까? 이쯤 되니까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 솔직히 우리,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그건 맞아.”

“우울하네.”

“배고프다.”

호수 아래는 고요했다.

단혼각주는 연공에 온 힘을 다했고,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결전이 임박한 것이다.

괜히 마음이 바쁜 건 삼 호법 섬악뿐이었다.

‘다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회영부 공략을 위해 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결론은 만적탄이었다. 섬악으로선 황당한 결론이었다.

- 만적탄은 갖게 될 겁니다.

대공자의 그 말이 전부였다.

소망하면 이루어지는 것인가?

간절히 바라면 만적탄이 뚝딱 나타나는 것인가?

말도 안 된다.

행동하고 나아가야 한다.

손에 거머쥐었을 때, 비로소 갖게 되는 것이다.

“풍제, 내 생각이 틀렸소이까?”

운기를 마친 풍제가 잠시 밖으로 나와 걸었기에 섬악은 따라붙으며 물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하하, 나와 생각이 같다니 기쁘오. 한데 풍제, 대공자는 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소이다. 혹시 농담이었는데 내가 진지하게 반응한 것이오?”

“혼자 있고 싶군.”

풍제가 무심히 바라본 후 걸어가니 섬악은 붙잡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하지만 곧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암향야.”

“혼자 있고 싶다!”

“……………….”

의형제 아니랄까 봐…….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검선과 검존은 달랐다.

“허허, 대공자가 만적탄을 직접 만들지도 모르겠소.”

“허허허, 그럴 리 없겠지만 대공자라면 다 생각이 있겠지.”

“…………………….”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음신녀와 현이신녀의 반응도 대동소이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대공자가 다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래요. 섬 호법, 만적탄이 아니더라도 대공자는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방법을 강구할 테죠.”

“………………………….”

밑도 끝도 없는 신뢰였다.

물론 자신도 마주했고 겪어보았으니 대공자가 실로 놀라운 인물이란 건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거고, 만적탄은 다른 문제였다.

‘대공자는 정말 만들고 있는 것인가?’

겨우 대공자를 만날 기회가 생겨 그와 같이 섬악이 물었다.

“만들고 있냐고요?”

“아니, 난 자네가 워낙 장담하기에…….”

“섬 호법, 당황스럽군요. 원래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분이었습니까?”

“아니, 뭔 말을……. 대공자 자네가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하여 그런 생각도 든 것이 아닌가.”

그때 대공자가 하늘을 올려다봤기에 섬악도 그 시선을 따라가며 미간을 좁혔다.

“지금 이건 답답하다는 건가? 답답한 건 정작 나일세. 회영부주 주란을 상대하는 일이네. 잘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희망적인 결과를 바랄 수 없다는 말이지.”

회영부주는 단예령.

단혼각주가 주란.

하지만 섬악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풍제가 섭혼으로 섬악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 섭혼으로 술술 불 때, 섬악은 단혼각주의 이름을 단예령이라고 말했던 터.

그건 단혼각의 모든 이들도 같았다.

후공은 굳이 진실을 바로잡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비밀이 있는 것처럼 주란의 비밀도 지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왜 자신을 단예령이라고 지칭한 걸까.

그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잊지 않고자 함이 아닐까.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당해 단예령이 되고 만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그녀는 제자를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날에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은 걸지도.

“대공자, 대공자! 듣고 있나?”

“왔군요.”

“응? 누가 말인가?”

“도둑놈들. 제 수하인 천공단에 천하 삼대 대도 중 둘이 있습니다. 무흔신투, 지귀객입니다.”

“그들이 왔다고? 그런데?”

후공이 섬악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길을 열어주십시오. 신투와 지귀객이 영뢰각에서 만적탄을 가져왔습니다.”

“다섯 개.”

“응??”

뭔 소리야!

그렇게 마음으로 부르짖었던 섬악은 잠시 후 눈을 부릅떴다.

“대공자님, 저희가 영뢰각에서 만적탄을 훔쳐 왔습니다.”

“다섯 개나 가져왔습니다!”

신투와 지귀객의 당당함이 말로 할 수 없었다.

섬악은 믿을 수 없었다.

만적탄이 필요하다고 했던 건 며칠 전 나누었던 의논 결과인 것이다.

“이게 진짜 만적탄이라고?”

“진짜입니다.”

신투가 보따리를 풀었다. 만적탄이 드러났다.

섬악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과거 만적탄에 대해 들어온 형태 그대로였고 색상까지 같은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단혼각주가 천롱삭의 연공을 시작한 때로부터는 이레.

스르르.

한줄기 붕대가 번개같이 뻗어 나가며 허공을 격했다.

파아아앙!

일순 공기는 소멸.

방 안의 공기가 답답해졌다.

연달아 뻗어 나가면서 그 여파만으로 벽이 울리고 지붕이 들썩였다.

무엇이 움직이긴 했나 싶을 정도의 빠름.

하지만 후공은 볼 수 있었다.

천롱삭에 친친 감긴 주란의 앞쪽에서 후공은 좌정한 채 그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허리춤에서, 혹은 목에서 다리 쪽에서 천롱삭은 풀려나왔다. 허공을 격했다곤 해도 천롱삭의 속도와 위력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신묘함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휘어지고 틀어짐은 가히 예측 불가.

허공의 한 점을 타격했다해도 그 정교함은 놀라웠다.

- 각주, 성취는?

- 이루었습니다.

- 좋군요.

- 후공, 더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도움을 청해도 될까요?

- 물론입니다.

후공이 소매를 떨쳤다.

자줏빛 광채가 주란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소맷자락 안에 맴돌던 친이었다.

차르륵.

천롱삭이 반응은 빨랐다.

허리춤과 목 부위에서 두 줄기가 뻗어나와 자줏빛 광채를 휘감았다. 이내 친이 선회하면서 벗어나면서 쫓고 쫓겼다.

오래 가진 않았다.

천롱삭이 두 줄기에서 다섯 줄기로 늘어나면서 결국 친이 붙들렸다.

그사이 후공은 이미 주란의 눈앞.

장력은 심장 부위에 닿아가고 있었다.

주란이 막기엔 늦었고, 그녀는 막을 생각이 없었다.

파아아아앙!

콰르르.

무너진 건 주란이 아닌 좌우측의 벽면.

그와 같은 광경에 후공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강대한 기운을 천롱삭이 흩어버렸다. 일부는 받아들이면서 상쇄시켰고, 일부는 흘렸으며, 또 일부는 반탄시켰다.

천롱자가 장담했던 그대로였다.

무엇으로도 훼손시킬 수 없다.

무엇도 뚫지 못한다. 반면 천롱삭의 주인이 내뿜는 기운은 오고 감이 자유롭다.

- 각주, 훌륭하군요.

- 후공, 모두 그대 덕분입니다.

주란도 천롱삭 안에서 미소를 지었다.

붕대 안의 감춰진 주란의 미소는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르르, 스륵.

마치 뱀이 움직이듯 천롱삭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고, 몸이 점차 드러났다.

풀린 천롱삭은 그녀의 왼팔로 휘감겨갔다.

손등에서부터 팔목까지.

여러 차례 휘감겼지만 극히 얇은 탓에 결코 두툼해 보이지 않았다.

후공이 기이하게 여길 건 없었다.

그녀에게 전수한 것이 자신인 것이다.

천롱삭은 평소 왼팔에 감겨 머문다.

펼치게 되면 순식간에 전신을 휘감아 신병이기가 되는 터.

반시진 후.

후공은 화공신타가 되었다.

풍제와 검선 등도 악인곡이 되어 호수를 떠나 신형을 질주했다.

그들 곁에는 단혼각주와 섬악이 함께했고,

그들의 하늘에는 색관조와 금섬이 날았다.

달리는 주란은 생각이 많아졌다.

스치는 풍경에 지나온 길고 긴 세월이 하나둘 주마등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실패, 실패, 실패, 실패.

그렇게 어느샌가 천 년의 세월.

“화공신타.”

주란이 불렀다.

꼽추가 슬쩍 바라보며 인상을 구겼다.

“인생은 무엇일까?”

“인생? 알게 뭐냐.”

“무슨 뜻이지?”

“클클클.”

화공신타가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인생이란 잘 놀다 가는 것. 그뿐이다. 그러니…….”

놀아 보자!

그 말이 긴 여운이 되었다.

그 말이 일행의 마음에 담겨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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