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435화 (435/460)

435화. 그래도 웃자.

“멈췄네.”

지진은 멈췄다.

또 멈춘 건 아이의 울음소리.

‘죽었나?’

‘죽었을지도…….’

쇠사슬에 구속된 모두가 한숨을 토해냈다.

분명 아이의 울음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는데 갑자기 쥐죽은 듯 고요해진 것이다.

죽은 건가.

그런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확인할 수 없다.

단전이 부서졌다.

내공 한 줌 없다.

환혼되어 바뀐 몸은 망가진 채였다.

그렇기에 잘 들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손목에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원래라면 이런 쇠사슬 따위는 실 끊어내듯 끊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강력한 구속이 되어 있었다.

“지진아, 일어나라! 산을 무너뜨려라!”

소향객이 외치고, 몇몇이 따라 외쳤다.

그 말을 들었음인가.

다시 땅이 흔들렸다.

쿠우우웅!

흔들림은 조금 더 거칠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여러 개의 금빛 선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건 벽에도,

석실의 천장에도 나타났다.

“저 금빛 선들은 뭐지?”

“진법.”

원광자의 물음에 소향객이 답했다.

지진으로 인해 이곳의 진법이 영향을 받고 있음이었다.

- 주군, 지진이 심상치 않습니다.

화원을 연상케하는 꽃이 만발한 석실에서 단예령은 보고를 받았다.

“걱정되느냐?”

- 위력이 점점 커지니 지하의 진식은 교란될 것입니다.

단예령이 웃었다.

웃음 끝에 그녀의 표정이 나른해졌다.

“대자연이 일으킨 지진을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이냐. 조만간 지나갈 테지. 곧 잠잠해질 테지. 그 후 부서진 곳을 보수한다.”

- 자연 현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진식을 교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것이라면. 그 후 지하를 뚫고 올라온다면…….

땅속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이들이 있다.

이 시대 지천이 그럴 수 있고,

회영십존 중 제금존도 토(土)의 공능으로 바람처럼 땅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을 단예령이 모를까.

“나의 제자가 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 잠입한 두 암주를 죽이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러 온 것일지도 모르지. 감교야, 어떠냐.

- ?

”나의 제자가 대견하지 않느냐?”

- …….

단예령이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거닐다 멈춰 꽃향기를 맡으면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향기에 취했다.

“만약 오고 있다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겠지. 그 아이는 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나도 그 아이의 기억을 지녀본 적이 있으니.”

-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방비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예령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이나 웃던 단예령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방비할 생각이지? 감교, 네가 지하로 내려가 확인해볼 것이냐? 조각조각 찢겨나갈 텐데도 괜찮을까?”

그러면서 또 다시 웃었지만, 감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느릴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가한 건, 지하에도 진식의 천라지망이 깔려 있기 때문.

진식은 내력에 반응한다.

번개가 치듯 수만 개의 진식의 기운은 유도되듯 내력을 쫓아와 조각낼 것이다.

그 결과 무엇이든 찢겨나갈 것은 자명한 일.

“감교, 너의 근심은 알고 있다. 나는 너의 충정이 기쁘다. 되었다. 물러가라.”

기척이 사라진 후,

단예령의 얼굴은 더욱 온화해졌다.

‘제자야, 그립구나. 예령, 이 지진이 너라면 좋겠구나.’

한 송이 꽃을 땄다.

손바닥에 놓인 하얀 꽃은 색이 선명하고 신선했다.

하지만 이내 누렇게 변해갔다. 화무십일홍이었지만 그녀의 손바닥에 놓인 꽃은 순식간에 시들어갔고, 썩어갔다.

‘내가 땅에 묻을 수고도 없이 넌 이곳 지하 흙 속에서 썩어갈 테니.’

만약 오고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진식이 교란되어도 기능하지 않는 건 아니다.

도리어 무차별적으로 폭주한다.

그러니 내력에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한 지점을 유도되듯 쫓지 않아도 된다.

그저 파멸.

“후후, 그것이 더 파괴적이란 걸 모르니…… 내가 너의 스승인 것이고, 너는 나의 제자인 것이다.”

쿠우웅.

쿠우우우웅!

어느덧 지귀객은 운부산 지하.

지귀객이 돌아봤다.

바로 뒤에 대공자, 아니 화공신타 님이 있었고, 그 뒤로 천롱삭에 감싸인 단혼각주와 일행을 볼 수 있었다.

“신타 님.”

“조금 더 위로.”

지귀객이 즉시 위로 땅을 뚫었다.

많이 올라가진 않았다.

“멈춰라.”

지귀객이 멈추어 고개를 돌려 아래쪽을 바라봤다.

화공신타가 올려다보며 얼굴을 구겼다.

“비켜, 이 새끼야!”

“……네.”

지귀객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이제 선두는 화공신타였다.

달그락.

품에서 만적탄을 하나 꺼내는 소리가 났기에 지귀객이 기겁했다.

“여, 여기에서 터뜨리시는 걸까요?”

“그럼? 더 위로 올라가라고? 나 벌집 될 텐데?”

“그게 아니라 바로 터뜨리시면 저희도 무사하진 못할…….”

“나 못 믿어? 나 불신해?”

“………….”

으으으, 진짜 터뜨리시는 것이로구나.

지귀객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불신하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듣기로 만적탄은 하나만으로 산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들었다. 단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강호인들은 그런 파괴적인 만적탄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다행이라고 떠들어대곤 했다.

‘폭발의 시간도 정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둥그런 만적탄에 빗금이 가 있는 건 멋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돌리고 맞추느냐에 따라 시간을 정할 수도 있으니 누구 할 것 없이 만적탄을 두려워했다.

‘에잇, 죽기야 하려고.’

죽는다 해도 함께 가는 이들이 대단하다.

거의 자살이라서 어이없긴 해도, 누구 할 것 없이 경이로운 존재들이니 나름 근사한 죽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후공은 나머지 만적탄도 꺼내들었다.

다섯 개의 만적탄을 동시에 조정했다.

끼릭.

살짝 돌렸다.

폭발은 거의 즉시.

단 두 번의 호흡.

우우우웅.

다섯 개의 만적탄이 흔들리며 기음을 발했다.

한 번의 호흡에 만적탁을 위로 밀어올려 파묻었다.

푸욱.

두 번째의 호흡에는 환명을 띄웠다.

전면에 가득. 후방에도 환명이 덮이며 아지랑이가 모든 일행을 감쌌다.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에 단혼각주가 자신의 곁에 머무는 아지랑이를 건드려 보았다. 손가락이 들어갔다가 잠겼다. 빼내려 했지만 빼낼 수 없었다.

그사이,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기음이 커지면서 파묻었던 만적탄이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엄청난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난 순간,

‘허운.’

허운이 환명을 관통해 쏟아져오는 만적탄의 위력을 반탄의 묘로 튕겨냈다.

본래 경지에 근접한 지금.

일 년 전의 허운과 지금의 허운이 같을 순 없는 일.

그리고 그 반탄의 묘에 의해 만적탄의 폭발은 아래가 아닌 위로 향해가니,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쿠르르르르르.

산이 무너져내릴 듯 뒤흔들렸다.

그리고 지귀객은,

‘으어어, 튕겨…… 내셨어.’

지귀객이 위쪽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호받을 것이라곤 생각했지만, 아래로 뻗어오는 만적탄의 폭발을 튕겨낼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잠깐이지만 불신한 것이 부끄러워질 지경.

보고도 믿어지지 않아 지귀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달라진 건 없었다.

보고 있는 건 현실이었다.

머리 위쪽으로 거대한 원통형의 통로가 열려 있었다.

어떻게 된 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지귀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뒷덜미가 붙들렸다.

“가자.”

후공은 지귀객을 붙잡고 원통형의 통로로 솟구쳤다.

그 뒤를 모두가 날아올랐다.

환명은 어느덧 걷힌 터.

뒤따르며 단혼각주의 두 눈은 천롱삭 안에서 놀라움으로 물들어갔다.

‘반탄만 한 것이 아니라…… 폭발을 정교하게 다루었다니!’

드러난 광경에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만적탄의 폭발을 튕겨내어 파괴력을 더한 것만이 아니었다. 퍼져나가지 않도록 조율해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직선의 통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다.

자신의 염려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진식이 교란된다 해도 무차별적인 진법의 공세를 비껴가야 하는 과정을 맞게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예 더 이상 땅을 파고 올라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만적탄의 폭발 위력은 회영부를 뒤집어놓았다.

폭풍우가 치는 바다 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초연히 서 있을 수 있는 이들조차, 세상이 흔들리는 진동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진식을 점검한다!”

“아래로!”

벽과 천장과 바닥에 금빛 선이 미친 듯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점멸했다. 대체 어떤 강도의 지진인가. 짐작건대 하층부의 진법은 바스러졌을 터.

일부는 진식을 점검했고,

또 일부 대주들은 모든 시안조를 조정해 운부산 주위를 날개 했다.

“시안조를 통해 주변을 살펴라! 빠짐없이 낱낱이 보아야 한다!”

몇은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다 내려가기도 전에 떠들썩했다.

석실에 갇힌 강호의 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구나! 가자아아아아아!”

“한 번 더! 지진이여, 한 번 더 울려라! 산을 무너뜨려라!”

“산을 뒤집어 엎어라! 그리하여 환혼도 덮어버려라! 영원히 환혼을 묻어버려라!”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환호성은 죽음에 대한 소망이었다.

또한 환혼대법이 더 이상 이 강호에 남아 있지 않길 바라는 염원이기도 했다.

후공이 떠난 지금,

풍제가 있다 해도, 암향야가 있다 해도,

그들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좌절은 깊고 절망이 친구가 된 지금.

좋지 않은 생각만 떠오를 뿐이다.

그러니 풍제와 암향야.

화산의 검선과 무당의 검존도 여기로 끌려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대로 묻히길.

지진은 더 맹렬해지고, 점멸하는 금빛은 더 요란해져 진법이 도리어 모두를 죽이길. 그런 소망이 담긴 환호성이었다.

아이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가까이 있음에도 구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이다.

“조용.”

그런 그들 앞에 중년인이 나타났다.

두 눈은 심연인 듯 깊게 가라앉은 그는 회영부의 오 호법.

그의 얇은 입술이 다시 열렸다.

“하하하하, 조용, 조용, 조용, 조요요요요용!”

소향객이 웃으며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이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우리 죽이려고?”

“그거라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만.”

“나부터! 나부터 죽여라! 나 원광자. 강호에서 천하제일인은 되지 못하였지만, 이곳에선 제일(第一)이 되고 싶다! 하하하하하!”

원광자가 눈을 감았다 떴을 땐,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느샌가 그의 눈앞에는 오 호법이 서 있었다.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원광자, 원래 소원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안 죽이게?”

“물론.”

“실망스럽네.”

“실망할 건 없다.”

“왜?”

“넌 죽음에 가까워질테니.”

오 호법이 손을 뻗었다.

철커덩, 철그락. 소리와 함께 원광자가 떠올랐고 오 호법의 손아귀에 머리가 붙들렸다.

“팔을 뜯어내도 죽지 않는다. 너의 다리를 뜯어내도 산다. 눈을 멀게 하고 혀를 뽑아내도 여전히 살아있게 되지. 하지만 죽음에는 가까워진 셈이 된다.”

“흐흐, 무섭네.”

원광자가 낄낄거렸다.

오 호법도 웃었다.

머리를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원광자의 오른쪽 어깨를 짚었다.

“너의 웃음이 언제까지 입가에 매달려 있을지 궁금하군.”

“하하, 언제까지나. 오른팔아, 안녕~.”

원광자가 다정히 인사를 건넸다.

닿았을 뿐인데 벌써 팔이 욱신거린다.

이제 곧.

팔은 사라진다.

원래 내 몸도 아니었잔아.

그리고 미안해.

바뀐 몸이어도 소중히 해야 하는데.

그래도 웃자.

팔이 떨어져나가고 다리가 떨어져나가도, 혀가 잘려나가도 웃자!

멋지잖아!

우득!

손이 파고들었다.

뼈마디에 닿았다.

그래도 원광자는 웃었다.

오 호법을 바라보며,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스아아악.

갑자기 나타난 자줏빛 광채.

오 호법의 양쪽 어깨를 스쳐간다 싶을 때,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거, 거짓말…….’

투둑.

오 호법의 어깨가 잘려나가며 두 팔이 떨어져나갔다.

그건 당사자인 오 호법도 마찬가지였다.

손이 허전해 바라보니…….

팔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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