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436화 (436/460)

436화. 와아아아.

오 호법은 현실감이 없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지 않나? 원래 마른하늘 아래에서 날벼락은 치지 않고, 그러니 맞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팔이 허전하고, 떠오르기까지 했지만 그는 잠시 왜 떨어져 나갔나 고민될 정도였다.

이 몸은 사황천의 원로인 적염마의 손자였다.

사황천이 후공에게 말살당한 후 권토중래 중이던 몸이었는데, 매우 뛰어났다.

흡족하여 몸을 빼앗은 후, 말하기도 했다.

너의 몸으로 내가 후공을 죽여주마.

그러니 원망 마라.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떤 징후도 없었고, 감지하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이었다.

푸수스스스!

잘려나간 양쪽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머뭇거릴 순 없었다.

지혈을 할 틈도 없었다.

그대로 신형을 날려 석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럴 생각이었지만,

카르르르릉!

기음이 들렸고 허리가 꼬집힌 것처럼 따끔했다.

그와 함께 몸이 무너졌다. 분명 앞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된 게 갑자기 바닥이 보였다.

쿠웅.

오 호법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몇 번을 굴렀다.

그렇게 멈추고서야 보았다.

한쪽 뺨을 바닥에 댄 채로, 볼 수 있었다.

허리가 따끔했을 뿐인데…….

자신의 몸 절반이, 자신의 하체가 저만치 있었다. 흔들거리더니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본 것은,

한 줄기 자줏빛 광채.

빛줄기가 석실을 선회하고 있었다.

‘……누구?’

대답은 환호성이 대신했다.

“후공이다! 후공이 오셨다! 내가 뭐랬냐. 오신다고 했냐, 안했냐!”

원광자였다.

비둘기 중 하나여서 자줏빛 검광을 알아봤다.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었다.

후공이라고?

그럴 리가.

하지만 저 자줏빛 광채는 닮……았어.

소향객은 기억을 떠올렸다가 얼른 떨쳐냈다.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짐승이 울던 날.

제갈 군사가 짐승처럼 울부짖던 날.

자신도 바라본 후 같아졌다.

며칠이 지나 찾아온 풍제와 암향야의 분노한 모습도 잊을 수 없다.

그러니 후공일 리가.

청우자도, 소림의 릉인도, 개방 방주 곤오신개도 그렇게 생각할 때, 튀어나왔다.

콰앙!

바닥을 뚫고 흉악한 곱추가 나타났다.

“후…… 뭐여?”

환호하려던 원광자가 멍해졌다.

왜 후공이 아니여?

왜 꼽추여?

다른 이들도 같아졌다.

꼽추여서가 아니라, 세상에 이보다 흉측한 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약한 얼굴이었기 때문이었고, 어떻게 봐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구해주러 온 건 줄 알았는데…….

더한 놈이 나타난 느낌.

짐작이 맞았다.

꼽추에 이어 기괴한 외모의 인물들이 연거푸 튀어나온 것이다.

“이름.”

꼽추가 물었다.

원광자가 답했다.

“원광자라고 한다.”

‘내 비둘기가 잡혀 있었군.’

후공이 반갑게 웃었다.

하지만 원광자는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웃음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넌 누구냐?”

후공은 대답 대신 풍제를 바라봤다.

풍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염혼을 불러냈다. 묵빛 연기가 맺히며 형상을 갖춘 열두 염혼이 움직여 쇠사슬을 끊고 갇혀 있던 이들을 들어 올렸다.

다른 이들이 누구인지 일일이 확인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었다. 하나가 원적자면 이 중에 릉인이 있을 것이고, 소향객이 있을 것이며 곤오신개가 있을 것이다.

염혼들은 둘 혹은 셋을 끌어안고 뚫린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잠시 흙더미의 통로를 지난다 싶다가 뻥 뚫린 허공을 맞이했고, 하강했다.

염혼에 잡혀 추락하면서 각자가 보았다.

하강하고 있는 건 거대한 동굴과 같았다.

수직으로 뚫린 동굴.

아래쪽에 이런 동굴이 있었어?

그런 놀람도 컸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을 붙들고 있는 괴생명체를 떠올리기 바빴다.

“염혼?”

“풍제라고?”

소향객과 청우자가 놀라 소리쳤다. 어릴 때, 젊을 때 후공의 졸개들이어서 그들은 염혼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풍제일 리가 없잖아!”

“붕대를 감고 있는 사람은 뭐냐고!”

“으아아아아아!”

“나무관세…… 으우웁!”

누구는 염혼을 알아봤지만, 누군가는 염혼과 비슷한 공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너무 흉악하니까! 한 놈은 또 왜 붕대를 감고 다니는 건가.

무공을 잃은 소림의 릉인은 그 와중에도 마음을 다스리려 불호를 읊조렸다가 엄청난 바람에 숨을 헉헉댔다. 머리카락도 미친 듯이 바람에 휘날렸다.

머리카락이 있으면 이런 게 안 좋군.

거의 평생에 걸쳐 머리카락이 없이 지냈던 릉인은 신선함을 느꼈다. 또 빠르게 하강한다 하여 숨이 막히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각자의 마음에 떠오르는 건,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 거지?

이렇게 떨어져도 괜찮은가?

놓아버리는 건 아니겠지?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데다 어느 것 하나 불분명했기에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놓진 않았다.

도리어 놓칠세라 염혼이 단단히 붙잡고 만적탄이 폭발했던 위치에 도달했다.

쿵, 쿵, 쿠웅!

최대한 충격을 완화하여 내려앉느라 염혼들의 다리는 흩어지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이내 새롭게 다리를 형성했다.

그러곤 차례로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

지귀객이 파놓았던 땅속 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 어느 순간 지면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제야 놓이게 되면서 모두는 갑작스러운 햇빛에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염혼은 하나만 남아 있었다.

염혼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모습에 소향객과 청우자가 기겁했다.

염혼의 입을 보면서였다.

염혼의 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풍제의 염혼이 아니야!”

“풍제의 염혼은…… 입이 없어…….”

과거에는 없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 걸 소향객과 청우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아니라고 했지?”

원광자도 소리쳤다.

소림의 릉인도, 곤오신개도, 그 외 모두가 놀라 주춤 물러날 때, 염혼의 입이 열렸다.

[나는 풍제.]

“……?”

“……??”

모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안심해라. 천화서고 대공자와 함께 왔다. 내 아우 당명과 함께 왔다.]

“그, 그게 무슨?”

“그럼 아까 보았던 이들이?”

경악하던 염혼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새와 두꺼비가 인도할 것이다. 따라가 잠시 동안 몸을 추스르고 있어라. 끝나거든 찾아가겠다.]

“정, 정녕…… 풍제이십니까?”

소향객이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염혼은 이미 흩어지고 있었다.

그 대신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왔다.

새의 등 위에 두꺼비도 볼 수 있었기에 풍제가 말한 그 새였다.

[까르르르르르! 새 처음 봐요? 가자구요!]

[그으윽!]

색관조가 천천히 날았다.

운부산 주위를 날던 시안조는 모조리 말살한 터. 스무 마리가 넘었지만 숫자는 의미 없었다.

가아아아아아!

금섬이 독을 뿜어내 날면서 빠르게, 많이 보내버렸다.

하늘을 나는 독마차가 독을 뿜고 돌아다닌 셈이라, 시안조들은 빠르게 회피하려 급히 숨을 들이켜다 죽어나갔다.

“말을 하네?”

[노래도 하는데요? 주인님은 천하무적! 뚱뚱한 천하제일인의 검을 다루시지. 그 이름은 천화서고 대공자! 쿵딱쿵딱, 무섭다가 멋지다가 난리도 아니지. 쿵딱쿵딱!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그윽, 극극극!]

그 노래에 모두가 짐작했다.

흉악한 꼽추가 실은 누구인지.

그 시각, 이미 회영부는 향기와 피에 뒤덮여갔다.

피는 지하 구층으로 몰려온 이들의 것이었고, 향기는 후공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회영부 대주들이 비검에 쓸려 나가고, 당명의 암기에 꿰뚫려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백삼십칠. 구십삼.’

천향 오주의 탐향의 공능이 발현.

그 결과 후공은 일행 외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숫자를 파악했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일행에 의해서, 자신의 신검들에 의해.

남은 자 중에 회영부주 단예령이 있을 것이고, 회영부의 오 호법 중 넷이 있을 것이다.

‘팔십삼.’

탐향에 닿았기에 삶과 죽음을 구분할 수 있었다.

또한 천향오주에 이르렀기에 향선을 따라 남은 이들의 당혹에 찬 대화도 들을 수 있었다.

‘구층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적입니다! 적이 산 아래에서 뚫고 들어왔습니다!’

‘호법님들을 찾아라!’

‘크아아아아악!’

소란스러운 외침들.

그리고 소곤거리는 소리도.

‘싸움이 났나 봐.’

‘말하지 마. 울지도 마.’

‘그래, 귀를 막아.’

‘우리 입도 꿰매질 거야. 앞을 볼 수도 없게 될 거라고.’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30명.

짐작건대 일곱, 여덟 살.

그보다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겁에 질려 있었고 아주 작게 소곤대고 있었다.

몇몇은 흐느낌을 억누르며 울고 있기도 했다.

- 풍제, 그놈은 가능한 한 살려둬라.

후공은 방금 격전을 시작한 풍제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자신의 신검은 거둬들였다.

인상착의를 떠올려 볼 때, 회영부의 사 호법.

그의 얼굴이 서문세가의 서문헌인 것이다.

이미 정보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놀랄 건 없었다.

방금 탈출시켰던 이들 중 환혼된 서문헌이 있으리라.

그러니 놈을 살려둘 수 있다면 살려두는 것이 좋다.

본래의 몸을 돌려주고 싶었다.

서문세가를 위해서도,

서문헌을 위해서도.

- 다들 도와!

굳이 길게 끌 필요가 없는 일.

회영부의 다섯 호법 중 오 호법은 죽었고, 사 호법도 모습을 드러낸 상황. 나머지 세 명의 호법과 회영부주만 보이지 않는다.

일대일의 승부 따위가 아닌 것이다.

밀려드는 대주들을 도륙하던 일행이 풍제 쪽으로 가세했다.

- 신투, 지귀. 따라와라.

그사이 후공은 신형을 날렸다.

계단을 바람처럼 스쳐 올라가는 길에 무흔신투와 지귀객이 따라붙었다.

위층의 좌측 편에 창살이 보였다.

그 안에 아이들이 보였다.

두려움에 찬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고, 누구 할 것 없이 몸을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극심히 몸을 떠는 아이도 있었다.

눈이 꿰매진 아이, 입도 꿰매진 아이는 들을 수만 있었기에 발작적으로 몸을 떨었다.

와작.

후공은 쇠창살을 종이처럼 구기고 들어섰다.

그런 후공을 아이들이 바라봤다.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눈동자마다 두려움에 차 있었지만, 두려움 사이로 어떤 기대감도 떠올랐다.

‘쇠를…… 구겨버렸어.’

‘좋은 사람처럼 보여.’

‘눈이 맑아. 웃고 있어. 따뜻한 미소야. 엄마가 날 볼 때면 저런 눈이었는데…….’

이곳에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리도 부드러운 미소와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용기를 내자.

물어보자.

지금 이 비명소리가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소리일지도 모르잖아.

우리를 구하러 온 거냐고.

친구들과 함께 왔냐고.

혼내주고 있는 거냐고.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건가요?

엄마를 볼 수 있나요?

후공이 웃었다.

후공이 답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건 아닌데도 들리는 것 같으니.

쇠창살을 구기기 전에 이미 화공신타가 아닌 천화서고 대공자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입술만 벌렸다 닫았다 하며 바라보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너희를 구하러 왔다. 친구들과 함께 왔다. 집에 가자. 엄마를 보러 가자.”

아…….

와아…….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아이들이 커진 눈으로 답했다.

벌린 입으로 답했다.

와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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